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3)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12)화(13/173)
12
화
* * *
찬란한 태양이 조각 같은, 아니, 조각상 파르메스의 얼굴을 비춘다.
파르메스는 검을 들고 있었고 그의 발치에는 무수한 시체 조각이 쌓여 있었다.
‘이런 잔인하고 살벌한 조각상을 남녀노소 다 드나드는 광장 한가운데에 전시하다니.’
여기 사람들은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잘린 손 모양의 조각을 쿡쿡 찔러 만져 보는 어린아이를 보며, 나는 언젠가 민원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싱긋 미소 지으며 그를 불렀다.
“마스!”
그러자 마스가 내 앞에 멈추어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흰 가면의 형태는 차가워 보였지만, 나는 그 눈빛에서 호의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수도에 오고 난 뒤, 우리가 대낮에 갖는 첫 만남이었다.
“헤헤, 정확히 시간에 맞췄네?”
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갈넴에서는 늘 함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낮에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며 밤에만 내 방을 찾아왔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자유롭다던 날이 세 번째 주의 수요일, 오늘이었다.
“그런데 이건……?”
나는 마스가 들고 있는, 녹색 가방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것을 가리키자 마스가 괜히 다른 곳을 보며 딴청을 피웠다.
하지만 숨겨야 할 것은 아닌지 가방을 가리지는 않았다.
“잠깐 봐도 돼?”
가죽 재질의 좋은 가방에는 파란색 상자가 담겨 있었는데 나는 손을 뻗어 그것을 살짝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서툰 솜씨로 만든 것 같은 샌드위치가 들어 있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마스에게 물었다.
“설마……. 네가 만든 거야? 나랑 같이 먹으려고?”
마스는 아직도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가면 속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이제 눈빛만 봐도 그 표정을 알 수 있었다.
어쩐지 눈썹을 삐딱하게 올린 채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을 것 같았다.
‘오늘 귀여워, 마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며 우리의 머리칼을 간지럽혔다.
* * *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피올렛 아주머니가 궁내부 재상인 알렌스 부인이었다니……. 상상도 하지 못했어.”
나는 마스와 함께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날 도와주시겠다는데, 얼떨떨한 기분이야.”
언제나처럼 내가 말하고, 마스는 듣고 있을 뿐이었지만 예전의 갈넴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우리는 오늘, 전처럼 서로의 등을 마주하고 샌드위치를 먹고, 드넓은 광장과 이어져 있는 공원을 거닐었다.
샌드위치는 투박했지만 제법 맛있었다!
“있잖아. 요즘은 모든 게…… 바뀌어 버린 느낌이 들어.”
나는 손을 하늘로 뻗었다.
길지 않은 손가락 사이에 나뭇잎이 살랑이는 모습이 보인다.
“전에 알던 사람들이, 아니, 알던 사람들은 맞는데. 이제 다른 관계가 되었거든. 그리고 신경 써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아졌어. 난 품위나 격식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시골 여자애일 뿐이었는데…….”
그리고 먼 시야 속, 한가로이 흘러가는 구름.
“이렇게 변해 버린 환경이 낯설기는 하지만, 나, 적응할 거야. 그리고 꼭 후작가를 멋지게 재건해 낼 거야.”
마스가 천천히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만히 주저앉아 상황을 원망하는 것보다는, 온몸에 흙이 묻더라도 굴러 보는 게 낫다는 것을 갈넴에서 배웠거든.”
나는 마스를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잘 해낼 수 있겠지?”
처음 아리넬 마일라로 빙의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하필이면 극심한 기근이 닥칠 세계관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날 빙의시킨 신을 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네 살짜리 주먹으로 하늘을 향해 세 번째 손가락을 펴 보였었는데.’
하지만 갈넴의 아리넬로서 나날과 추억이 충분히 가치가 있었듯, 완전히 변화한 내 미래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는다.
나를 바라보던 마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우리, 힘내자!”
싱긋 웃은 나는 주머니를 뒤져 무언가를 꺼내 마스에게 내밀었다.
“이건 널 위해 준비한 선물이야. 저번에 내 물건들…… 가져다줘서 고마워.”
마스는 내가 내민 손바닥만 한 유리병을 받았다.
그 안에는 반짝이는 붉은 사탕들이 들어 있었다.
내가 발명했던 요리법으로, 굉장히 구하기 힘들기는 했지만 시장에서 산 사탕무를 가공한 것이었다.
“…….”
마스는 사탕 병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가 무안할 정도로 오래, 그리고 집요하게.
“별거 아니야. 그냥, 심심할 때 먹어. 달콤하게 입에 녹아드는데 꽤 맛있어.”
나는 대단치 않은 것임을 강조하며 헤헤 웃었다.
하지만 마스는 그 후에도 한참을 사탕 병을 바라보다가 그것을 제 옷 안에 넣었다.
나는 그런 마스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있잖아. 저번에도 물어보려다가 말았는데, 넌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어?”
