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 * *
“결국 마일라 영애에게 이걸 보여 줄 기회는 없었군.”
쓸쓸한 지크프리트 공작저, 이든은 자신이 수집한 주화 모음 중 빈 곳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연인이 되어, 뒤늦게 이것을 발견하게 되면 감동받을 확률이 88퍼센트라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연인이 되는 것부터 어그러진 탓에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살짝 비튼 뒤, 뒤돌았다.
“하지만 연인이나 남편은 못 되더라도…….”
오늘 그의 차림새는 평소보다도 더 격식 있고 단정했으며 잔뜩 신경을 쓴 상태였다.
“……좋은 친구는 되었으니 경제학 발전의 꿈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제국에서 가장 성대한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뭐, 이제 마일라 샵의 운영은 대부분 애덤 경이 하고 있기도 했고, 황궁 일은 알렌스 부인이 성심성의껏 돕는다고 했으니 마일라 영애에게 조금은 여유가 남지 않을까.
아직도 정령학 연구에 온 힘을 다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틈을 타 학술원에 데려와서 슬슬 꼬셔 보는 것도…….
이든의 회색 눈이 악당처럼 빛나고 있었다.
* * *
“홍홍홍, 정말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군요. 역시 사교계를 이끌 주축다워요. 황태자비 전하.”
“뭐, 강렬한 인상을 주는 화장을 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모두의 시선을 끌 만하겠어요.”
신부 대기실, 내 뒤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알렌스 부인과 라리엘이 서 있었다.
내가 입은 드레스는 알렌스 부인이 디자이너에게 직접 제작을 맡겼던 것으로 아름다운 모양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값어치가 있다고 한다.
라리엘은 내 화장을 맡아 주었는데, 그 섬세한 붓터치 때문인지 거울 속 내 얼굴은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웠다.
‘나 맞아……?’
나조차 얼떨떨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아름다우세요.”
“어쩜, 하늘에서 내려오신 천사 같아요.”
“역시 마일라 영애.”
그리고 조금 떨어져 서 있는 라피올레 멤버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의 외모를 칭찬하고 있었다.
뭐, 나도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신부가 가장 아름다워야 한다는 결혼식이니.
이 화사함을 즐겨 봐야지.
나는 거울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때, 시종이 신부 대기실 입구에서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황태자비 전하. 이제 입장하셔야 합니다.”
“…….”
나는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라피올레 멤버들이 다가와 나를 살짝 부축해 주었다.
음, 이제 나 진짜 결혼하는 거야?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이내 신부 대기실을 가린 베일 몇 겹을 제치고 퀸넬 신전의 예식당 정전에 들어섰을 때, 웅장한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려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엄청난 덩치로 터질 듯한 정장을 입고 있는 거먼트 공작.
그리고 그 옆에는 퀘사 고모가 앉아 있었다.
두 분, 얼마 전부터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헬리오 삼촌도 보였다. 그런데 둘 다 표정이……. 아끼는 병아리라도 도둑맞은 표정이다.
좋은 날인데 기분 풀라고요!
그리고 지크프리트 공작과 이든도 보였다.
이든은 잠시 나를 보고 놀란 듯 눈동자를 흔들더니 갑자기 뭔가를 계산하는 듯 입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별로 궁금하지 않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그리고…….
긴 흰색 카펫 위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흰 턱시도를 입은 브리트은 언젠가 이 신전에서 재회했던 때처럼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긴 햇살이 그의 은발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고, 짙은 푸른 눈동자는 오로지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마치 이 웅장한 공간 속 우리 둘만 서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브리튼의 입매가 부드럽게 틀어진다.
어서 오라는 듯.
나도 모르게 발을 떼려던 때, 누군가 나를 막았다.
“이런, 아리넬. 같이 가야지.”
나른한 낮은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내 옆을 보았다.
그곳에는 황제의 복식을 한 나의 짐머 아저씨, 파르메스 아슬렛이 서 있었다.
나는 문득 며칠 전 그에게 부탁했던 것을 떠올렸다.
“저……. 결혼식에서 입장할 때, 폐하의 팔짱을 끼고 입장하고 싶어요.”
