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그리고 곧바로 검을 들어 엄청난 속도로 거먼트 공작을 내리치려 했고,
콰아앙-
거먼트 공작은 자신의 두꺼운 철편을 들어 퀘사 고모의 공격을 막았다.
대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귀청이 나갈 것 같았다.
“으악! 지진이다!”
“모두 피해요!”
“돌발성 태풍 같습니다. 제기랄, 어서.”
주변 집들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대피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두 사람의 대결은 그만큼 요란해서, 자연재해를 의심하게 할 만하다.
두 사람이 일으키는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휘날리고 있는 가운데 나는 흠흠, 목청을 가다듬고는 두 손을 입 주변에 댔다.
“두 분 다…….”
더 크게!
“그만하세요오오!”
내 목소리가, 남들보다 기민한 청각을 가진 그들의 귀에 들어왔고 그들은 동시에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리넬, 이 위험한 전쟁터에 왜.”
“……요정아.”
두 사람 다 나를 부르더니 적대심 가득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수상쩍게 군사부 대장군의 집을 어슬렁거리던 첩자 녀석을 발견했도다.”
“감히 내 조카의 뒤를 밟던 무뢰한을 처리하려던 중이란다.”
수 초의 정적 후, 그들의 눈동자가 동시에 흔들렸다.
“……!”
“……!”
그리고 이내 튀어나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
“군사부?”
“조카?”
아무래도 둘은 서로에 대해 크나큰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이윽고 거먼트 공작이 조금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무거운 철편을 거두었다.
퀘사 고모도, 거먼트 공작에 대한 경계 어린 눈빛을 풀지 않은 채 천천히 검을 거두어들여 자신의 등에 다시 메었다.
전운의 강풍이 가신 내 집 맞은편은 정말이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 부지에 작은 정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는데, 성한 게 하나도 없잖아!
거먼트 공작은 어울리지 않게 조금 더듬거리는 쉰 목소리를 냈다.
“고…… 고모라니. 아리넬의 고모면, 마일라 대공가의 퀘사 마일라 대공녀란 말이오?”
나는 우리 고모 맞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신으로 북부의 화이트 베어를 패 죽인다는 그…… 퀘사 마일라.”
퀘사 고모는 미간을 구긴 채, 자신의 코와 입을 덮고 있는 가죽을 풀어 얼굴을 드러냈다.
그녀의 정체를 확인한 거먼트 공작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퀘사 고모는 손을 뻗어 나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군사부를 운운하는 것을 보니, 거먼트 공작이신가 보군요.”
나는 또 그 거먼트 공작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하무트의 괴수들을 손짓 하나로 기절시킨다는 그 거먼트 공작.”
두 사람. 서로 얼굴만 몰랐을 뿐이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휘이잉-
둘 사이에 황망한 바람이 불었다.
* * *
“커흠…….”
“…….”
나는 테이블의 중앙에 앉아 있었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본 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방금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운지라, 분위기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흠, 어떤 이야기를 해야 이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지려나 고민하고 있을 때.
“기회가 되면.”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거먼트 공작이었다.
“…….”
퀘사 고모가 눈썹 끝을 꿈틀했다.
“마일라 대공가에 초대해 주시오.”
거먼트 공작은 솥뚜껑만 한 손으로 이마를 슬쩍 긁었다.
“그곳의 화이트 베어가 보통 놈이 아니라고 들었기에, 한번 싸워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소.”
잠시 굳은 얼굴로 거먼트 공작을 보던 퀘사 고모도 입을 뗐다.
“아무나 상대할 수 없는 강한 놈들이기는 하지만.”
그 강한 놈을 7살 때 이빨로 사냥했다는 퀘사 고모…….
“아까 제가 본 실력대로라면 뭐, 어렵지는 않겠군요.”
이내 퀘사 고모는 작은 찻잔을 들고 찻물을 호로록 마셨다.
그러자 거먼트 공작도 찻잔을 들고 벌컥벌컥 차를 마셨다.
음……. 잠깐만, 분위기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살벌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애덤이로구나.”
기척만으로도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는 거먼트 공작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들어와요, 애덤.”
들어온 애덤은 퀘사 고모와 거먼트 공작에게 짧게 묵례를 한 뒤 내게 말했다.
“후작님. 마일라 샵의 분점 투자 관련 은행에서 찾아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 지금요?”
너무 늦은 시간 아닌가?
“근처까지 왔는데 돌풍이 불고 있어서 들어오지 못하다가, 상황이 정리되어 이제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 돌풍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뻔했다.
“하하…….”
