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 * *
쿵, 쿵, 쿵.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 나갈 것 같았다.
나른한 표정으로 내 아래에서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는 브리튼은 나를 관찰하듯 올려다보고 있었다.
제 아랫배 쪽에 걸터앉다시피 한 나의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말이다.
“덮쳐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브리튼의 입술이 달싹이며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냥 갈 생각이야?”
“크읍.”
나는 어깨를 움찔하며 숨을 들이켰다.
이……. 이렇게 예쁜 얼굴로 그런 농담을 하다니, 반칙이잖아!
“저……. 저는 그냥 황태자 전하가 수면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 건 아닌지 확인하러 왔을 뿐이에요.”
나는 손목이 잡힌 채 간신히 그의 시선을 피하며 웅얼거렸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거, 놔주세요.”
내가 부탁한 뒤에도 브리튼은 한참 동안 내 손목을 잡고 빤히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정말 안 덮칠 거야?’, ‘아직 늦지 않았어.’ 하고 대 놓고 꼬시는 듯한 느낌이다.
상여우 느낌으로 성장한 것은 알겠는데 이럴 때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내 곤란해하는 얼굴이 가여워 보였던 건지 브리튼은 꼭 잡았던 손목을 결국 놓아주었다.
“…….”
나는 브리튼의 침대로부터 몇 발짝 물러나서 그를 보았다.
브리튼 역시 누워 있던 상태에서 윗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는 잘 몰랐는데, 브리튼이 입은 실크 소재의 잠옷의 가운데가 벌어져서 단단한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
그의 상체는 마스였던 때 이미 본 적 있지만, 어쩐지 야릇해져 버린 방의 분위기 때문에 내 볼은 터질 듯 열기가 올랐다.
“안 잡아먹을게, 긴장 풀어.”
정신이 핑핑 도는 나와는 달리 여유롭고 다정하게 싱긋 입꼬리를 올린 그는 제 침대의 옆쪽을 가리켰다.
와서 앉으라는 듯.
“마침 잠이 오지 않았는데, 잘되었군.”
순간, 그의 모습이 어릴 적 지붕에서 함께 별을 보던 마스와 겹쳐 보였다.
그리고 펠릭스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황의의 말로는 어차피 잠들어 보았자 매일같이 악몽을 꾸신다고.”
속절없이 뛰던 심장이 그제야 조금 안정을 찾는 느낌이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결국 브리튼의 침대 옆쪽에 앉았다.
그리고 브리튼에게 물었다.
“정말……. 정말로 잠을 못 자는 거예요? 악몽을 꾸고……. 오늘도요?”
브리튼은 창문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랬지. 악몽이 아주 오랫동안 나를 내내 괴롭혔어.”
“하지만 이제 저는 돌아왔고…….”
“……그래.”
브리튼이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추었다.
어둠 속 그의 푸른 눈동자는 짙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내 옆에 그대가 있어.”
그는 이내 내 손을 잡으며 깍지를 끼었다. 우리는 눈을 맞추고 있었고 나는 그의 푸른 눈 속, 소년이었을 적부터 어쩌면 가지고 있었을 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대가 돌아온 뒤로는 악몽이 아닌 그대의 꿈을 꿔.”
조금 떨리는 와중에도, 더 이상 악몽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악몽이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잠을 잘 이루지 못하기는 하지.”
하지만 다음 말에 의문이 들었다.
악몽이 아닌데, 대체 왜…….?
그 순간, 브리튼이 깍지를 낀 손을 제 볼 가까이 올렸다.
나는 그제야 그의 볼도 꽤 따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나처럼 조금 붉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브리튼의 위험한 목소리가 나직하게 귓가를 간질여 왔다.
“상당히 불경한 꿈이거든.”
…….
브리튼도 나처럼 성년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굉장히 혈기 왕성한 나이란 소리다.
그리고 그 나이대는 뭐……. 불경한 꿈을 조금 꾸기는 하지.
꿈에서 좋아하는 남자와 첫 키스를 한다든지.
“…….”
생각이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전 나는 브리튼에게서 황급히 손의 깍지를 풀어냈다.
브리튼의 조금 따뜻한 감촉이 아직도 손등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
불쑥 일어난 내가 거리를 띄워 앉자 브리튼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재미있다는 듯 쿡쿡 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대는 다르네. 어려워.”
“……다르다고요?”
흠칫한 나는 브리튼에게 이어 물었다.
“그러니까 다른 여자들과는…….”
“사귀거나, 즐기며 지냈나요?”
브리튼의 외모와 지위면 제국 어느 여자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나 외의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고 신전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뒷이야기는 모르는 것이고.
약혼녀가 실종된 와중 다른 여자를 만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곤두선 말투로 물었다.
왜 속이 따끔거리지.
하지만 그런 느낌은 찰나일 뿐이었다.
