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rep Job RAW novel - chapter 97
“멍청한 도마뱀 녀석아, 인제 그만 심장을 토해내고 무덤으로 돌아가라.”
용언은 힘의 망치 갈라로자가 막았다. 강력한 재생력과 육체의 힘은 용살검 그람이 방해했다.
불타는 산의 대용광로가 넓다고는 하나 드래곤이 마음껏 날뛸 수 있을 만큼 커다랗지는 않았다. 지하 깊숙한 곳이라 높이 날아오를 수도 없었다.
위대한 용이 마치 한낱 짐승처럼 변하고 있었다. 세상의 창조자에서 사냥감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평생 느껴본 적이 없는 공포라는 감정이 밀려왔다. 화염 드래곤 크사리오스는 점차 자신이 불리해지는 것을 느꼈다.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모두 불타 죽어라! 녀석의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세 개의 심장이 맹렬히 움직이고 마력을 순수한 불꽃으로 바꾸어놓았다. 드래곤이 가진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권능, 용의 숨결. 녀석의 가슴이 붉게 빛나고 불을 머금기 시작하자 이레인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녀석이 숨결을 내뱉으면 던전이 무너진다! 무조건 막아야해!”
이미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만약 던전이 무너지고 녀석이 이곳을 벗어나 하늘로 날아오르게 된다면 더는 막을 수가 없었다.
“나의 왕국을 불태울 수는 없다!”
쿵! 브릭타가 힘의 망치 갈라로자를 휘둘렀다. 땅에서부터 거대한 창이 솟아나 녀석의 배를 찔렀다.
크사리오스가 미처 숨결을 토해내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밀려났다. 피우웅 쾅! 이레인의 화살이 아이반이 만들어놓은 상처를 헤집고 박혀 들었다.
바람의 정령으로 한껏 압축된 공기가 터지며 녀석의 상처를 더욱 벌렸다. 이제는 녀석이 흘린 피로 대용광로 전체가 물들 정도였다. 그렇게 피를 흘려대니 녀석의 가슴에서 맹렬히 마력을 뿜어내던 용의 심장들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피는 그저 혈액이 아니라 유형화된 용의 마력에 가까웠다. 이렇게 피를 흘릴수록 점점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던전을 벗어나기 위해 녀석은 용의 심장을 세 개나 박아 넣었다. 그 막강한 출력을 모두 버티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라도 어려운 일. 놈은 명백히 무리하고 있었다.
쾅! 녀석이 입에 불을 머금을 기미만 보이면 브릭타가 망치로 머리를 후려쳤다. 이레인이 녀석의 상처를 벌리고 아이반이 창을 집어 던졌다.
드워프 병사들이 도끼를 집어던지고 창을 찔러넣었다. 그들이 만든 수많은 명품 무기들이 용의 몸에 박혀 들었다.
용의 비늘과 가죽이 무색할 만큼 찢어지고 갈라졌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성한 곳이 하나 없었다.
불타는 화염을 연상시키던 녀석의 몸이 핏물로 가득했다. 거칠던 용의 기운이 약해지고 세상을 뒤덮던 살기도 흐려졌다.
끊임없이 분노를 토해내던 녀석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크사리오스는 더 이상 고통도 분노도 보이지 않고 차분한 눈빛이었다.
분명 녀석은 죽어가고 있었다. 아군은 승리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의 차분한 눈빛을 보는 순간 모두 등골이 오싹하게 변했다.
– 용은 사냥당하지 않는다. 그 순간 모두 깨달았다. 오랜 죽음에서 벗어나 부활한 화염 드래곤, 크사리오스는 지금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위대한 용족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무슨 짓을 저지를지 그저 두렵기만 했다. 우웅- 세 개의 심장이 거칠게 마력을 토해냈다.
이전보다 더욱 밝은 빛을 뿌리며 움직였다. 자폭. 모두의 머릿속에 그런 단어가 떠올랐다.
– 나는 크사리오스. 태초의 화염에서 태어난 불의 드래곤.
“녀석을 죽여! 심장을 터트리기 전에 막아!”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치고 공격이 쏟아졌다. 그러나 녀석은 살이 찢어지고 몸이 파괴되면서도 신경 쓰지 않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용을 막을 수는 없었다.
– 불에서 태어났으니 다시 불로 돌아가리라! 폭력적인 용의 마력이 방향성도 없이 부풀어 올랐다. 세 개의 심장이 서로의 힘을 증폭하며 끊임없이 강해졌다.
