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47)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147)화(147/173)
147
화
* * *
나는 한참 뒤에야 의식을 찾았다.
“……헉!”
그것도 차가운 돌바닥에서 말이다.
이곳은 어두웠고 나는 내가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창살 앞의 타오르는 횃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황급히 몸을 일으켰는데, 양손이 묶여 있어 제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헉……. 헉…….”
나는 뒤늦게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감옥은……. 마녀족의 감옥?
역시, 아까 우리를 덥쳤던 녹색 연기는 혼란향이 분명했다. 수면향처럼 강하지는 않지만, 적들을 일시적으로 혼란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혼란향을 맡으면 환시와 환청이 생기기도 하는데……. 내가 다른 사람을 거먼트 공작으로 착각하고 잡았을 때 그대로 납치당한 모양이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걸까, 별일은 없겠지, 걱정하고 있을 때였다.
“……성주님.”
뒤편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움찔했다.
이 목소리는 분명…….
옆쪽 감옥을 보자,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남자 하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타오르는 횃불의 빛을 받아 그의 머리카락이 다소 붉게 보였다.
“……펠릭스!”
그 얼굴을 알아본 나는 반갑게 그에게 다가갔다. 손은 묶여 있었지만 발은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이런, 성주님이 어떻게 여기에……. 설마……. 저를 구하러 오신 거군요. 으흐흑.”
펠릭스는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한 얼굴로 턱을 떨며 말했다.
나 역시 재회의 반가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창살에 바짝 붙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도 잡혔어요…….”
…….
“아…….”
그는 감옥에서 며칠간 고생을 했는지 눈 밑이 퀭했다.
잠깐의 무안한 정적이 흐른 뒤 펠릭스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성주님을 다시 뵙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이……. 이 야만인들은 제정신이 아닌 놈들입니다. 제국을 망하게 하기 위해 끔찍한 흑마법을 준비 중이라고요. 그리고 그 재료로 인간을 제물로 바친답니다. 당장 나가셔야 합니다. 정령의 힘을 이용해서…….”
펠릭스의 눈은 오로지 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저는 펠릭스를 구하러 왔어요. 혼자 나갈 수는 없다고요.”
“결국 잡히시지 않았습니까.”
“…….”
뭐, 역시나 할 말은 없다.
아마 지금 내 꼴을 알면 파르메스가 극대노하며 평생 외출 금지령을 내릴지도 몰라.
“그래도……. 분명 우리 둘 다 살아 나갈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묶인 주먹을 꾹 쥐고 말했지만, 포로가 된 내 모습은 펠릭스에게 그다지 확신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 같다.
첫 예측과 살짝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들의 본거지로 잡혀 온 것이 꼭 나쁜 상황은 아닌데.
오히려 그들과 만나기 위해 필요했을 시간을 단축했다고 생각한다.
그때, 바깥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녀족 병사 옷을 입은 사람 여럿이 들어왔다.
남자와 여자 병사가 9대 1정도 비율인 알브레온과는 달리 이곳은 모계 사회답게 남녀 비율이 3대 7 정도로 여자가 더 많은 편이었다.
“술식을 위해 저것들을 끌어내라.”
대장으로 보이는 여자가 명령하자 병사들은 감옥 문을 열고 펠릭스와 나의 팔을 잡고 강제로 감옥 밖으로 끌어내었다.
“지금입니다.”
펠릭스가 갑자기 격하게 저항하며 나를 향해 외쳤다.
“어서 정령의 힘으로……!”
하지만 나는 정령의 힘을 끌어 올릴 수 없었다.
내 손을 묶은 밧줄이 외부와 나를 차단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뭔가 특별한 힘이 있는 밧줄이 분명하다.
“윽…….”
결국 우리는 병사들에게 끌려서 감옥 밖으로 나왔는데, 새파란 하늘 대신 어두컴컴한 천장이 우리를 반겼다.
그렇다, 이곳은 지하 도시였다.
지상의 집들은 위장을 위한 것일 뿐, 그들은 지하에 거대한 터를 조성한 뒤 그곳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성주님……. 흑…….”
펠릭스는 연신 나를 바라보며 애절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펠릭스의 시선을 피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둥근 원 모양의 진과 그 옆에 쓰인 수많은 술식들, 그리고 빈 제단이 보인다.
진의 중앙에는 어항만 한 둥근 구 형태의 병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검은 무언가가 가득 차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한기를 느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엄청난 원한이 서린 저주의 힘이 틀림없다고.
“…….”
