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66
그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주변이 일렁거리며 수많은 언데드와 소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걱! 피우웅- 제일 후방에 있던 이레인이 짧은 검으로 시체 늑대의 핵을 찔렀다. 그리고 하늘에 활을 겨누고 빠르게 쏘아 날렸다. 박쥐도 아니고 새도 아닌 이상한 마물의 날개가 꿰뚫리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때로는 그 상태로 불이나 독을 내뿜기도 했다. 쿵! 단단하게 두 발을 바닥에 박아 넣은 성기사들이 방패를 내밀었다.
그곳에서부터 나타난 신성력이 단단한 벽이 되어 적의 공격을 막았다. 그 신성한 벽을 적들이 마구 후려쳤다.
악령이 스스로 불타는 것을 개의치 않고 몸을 들이밀었고, 시체 골렘이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팔을 휘둘렀다. 자신의 시선을 가리고 사각에서 튀어나온 소악마의 머리를 잘라낸 아이반이 바닥에 창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붙잡고 주문을 읊었다.
“펭그(Fengr:사로잡는 자)”
아이반의 몸속에 스며든 미약한 신성이 움직였다. 한때 세계를 만들었던, 외눈을 가진 주신의 권능이 나타났다.
으드득! 아이반이 바닥에 꽂아서 세운 창에서 갑자기 새싹이 돋아난다. 바닥에서부터 뿌리가 자라나 창을 휘감고 하늘로 가지를 뻗었다.
순식간에 커다란 물푸레나무가 되어 잎사귀를 흔들었다. 휘이잉- 바람이 불었다.
맑은 공기가 퍼지고 사악한 기운에 잠식되어 있던 결계 속 세상이 흔들린다. 거세게 날뛰던 소악마들이 괴로워하고 언데드가 둔해졌다.
아이반이 이 근방을 자신의 영역으로 잠식해 들어가자 흑마법사가 짙은 마력을 흩뿌리며 소리쳤다.
“어림없다! 이곳은 죽음의 땅이로다!”
아이반이 창을 매개로 심었던 물푸레나무가 급속도로 시들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던 힘이 흩어지고 또다시 사악한 악마의 마력이 주변에 차올랐다.
탁! 아이반은 그를 방해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잠들어있던 피의 검, 브리카가 깨어나 주변의 마력을 빨아들였다.
악마의 기운을 집어삼키고 깨끗한 힘으로 바꾸어 아이반에게 전해주었다. 그 힘을 휘두르려고 하자 흑마법사가 손을 내저었다.
“그분이 그대를 보고자 한다.”
우웅- 공간이 뒤틀린다. 아이반은 자신의 몸이 늘어나는 것처럼 멀찍이 밀려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결계 속으로 진입했을 때 일행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것처럼 그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아이반이 마력을 끌어올려 그것에 저항하고자 할 때, 누군가 그에게 말했다.
“아이반,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십시오. 차라리 그곳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겁니다.”
차분한 델피노의 목소리. 아이반이 무슨 소리냐고 그에게 소리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델피노가 뿜어내던 신성력이 조금 더 진해졌다. 빛이 더욱더 밝아지고 깊어졌다.
그가 스스로 낸 팔뚝의 상처는 성흔이 되어 천상의 누군가와 이어져 있었다. 스스슥! 그가 앞으로 걸어갈 때마다 빛이 강해졌다.
등 뒤에 솟아오른 신성한 태양이 그를 비추고 있었다. 아이반은 더는 그를 걱정하지 않았다.
예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면 이따가 보겠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아이반은 저항하던 것을 멈췄다. 공간이 일렁이며 그를 끌어당겼다.
유적지 깊은 곳, 오래된 성의 중심부로. 기묘한 공간이었다. 검붉은 마력으로 타오르는 횃불이 가득했으나 밝기보다는 어두웠다.
오히려 빛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 어서 오라, 하찮은 자야.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이반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허공에 떠 있었다. 인간의 거죽을 벗고 완전히 악마의 화신이 되어버린 흑마법사, 사악한 리치가.
푸른 불꽃과 같은 안광으로 아이반을 내려다보던 리치가 의아한 듯이 말했다. – 나는 그대의 시선을 느꼈다.