이미 화염 드래곤 크사리오스의 육신은 마력으로 변해 사라졌다. 녀석이 남긴 용의 심장들만이 계속해서 폭주하고 있었다.
이제는 심장을 부순다고 해도 폭발만 앞당길 뿐이었다. 길어야 5분, 도주는 불가능했다.
그 어떤 방어막으로도 세 개나 되는 용의 심장이 폭주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리라. 강철 모루의 드워프들은 영문도 모르고 죽을 터였다.
차라리 녀석이 던전을 벗어나 도망가도록 놓아주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끝인가?’
마검 그람은 사용자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또 파멸을 가져온다고 했다.
어쩌면 이것도 그런 결과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해신의 화신과도 싸웠고, 옛 거인과도 싸웠고, 용과 싸웠다.
한낱 저주에 당할 리가 없었다. 아직 자신은 죽을 때가 아니었다.
아이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우웅- 아이반의 오른쪽 손에 그람이 날아와 잡혔다.
그는 그람을 바닥에 박아 넣고 용살검의 힘으로 용의 심장을 억눌렀다. 천적을 만난 용의 심장이 움찔했다.
마력의 흐름이 조금 느려졌다. 아이반은 눈을 감고 소리쳤다.
천상에서 이곳을 보고 있을 그를 불렀다.
“티르! 당신의 힘이 필요하오!”
전쟁과 법, 용기의 신. 티르가 전사의 외침에 답했다. 그의 권능, 결투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얇고 가느다란 끈이 나타나 아이반의 오른쪽 손을 묶었다. 신을 잡아먹는 늑대, 펜리르를 묶는 최강의 봉인구가 아이반의 오른팔을 봉인하고 용의 심장으로 뻗어나갔다. 그러나 대상이 정확하지 않았다.
이미 크사리오스는 사라졌고, 폭주하는 용의 심장은 결투의 대상이 될 수가 없었다. 글레이프니르가 용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묶었으나 완벽하지 않았다.
지금 아이반의 능력으로는 이게 최선이었다. 누군가가 용의 심장을 제어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미 화염 드래곤 크사리오스가 사라져버렸는데 대체 누가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오만한 용의 힘은 다른 이들의 제어를 따르지 않았다.
용이 아니라면 결국 폭주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폭발을 최대한 억누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누군가 두꺼운 손을 뻗어 용의 심장을 쥐었다. 사나운 이빨. 심각한 상처를 입고 용의 피에 중독되어 정신을 잃고 있던 그가 깨어나 아이반의 앞에 섰다.
치이익! 용의 심장이 그의 손을 불태웠다. 감히 네가 나를 다루려 하냐는 듯 격렬하게 거부했다.
사나운 이빨은 손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 그는 용의 심장을 놓지 않고 더욱 강하게 쥐었다.
스스슥! 그때 그의 손이 빠르게 재생되었다. 그러다가 또 용의 마력에 의해 타올랐지만 결국 숯덩이가 되지 않고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아무리 리자드맨이 강인한 종족이고 재생력이 좋다고는 해도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조금 전까지 크게 다쳐서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아이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용의 심장으로 타올랐다가 재생되는 그의 손이 점점 변해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불꽃처럼 붉은 비늘은 단단하고 가죽은 질겨 보였다. 마치 드래곤의 그것처럼 바뀌고 있었다.
사나운 이빨이 크게 소리쳤다.
“죽음은 곧 탄생이다! 뱀신께서 나를 가호하신다!”
스걱! 그는 스스로 자신의 가슴을 갈랐다. 그리고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을 뽑아내고 용의 심장을 집어넣었다. 화르륵! 그의 전신에 불이 피어올랐다.
그의 몸이 타오르고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용의 심장이 그를 불태우고 또 회복시켰다.
그는 죽어가고 또 살아났다. 세 개의 심장 중 하나가 그렇게 사라지자 폭주하던 마력이 크게 약해졌다.
서로의 힘을 증폭하던 고리가 끊어지니 마력을 억누르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아이반이 하나의 심장을 억누르고 또 이레인이 정령들을 불러와 다른 하나의 심장을 봉인했다.
그 힘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브릭타가 막아냈다.
“강철 모루는 부서지지 않는다!”
