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9
“악마가 시체골렘을 강화하고 있소! 둘의 연결을 끊어야 해!”
끼이에에엑! 원혼들의 끔찍한 비명이 울리고 일행의 몸이 덜컥 굳었다. 단순히 정신공격만이 아니라 원혼이 실체를 가지고 그들의 손발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성수, 성유, 아무튼 신성한 무언가.
일행들은 모두 다급히 자신들이 챙겨온 것을 사용해 원혼들을 떨쳐냈다.
그동안 스켈레톤 전사가 열 몇쯤 더 모습을 드러냈다.
‘토르!’ 치직! 치지직! 아이반의 몸에 하얀 번갯불이 튀어 올랐다. 그 번개는 무언가를 때려 부수는 것이라면 첫째가는 파괴적인 천둥신의 것이었고, 언데드들에게는 극상성이나 다름없는 힘이었다.
콰과광! 천둥걸음에 이어서 빠르게 휘두르는 검.
언데드들은 한방에 무너져 내렸으나 이내 다시 회복하여 몸을 일으켰다.
모두 썩어가는 손아귀의 사령술 때문이었다. ‘하여간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놈들이랑은 상성이 안 맞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한 걸음 뒤로 밀린다.
끊임없이 재생하는 적이란 귀찮다 못해 끔찍한 존재였다. – 피와 영혼을 내게 바쳐라! 뼈로 된 낫을 휘두르며 악마가 달려들었다. 쾅! 앞으로 나서 썩어가는 손아귀의 공격을 막아낸 랄프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단순한 공격이 아니야! 체력을 뺏어간다!”
라이프 드레인, 그러니까 생명력 갈취.
온갖 저주술 가운데서 가장 까다로운 타입이었다.
내가 약해지는 만큼 상대가 강해진다는 소리였으니.
이전보다 안광이 더 밝게 타오르는 썩어가는 손아귀가 깔깔 웃었다. – 피! 생명! 이 얼마 만에 맛보는 제물의 맛이냐! 그 순간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있던 에민이 번쩍 눈을 떴다.
바닥에서부터 순식간에 성에가 끼면서 차가운 입김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얼어붙어라!”
[얼어붙은 기둥!] 에민의 외침과 함께 바닥에서 얼음 기둥들이 솟아올라 적들을 삼킨다. 방금 전까지 칼을 휘두르던 스켈레톤 전사들이, 강화된 좀비들이, 시체골렘이 얼음 속에 갖혀서 움직임을 멈췄다. 썩어가는 손아귀는 하늘로 날아올라 피했으나,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얼음 속에 봉인되었다. 쿨럭! 과도한 마력운용으로 피를 토해낸 에민이 소리쳤다.“붙잡고 있는 것은 겨우 10분입니다! 그 안에 적을 처치해야만 해요!”
쿵, 쿵, 쾅! 얼어붙은 기둥을 발판으로 삼아 율리아와 아이반이 날아오른다. 단숨에 악마의 눈높이까지 올라간 둘은 녀석의 목을 물어뜯었다. [아랑인(餓狼刃)!] [뇌룡참(雷龍斬)!] – 하찮은 것들이! 쾅! 썩어가는 손아귀가 거칠게 마력을 뿌리자 율리아와 아이반이 튕겨져 나왔다. 거센 반탄력에 몸이 밀려난 것이다. 스벤이 화살을 쏘아 녀석의 움직임을 멈춰 세운 사이 둘은 자세를 가다듬고 거리를 벌렸다. 쾅! 콰과광! 썩어가는 손아귀의 손짓에 따라 얼어붙어있던 언데드들이 하나씩 터져나간다. 날카로운 얼음과 뼛조각이 사방으로 퍼져서 시야를 가렸다.
‘녀석도 멀쩡하지는 않아!’ 완벽히 목을 노린 공격이었다. 녀석 역시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쾅! 사각지대에서 터지는 폭발을 순전히 날카로운 감으로 피하면서 아이반이 달려들었다.
“길을 열겠소!”
랄프의 목소리가 들리고 시야를 막고 있던 것들이 단번에 사라진다.
– 얌전히 나의 힘이 되어라! 공중에 날아오르려던 썩어가는 손아귀가 몸을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랄프가 가까이 붙어서 녀석을 뒤흔들고 있는 중이었다.
