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 * *
“대단해요. 이런 방식으로 정령 수식을 배열하면 심장 질환을 손쉽게 치료할 수 있겠어요.”
어둑해지는 정령성 연구실.
펠릭스 외 정령사들과 토론하며 연구하던 나는 병 치료에 대한 한가지 수식을 알아내고 기뻐했다.
정령사들 역시 감격에 찬 눈빛으로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획기적인 발견입니다.”
“제 동생이 심장 질환으로 얼마 못 살 거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하루빨리 해 보고 싶습니다.”
“정령성주님은 정말 제국의 위대하신 영웅입니다.”
쏟아지는 찬사에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진짜 제국의 영웅은…….”
연구실 창밖으로 밤의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는 구름이 보였다.
“……하이젠 마체른 마일라. 제 아버지예요.”
전설적인 대정령사. 아빠의 이름을 말하자 모두가 흠칫하며 나를 바라보고는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 정령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정령사를 뽑자면 99퍼센트의 확률로 아빠의 이름이 나온다고 한다.
“그분의 연구가 없었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오기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대공가의 아빠 서재에서 보았던 수많은 책들. 연구 일지들. 나는 그것을 토대로 정령 수식을 발전시켰다.
흑반을 떼어 내는 방법에서 변형을 가하니 병을 고치는 방법이 나왔고, 이제 제국 의학 정령술의 첫발을 뗀 셈이다.
“아니. 아리넬도 충분히 영웅이야.”
그 순간, 뒤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찔 고개를 돌렸더니, 검은 제복을 입은 파르메스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정령사들은 헉, 하고 숨을 들이켜며 몸을 살짝 숙인 채 뒷걸음질 쳐 뒤로 살짝 피해 주었다.
펠릭스 역시 황급히 황제를 향한 예를 취하고 뒤로 물러났고 말이다.
나는 내 앞에 선 파르메스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은발과 적안, 그리고 다정한 눈빛을 가진 나의 소중한 짐머 아저씨.
“폐하.”
생글 웃는 나의 머리에 손을 올린 파르메스는 대견하다는 듯 쓰다듬었다.
여전히 11살 꼬마를 칭찬하는 듯한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말이다.
그러고는 모두에게 말했다.
“이론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전에 적용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지. 아리넬은 그 대단한 일을 해냈고 말이야.”
그 말에 기쁜 듯 가슴이 뛰었다.
이내 파르메스의 뒤를 따라 궁내부 인사들과 알렌스 부인.
그리고 기록을 담당한 관리가 따라 들어왔다.
헤헤, 웃는 낯이던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파르메스를 바라보았다.
오늘……. 그냥 칭찬해 주기 위해서 들른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저렇게 사람들을 많이 달고 왔지?
내 의아함을 알아챈 듯 피식 웃은 파르메스는 속삭이듯 말했다.
“때가 되었잖아, 아리넬.”
때라니……?
그리고 그 순간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에 흔들리는 눈으로 파르메스를 바라보자 그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언젠가 알렌스 부인에게 배웠던, 이 상황에서의 올바른 예법대로 한쪽 무릎을 낮추고 파르메스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위에서 파르메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부로 정령성주 아리넬 마일라에게 마일라 후작의 정식 작위 계승을 허가한다.”
* * *
마일라 대공가에서 나는 성년을 맞았다.
성년이 되자 고아의 신탁 수령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결혼이 가능한 나이가 되었고, 그리고 작위 계승 역시 가능해졌다.
하지만 앞의 두 가지가 내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라면, 맨 마지막의 것은 황제의 허가가 필요했다.
정령성주의 자격 요건을 위해 11살 때 준 후작위를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후작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얼떨떨하게도 작위 계승에 대한 허가를 받았다.
후작이 된 것이다.
아빠와 같은, 마일라 후작이.
“…….”
일렁이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나를 바라보며 파르메스는 낮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아리넬.”
조금 불안한 내 마음을 다독이기라도 하듯 다정한 목소리.
그것은 얼떨떨한 채 얼어붙어 있던 내 정신을 깨웠다.
“……아.”
작위 계승을 받은 뒤에는 어떻게 말해야 한다고 했었지?
나는 목을 살짝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알브레온과 아슬렛 황가에 영원한 영광을.”
더듬거리는 내 목소리 때문인지, 즐거워하는 듯한 파르메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관리들이 내게 가까이 다가와 후작위 임명증과 훈장 같은 것을 주었다.
