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7
모든 유적이 잃어버린 옛 왕가의 비밀창고 같은 것도 아닐 텐데 일단 뚫고 들어간다고 무조건 금은보화가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대개 미발견된 유적이 열이라면 그중에 다섯은 꽝이었고, 셋은 역사적, 학술적 가치만 가득한 곳이었으며, 둘 정도만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금은보화를 품고 있었다. 겨우 2할, 혹은 그 이하.
목숨을 걸고 위험한 장소로 들어가는데 너무 낮은 확률이 아닐까? 그건 그렇지 않았다. 한 번 대박이 터지면 인생을 바꾸고, 나라를 바꾸고, 역사를 바꾼다. 그 보상에 비하면 확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던전을 노리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란 소리지.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발견해서 들어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
하지만 .’ 아이반은 턱을 긁적이면서 바닥을 살폈다. 아무리 보아도 제대로 된 발자국이 남아있지 않았다. 뚜렷한 것은 모두 그와 일행들의 것일 뿐. 하지만 일단 의심을 가지고 잘 살펴보니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흔적들이 몇 개씩 눈에 띄었다. ‘ 발자국을 숨겼군. 왜?’ 누군가 금방 뒤에 따라 들어올 것이라 확신했으니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대개 던전의 구조는 직선이 아니었다.
각 잡고 사각에 숨으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목표는? 유적을 탐사하고 찾아낸 보물을 강탈하려는 의도겠지.
아이반의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불특정 다수를 노린 것이 아니야. 분명히 우리를 목표로 하고 있어.
정보가 샜군.’ 중간에 한 번 마을로 돌아갔던 것, 그것이 문제였으리라. 숲의 이상을 조사한다면서 성수를 사고 언데드용 장비를 구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개중에 눈치 빠른 몇은 무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수도 있겠지.
아이반이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바닥을 기다시피하며 함정을 찾아내고 있던 스벤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젠장, 뭘 그리 고민하고 계시오? 할 거 없으면 같이 이쪽으로 와서 함정이나 찾아보시지.”
” 이곳에 봉인되었다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소. 던전이 되었으니 오래전에 사멸했다는 그놈이 또 다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소?”
“뭐? 대악마가 튀어나온다고?”
깜짝 놀란 일행의 시선이 박혀들자 에민은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나타난다고 해도 진짜 대악마는 아닙니다. 던전의 마력에 의해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가짜죠. 던전의 마력이 아주 강대한 수준은 아니니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원본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하겠지. 혹시 그에 대한 정보는 없소?”
“으흠, 네. 뭐가 봉인되어 있었는지는 아룬교단에서 엄격히 관리하는 비밀이라 . 그래도 마력 패턴이나 언데드들이 창궐하는 것을 보면 역시 사령계통의 악마일 텐데, 개중에 유명한 것은 .”
자신의 전공분야를 찔러서 그런지 에민은 폭포수처럼 관련 정보를 토해냈다.
이 근처에 떠돌고 있는 민담이라거나, 역사서의 내용, 자신의 추측 등등.
이미 이곳 던전의 보스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아이반은 관심도 없었지만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에민과 대화를 계속했다.
누군가 먼저 던전에 들어와 숨어있다는 사실은 숨기기로 했다.
괜히 그것을 밝혔다가 어딘가 숨어있을 그들을 크게 자극할 우려가 있었다.
“망할. 수도원에 무슨 이런 무식한 함정들이 다 있지?”
스벤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용케 함정을 다 찾아냈다.
이런저런 함정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주 높은 수준의 것은 없어서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몇 번쯤 갈림길이 나왔지만 문제는 없었다. 애초에 미로로 만들어진 곳도 아니고 수도원. 아무리 던전이 되어서 변형이 생겼다고는 해도 그리 복잡한 구조는 아니었다.
“씨부럴, 이 뼈다귀 놈들은 언제까지 나오는 거야?”
파각! 랄프가 욕설을 내뱉으며 방패를 휘둘렀다. 허연 두개골을 단단한 방패가 부수자 끼긱끼긱 움직이던 뼈다귀가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스켈레톤, 좀비, 구울.
하나하나는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방심하고 있을 때쯤 튀어나와 공격을 해서 영 거슬렸다.