“오해는 마. 나는, 당연히 그대만을 기다리며 정절을 지켰어. 영 위험한 순간들은 있었지만.”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특히 신전은 밤에 홀로 잠들기에 위험한 곳이지, 내 방 열쇠가 신녀들 사이에서 마음대로 복사되어 돌아다녔거든. 그래, 미약을 먹을 뻔한 적도 있었고…….”
“네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신심 어린 마음도 흑심으로 바꿀 만한 브리튼의 아름다움은 인정하지만 미약을 먹이는 것은 범죄잖아!
문을 따고 그의 방에 들어가서 유혹하려는 신녀의 모습과 질색하며 서늘한 눈으로 검을 뽑아 드는 브리튼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간밤의 신녀는 도망갔지만, 다음 날에는 다른 신녀가 브리튼의 차에 미약을 타고 있고…….
‘힘들었겠네.’
“그래서……. 차라리 지옥의 늪지대에서 사냥을 하고 지내는 게 마음이 편했어.”
넓은 어깨를 으쓱한 브리튼을 보자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의 첫 순간을 그대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역시 방비하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이어 흘러나오는 그의 말에 나는 다시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걸 느꼈다.
“그……. 그…… 그런 말을 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브리튼의 불면증을 걱정해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것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그……. 그……. 아무튼 몸은 소중한 거니까, 원치 않는 걸 피하는 건 잘하셨어요.”
깊어진 밤, 대화의 수위가 은근슬쩍 저세상의 것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래, 화제. 화제를 돌리자.
“그런데……. 황태자 전하를 보면 마스와 제가 알던 브리튼이 오묘하게 섞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황태자 전하의 진짜 성격은 어느 쪽인가요?”
나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조신다정남보다는 직진남이 되어 버린 지금의 브리튼은 마스와 가깝긴 하지만……. 마스는 확실히 내게 남자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때가 어렸기는 하지만, 남자보다는 가족에 가까운 친구였지.
설렐 때가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우리의 관계는 그러했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사과만 했을 뿐 제대로 말해 주지 않았군. 내가 왜 그대를 속였는지.”
“……사실 짐작이 가는 이유는 있는데.”
무도회에서 그와 춤을 추던 그때, 문득 깨달아 버렸다.
그가 온순한 브리튼이 되어 나를 속인 이유, 아니, 꼬시려고 고군분투한 이유.
“이제……. 황태자 전하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요.”
나는 떨림을 걷어 내고 한결 또렷해진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브리튼에게 그 이유를 들어야 나도 내 마음을 확실하게 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방향으로든 말이다.
“…….”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브리튼은 비스듬히 턱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 짙은 눈에는 어둠 속, 주먹을 꾹 쥐고 앉아 있는 내가 담겨 있었다.
어쩌면 그는 지금 교차해서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먹을 꾹 쥐고 파이팅을 외치던 꼬마 아리넬과 지금의 내 모습을 말이다.
한참의 정적 뒤, 조금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받고 싶었어. 그대에게.”
“…….”
제 진심을 보이는 브리튼의 목소리에 나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브리튼은 살짝 상체를 숙여 내게 가까이 속삭였다.
“그대의 취향에 들어맞는 남자로 자라겠다고 맹세했지. 그러니까 조신햇살…….”
“이상형? 모름지기 로판 남주는 조신다정햇살남이 최고지. 항상 여주를 향해 따뜻하게 말하고,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주고, 조신한 성격으로 다른 여자한테는 철벽을 세우고…….”
나는 언젠가 마스에게 했던 말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고 곧장 얼굴이 붉어진 채 비명을 지르며 그의 말을 끊었다.
“으아악!”
그리고 그에게 바짝 다가와 손을 뻗어 그의 입을 막았다.
내가 말하라고 해 놓고 이런 건 조금 이상하지만, 더 듣기에는 너무 창피해!
서로 눈을 맞춘 채, 나의 가슴 뛰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체를 속인 것조차, 내게 사랑받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그의 진실이었다.
“익숙하지 못했어, 아리넬.”
내 손 아래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사랑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경험해 보지 않은 것들이어서.”
진솔한 그 눈은 빨려들어 갈 만큼 청명했다.
브리튼은 천천히 손을 올려 내 손목을 감쌌다.
“그대의 마음에 드는 가면을 쓰면 틀림없이 그대가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
어린 날의 착각이었다는 듯 브리튼이 입술을 달싹였다.
나와 짐머 아저씨가 갈넴에서 있었던 10년의 세월, 그동안 브리튼은 황궁의 유령 같은 존재로 지내 왔다고 했다.
나를 바라보는 브리튼의 모습에서, 어린 브리튼의, 다소 어두운 모습이 투과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저는…….”
쿵, 쿵, 쿵.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빠른 박동으로 심장이 뛰고 있었다.
“가면을 쓴 마스건, 브리튼이건……. 이제는 황태자 전하가…….”
그의 죽음을 확신했던 순간 느껴진 세상의 흔들림.
나는 그런 감정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7년간이나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그런 가면을 쓴 것이 나를 속이려던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에서였다면.
게다가 이렇게 절절히 반성하고 있다면.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