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78
해적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안식을 찾고 드디어 죽음의 땅으로 떠나간다. – 항해를, 항해를 계속하···! 그렇게 칼리 호킨스와 해적들이 사라지려는 것을 누군가 막았다.
그들의 영혼을 한 손에 쥐고 낮게 웃었다.
“누구도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칼리 호킨스의 후손이라던 카일의 등장. 그러나 그는 이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차가운 표정과 광기 가득한 눈동자. 그의 뒤에 토마스 마이어를 시작으로 수많은 사교도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저런 자식이 꼭 사고를 치더라니, 빨리 처리했어야 했는데.”
아이반은 이를 악물면서 그들을 노려보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흘흘흘.”
무릎을 꿇고 있던 토마스 마이어가 천천히 일어나 이레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엘리자베스, 그대는 옛날 엘프라는 것을 들켜서 배를 떠나게 되었지. 그거, 사실 내가 알렸다오.”
옛 가명을 들먹이며 말하는 토마스 마이어에게 이레인이 차갑게 대꾸했다.
“그래서?”
“그때 떠나서 다시는 볼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오.”
“나도 후회 중이야. 그랬다면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는 않았을 것을.”
“늦었소. 이제는 끝이니까.”
그가 손짓하자 뒤에 앉아있던 사교도들이 풀썩 쓰러졌다. 독을 삼키고 단검으로 심장을 꿰뚫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해신이여! 다시 눈을 뜨소서!”
그들이 깊은 바다의 폭군을 외치며 숨을 거둘 때마다 섬이 요동친다. 제물을 받은 해신의 힘이 점점 짙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화아악! 주먹만 한 크기의 구슬이 공간을 넘어 나타났다. 그것이 깊은 바다의 폭군이 남긴 심장, 바다의 보주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반이 도끼를 집어 던졌다.
휘리릭! 순식간에 날아간 도끼가 해신의 심장에 닿기 전, 카일이 그것을 붙잡았다. 스르륵! 휘적! 탁! 그의 손에 잡힌 도끼가 순식간에 촉수 가득한 생물로 변해 꿈틀거렸다.
그가 서 있는 주변 땅이 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영역, 새로운 공간이 덮어쓰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델피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신역! 그가 신의 화신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델피노의 외침을 들은 아이반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날아가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사아앗! 주변이 바다로 변했다. 아이반은 어느새 자신이 깊고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컥!”
숨이 막혀온다. 온몸을 내리누르는 압력에 짓눌려 쓰러질 것만 같았다. 정신이 아득하고 시야가 흐려진다. 아이반은 이를 악물었다. 그 어둡고 축축한, 무겁고 조용한 공간을 떨쳐내듯 자신의 신을 불렀다.
“토오르으으!”
우르릉- 하늘이 요동친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이 울려 퍼졌다. 세계를 휘감은 뱀을 죽이고 바다를 들이마신 영웅신이 친히 망치를 들어 내리쳤다. 쾅! 바다가 갈라진다. 깊고 깊은 바다로 변했던 주변 환경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깊은 바다로 끌려갔던 일행이 모두 정신을 차리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후우, 윽, 허어······.”
일행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신이 직접 자신의 영역으로 끌고 내려가며 보여준 것들이 정신에 깊은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심해의 공포가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물에 빠진 사람이 폐에 들어찬 물을 토해내듯 어두운 감정을 토해냈다. 그들의 앞에 카일이, 아니 카일이었던 자가 입을 열었다.
“바다는 나의 영역이다. 누구에게도 줄 수가 없다.”
인간의 심장을 뽑고 신의 심장을 박아 넣은 자, 깊은 바다의 폭군을 모시는 그의 화신이 하늘로 손을 뻗자 저 멀리 바다가 일어났다. 높은 파도가 섬을 삼키듯 밀려왔다.
바다가 땅을 덮치는 두려운 광경. 그야말로 자연의 분노와 같은 압도적인 모습에 아이반은 맥이 탁 풀렸다. 저걸 어떻게 막아야 하지? 어떻게 해야만 이길 수가 있는 거지? 그때 누군가 그에게 속삭였다.
