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0)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9)화(10/173)
9
화
“사실 저도 모릅니다. 단지 자신의 의지를 이을 사람이 나타나면, 후작님께서 이 금고를 보여 주라고 말씀하시고 떠나셨습니다.”
내가 후작가를 재건하겠다고 하자 애덤은 내게 이걸 보여 줘야겠다는 확신이 섰던 모양이었다.
애덤의 말에 나는 가늘게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 안에 자산이라고 할 만한 물건이 들었다고 어떻게 확신하죠?”
“후작님께 소중한 물건이었으며, 정령학적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물건이라고…….”
사실 누가 봐도, ‘나 중요한 거 들어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육중한 금고이기는 하다.
정령학적 가치라.
내가 알기로 이 세계에서 정령과 관련된 물건은 많지 않다.
정령술은 정령사의 정령에 대한 친화력이 거의 전부를 좌우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물건이라면……. 대체 뭘까?
“그냥 드릴 같은 걸로 부수어 보면 안 되나요?”
나는 귤처럼 말랑한 주먹으로 금고를 콩콩 두드려 보며 말했다.
‘흐음, 생각보다 단단하네.’
“드릴이 뭡니까.”
“톱이나. 아무튼 물리력이요.”
하지만 내 말에 애덤은 고개를 저었다.
“마석으로 만든 금고라서, 열쇠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열쇠는 제가 찾아야 하는 것일 테고요.”
사실 그렇게 쉽게 열릴 것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애덤은 퀘스트를 내 주는 NPC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마일라의 의지를 이을 사람이라면, 분명 열쇠를 찾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휴고브린트의 신탁만 봐도, 뭔가 가치 있는 것이 내 손에 쉽게 들어올 리 없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참고로 하나는 제게 있습니다.”
나는 조금 놀라며 애덤을 올려다보았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후작님의 뜻을 계승할 분을 찾기까지 제가 잘 보관해 두었죠.”
애덤은 싱긋 웃으며 주머니에서 내게 동그란 돌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두 손으로 돌을 받아든 나는 동글동글한 눈을 빛내며 외쳤다.
“우와!”
돌은 갈색과 푸른색이 마블링된 것 같은 색의 납작한 것이었는데, 들어 보니 묵직하면서도 서늘한 느낌이 났다.
이게 세 열쇠 중 하나라는 거지?
그것을 홈에 끼우자 달칵 소리가 나면서 딱 맞았다.
“딱 맞아요! 그럼 이제, 세모와 네모만 찾으면 되겠네요?”
세 개 중 하나는 애덤에게 받았으니, 두 개가 남는다.
“남은 둘 중 하나가 어디에 있는지는 짐작이 갑니다.”
애덤은 말을 이었다.
“북쪽 영토의 대공가, 후작님의 본가인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 보관하셨다는 말씀을 들은 적 있거든요.”
나는 북쪽 영토에 대해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가도 가도 눈만 보이는 한파의 사막.
얼음 밭의 강력한 포식자인 몬스터 화이트 베어와 싸우며 나아가다 보면 하늘에 닿아 있는 듯 높은 얼음 성벽이 보인다.
그곳에는 녹슬지도, 얼지도 않는 강력한 금속으로 만든 갑옷을 입은 철혈의 병사들이 있다.
그리고 북쪽 영토의 주인 마일라 대공가.
그들은 얼음처럼 차갑고 냉혹하며 오로지 사람을 적과 아군으로만 분류한다.
‘우리 아빠가 북부 대공의 아들일 줄은 몰랐지.’
마일라 대공가에 대한 묘사는 로판 소설에 나오는 전형적인 북부 대공 자체였지만, 북부 대공의 차남이라는 우리 아빠는…….
‘순둥순둥하게 생기셨어. 북부 대공가의 사람 같지 않다고.’
적어도 초상화의 느낌으로는 말이다.
뭐, 북부 대공이라고 꼭 같은 북부 대공과만 낳지는 않을 테니까.
문제는 그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빠는 이미 대공가로부터 분가해 제국에서 작위를 받았던 사람이고, 난 태어나서 그들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으니 말이다.