이곳에는 신부가 결혼식에 아빠와 같이 입장하는 문화가 없었기에 파르메스는 의아해했고, 나는 언젠가 그런 전통을 책에서 봤는데 좋아 보였다고 얼버무렸다.
문득 그의 눈이 깊게 일렁이더니, 그는 감동받은 듯 말했다.
“그러니까, 아빠 대신 나와 걷고 싶다는 말이구나. 아리넬.”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기꺼이 결혼식에 나와 함께 입장해 주겠다고 했다.
아……. 그러니까, 깜빡 잊고 혼자 갈 뻔했다.
내가 먼저 그런 부탁을 해 놓고서.
“네. 폐하.”
나는 파르메스의 팔에 손을 올려 팔짱을 낀 뒤, 음악에 맞추어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브리튼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심장은 더 빠르게 뛰고 있다.
“행복하세요, 황태자비 전하!”
“제국의 영웅 아리넬 만세!”
걷는 도중, 나를 향한 사람들의 귀여운 환호 소리도 들린다.
많은 추억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소중한 이웃들과 함께했던 갈넴 마을, 그리고 모두가 사라진 그곳에서 처음 만난, 마스의 탈을 쓴 브리튼.
우리가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들.
엉겁결에 올라온 수도에서 모두의 정체를 알게 되어 잔뜩 놀랐던 일.
뭐, 서운했던 적도 있었지만, 당시 2황자 잔당들의 위협 때문에 나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결정이었지.
그리고 아멜리아의 탈을 쓴 2황자 카르힌 때문에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위기 덕분에 대공가의 식구들을 만나게 되고 함께 7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정을 쌓기도 했었지.
기억을 잃은 채 지내긴 했었지만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많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수도 체르안.
아빠의 연구를 토대로 한 힘으로 파르메스를 구하고, 모두와 재회했으며 어느 순간 나는 브리튼에 대한 마음도 깨달았다.
지난 세월, 정말 쉴 새 없이 달려온 것 같다.
‘아가씨…….’
‘정령성주님…….’
과거를 되새기며 걷던 나는, 나에게 아련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두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다름 아닌 애덤과 펠릭스였다.
응? 이렇게 서 있으니 둘이 좀 닮았는걸.
나는 조카를 보내는 듯 애절한 눈빛의 그들을 향해서도 손을 살짝 흔들어 주었다.
이제 나는 브리튼의 앞에 도달해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파르메스에게서 천천히 손을 뗐다.
그는 얼핏 서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파르메스의 눈을 마주치며 그가 내 시아빠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줬다.
‘언제는 아들이랑 결혼하라면서요.’
‘그랬었지.’
우리의 조용한 눈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브리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나의 손을 잡았고, 내 손의 약지에는 그가 준 사파이어 반지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브리튼은 마치 고귀한 것을 대하듯 내 손을 들어 손등의 반지에 키스했다.
이내 그가 내 손을 내리자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파르메스는 시무룩한 표정을 풀고 은은한 미소를 띠며 우리를 보다가 뒤를 돌아 느릿한 걸음으로 퇴장했다.
나는 멀어지는 파르메스를 보다 브리튼에게 시선을 옮겼고, 밝게 미소 지었다.
우리는 이내 함께 주교가 선언문을 읊기 위해 기다리는 앞머리로 발을 움직였다.
그곳에 선 내내, 주교의 성혼 선언문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내 손을 꼭 잡은 브리튼의 온기와, 우리가 마침내 또다른 시작에 다다랐다는 기쁨이 나를 휘어 감고 있었다.
성혼 선언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창문을 통해 내리쬐는 밝은 빛을 맞으며 살짝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쩌면 아빠가 보고 있다면, 이렇게 전해 달라고 신에게 처음으로 기도했다.
‘아빠, 저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요.’
펑- 소리와 함께 눈을 뜨자 천장에서 미리 설치된 꽃잎 폭죽이 우리를 축복하듯 떨어졌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지은 나는 브리튼과 눈을 맞추고는 생긋 웃었다.
이제 발랄하고 즐거운 결혼 찬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리넬, 마일라.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