나를 불러라, 나의 이름을 외치고 권능을 받아들여라. 그 말에 아이반은 이를 악물었다.
아끼고 있던 스킬 포인트를 소모해 강제로 신성의 그릇을 넓혔다. 그렇게 넓어진 곳에 새로운 신의 힘이 스며들어왔다. 우웅- 그의 오른쪽 팔뚝에서 피의 검 브리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각성을 마친 브리카의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브리카는 탐욕스러운 듯이 주변 마력을 빨아먹었다. 그렇게 막대한 힘을 비축하고 나서야 새로운 신의 권능이 움직였다.
티르. 전쟁과 법, 용기의 신. 아스가르드의 한쪽 구석, 그동안은 그곳에 앉아 아이반을 지켜보기만 하던 티르가 자신의 권능을 빌려주었다. 스스슥 어디선가 가느다란 끈이 나타나 아이반의 오른쪽 손을 묶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끊어질 것만 같던 얇은 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감기자 아이반은 오른쪽 팔을 잃어버린 듯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아이반은 본능적으로 그 끈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글레이프니르!’ 노르드 신화가 품고 있는 모순성처럼 세상에 없는 것을 모아 만든 봉인구. ‘열린 것’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세상 모든 것을 봉쇄할 수 있는 신화적인 보물이 아이반의 오른쪽 팔을 봉인했다. 또한 해신의 화신을 붙잡았다.
“이건 대체!”
해신의 화신이 크게 당황한다. 그가 품고 있는 힘이 봉인되고 바다에 대한 지배력도 흩어졌다.
크게 솟아올랐던 바다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아이반은 봉인된 오른쪽 팔 대신 왼쪽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강하게 적을 후려쳤다.
이능이 전혀 끼어들지 않는 육체의 부딪침. 몸과 몸으로 대화하는 상남자의 주먹다짐이 시작되었다. 퍽!
“이럴 수는 없다···!”
해신의 화신이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몸에서 음습하고 축축한, 깊은 바다와 같은 힘이 흘러나오다 사그라졌다.
우웅- 각성을 마친 피의 검 브리카가 그 힘을 빨아먹었다. 글레이프니르가 신성의 흐름을 봉인했다.
티르의 권능이 외부의 개입을 완전히 막았다. 티르는 전쟁의 신이었다.
법의 신이었고, 용기의 신이었으며, 또한 결투의 신이기도 했다. 티르의 권능 아래 서로의 초월적인 능력을 봉인하고 그저 육신으로 맞붙었다.
외부에서 개입할 수도 없고, 내부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패자는 쓰러지고 승자만 홀로 살아남는다.
퍽! 피가 튀었다. 피부가 찢어지고 근육이 부어올랐다.
뼈가 부러지고 다시 또 회복된다. 퍽! 아이반의 왼쪽 주먹이 카일의 얼굴을 후려친다.
잠시나마 필멸자를 넘어 신의 화신이 되었던 자를 때려눕혔다. 물론 주먹질 한 번에 쓰러지지 않았다.
신성을 봉인 당해 바다를 움직이던 초월적인 힘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신의 화신이었다. 평범한 인간과는 격을 달리하는 육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으로 아이반에게 달려들었다.
퍽! 주먹질 한방에 아이반이 피를 뿜었다. 갈비뼈가 부러져 욱신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러나 그는 고통을 참아내고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무릎 꿇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퍽! 목이 꺾일 듯이 고개가 돌아간다.
입술이 찢어지고, 광대뼈가 무너지고, 뇌가 흔들렸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다시 맞붙었다. 강인한 힘을 가진 초인들의 싸움이 아니었다.
뛰어난 기술을 연마한 전사의 싸움도 아니었다. 신의 힘을 받은 화신의 싸움도 아니었다.
이것은 신성하지 않았고, 숭고하지 않았으며,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몸과 몸이 부딪치고 주먹과 주먹이 오가는 원초적인 싸움은 그 무엇보다 치열했다. 한 대를 맞으면 한 대를 때렸다.
두 대를 맞으면 두 대를 때렸다. 이능이 봉인된 육박전은 지극히 순수하고 정직했다.