“으으윽!”
랄프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근육질을 자랑하던 그의 두 팔이 홀쭉하게 변해있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생명력을 갈취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녀석을 붙잡았고, 그것이 아이반에겐 기회가 되었다. ‘토르, 토르! 빌어먹을 토르여! 나에게 당신이 가진 힘을!’ 들고 있는 것은 검, 아니 망치.
거인의 골통을 부수고 천둥을 만드는 파괴적인 힘의 상징.
치직, 치지직! 하얗게 빛나는 번개가 형태를 갖춘다. 천둥의 신에게는 아주 가볍고 가벼운, 필멸자가 들기에는 아주 무겁고 무거운 그것을 흉내 낸다.
“흐아압!”
아이반의 팔뚝근육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마치 산을 드는 것과 같은 힘겨움으로 겨우 들어 올려 악마의 머리를 내리쳤다.
콰과광! 악마의 몸이 찢어지고 핵이 부서진다. 던전의 마력으로 겨우 형태를 갖춘 하찮은 영혼이 찢어지고 흩어진다.
– 으, 으어어어! 바닥에 떨어지듯이 착지한 아이반의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젠장, 너무 무리한 것 같은데.’ 손이 덜덜 떨려왔다.
혹사당한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스슥, 스스슥! 댕강! 아이반이 쥐고 있던 검이 잘게 조각나 부서진다. 바닥에 닿자마자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검.
평범한 철검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강한 힘이었던 모양이다.
“후, 힘들다.”
강한 힘이 몸을 휩쓸고 지나갔기에 느껴지는 탈력감. 금방이라도 뻗어서 자고 싶었지만 아이반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직 전투는 끝난 것이 아니니까.
휘이익! 탁! 쉬이이익! 갑자기 터져 나오는 검은 연기.
단순히 시야를 가리는 용도가 아니라 독성이 있었는지 에민이 거칠게 기침을 하며 피를 토했다. 타다다닥! 그리고 밖에서부터 달려오는 여러 명의 기척.
먼저 안으로 들어와 숨어있던 불청객들이 드디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아이반은 옆에 있던 스벤의 목을 붙잡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쿵!
“컥!”
바닥에 등을 내리꽂힌 스벤이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뱉었다.
돌바닥을 깨고 들어갈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지만 스벤은 아픔보다 먼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알았지?’ 눈빛으로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아이반이 비웃듯이 입술을 밀어 올렸다.
“설마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보지?”
정보가 새는 것 정도야 그럴 수가 있었다. 마을에 이틀이나 있었으니 누구라도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을 던전에 들어오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만한 무리가 먼저 지나갔는데 숲속에서부터 흔적 하나 찾을 수가 없다고? 그건 아예 서로의 루트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게 가능한 것은 길잡이인 스벤뿐이었고.
불청객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있으면 범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빡대가리도 알 수 있는 당연한 사실이다.
“큭, 언제 .”
언제부터 알아차렸냐는 질문이었으리라.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그걸 알면 뭐가 달라진다고. 빠각! 아이반은 대답 대신 손에 힘을 주어 스벤의 목을 부러뜨려버렸다.
죽이기 전에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는 악당 노릇 따위는 사양이었다. 끝까지 궁금한 채로 지옥에 떨어지라지.
그렇게 아이반이 스벤의 목을 부러뜨려 죽여 버리는 것을 본 랄프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이반! 네 녀석이 배신자였나!”
그는 독에 중독되어 비틀거리면서도 적의 습격을 잘 막아내고 있었는데 꽤 깊은 친분이 있었던 스벤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던 모양인지 자세가 흔들렸다.
“개소리 하지 마시고 방패나 잘 들고 있으시오.”
“뭐?”
“습격자들이 익숙하진 않으시오? 스벤이 부른 놈들일 텐데.”
“그게 무슨 !”
소리냐고 외치려던 랄프가 입을 다물었다.
아이반의 말대로 어딘가 익숙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얼굴을 복면으로 감추고 있었지만 저 장비, 저 체형들은 무척이나 눈에 익은 것이었다.
“설마 스벤 녀석이 정말 !”
설마는 개뿔.