제대로 휴식을 하지도 못하고 계속 긴장을 하고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변했다.
확연히 짙어진 사기(邪氣), 싸늘한 바람.
드르르륵! 돌로 된 문이 열리고 누군가 걸어 나왔다. 아주 오래되어 낡고 더러워진 사제복을 입은 시체, 한때는 신실했던 타락한 존재.
죄 많은 육신과 타락한 영혼이 던전의 마력을 받아들여 나타난 괴물, 저주받은 수도자. ‘그래, 이쯤이면 중간보스가 등장해야지.’ 검을 굳게 쥔 아이반이 소리쳤다.
“보통 놈이 아니오! 모두 경계하시오!”
아이반의 경고와 함께 저주받은 수도자가 양팔을 활짝 펼치며 소리를 질렀다. – 누우가아 우우리리르을 깨애워었느은가아아! 저주받은 수도자의 목소리가 뇌리를 파고들었다. 영혼을 뒤흔드는 비명 같은 외침에 속이 답답해지고 몸이 무거워진다.
“저주다! 모두 성수를 들이켜!”
일행은 일제히 품에서 성수를 꺼내 마셨다. 그 속에 담겨있던 신성력이 온몸을 감싸고 저주받은 수도자의 마력을 밀어냈다. 하지만 위협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바닥에서부터 피눈물을 흘리는 시체가 솟아올랐으며, 벽을 뚫고 원혼들이 날아다녔다.
“젠장, 타락해서 지들끼리 인신공양을 하던 새끼들이 억울하면 얼마나 억울하다고.”
낮게 욕설을 내뱉은 아이반은 검을 굳게 쥐고 신을 불렀다. ‘토르, 썩은 시체를 토막 낼 수 있는 힘을 !’ 우웅- 아이반의 몸속 깊은 곳에서 신성한 힘이 터져 나왔다. 눈앞에 있는 역겨운 놈들을 모두 도륙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파괴적인 힘이었다.
치지직, 치지지지직! 쥐고 있던 검에 새하얀 번개의 힘이 깃들고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사기를 태워버리듯 타닥타닥 소리가 퍼지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던 원혼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원혼은 무시하시오! 저 녀석을 잡아야하오!”
아이반의 외침에 율리아가 저주받은 수도자에게 달려들었다. 슉, 슈우욱! 자세를 낮추고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튕겨지듯 앞으로. 길을 막아서는 시체들을 무시하고 날아가듯 솟아올라 양 손에 기를 듬뿍 담고 휘두른다.
[천둥걸음!] [아랑인(餓狼刃)!] 말 그대로 굶주린 늑대가 먹이를 씹어 삼키듯 날카롭게 내려찍는 공격.무파 썬더울프가 자랑하는 뇌랑권의 오의는 금방이라도 녀석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율리아는 표정을 굳혔다. 손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쾅! 끼야아아악! 굉음과 함께 저주받은 수도자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보호막이 드러났다.
슬픔, 절망, 공포, 분노.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원혼들이 빼곡하게 움직이며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공격을 막아낸 원혼들의 일부가 흩어지며 토해낸 비명이 율리아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강력한 원념이 저주가 되어 그녀의 몸을 옭아맨 것이다. 멈춰서있는 율리아의 목을 노리고 움직이는 시체들. 그 언데드들의 손길이 닿기 직전, 번개 같은 손도끼가 놈들을 꿰뚫고 바닥에 박혔다. 콰과광! 치직, 치지직!
“정신 차려! 몸에 마력을 돌리고 끊임없이 움직여!”
그렇게 소리를 지른 아이반은 율리아가 뒤쪽으로 몸을 빼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돌렸다. ‘까다롭군. 다른 건 그렇다고 쳐도 저주나 정신공격은 상대하기가 어려워.’ 물리적으로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때때로 뿜어지는 저주받은 수도자의 마력과 원혼의 비명이 문제였다. 그곳에 담겨진 저주와 정신공격이 일행의 체력과 정신력을 서서히 깎아먹고 있는 것이다. 몸을 무겁게 만들고, 감각을 교란시키는 저주와 헛것을 보게 만들고 감정을 동요시키는 정신공격.