자잘한 페이크 모션조차 없이 그렇게 주고받았다. 피하는 것도, 막는 것도 없는 상남자의 전투. 그런 전투에서 아이반이 질 수는 없었다.
쿵! 아이반의 주먹이 상대의 턱을 부수고 빠져나왔다. 잠시나마 신의 화신이 되었던 육신은 그렇게 부러진 턱뼈조차 순식간에 회복했으나 한 번 승기를 잡은 아이반의 주먹이 연속해서 들어가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안면을 완전히 다져놓듯 후려쳐서 바닥에 눕히고 나서야 아이반은 녀석이 쥐고 있던 투명한 구슬, 해신의 심장을 빼앗을 수 있었다.
우웅- 이를 승리로 인정한 듯 티르의 결투장이 무너져 내렸다. 서로를 묶고 있던 봉인의 끈이 풀리고 글레이프니르가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스스슥- 해신의 심장이 요사스러운 빛을 뿜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이 밀려오고 단어로 완성되지 못한 감정의 파편이 그를 물들이려했다.
화신을 잃어버린 옛 신의 힘이 아이반의 정신을 오염시키려는 순간, 티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투의 승리자가 허망하게 쓰러지는 것을 막아섰다.
아이반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힘이 솟아올랐다. 용기가 피어나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을 밀어냈다.
깊은 바다의 폭군, 이제는 바다의 지배권을 빼앗기고 추방된 옛 신을 바라보며 아이반이 낮게 외쳤다.
“나는 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아스가르드의 신에게도 무릎 꿇지 않았다. 그의 영혼을 노리던 대악마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오래전에 추방된 옛 신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깊은 바다의 폭군, 더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 마라.
’ 아이반이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노려보자 오래된 바다의 신은 다시 깊고 깊은 바닷속으로 돌아갔다. 오랜 세월 그러했던 것처럼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곧 눈을 뜨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나리라. 그때는 오래된 바다의 신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온 세상이 알게 되리라.
아이반은 그것을 짐작했으나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당장은 그렇게 깊은 바다의 폭군이 떠나갔다는 것이 그저 다행스러웠다.
“후우······.”
그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언제나 강인한 힘이 흐르던 몸이 흐느적거리고 다리가 풀렸다. 뒤늦게 온몸이 욱신거리고 아픔이 몰려왔다. 화아아! 아이반의 몸에 신성한 빛이 깃들었다. 찢어지고 부러진 상처를 치유하고 기력을 불어넣었다. 델피노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조금 전 그건······.”
바다를 움직이던 신의 화신을 봉인했다. 이렇게나 해신의 영향력이 강한 곳에서 그 연결을 끊고 신의 화신을 그저 튼튼한 샌드백으로 만들었다.
놀랍다 못해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강력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고위 성직자들이 모여도 몇 주 이상은 신성결계를 만들어야만 가능한 업적이었다.
그걸 즉석에서 이루어내었으니 델피노는 걱정스럽기만 했다. 대체 무엇을 대가로 하였기에 그런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아이반은 델피노의 생각을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이번은 별거 없었으니까.”
“그만한 이적이었습니다. 대가가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번은 정말 괜찮소.”
그는 흘깃 자신의 오른쪽 팔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힘이 빠져서 감각조차 없었는데 지금은 조금씩 힘이 돌아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완전히 회복될 것 같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은 신이 직접 가져갔소. 나도 의심스럽지만 놀랍게도 멀쩡하군.”
그동안 아이반이 경험한 아스가르드 신의 성격대로라면 오른팔을 잠시 봉인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잘라갔을 거다. 솔직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내심 각오하고 있었는데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니. 아이반은 몹시 의아했다.
‘이러다가 나중에 한 번에 정산하려는 걸까? 아니면 이번에는 새로 계약했으니 오픈 행사라도 하나? 그렇게 친절한 놈들이 아닌데······.’ 아이반의 마음에 불신이 가득 채워졌다가 흩어졌다. ‘하긴, 티르는 느낌이 좀 다르긴 했지.’ 원래 노르드 신화에서 주신은 티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