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내 앞에는 눈을 일렁이며 나를 바라보는 펠릭스가 서 있었다.
“펠릭스!”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데 이 아저씨, 왜 또 울어.
“성주님, 흐윽.”
펠릭스의 턱을 타고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수염도 덜 깎은 아저씨가 주책맞게 울고 있는 모습에 나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었다.
펠릭스는 손수건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훔치며 울먹였다.
“성주님께서 이렇게 돌아오시다니……. 그리고 저를 구해 주시다니……. 저는 제대로 된 감사 인사도 드리지 못했군요……. 으흑…….”
“그런 말 말아요, 펠릭스. 펠릭스는 저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 중 하나인걸요.”
“아가씨이…….”
내 말에 펠릭스의 눈이 눈물을 더욱 뿜어냈다.
나는 펠릭스를 보며 달래듯 격려했다.
“그동안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특히 이 정령성……. 잘 이끌어 줘서요.”
웅장하게 재건된 정령성의 내부는 여전히 깔끔했으며, 전보다 많은 수의 정령사들을 보았을 때 더욱 규모가 커져 있었다.
“정령성주께서 돌아오셨다.”
“정령성주님 만세!”
펠릭스의 뒤에 하나둘 모여들고 있는 많은 정령사들.
정령사의 옷을 입은 그들 중에서는 내가 아는 얼굴도 있었고 모르는 얼굴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내 평온하고 소중한 일터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오랜만의 정령성 입성이었다.
* * *
“세상에나. 0리어의 토지에서 곡식을 생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요?”
“예. 지크프리트 공작께서 정령성의 공을 인정해 더 큰 예산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뭐, 양분 대신 많은 물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행여 저번과 같은 대기근이 닥쳐도 어려운 상황을 면할 수 있는 신진 정령 기술입니다.”
“대단해요.”
나는 성주실에서 의자에 앉아, 지금까지 정령성에서 이루어졌던 굵직한 업적들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정령사 협회장은 유능한 정령사를 추천해 주었고, 인재들은 연구 끝에 나라에 도움이 되는 많은 정령술 기반 기술들을 개발해 내었다.
정령성주의 공석 내내 정령성을 이끌어 오던 펠릭스가 납치당하는 바람에 잠시 정령성이 비어 어수선해지기는 했지만, 이제 펠릭스가 돌아왔으니 다시 활기를 찾고 있었다.
“이 기술은…….”
“아. 이건 무도회에 특화된 정령술인데, 곧 알렌스 부인의 살롱을 필두로 사교계에 널리 보급될 예정입니다. 레이디들의 인기가 예견되어 있죠.”
“확실히 주목은 받겠어요.”
업적 보고서를 보는 내내 나는 내가 없는 동안 이루어진 정령성의 업적에 감탄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다 보았을 때, 펠릭스에게 말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 펠릭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린다뇨. 제가 정령성주님을 보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령성주께서는 제국을 지키신 영웅인데…….”
‘영웅’이라는 말을 드는 순간, 조건반사적으로 볼에 열기가 올랐다.
“이쪽 책들도 보고 싶어요. 이건 처음 보는 책인데……?”
나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옮기며 화제를 옮겼다.
그리고 일어서서 서재의 책을 뽑아 들었다.
“아, 그건.”
펠릭스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리넬 귀환을 위한 정령술 개발 프로젝트>
엥? 이게 뭐야?
그건 책이 아니라, 언젠가 아빠의 서재에서 보았던 듯한 연구 보고서였다.
“……실패, 실패……. 또 실패…….”
처음부터 끝까지 빽빽한 글씨로 온갖 연구와 실패 기록이 쓰여 있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정령성주님의 소재를 알아낼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말에 책을 든 내 손이 흠칫 떨렸다.
문득 잊고 있던, 브리튼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연구는 온갖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아리넬을 사랑하는 자의 혈액에 담긴 정보를 이용하는 법’이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브리튼이 피를 서른여덟 번이나 뽑았다고?
“결국 어떤 수를 써서도 알아낼 수 없었지만, 아마 정령성주께서 돌아오시지 않았다면…….”
신전에서 슬픈 얼굴로 수절하고 살고만 있는 줄 알았던 브리튼은 모든 방법을 써서라도 나를 찾아낼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이 연구는 계속되고 있었을 겁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연구 보고서 모음을 덮었다.
