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49)
카인이 가까워졌지만, 그가 나를 죽이려 했다는 두려움보다 더 큰 절실함이 내 걸음을 멈추지 않게 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저는 알브레온의 기근을 예견했던 아리넬 마일라. 대정령사 하이젠 마일라의 딸이에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카인의 앞에 발을 멈추었다.
카인은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들은 여기에 있으면 틀림없이 죽어요.”
“감히 무슨 근거로 그런…….”
카인이 내게 손을 뻗었지만, 나는 힘을 다해 카인의 손목을 콱 잡았다.
그리고 강한 눈빛을 담아 카인과 눈을 맞추었다.
내 눈에 담긴 확신 때문인지, 카인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정령력이 사라지고 있어요.”
“……뭐?”
“정령은 자연의 힘, 하지만 정령력이 이렇게 희박하다는 것은 이 땅에 죽음이 드리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정령력이 사라지는 현상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근거를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델머스라 불리었고, 한때는 쉬먼이라 불리었으며, 지금은 펠로투르트라 불리는 이 땅에서.”
이든이 이 말을 한 순간, 나는 언젠가 파르메스에게 이야기했던 내용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나는 갈넴에서부터 파르메스에게 필시 기근이 닥칠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물론 그때의 짐머 아저씨는 내 말을 그렇게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기근의 예견이 정확해진 뒤에는 분명 기억해 냈을 것이다.
“기근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쉬먼에 화산이 폭발할 거예요. 근데 쉬먼이 어디지……? 외국 지명 같기도 한데. 갈넴만 아니면 됐죠. 아무튼 어디 가지 말고 우리 갈넴에서 잘 살아남아 봐요, 아저씨.”
<폭군의 정부는 그만하겠습니다>.
아멜리아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슬퍼한 적이 있는데 바로 쉬먼 화산 폭발 사건 때였다. 원작에는 그 이유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아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그럴 수밖에.
쉬먼이 이곳, 마녀족의 본거지였다니 말이다.
“……널 어떻게 믿지?”
카인은 눈썹을 찡그린 채 나를 향해 으르렁댔다.
“제가 아는 애드가 씨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지만…….”
나는 카인의 두꺼운 손목을 꼭 붙잡은 채 말을 이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었어요.”
그 말에 카인의 보랏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은 상의를 벗어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내고 있어 영 눈 둘 곳이 없게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때의 애드가는 뭔가 온순한 정원사 같은 느낌이었다.
딱히 나를 보고 반가워하거나 인사를 받아 주지는 않았지만, 내가 자신의 정원 근처에 오면 자리를 피해 내가 정원을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
“애드가 씨가 가꾼 꽃들은 정말로 예뻤어요. 노란색, 분홍색, 파란색……. 알브레온에서 볼 수 없는 몇 송이의 꽃을 마을의 길목에서 발견하고서야 애드가 씨의 마음을 알 수 있었어요.”
나는 공격적일 만큼 강하게 힘을 주었던 눈 근육을 풀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산지가 다른 두 꽃을 섞어 키우던 애드가 씨는 알브레온과 마녀족, 모두의 평화와 안녕을 진정으로 바랐다는 것을요.”
“……너……!”
“제 아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폐하의 이주 명령은 마녀족을 핍박하기 위한 게 아니에요. 폐하는 애드가 씨를 배신한 게 아니라고요. 정말로 마녀족과 애드가 씨를 살리기 위해서 그런 조치를 한 거라고요.”
그의 눈동자가 한참 동안 일렁이고 있었다.
“부탁이에요, 애드가 씨. 공멸이 아닌 공존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잖아요. 애드가 씨도……. 사실은 마녀족을 지키고 싶잖아요.”
때맞추어 어딘가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생명의 울음소리였다.
애드가가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이 생명의 불씨도 얼마 가지 않아 꺼지게 될 것이다.
서늘한 눈 속 적개심과 분노의 지분은 조금씩 사그라들고 당혹감과 의구심이 그 빈 자리를 메웠다.
격한 동요는 아주 천천히, 하지만 타오르는 불이 진화되듯 확실하게 가라앉아 갔다.
한참 뒤에야 그는 마른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카인 툴라로스다. 나는 그리고…….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
내 호소가 통했음이 드러나는 그 안정된 목소리에, 나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툴라로스 족장님.”
그는 나를 향해 뻗었던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그의 손목을 콱 잡고 있던 나도 그를 놓아주었고 말이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와중, 카인이 시선을 들어 내 한참 뒤에 있는 이든과 거먼트 공작을 보았다.