그대가 나를 바라보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 그대는 무척이나 하찮구나. 그것은 무엇이었더냐? 아이반은 리치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피의 검 브리카를 쥐고 주변을 힐끔 살폈다.
웅웅웅- 피의 검 브리카가 울부짖고 있었다. 애통한 슬픔을 토해내고 분노에 몸을 떨었다.
그것으로 아이반은 확신했다. 피에르 로렝이 이곳에 있었다.
빠르게 주변을 확인하던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박혀 들었다. – 이 제물과 아는 사이냐? 조금만 더 빨리 왔어도 대화를 할 수 있었을 것을. 아직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리치의 말대로 너무 늦어버린 모양이다.
뚝뚝뚝- 그가 핏물에 잠겨있었다. 미약하게 움직이는 가슴과 꿈틀거리는 몸을 보고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너무나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래, 제물에게 팔다리는 필요가 없겠지. “···피에르 로렝, 어찌하여 목만 이리 남으셨소.”피에르 로렝은 죽지 않았으나 이미 살아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영혼은 악마의 마력에 반쯤 물들어 있었고, 이미 끊어졌어야 할 목숨은 강제로 이어져있었다.
멈췄어도 이미 예전에 멈췄을 심장이 외력에 의해 움직인다고 살아있다 말할 수는 없으리라. 우우우웅! 피의 검 브리카가 거칠게 떨렸다.
아이반은 검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무슨 의도로 나를 불렀는지 모르겠으나,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말에 리치가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껄껄 웃었다. – 하. 하. 하. 나는 삶을 후회했고 죽음을 후회했다.
언제나 후회하고 있으니 너는 나를 그리 만들지 못한다. 하찮은 자야. 탁! 아이반이 뛰어올랐다.
폭풍신의 권능을 날개로 삼아 허공에 날아오르고, 천둥신의 권능을 무기로 삼아 녀석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렇게 검을 휘두르는 순간, 아이반은 리치에게 닿지 못함을 깨달았다. 눈앞까지 다가왔던 녀석이 멀찍이 멀어지고 있었다.
공간이 두껍게 벽을 쌓아 다가간 것보다 빠르게 밀려났다.
“컥!”
잔뜩 밀려나 벽에 부딪히고 다시 끌려와 바닥에 깔린다. 공간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그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화르륵! 아이반의 주변으로 로키의 불꽃이 타올랐다. 그를 이리저리 가지고 놀던 공간의 움직임이 멈추고 안정을 되찾았다.
아이반에게 남겨진 상처가 환상이 되어 흩어졌다. – 신기한 힘이로다.
전사인 줄 알았으나 아니구나.녀석이 뭐라고 말을 내뱉었으나 아이반은 듣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지금도 악마의 마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건 의식이 진행 중이라는 뜻. 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윽! 아이반은 녀석을 노리는 대신 피에르 로렝에게 달려갔다.
그의 목숨을 끊어 사악한 의식에서 해방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금 공간이 뒤흔들리며 그를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다. 이곳은 완전히 리치의 영역이었다.
아이반에게 너무나 불리했다. ‘녀석의 영역부터 무너뜨려야 해. 하지만 어떻게?’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이대로 농락당하다가 목숨을 잃을 뿐. 그러면 대체 델피노는 왜 이곳으로 가라고 한 걸까? 그는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그의 신이 무엇을 알려주었기에? 리치가 뿜어내는 마력에 아이반의 몸이 서서히 짓눌린다. 무릎을 땅에 대고 목을 빳빳이 들어 버티고 있었으나 점점 앞으로 숙여졌다.
그때 그를 짓누르고 있던 마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리치가 문득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 허, 어떻게 벌써 이곳까지···! 쿵. 쿵. 쿵! 누군가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마력에도 담담하게 걸었다.
손에 쥐고 있던 악마의 머리를 옆으로 집어 던졌다. 시커먼 피를 흘리던 악마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다가 이내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요정군단의 지휘관, 미래의 엘프 영웅, 필레인 그레이우드. 그가 찬찬히 안을 둘러보다 아이반을 발견하고 말했다.
“제가 조금 늦었군요.”