그것을 안은 채 나는 파르메스를 바라보다가 옅게 미소 지었다.
“고맙습니다. 폐하.”
그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이로써 나는 이제 완전히 아빠의 마일라 후작가를 잇는, 마일라 후작이 되었다.
후작가의 재건을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가슴이 벅차도록 격하게 뛰고 있었다.
* * *
“어서 오십시오. 후작님.”
저녁쯤, 집에 들어오자 애덤이 평소보다 격식 있는 몸짓으로 나를 맞았다.
벌써 여기까지 전해진 거야?
나는 푸흡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예전처럼 해요, 애덤. 낯 간지럽단 말이에요.”
“하지만 이제 영애가 아니라 후작님이신데, 적응하셔야죠.”
이전의 나는 정령성주이자 준후작위를 지녔지만, 그렇다고 다른 후작들과 동등한 위치는 아니었다.
뭐, 재상들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낱 후계자인 것과 직접 작위를 가진 것과는 다르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나라의 주요 귀족들 명단에 나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뭐, 후작님이라는 칭호도 그리 오래 쓰시지는 못할 듯하니, 아쉽기는 합니다.”
“네에?”
애덤의 말에 멈추어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애덤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후작님께서는 곧 제국의 황태자비가 되실 예정이니 말씀입니다.”
그 말에 잠시 잊었던 브리튼과의 혼사와 관련된 이슈가 떠올라 나는 손끝을 움찔 움직였다.
“아…….”
그리고 양손을 들어 볼에 손을 올렸다. 다행히 곧바로 뜨거워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에 말했던 것처럼 결혼식장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나는 애덤에게 항변하듯 말했다.
“저는 결혼하고 나서도 후작가의 일과 정령성주, 어떤 일도 내려놓지 않을 거예요.”
“……그게 가능할까요?”
한때 이든은, 자신과 결혼하면 그 어떤 것도 내려놓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꼬셨었다.
지금의 나로서 혹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혹해도 이든과 결혼할 일은 없을 것이다.
“노력해 봐야죠.”
브리튼은 기꺼이 나를 배려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쿠쾅쾅.
이 밤중에 누가 무슨 일이지?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애덤을 보았으나, 그도 짐작 가는 일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아가……. 아니, 후작님.”
그렇게 말하고는 애덤은 다시 문 쪽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는데, 발칵, 문밖에 있는 사람이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
“마일라 후작님 계십니까. 지금 대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 대피라니요?”
애덤의 물음에 하얗게 질린 군복 차림의 남자가 대답했다.
“근처에서 엄청난 싸움이……. 윽…….”
순간 쿠과과광, 하는 엄청난 폭음 같은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휘청거렸다.
꼭 바람에 밀리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애덤과 눈을 맞추었고, 애덤은 병사를 집 안으로 조금 들어오게 한 뒤 물었다.
“누가 싸운다는 말입니까.”
“후작저 맞은편에서 괴, 괴, 괴물, 아니. 거먼트 공작 전하께서…….”
그 이름을 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더. 더 더, 괴수 같은 검은 옷의 괴물, 아니, 사람과 싸우고 계십니다. 우, 우선 대피하신 뒤에 상황을 파악하시는 게…….”
검은 옷이라는 말에 문득 뭔가 떠올린 나는 곧장 걸어서 문을 열고 나갔다.
열자마자 불어오는 강풍이 몰아쳤다. 바람에 섞여 온 나뭇잎이 내 머리를 때렸다.
“후작님. 위험하십니다.”
애덤이 나를 불렀지만,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먼지바람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몇 걸음을 걸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새카만 밤중에도 형형한 안광을 발하는 무시무시한 한 쌍의 노란 눈.
그의 손에 들린 철편에는 조금의 자비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거먼트 공작의 앞, 검은 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모습의 누군가.
눈 아래를 검은 가죽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설원의 맹수처럼 흉포한 청록색 눈동자를 본 순간 누구인지 곧장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자신의 키만 한 대검이 들려 있었고 그 끝은 거먼트 공작을 향하고 있었다.
으으…….
“이런 대단한 적수를 만나게 되다니. 놀랍고도 놀랍도다.”
거먼트 공작의 두꺼운 입술 사이에서 굵직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수도에도.”
그리고 분명하게 들리는 퀘사 고모의 목소리!
“시시하지 않은 놈이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