저 정도쯤 되는 용병이라면 원래 자신과 함께하는 고정파티가 있기 마련이다.
남과 보물을 나누기보다는 뒤통수를 쳐서 자기 패밀리끼리 가져가겠다, 이거겠지.
아이반이 그동안 경험한 용병들은 거의 대부분이 신뢰, 믿음, 의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는 사기꾼에 살인자에, 강도, 인간 쓰레기였다. 용병 길드에 인정을 받을 만큼 높은 등급의 용병이라면 그나마 믿을만했지만, 그 알량한 신뢰라는 것 역시 미발견 유적의 보물이라는 유혹 앞에서도 굳건할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다섯이나 모이면 그 중 하나는 반드시 쓰레기가 있다.
아이반이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눈을 뜬 이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명언이었다. ‘이러니 내가 동료를 믿을 수가 있나.
잡캐가 될 수밖에.’ 아이반은 코웃음을 흘리면서 새로운 검을 꺼냈다. 허공에서 갑자기 무기가 나타나니 습격자들이 움찔 놀라는 것이 보였다. 무슨 마법무기라도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물론 그저 인벤토리에서 꺼냈을 뿐인 평범한 철검에 불과했다.
팅! 스걱! 날아오는 화살을 검으로 걷어내고 가까이에 있는 적 하나를 베었다. 그리고 다시 날아오는 화살을 흘려내고 적 하나의 목을 댕강.
그렇게 몇 명쯤 죽이고 나니 습격자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젠장! 저 녀석은 왜 쓰러지지 않는 거야!”
다른 일행들은 이미 독에 중독되어 바닥에 쓰러져있는 상태였다. 과도한 내상을 입어서 독을 밀어내지 못하던 마법사 에민이 첫 번째였고, 율리아는 어느새 바닥에 누워있었으며, 탱커라 그나마 체력이 좋았던 랄프 역시 버티고 버티다 방금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짙은 독무 속에서 아이반 홀로 아무렇지 않은 듯 날뛰고 있으니 당황할만했다.
“흥, 조금 더 강한 독을 가져왔어야지.”
아이반이 이것저것 다양하게 익히다보니 직접적으로 강함을 발휘할 수 있는 공격 스킬의 성장은 부족했지만 살아남기 위한 각종 내성은 오히려 동급 레벨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었다. 습격자들은 아이반이 서쪽에서 히드라를 사냥했다는 사실을 조금 더 심각하게 여겼어야 했다.
그야말로 피부를 녹이고 내장과 신경을 엉망으로 만들던 히드라의 독에 비하면 이 정도는 피자에 뿌려먹는 핫소스만도 못했다. 스걱!
“으아악!”
습격자들의 실력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썩 대단하지도 않았다. 방금 전까지 썩어가는 손아귀 같은 악마를 상대하다보니 다소 밋밋한 느낌마저 들었다. ‘독만 믿고 덤벼들었나 보군.’ 확실히 독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그래서 아이반이 가장 먼저 각종 내성을 끌어올린 것이기도 하고.
습격자들을 모두 처리한 아이반은 놈들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독을 썼다면 반드시 예비로 하나쯤은 더 해독제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해독제를 마셨다고 해도 혹시 약발이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냥 재수 없다 생각하고 뒤질 것이 아니라면 해독제를 더 챙겨야지.
“흠, 이건가?”
녀석들의 품에서 해독제를 찾아낸 아이반은 다른 일행들에게 하나씩 먹였다. 다행히 일행들은 몸이 굳고 정신을 잃었을 뿐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너무 강한 독을 쓰면 같이 있던 스벤이나 뒤이어 진입할 습격자들 역시 피해를 입을 수가 있으니 적당히 조절했기 때문이다.
사실 공기 중에 살포하는 걸로 즉사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한 독은 구하기도 어려운 법이고, 해독제도 귀했다.
제대로 해독이 된다는 보장도 없었고. 그렇게 해독제를 먹인 랄프와 에민을 독이 덜한 곳으로 옮겨놓은 아이반은 무표정하게 율리아를 내려다보다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탁! 그러나 아이반은 율리아를 베지 못했다. 검이 목을 자르려는 순간, 튕기듯이 일어난 그녀가 거리를 벌렸기 때문이다.
“역시 깨어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