브릭타가 힘의 망치 갈라로자를 휘둘렀다. 천장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의 망치 갈라로자로 대지를 조작해 하늘을 열었다. 지하 깊은 곳에 별이 비쳤다.
폭주하는 용의 심장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그대로 하늘로 솟구쳤다. 브릭타가 인도하는 대로 불타는 산의 꼭대기로 흘러나갔다.
깊은 밤, 강철 모루에 태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사히 아침을 맞이했다.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매캐한 흙먼지 사이로 드워프 병사들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아이반은 욱신거리는 팔로 돌가루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충격파에 데굴데굴 굴러서 어딘가에 처박힌 것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그 이후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력회로가 끊어질 듯 간당간당하고, 뼈가 부러진 듯 팔다리가 아팠다. 그러나 죽지는 않은 듯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후우, 크헉! 켁!”
안도의 한숨을 내뱉던 아이반은 흙먼지에 목이 막혀 컥컥대다가 검붉은 핏덩이를 퉤 뱉어냈다. 입안에 쌉싸름하고 비릿한 피 맛이 감돌았다.
피를 뱉어냈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미각과 후각이 멀쩡하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그냥 다친 몸은 힐 좀 받고 쉬면 나을 수가 있었으나 감각은 한 번 맛이 가면 신성력으로도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아이반이 주변을 둘러보니 잔뜩 지친 표정의 이레인과 델피노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있었다. 그들은 입을 열 기력조차 없는 듯 눈빛만 마주했다.
여기저기 흙먼지와 돌가루를 치우는 드워프 병사들 사이로 강철 모루의 왕자, 브릭타가 당당히 서 있었다. 그는 힘의 망치 갈라로자를 들고 천장을 바라보았는데, 뻥 뚫린 하늘에서 비치는 햇살이 그를 내리쬐고 있었다.
마지막에 폭주하는 용의 심장들이 토해낸 마력을 하늘로 쏘아 보낸 것이 브릭타였다. 갈라로자의 힘으로 천장을 열어 길을 만든 것도 그였고. 브릭타가 만약 기운을 하늘로 인도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불타는 산 정도는 날아갔을 거다. 그러면 지하 깊숙이 있던 그들은 폭주하는 마력에 죽든, 흙더미와 바위에 깔려서 죽든 죽어버렸겠지. 그러나 공으로 따진다면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사나운 이빨이었다.
그가 스스로 용의 심장을 품고 폭주하는 용의 기운을 달래지 않았다면 브릭타라고 해도 방법이 없었으니. 사나운 이빨은 여전히 불타고 또 회복하기를 반복했다. 용의 피와 심장이 그를 파괴했고, 또 용의 피와 심장이 그를 재생했다.
용의 기운은 외부의 간섭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괜히 신성력을 쏟아부어 회복시키려고 하면 아슬아슬하게 그의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균형이 깨져버릴 가능성이 컸다.
그가 만약 용의 힘을 받아들인다면 살아날 것이고, 감당하지 못한다면 죽을 것이다. 일행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행이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으니 브릭타가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지가 강한 자였다. 그런 전사는 죽음의 순간에서 웃으며 돌아오는 법이지. 용을 사냥한 자가 용의 심장에게 질 리가 없다.”
비록 지금 시대에서 살아 숨 쉬는 드래곤이 아니라 던전의 힘으로 부활한 드래곤이라고 해도 하룻밤에 둘이나 사냥했다. 이건 온갖 신격과 선주종족이 가득하던 그 옛날 신화시대에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신화시대가 끝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고. 그런 업적을 세웠는데 겨우 용의 심장을 감당하지 못하겠나? 냉정히 따져보면 전혀 근거 없는 믿음이지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라 여겼다.
사나운 이빨을 들것에 태우고 엉망이 된 대용광로를 빠져나왔다. 영웅적인 싸움 끝에 용들을 쓰러뜨렸지만, 일행은 차분한 표정으로 움직였다.
과연 용과 싸운 영향이 크기는 한지 그 아름답던 붉은 공방이 이리저리 부서지고 무너져서 폐허가 되어있었다. 결국 던전이 깨지면서 그 여파가 현실에 밀려온 것이다.
수천 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강철 모루의 심장부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지만 브릭타는 덤덤한 얼굴이었다.
“부서진 것은 고치고 무너진 것은 다시 쌓으면 된다. 붉은 공방은 더욱 강하고 아름답게 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