잠시 흐려졌던 적개심이 다시 그의 눈에 선명하게 깃들었지만 나는 그가 최소한 지금 당장은 싸우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기다려라. 원로들과 우리의 방향을 정할 터이니. 그것이 너희들에게 우호적인 방법이 될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엄한 시선으로 카인을 보던 거먼트 공작이 천천히 굵은 팔을 올렸다.
그러자 그들을 향해 창과 검을 들이대고 있는 군사들이 무기를 천천히 내렸다.
그래, 피 튀기는 전쟁은 질색이다. 이렇게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지. 이제 카인과 더 이야기를…….
치지직-
그때, 어항 모양의 독구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건…….”
이든이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독구를 바라보았다.
“생물의 가장 강렬한 원념을 모아 만든 ‘아니미’이다. 아직 남녀 한 쌍의 마지막 재료를 넣지 않아 완성되지 않았지만, 완성된 순간 해독이 불가한 극독이 된다. 그걸 강에 쏟아 넣으면 알브레온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지.”
카인은 서늘한 눈초리로 이든에게 말했다.
“그런데, 깨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리가. 연금성에서나 사용하는 특수 유리를 사용한 독구다.”
그때, 흑마법사 하나가 적개심을 품고 외쳤다.
“알브레온 놈들은 마녀족에게 제대로 된 물건을 팔지 않으이!”
“순 사기꾼들이지. 그들은 마녀족을 등쳐 먹을 생각뿐이야. 이주를 강요하는 것만 봐도 그렇고! 흥!”
카인의 말대로 특수 유리를 사용한 독구라면, 어지간한 충격에 저렇게 금이 가지는 않을 텐데 아마 취약한 물건을 판매한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치직-
순간, 금이 간 영역이 다시 한번 넓어졌다.
독구가 깨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던 카인도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그래, 누가 봐도 지금 독구에는 금이 가고 있었다.
“저게 터지면…….”
내 말을 이든이 받았다.
“저게 정말 마녀족 고대 문헌의 ‘아니미’ 최종 단계에 가까운 것이라면, 가장 강력한 독이자 폭탄임이 틀림없습니다.”
“폭탄이요?”
“흘려보낼 때는 독이고, 충격을 주면 폭탄이 되는 물질입니다. 아마 유리가 부서지는 순간 폭발할 확률이 89퍼센트, 그리고 그 위력이 이 일대를 날려 버릴 확률이 90퍼센트입니다.”
“그…… 그럴 수가…….”
상황의 심각함에 거먼트 공작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꿈틀댔다.
족장 카인 역시 눈썹을 세우며 자신들의 독구를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지금 쏟아 버리는 것은 어떠한가. 바로 다른 곳에 옮겨 담거나.”
거먼트 공작의 목소리에 카인은 곧바로 반박했다.
“쏟는 즉시 독기가 퍼져 이곳의 사람들이 전부 죽는다. 인근의 마을들까지 피해를 입을 거다.”
“……이런.”
“게다가 특수 유리가 아니면 무엇도 저것의 독을 가둘 수 없어. 남은 특수 유리는 없고.”
어차피 공멸을 위해 만든 독이었다.
자신들을 희생해서라도 알브레온에 복수하겠다는 강렬한 원한.
이럴 때 바론이 있었으면 조금 나았을까.
이 순간에도 독구에는 금이 가고 있었고, 어찌할 바 모르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다들 물러나십시오.”
뚜벅, 뚜벅.
누군가가 뒤에서 걸어오며 서늘한 목소리를 냈다.
그 익숙한 음성에 흠칫해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펄럭이는 검은 망토, 경갑을 덧댄 흰 제복, 그리고 무거운 소리를 내는 전투용 검은 구두.
그의 허리춤에는 긴 검집이 있었고, 그 자세는 일국의 황태자답게 고고하고 당당했다.
새하얀 머리카락은 전쟁터의 승리의 신처럼 성스러이 느껴지고, 푸른 눈동자는 얼어 버린 바다처럼 고요하고 차분했다.
“황태자 전하.”
놀란 거먼트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브리튼은 망설임 없이 독구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멈추어 섰다.
“전하, 위험합니다.”
때로 브리튼의 라이벌로서 그를 견제했던 이든도 눈썹을 구기며 만류했다.
“안 됩니다. 전하!”
“지금 뭐 하는…….!”
카인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고, 나는 브리튼을 막으러 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그때, 독구로 손을 뻗은 브리튼이 그것을 들어 올렸다.
지직-
더 깊게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그 자리에 멈추어 얼굴을 굳혔다.
“황태자 전하, 지금 무슨 짓을…….!”
“터져도 피해가 없을 곳으로 가져갈 겁니다.”
“설마 직접 옮기시겠다는 생각입니까?”
이든의 말에 독구를 든 브리튼이 나와 눈을 맞추었다.
“시간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