끊임없이 성수를 들이키며 버티고는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성수에 담긴 신성력이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낼 만큼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사제 하나만 있었어도 상황이 훨씬 나았을 텐데 !’ 살기 위해 이것저것을 익혔을 뿐 아이반은 제대로 된 사제나 성기사가 아니었다.
스킬 포인트가 부족해서 광역 스킬은 제대로 찍지도 못했다. 혼자서 버티는 것은 문제없었으나 다른 이들의 저주나 정신공격까지 막아줄 힘은 없었다. ‘잡캐의 비애로군, 젠장.’ 장기전이 되면 불리하다.
적당히 힘을 아끼면서 가고 싶었지만 여기서는 쏟아부어야할 것 같았다.
“랄프! 시선을 끌어보시오! 길을 뚫고 녀석의 목을 쳐야겠어!”
“저 녀석이 두르고 있는 방어막은 어쩌려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길이나 열어!”
입술을 깨물던 랄프는 앞에 있는 녀석의 목을 베고 자세를 잡았다.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방패도 앞으로. 기합을 내지르며 몸에 붙인 후 한 걸음 전진.
“흐아압!”
일순간 전장의 시선을 잡아끄는 외침.
랄프의 온몸에서 날카로운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 마력은 전방에 있는 놈들의 몸을 뒤흔들어 자세를 무너뜨렸고, 그 후에 이어진 충격파가 놈들을 뒤쪽으로 한껏 밀어 넣었다. [전사의 외침!] [도발!] [실드차지!] 물 흐르듯 흘러간 기술 연계로 공간이 생기자 그 위에 에민의 마법이 쏟아졌다.
슈슈슉! 쾅! 얼음구체 세 개가 동시에 날아와 박혔다. 앞을 막아서던 시체들이 단번에 얼어붙고 가루가 되어 터져나갔다. [아이스 스트라이크!] 전방의 적들이 단숨에 사라졌다.
물론 지금도 바닥에서 끊임없이 시체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으니 금방 채워지겠지.
그러나 아이반에게는 그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치직, 치지직! 아이반의 온몸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푸른 번개가 뻗어 나와 주변의 적들을 후려쳤다.
자세는 낮게, 걸음은 크게.
마치 공간을 뛰어넘듯 쏘아져서 빠르게. 스스슥 쾅! 아이반의 움직임을 보고 있던 율리아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그건 !”
그녀의 말이 채 뱉어지기 전에 아이반은 어느새 간격을 좁혀서 저주받은 수도자의 눈앞에 서있었다.
실로 번개 같은 움직임, 천둥 같은 발걸음. 그렇게 다가간 아이반은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오오디이이인!”
휘이익! 아이반의 검이 휘둘러진다. 번갯불과 검기를 휘감고 원혼의 장벽을 베어 가른다.
사악하고 역겨운 영혼을 불태우고 가려진 천막을 치워냈다.
콰과광! 끼이이이엑! 어마어마한 크기의 비명소리.
멀찍이 떨어져있던 일행들의 몸마저 순간 굳어버릴 정도로 농밀한 정신공격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 어어리이서억으은거어엇! 저주받은 수도자가 손을 내밀었다.
비록 방금 그 공격으로 원혼들은 모두 흩어졌으나 어차피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되돌아오는 것. 눈앞에 굳어버린 전사의 공격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만약 저주받은 수도자에게 제대로 된 이성이 있었다면 그렇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푸슉! – 끄, 끄어어어어! 저주받은 수도자의 등 뒤에서부터 나타난 창이 그를 꿰뚫는다.
원혼으로 이루어진 방어막이 아니라면 육체의 성능 자체는 별것 없었기에 막을 수가 없었다. – 어어째애애서어어! 하찮은 육신을 꿰뚫은 창에는 신성한 힘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방금 공격 자체가 아스가르드의 위대한 신, 오딘의 것을 흉내 낸 것이었으니까.
초월자가 보기에는 아주 하찮고 하찮은 재주에 불과했으나 그럼에도 자신들의 전사가 그의 이름을 불렀기에 위대한 신은 친히 가호를 내려주었다. 그 무게는 자신의 신을 저버린 하찮은 수도자가 감당하기엔 무척이나 무거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