아빠도 본 적 없는데 친가 식구들이라니.
“저번에 대공가에 연락했다고 했었죠?”
“예. 하지만 전서구에 대해 아직 응답은 없습니다. 워낙 접근이 어려운 땅이라, 도착하는데 시일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응답이 온 뒤 생각해야겠네요.”
친할아버지와 친척들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긴장이 된다.
나는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그럼 이 열쇠 중 남은 하나……. 그건 어디에 있을까요?”
“아마 후작께서 가까이 지내셨던 정령사들 중 한 분께 맡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정령사요?”
“네. 그래서 신문사에 연락해 아가씨의 수도 입성에 대한 기사를 실은 것입니다. 마일라 후작가의 후계자가 돌아왔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유산의 열쇠를 가진 정령사도 아가씨의 소식에 반응할 테니까요.”
“아…….”
애덤에게도 나름 치밀한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네. 소식을 듣지 못할 만큼 사교계와 거리가 먼 정령사이거나, 혹은 후작께서 맡기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가능성도 있겠죠. 사실 정령사들은 바깥소식에 관심이 없는 성격의 인물들이 많아서, 어쩌면 일일이 찾아다녀야 할지도 모릅니다.”
애덤은 조금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야. 그래도 시무룩해지지는 말자!’
금고가 있고 열쇠가 있다는 것은, 찾으라는 뜻 아니겠는가.
시일과 노력이 필요할지라도 언젠가 내가 금고를 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두 열쇠 다, 당장 얻는 것은 힘들겠네요. 계속 알아봐 줘요, 애덤.”
“알겠습니다. 아가씨.”
나는 골똘한 눈으로 금고를 바라보았다.
과연 저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
* * *
눈 폭풍이 휘몰아치는 드높은 방벽 너머 대공성의 옥외, 어디에선가 날려 온 신문이 돌연 하늘을 향해 솟아난 검날에 꿰뚫렸다.
노인은 갑옷과도 같은 단단한 제복을 입고 있었으며 눈이 스며든 백발은 언제나처럼 딱딱하게 얼어 강풍에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검을 거두었는데, 꼬챙이에 꽂히듯 검에 꿰인 신문이 바스락대며 그의 손에 붙잡혔다.
방벽의 그늘 아래 청록빛을 띤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문 속의 글자를 좇는다.
신문 귀퉁이에 있는 기사 하나가 보였다.
전(前) 대정령사 마일라 후작의 영애, 아리넬 마일라(11)가 수도로 돌아오다.
연금술을 이용해 찍어 낸 흑백 사진에는 크림슈 같은 말랑하고 작은 얼굴에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묶은 여자아이가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가 한참 동안이나 날카롭고 서늘한 눈으로 아이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대공 전하.”
“대공 전하.”
갑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가 와서 차례로 가슴에 손을 올리며 엄격한 대공 가문의 예법대로 주군에게 몸을 숙였다.
그들의 머리카락은 딱딱하게 얼어 있었고 눈매는 매와 같이 날카로웠다.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포니테일로 금발을 묶은, 갑옷의 여자가 대공에게 보고했다. 쉰 듯 거친 목소리였다.
“……하이젠의 아이입니다.”
옆에 서 있던 갑옷의 남자가 이어 말했다.
그들 쌍둥이는 위대한 마일라 대공가의 장남과 장녀였다.
단 일검으로 몬스터 화이트 베어의 두꺼운 살가죽을 파고들어 숨통을 끊는다는 무시무시한 마일라 대공의 계보를 잇는 사냥의 대가들이기도 했다.
휘잉-
매서운 바람이 방벽을 울리고, 경계를 서는 병사들의 콧수염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한참 동안 마른 입술을 닫고 서늘한 눈으로 얼어붙어 가는 신문을 보던 대공이 말했다.
“답신을 보내거라. 여름이 찾아오면 우리가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남풍이 부는 온화한 계절이 시작되었으나, 북부의 공기는 여전히 서늘하고 야만의 적들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였다.
그의 날카로운 눈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