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91
“흐흐, 그러면 이쪽으로 오게. 내가 특별히 자네에게만 물건을 보여줄 테니까.”
그는 가게 깊숙한 곳, 문을 열고 어느 창고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확실히 겉치장에만 신경을 쓴 물건들과는 달리 무기 본연의 용도에 충실한 것들이 가득했다.
“밖에 있는 것들은 또 그것대로 나름의 수요가 있는 법이지만 진짜 전사가 쓸 물건은 아니지. 어때, 이 정도면 만족하겠나?”
“아까보다는 훨씬 괜찮군.”
“흐흐, 무기란 자고로 벽에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 피를 뿌려야지. 여기에 있는 것은 모두 사람을 수월하게 썰고 바위를 종이처럼 잘라내는 놈들이야.”
“그건 나뭇가지로도 할 수 있소. 적어도 악마의 뿔을 부수고 옛 거인의 목을 칠 정도는 되어야지.”
“허, 농담도. 그런 물건이 그리 흔한가?”
손을 절레절레 흔드는 드워프를 보며 아이반이 슬쩍 떠보았다.
“없지는 않은가 보오?”
“여기는 강철 모루야. 대륙에 전설로 전해지는 무수한 보물들을 만들어낸 곳이지. 하지만 그런 건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돈으로 산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고.”
“그래도 누군가는 얻겠지. 무기란 것은 결국 벽에 장식되는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 피를 뿌리는 것이니까.”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드워프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한참이나 아이반을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아이반 에시르손. 나는 난쟁이의 흔적을 쫓고 있소. 그들에 대해 잘 아는 자를 만나러 왔지.”
아이반은 몸에 두르고 있는 소매를 걷어 메긴기요르드와 드라우프니르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드워프의 눈이 커졌다.
“자네! 그것들을 대체 어디에서 구한 것인가!”
“어쩌다 보니. 이걸 알아보는 걸 보면 역시 당신이 파라스겠지? 대대로 난쟁이들을 뒤쫓고 있다는 괴짜.”
드워프와 난쟁이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았으나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드워프는 이 땅에 속한 종족이었고, 난쟁이는 노르드 신화에 존재하는 신화적인 자들이었으니까. 라그나로크가 시작되고 세계수 이그드라실이 불타서 사라졌을 때, 아홉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박동을 시작하던 시점. 노르드인들이 세계를 넘어 아무런 연고가 없던 이 땅으로 흘러 들어왔을 때 난쟁이는 함께하지 않았다. 그렇게 알려졌다.
노르드 사람들조차 이 땅에 난쟁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드워프가 대를 이어서 그들의 흔적을 쫓아다녔다면 괴짜라는 말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
파라스는 아이반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시선이 온통 드라우프니르와 메긴기요르드에 꽂혔기 때문이지 부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착!
“여기까지.”
아이반이 드라우프니르와 메긴기요르드를 가리자 파라스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아니! 조금만 더 보여주게! 그게, 정말로 그게 드라우프니르와 메긴기요르드가 맞단 말인가!”
“대화할 시간은 많소. 물론 그대가 동의한다면.”
“동의하지! 동의하고말고!”
“그래, 그렇다면 오늘 밤 혼자 있으시오. 내가 찾아가리다.”
그 말에 파라스가 힐끗 바깥을 바라보았다. 창고의 문이 닫혀있지만 그 너머에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가능하겠나?”
“그 정도야 어떻게든 해야지.”
아이반은 그에게 연락용 룬 문자를 새긴 돌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가 오늘 밤 혼자 남아서 그것을 부순다면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겠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아이반은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창고를 둘러보았다.
파라스가 장담한 대로 대단한 보물은 아니어도 하나같이 훌륭한 명품들이었다. 그동안 장비 소모가 심했으니 이쯤에서 보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 창은 가격이 어떻게 되오?”
그 질문에 잔뜩 흥분해서 얼굴이 빨개졌던 파라스가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나?”
미친 검팔이 새끼. 아이반이 눈물을 머금고 지갑을 열었다.
드워프들은 무척이나 부유했다. 그들이 만드는 물건은 전 대륙에 비싸게 팔려나갔고, 덕분에 막대한 재화가 그들의 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드워프는 외골수적인 장인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그들은 무척이나 상업적이었다. 이렇게나 커다란 재화가 오가는 곳에서 돈에 관심이 없다면 그게 더 웃긴 일이겠지만.