필레인 그레이우드가 허공에 떠 있는 리치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여전히 리치의 영역이었고, 녀석이 뿜어내는 마력이 가득했으나 필레인은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듯 당당히 서 있었다.
스스슥! 그의 주변에 4대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리치가 만든 결계를 뒤흔들고 사악한 마력을 밀어냈다.
바닥에 짓눌리고 있던 아이반 역시 여유를 되찾고 일어날 수가 있었다. 퉤! 바닥에 피를 뱉은 아이반이 필레인 그레이우드에게 말했다.
“쉽지 않았을 텐데, 빨리 오셨소.”
“별말씀을.”
“다른 이들은?”
“아직 붙잡혀있습니다. 결계부터 무너뜨려야겠지요.”
아이반은 힐끔 그가 뚫고 들어온 벽 너머를 보았다. 이리저리 널브러진 시체조각과 썩은 핏물, 사악한 악마들이 남긴 흔적이 가득했다.
꽤 격한 전투를 거치며 서둘러 달려온 모양이었다. ‘강하다.
’ 과연 엘프의 영웅, 요정기사 필레인 그레이우드. 그는 무시무시한 마력을 내뿜고 있는 리치를 보고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 엘프 특유의 무심한 얼굴이 지금은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웠다.
“녀석에 뒤에 제단이 있소. 일단 그것부터 무너뜨려야 하오.”
“같이 노력해보죠. 먼저 가겠습니다.”
탁! 허공에 뛰어오른 필레인 그레이우드가 마치 나는 듯이 빠르게 녀석에게 다가갔다. – 어림도 없다.
리치가 손을 휘젓자 공간이 중첩되며 그의 앞을 막았다. 조금 전 아이반과 완전히 같은 상황. 그러나 필레인의 정령들이 움직이자 왜곡된 공간이 깨져나갔다.
쾅! 필레인 그레이우드의 검이 리치의 눈앞에서 멈췄다. 방어막을 뚫지는 못했으나 검이 닿은 것만은 분명했다.
공간 왜곡에 이리저리 밀려나지 않고 공격을 날렸다는 것이 중요했다. 필레인이 녀석의 공간 장악력을 뒤흔들었다.
리치의 영역에 빈틈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스윽! 아이반이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오른쪽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저 멀리 놓고 왔던 창이 공간을 뚫고 나타나 손에 잡혔다.
왼쪽에는 피의 검 브리카, 오른쪽에는 길을 잃은 대전사의 창. 쉽게 보기 힘든 강력한 무기들이 그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아이반에 몸에 활력이 솟았다.
치지직! 쾅! 천둥걸음. 마치 번개가 움직이듯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땅을 박차고 공간을 좁혔다.
목표는 제단. 녀석이 아직도 진행하고 있는 의식을 멈추는 것. 피에 젖은 피에르 로렝과 그의 곁에 놓인 붉은 잔, 주변에 타오르는 어두운 악마의 불꽃. 아이반이 가까이 다가간 순간 악마의 불꽃이 커다랗게 피어올랐다. 그것이 벽이 되어 아이반의 앞길을 막아섰다.
“녀석 외에도 다른 자들이 더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 처리해야만 합니다!”
리치와 바쁘게 싸우던 필레인 그레이우드가 외쳤다. 그 말을 들은 아이반은 신의 이름을 불렀다.
천상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을 아스가르드의 수문장에게 기도했다. ‘헤임달, 당신의 권능을 부디 나에게!’ 우웅- 아이반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신의 힘이 충만하게 차올랐다.
그의 감각이 열리고 주변의 모든 것이 느껴졌다. 세상 끝까지 볼 수 있는 눈이, 양털이 자라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는 귀가 생겼다.
세상 만물 모든 것을 살피는 신들의 파수꾼이 가진 권능이 그에게 깃들었다. 신성의 조각을 흡수하고 깨져버린 신성의 그릇을 치료한 이후 신들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래서 아이반은 헤임달의 권능을 더욱더 잘 사용할 수 있었다.
스윽 일순간이나마 초월자와 비슷한 감각을 얻게 된 그의 눈이 가려진 공간을 꿰뚫어 보았다.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