나는 어색한 웃음소리를 낸 뒤 내 앞의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 잠시 나갔다 와도 될까요. 두 분, 편하게 대화하고 계세요.”
내 말에 거먼트 공작은 커흠,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어색한 눈을 굴리며 말했다.
“뭐, 뭐, 그렇게 하거라.”
그리고 퀘사 고모도 시선을 딴 데 둔 채, 찻잔을 들고 말했다.
“천천히 일 보고 오렴, 요정아.”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 *
내가 돌아온 뒤 마일라 샵의 인기가 더 치솟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기존에 있는 분점 외에도 계약을 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이든과 애덤은 그 일에 대해 상의해 나에게 의견을 냈고, 우리는 사업을 더 확장하기로 했다.
‘마일라 샵의 해외 지점이라.’
오늘 만난 은행 직원은, 알브레온이 아닌 엘비스 왕국의 은행 소속이었다.
우리는 투자에 관련된 협의와 함께, 그들에게 시장 분석을 부탁했고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엘비스의 시장성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은행 직원과의 미팅을 마치고 두 사람이 있을 접객실로 가고 있는데, 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접객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그 앞의 하녀에게 영문을 물었다.
“다들 어디 갔어요?”
30분 정도나 자리를 비웠으니,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기는 하다.
“아, 후작님. 두 분은 대화를 나누시다가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퀘사 고모도요?”
수도 체르안에 집이 있는 거먼트 공작과는 달리 퀘사 고모는 마일라 대공가의 사람이다.
우리 집에서 자야 할 텐데?
“두 분이 대화하시는 것을 들은 바로는, 번화가에서 맥주를 마실 것 같았습니다.”
하녀의 보고에 나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음……. 잠깐 사이에 벌써 친해진 건가?
하긴, 관심 분야가 같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
한편 하녀의 말을 듣고 있던 애덤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 표정은 뭐예요?”
“아닙니다. 역시 청춘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 듯 말 듯 한 말을 한 애덤이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주무셔야죠. 잠을 잘 자지 않으면 키가 크지 않는답니다. 후작님.”
“이미 다 컸거든요?”
나는 장난스럽게 반박하며 찌뿌둥한 몸을 움직였다.
* * *
다음 날 아침, 서재에서 정령 연구를 하다가 조금 지친 나는 산책을 하기 위해 후작가를 나섰다.
애덤은 언제나 든든하게 내 뒤를 따르고 있다.
산책하는 길에 어느 호수 공원에 도착했을 때,
문득 어디에선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
시선의 농도는 강했지만 섬뜩하거나 싫은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
나는 일렁이는 눈으로, 먼 곳에서 나를 보고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었다.
하얀 백발과 거대한 체구. 맹수와도 같은 눈매.
하지만 그 눈동자 속에는 언제나 나를 향한 온기가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마일라 대공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 장대한 몸 앞에 서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세상에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내 반가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주름진 입술 새에도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곧이어 그 입술이 살짝 벌어지더니, 그리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러 왔다. 잘 있는지.”
간질거리거나 정겨운 말을 하는 할아버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나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말이다.
이내 할아버지는 두꺼운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11살 때나 지금이나, 할아버지의 눈에는 내가 어리고 비실비실한 병아리 손녀로 보이는 것 같다.
“대공 전하.”
내 뒤에 선 애덤이 할아버지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애덤은 대공가에서부터 아빠를 따랐으니, 원래부터 할아버지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리넬을 잘 보필해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내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린 할아버지가 말했다.
“어떻더냐.”
“……네?”
“대공가가 그립지는 않더냐.”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그 녹색 눈은 나의 의지를 묻고 있었고, 나는 이제 할아버지에게 대답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에게 마일라 대공가는 소중한 집이에요.”
“……후작님.”
뒤의 애덤이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이곳도 제 집이에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흰 눈썹이 움찔 움직인다.
나는 또렷한 시선으로 할아버지에게 내 뜻을 말했다.
“그리고 저는…….”
두근, 두근, 심장이 뛰고 있었다.
“체르안에 남고 싶어요.”
다녀오겠습니다- 하면서 마일라 대공가를 나섰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했다.
할아버지와 고모, 삼촌이 얼마나 나를 소중히 여겨 주시는지 절절히 느꼈던 그 시절.
“…….”
할아버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얼핏 엄해 보이면서도, 내 속을 다 아시는 것 같은 눈빛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내 대답을 기다리고 계신 것 같기도 했다.
나의 가슴이 더 빠르게 뛰어 댔다.
마일라 대공가와 마찬가지로, 체르안에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이유들을 제외하고도 진짜로 남고 싶은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