“역시 부유한 곳이라 그런지 연회가 화려하더군요. 급하게 준비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델피노의 말에 아이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더군. 그렇게 긁어모으니 돈이 많을 수밖에.”
지갑의 빈자리를 떠올리자 코끝이 찡해졌다. 드워프가 만든 장비는 훌륭한 성능만큼이나 놀라운 가격을 자랑했다. 덕분에 그동안 이런저런 보물들을 얻어 상당히 여유로워졌음에도 가슴이 아플 만큼 돈이 훅 빠져나가고 말았다. 어쩌면 흉악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가격표가 아닐까. 반드시 본전을 뽑아야만 한다는 각오 때문에 드워프제 무기가 더욱 활약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그건 그렇고. 알아낸 것이라도 있소? 강철 모루가 문을 닫은 이유 같은 것들.”
우울한 기분을 털어내고 아이반이 물었지만 이레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답변을 하지 않고 말을 돌리더라고. 아무래도 우리의 방문이 의심스러운가 봐.”
엘프의 도움 요청에 왜 응하지 않았는가를 추궁하러 왔다는 명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드워프 쪽에서 순순히 믿을 리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일행의 구성이 너무나 이상했다. 폐쇄적인 것으로 유명한 엘프가 리자드맨과 인간을 데리고 방문했는데 의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멍청한 일이겠지. 이레인에게 팔라시온의 후예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이미 쫓아버렸을 거다.
“나는 돌아다니면서 병사들을 확인했소. 확실히 경계가 심하더군. 몇몇은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소. 그러니까 지금도 누구와 싸우고 있다는 뜻이지.”
적어도 겉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강철 모루를 위협하는 적이 없었다. 근처의 짐승들과 몬스터가 다소 흥분해서 날뛰기는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드워프의 왕국을 긴장하게 만들 수가 없었고. 이상 현상은 분명한데 대체 무슨 일인지 추측할 근거가 부족했다. 자존심 강한 드워프가 쉽게 약한 모습을 보일 리가 없으니 순순히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싸움이라, 누구와 싸우는 걸까?”
“글쎄, 요즘 같은 시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가 않으니.”
아이반은 턱을 긁적이며 옛 기억을 더듬었다. 혹시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을까 싶어서. ‘강철 모루에 무슨 문제가 있었지?’ 물론 문제야 넘쳐나지만 그건 미래의 이야기고. 지금 시점에서 발생한 문제가 있을 텐데. 아이반이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을 고민하다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갈라로자를 든 브릭타라면 웬만한 적은 모두 뚝배기를 깨버릴 수 있을 텐데.”
브릭타는 드워프라는 종족을 통틀어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영웅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세계수가 붕괴한 이후에 각성한 요정의 신기를 들고 있는 필레인 그레이 우드나 대주술사가 된 자연의 구도자 테잔과 비슷한 수준이겠지. 물론 시기적으로 그때보다 훨씬 이른 시점이라는 것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크게 약하지는 않을 거다. 여기가 드워프 왕국, 강철 모루라는 것을 생각하면 힘의 망치 갈라로자를 들고 있는 브릭타는 어쩌면 얼마 전에 만난 카락취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지도 몰랐다. 혼자서 옛 거인을 토막 치던 카락취와 비슷한 힘이라니, 도대체 어느 정도의 적이 나타나야 그를 위태롭게 만들 수가 있을까? 그때 이레인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갈라로자라고? 설마 드워프의 왕자가 들고 있던 것이 힘의 망치 갈라로자였어?”
“음? 그렇지. 몰랐소?”
“심상치 않은 망치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설마 갈라로자인 줄은 몰랐지. 드워프가 아닌 이상 그걸 단숨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워낙 외형이 특이해서 쉽게 알아볼 것 같은데.”
아이반의 말에 이레인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힘의 망치 갈라로자는 드워프가 최고로 아끼는 보물 중의 보물이야. 그 외형이나마 알고 있는 자는 엘프 중에도 거의 없을 텐데. 당신은 역시 신기해.”
그러자 옆에서 듣고만 있던 델피노가 긴가민가한 눈빛으로 끼어들었다.
“설마 힘의 망치 갈라로자가 그겁니까? 드워프의 세 가지 보물? 원하는 모든 것을 단숨에 만들어준다는 마법의 망치?”