저런 사탕도 마치 처음 보는 것인 양 소중하게 넣을 정도면, 하고 있는 일의 대우가 영 좋지 않아 밥이라도 굶는 것은 아닌지 갑자기 걱정되었다.
하지만 마스는 태연하게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더니 바닥에 글씨를 썼다.
[가족 사업]반듯한 글씨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우와! 가족이 수도에 살아?”
마스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고, 나는 걱정이 조금 희석되었다.
나와 갈넴에 일 년이나 함께 있어서, 고아인 나와 비슷한 처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 도시 남자였구나!”
어쩌면 유복한 집안의 애일지도 모른다.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비밀이 많은 마스이기에 나는 더 이상의 신상 명세는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함께 있었고, 나는 해 질 녘에나 소년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석양을 뒤로한 채, 마스는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킨 뒤 뒤돌아섰다.
‘다시 보자’라는 뜻이었다.
* * *
마스와의 외출에서 돌아온 나는 책상에 앉았다.
‘그럼 이제…….’
오늘 내가 책상에 앉은 이유는 편지를 쓰기 위해서였다.
나는 작은 손으로 펜을 들었다.
‘피올렛 아주머니도 귀족이라면, 아머스 아저씨도 귀족일까……?’
아머스 아저씨는, 장차 흉년과 대기근이 온다는 내 말에 관심을 가지고 잘 들어 주셨다.
만약 아머스 아저씨도 귀족이고……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진지하게 다시 대기근에 대해 이야기해봐야겠어.’
원작의 폭군 파르메스 아슬렛이 황제가 된 것처럼, 머지 않은 미래에 기근이 닥칠 것은 분명했다.
원작에 묘사된 대기근 속 제국의 상황은 정말 처참해서, 읽는 내내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아머스 아저씨를 만난다면…… 나를 도와주실 수도 있어. 어쩌면 무서운 지크프리트 공작과 어찌어찌 부드럽게 연결해 줄지도.’
피올렛 아주머니가 피오레나 부인이었으니까, 아머스 아저씨도 본명과 비슷한 이름을 땄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애덤에게 물었었다.
아머스 아저씨의 외양과 말투, 그리고 경제학에 관심이 많다는 특징을 묘사해서 말이다.
그는 가능성 높은 학자들 세 명을 추려서 내게 학술원 주소를 알려 주었다.
아먼 프리드히, 애드몬드 테일러, 해머스 로힘…….

글씨는 조금 비뚤비뚤했지만, 아머스 아저씨가 보면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편지 봉투를 꾹꾹 눌러 봉한 뒤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며 쭈욱 기지개를 켰다.
이 셋 중 아머스 아저씨가 있기를…….
마스에게 말했듯, 바뀐 상황 속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해.
* * *
황혼이 지고 있는 황궁의 풍경.
그 지하로 나 있는 웅장한 복도를 걸어, 소년은 큰 돌문을 밀었다.
그러자 지상의 황궁 내부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난다.
소년은 지상에 올라가기 전,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한 손에 흰 가면을 든 채 발을 내디뎠다.
“…….”
붉은 석양 아래, 소년의 외양이 천천히 지상 밖으로 드러났다.
그 갈색 머리카락은 햇볕을 받기도 전에 이미 찬란한 은발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는 동공이 작아지듯 변화하더니 푸른빛이 가장자리와 중앙의 사이를 천천히 메웠다.
이 황궁에서 황제 다음으로 고귀하다고 일컬어지는 자.
“황태자 전하.”
지나가던 근위대장이 브리튼을 보고 곧장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황궁을 지키는 누구든, 브리튼이 파르메스를 쏙 닮았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황태자는 소년의 나이임에도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강렬한 패왕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
브리튼 아슬렛은 언제나처럼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근위대장을 지나쳤다.
브리튼의 긴 그림자가 해의 방향을 따라 끝도 없이 길어지다가, 방에 들어서자 뚝 끊겼다.
근위대장은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황태자가 방에 들어선 후에야 발을 옮겼다.
방에 들어서자, 창을 통에 어둠이 드리우고 있는 도시의 풍경이 보였다.
브리튼은 품 속에서 오늘 받은 사탕 병을 꺼내었다.
퍽 사랑스러운 그것들은 그 아이의 눈동자와 입술과 손톱을 닮아 있었다.
“가만히 주저앉아 상황을 원망하는 것보다는, 온몸에 흙이 묻더라도 굴러 보는 게 낫다는 것을 갈넴에서 살며 배웠거든.”
브리튼의 짙게 가라앉은 눈이 한참 동안 그것에 머물렀다.
아름다운 소년의 눈빛은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서늘했지만, 두 볼은 열기가 오른 듯 조금 붉었다.
마른 입술이 조용히 한 단어를 내뱉었다.
“……아리넬.”
그는 향기를 맡듯 사탕 병의 입구를 코와 입술 사이에 대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