“사실 정령성뿐만 아니라 법무성, 연금성, 그리고 각 재상부까지 이런 보고서들이 몇 개씩은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황태자 전하는…….”
펠릭스는 두렵다는 듯 어깨를 움찔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정령성주님을 찾기 위해 살짝 정신이 나가 버린 것 같으셨거든요.”
마지막 말은 매우 조심스러운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브리튼…….’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문득 궁금해진 것에 대해 물었다.
“황태자 전하는……. 낮에는 신전에서 신을 섬기고, 저녁에는 늪지대에서 괴물들과 싸우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제 거취를 연구할 시간을 내신 거죠?”
신전과 늪지대는 갈넴과 체르안처럼 평면 거리상으로는 꽤 멀지만 빠르게 갈 수 있는 루트가 있어서 말을 타고 몇 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일을 하면서 나를 찾는 연구에도 신경을 썼다고?
초인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펠릭스는 내 의문점에 대한 명료한 답을 내어 주었다.
“듣기로 잠을 거의 주무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화들짝 놀라 나는 되물었다.
“잠을……. 안 잔다고요?”
아무리 용의 혈통인 아슬렛이라고 해도 그게 가능한 거야?
“……황의의 말로는 어차피 잠들어 보았자 매일같이 악몽만 꾸신다고.”
“악몽이라면……. 설마…….”
“네. 정령성주님이 그림자에 붙잡혀 절벽으로 떨어지는 꿈이라고 합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마녀족의 마을에서 독구를 들고 나를 바라보던 그의 선명한 푸른 눈동자가 다시 떠올랐다.
* * *
창문 밖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은은한 빛을 내는 실내 마석등만이 그의 침실을 밝히고 있었다.
그의 방은 얼핏 보기에 황태자의 방치고 화려하지 않아 보였다.
꼭 금욕 생활을 하는 사제의 방처럼 물건이 몇 없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물건을 제대로 볼 줄 아는 감정사라면 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감탄사를 내뱉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기품있는 물건만이 곁에 어울리는 아슬렛 황가의 황태자, 그의 방에 있는 몇 안 되는 가구와 물건들은 그 까다로운 안목을 통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끼익-
어느 장인이 일생을 다 바쳐 만든 침대 위에서, 브리튼은 눈썹 그림자를 드리우고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 살짝 열린 문으로 바깥의 빛이 새어 나왔고 까치발을 디딘 누군가가 도둑처럼 살금살금 들어왔다.
다름 아닌 아리넬 마일라, 그의 약혼녀이자 정령성주, 알브레온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인이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황태자의 방 안으로 들어온 아리넬은 천천히 침대 맡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득 발을 멈췄다.
그 머리맡에는, 어쩐지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이 방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물건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홍사탕무 캔디가 든 유리병이었고, 다른 하나는 밤비 나무 조각이 든 망.
‘이건 둘 다……. 내가 준 거잖아.’
홍사탕무 캔디가 든 유리병은 언젠가 마스와 광장에서 만났을 때 그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고, 밤비 나무 조각은 브리튼이 감기에 걸렸을 때 가져왔던 것이다.
무려 7년이 지났는데도 그는 그것을 머리맡에 두고 자고 있었다.
“…….”
아리넬은 일렁이는 눈으로, 잠들어 있는 브리튼을 바라보았다.
‘정말…….’
아리넬은 두근두근 뛰는 심장 위로 손을 올렸다.
잠을 못 잔다는 펠릭스의 말을 듣고, 걱정이 되어 이렇게 몰래 들어왔는데 브리튼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전에는 말만 약혼자였지, 결국 이성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예술품 같은 소년으로 보았다면, 이제는 이렇게 가슴이 절절해질 만큼…….
브리튼을 깊게 생각하게 되어 버린 것 같다.
“…….”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으니 됐어.
아리넬이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돌아서려 했을 때. 갑자기 손목을 잡아채는 힘이 느껴졌다.
“으읏!”
뒤뚱거린 아리넬은 반항할 새도 없이 그 힘에 끌려 브리튼의 위에 올라타 버렸다.
“……!”
처음부터 자고 있지 않았다는 듯, 달빛을 담은 선명한 눈으로 자신과 눈을 맞추는 브리튼을 본 순간 아리넬은 숨이 멎어 버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