여기저기에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백여 명은 넘어 보이는 마녀족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로 보이는 남자가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과 한 팔을 가득 채운 문신을 가진 남자는 쓰러지기 전에 봤던 그 사람이었다.
30대로 보이는 젊고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눈매는 매우 날카로웠고 상체의 여기저기에 흉터가 보였다.
그의 병사들은 나와 펠릭스를 제단 앞에 서게 했고, 이어 지도자가 입을 열었다.
“알브레온에 복수할 때가 되었다. 자매, 형제들이여.”
그러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아래에서 들렸다.
우리는 영락없는 사이비 종교 의식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검은 머리의 남자는 연설을 이어 갔다.
“선대 아슬렛은 일부의 죄를 전체에게 뒤집어씌워 무고하게 일족을 학살했고, 현 아슬렛 황제는 나와의 맹약을 지키지 않고 나의 여동생, 마녀족의 족장이 되었어야 할 아멜리아를 죽였다.”
그 말에 나는 흠칫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얼핏 보니, 굉장히 미인이었던 아멜리아를 닮아 있었다.
아멜리아가 마녀족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가……. 아멜리아의 오빠라고?
나는 충격에 눈동자를 일렁이며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배신자 아슬렛은 더 이상 존재하여서는 안 된다. 알브레온의 땅에 이제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기근이 닥칠 것이며, 그 무엇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그렇게 되면…….”
이윽고 흘러나오는 나의 외침에 남자가 나를 보았다.
“……마녀족도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나는 남자를 알고 있었다.
갈넴 마을에서 제국의 수도로 올라와 유일하게 재회하지 못한 갈넴 마을의 주민. 단 한 번도 대화다운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고, 갈넴 마을의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애드가 씨도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장발의 검은 머리카락을 한 그의 모습은 마치 상처받고 화가 난 흑표범 같았다.
그는 서늘한 보랏빛 눈으로 나를 경멸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뚜벅, 뚜벅.
내 앞으로 걸어온 그의 키는 파르메스나 브리튼만큼이나 컸다.
늘 혼자 있었지만……. 갈넴 마을에 있었다는 것은 이제 와서 보면 하나를 뜻한다.
그는 한때 모든 재상들과 마찬가지로 파르메스의 협력자였다.
“…….”
힘줄이 울긋불긋 선 근육질의 손으로 그는 내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선명하게 눈을 맞추었다.
“너와 함께 죽는 것이, 내가 그를 위해 계획한 마지막 복수야. 아리넬.”
* * *
불안한 기운이 넘실대는 검은 구체에서는 악의 기운이 느껴졌다.
“애드가 씨.”
나는 또렷한 눈으로 남자를 보며 그 이름을 불렀다.
그는 눈썹을 찡그리더니 내 말을 정정했다.
“이제 그런 이름 따위는 없어. 내 이름은 카인 툴라로스. 갈넴 따위에서의 기억은 전부 지웠다.”
형형한 그 눈은 아슬렛 황가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멜리아를 죽였다고 하는 걸 보면 어쩌면 마체르트 공작저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오해가…….
“폐하가 파르메스를 죽인 게 아니에요. 아멜리아는 이미 카르힌에게 몸을 빼앗겼고, 폐하가 죽인 건 카르힌……. 읏.”
그가 내 하관을 쥔 손에 힘을 주자 아릿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보랏빛 눈의 형형한 살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필요 없어. 중요한 건 내 가족들이 모두 아슬렛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뿐이다. 더해 약속을 저버리고 내 자매들을 이곳에서 쫓아내기 위해 수작을 부리고 있고. 그러니 나도 아슬렛의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이다.”
아무래도 말이 통할 것 같지 않는 얼굴이다.
그는 내 얼굴을 놓은 뒤 흑마법사들에게 명령했다.
“의식을 시작해라.”
병사들은 나와 펠릭스를 제단 위로 밀었다.
붉은 술식이 쓰인 그곳에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진짜 위험하잖아!’
그런데 그때, 내 품에서 툭 떨어진 무언가가 발치에 치였다.
떨어진 무언가를 수습하기도 전에, 병사가 그것을 주워 애드가, 아니 카인에게 가져다주었다. 카인은 문득 자리에 멈추어 그것을 펼쳐 보았다.
그건 다름 아닌 파르메스가 나에게 위험할 때 쓰라며 내어 주었던 쪽지였다.
그것을 펴 본 카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수 초 후, 광소와도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 크하하하하! 크하하!”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길래 저렇게 웃는 걸까.
자신의 자리로 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던 애드가는 그것을 들고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종이를 펴서 내게도 그 내용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