출처를 알 수 없는 옛이야기,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구전동화에서 드워프의 세 가지 보물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두드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만들어지는 마법의 망치와 무엇이든 막아내는 신비의 방패, 세상 모든 것을 만질 수가 있다는 요술 장갑. 델피노는 어릴 때 듣던 동화 속의 물건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맙소사! 그게 정말로 존재했던 겁니까? 그냥 동화 속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인간들에게 전해지는 동화 속 이야기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 하지만 비슷해. 적어도 드워프들이 애지중지하는 이유가 있는 물건이지.”
그 옛날 대지가 직접 빚었다는 물건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는 대지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화신인 최초의 드워프들이 만들었다는 보물. 힘의 망치 갈라로자와 대지의 방패 팔그로인, 불의 장갑 탈라스함. 이레인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힘의 망치 갈라로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드워프의 세 보물은 세 개의 드워프 왕국이 나눠 가졌어. 그 후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숨겨져 있었는데, 그걸 꺼냈다고? 생각보다 일이 심각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면 그쪽을 조금 더 알아보시오. 나도 나대로 정보를 쫓아볼 테니까.”
아이반은 품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난쟁이의 흔적을 뒤쫓고 있는 괴짜 드워프, 파라스에게 주고 온 것과 짝이 되는 물건이었다. 그 돌멩이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니 파라스가 그를 부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힐끗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숙소를 호위하고 있는 드워프 병사들의 기척이 가득했다. 호위는 곧 감시와 같았으니 쉽게 눈을 속이긴 어려울 듯했다.
“잠깐만 시선을 끌어주시오. 틈을 만들어야겠소.”
그 말에 델피노가 익숙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어야 5분입니다. 그 이상은 안 될 겁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오. 정말로 잠깐이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델피노가 바깥쪽 문을 벌컥 열면서 소리쳤다.
“여기 정확한 방위가 어찌 됩니까? 남쪽에 있는 성황청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고 싶은데. 불순물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물로 정신을 씻어내고··· 어허! 그냥 물은 안 된다니까! 신을 마주하는데 그런 물로 되겠습니까? 새벽에 오염되지 않은 샘에서 갓 떠올린 물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바깥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드워프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며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야밤에 갑자기 샘에서 물을 뜨겠다고 날뛸 줄은 몰랐겠지. 그렇게 델피노가 시선을 끄는 사이 아이반은 조심스럽게 마력을 끌어올렸다. 황금 팔찌, 드라우프니르를 바라보며 그 속에 잠든 권능을 일깨웠다. 우웅- 아흐레마다 아홉 개로 늘어나는 신비로운 보물. 노르드의 주신 오딘이 가진 위엄을 상징하는 팔찌. 한없이 원본에 가까운 그것이 힘을 발휘하자 아이반의 몸이 흔들리며 분열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는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원래라면 여덟 개의 분신이 나타나지만 아이반은 그 힘을 억눌러 하나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분신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자신이 자신을 바라본다. 그것을 확인한 아이반이 슬쩍 방을 빠져나왔다. 숨소리를 죽이고 발걸음 소리를 없앴다.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샤워하려는데 오이 비누밖에 없다! 이것은 나를 모욕하는 일이 분명하다!”
델피노가 시선을 끄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나운 이빨이 향긋한 입욕제를 달라고 외쳤다. 그렇게 시선을 흩어놓으니 아이반이 빠져나가기 훨씬 수월했다. 아이반은 암살자의 걸음걸이로 숙소를 벗어나 아무도 없는 거리를 달렸다. 시야의 사각으로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드워프 병사가 훌륭하다고 해도 마음먹고 숨어다니는 그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똑똑똑 아이반이 문을 두드리자 파라스가 맞이했다. 그는 힐끔 주변을 살피더니 얼른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했다.
“이런! 뭔가 나쁜 짓을 하는 것 같군. 괜히 가슴이 떨려.”
“그러게 말이오. 대체 강철 모루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요?”
“그건······.”
파라스가 입을 다물었다. 눈치를 보니 쉽게 말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거 좀 서운한데. 우리는 좋은 동지가 될 수 있지 않소?”
아이반이 손목에 매달려있는 드라우프니르를 짤랑짤랑 흔들자 파라스의 눈동자가 같이 흔들렸다.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네. 병사도 아니고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심상치 않은 적이 나타났다는 사실만 알아.”
“심상치 않은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