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6)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166)화(166/173)
외전
1
화
외전 1. 하이젠의 일기
“어디 추운 지역에서 왔니? 가죽 코트가 여간 무거워 보이는데.”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고 있는데, 열린 문 바깥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
나는 헤헤, 미소 지으며 밝게 대답했다.
“네. 북쪽의 마일라 대공가…….”
마일라 대공가의 막내라고 하려다가, 나는 아차 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 주변의 작은 오두막에 살다 왔어요.”
“세상에나, 그 사시사철 눈이 내린다는 무시무시한 동네?”
“하하, 사시사철은 아니고, 뭐 눈 내리는 날이 많긴 하죠.”
나는 다시 돌아서서 열심히 행장을 풀었다.
내 이름은 하이젠 마체른 마일라.
마일라 대공가의 막내이고, 올해 14살이다.
우리 아버지는 그 무시무시한 동네의 주인인 마일라 대공이시고, 내게는 형과 누나가 있다.
“우리 같이 화이트 베어 사냥 시합하자, 이젠아.”
“너는 한 마리만 잡아도 두 마리로 쳐 주겠다.”
어지간한 병사 열 명이 덤벼들어도 잡기 힘든 화이트 베어는, 퀘사 누나와 헬리오 형이 제일 좋아하는 사냥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포악한 몬스터 사냥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무엇보다 괴수에 가까운 형과 누나와는 달리 나는 제법 연약한 몸이라고.
둘은 내가 약하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럼 빗자루로 청소부터 할까요?”
행장을 다 푼 나는 여관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그렇다, 나는 당분간 체르안의 이 여관에서 일하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기로 했다.
체르안은 마일라 대공가와는 달리 따뜻하고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그래, 여관 뒷마당 좀 쓸어 주면 고맙겠구나. 쓸고 나서는 주방으로 오렴. 파이를 구워 놓았으니.”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의 분위기도 정겨운 것 같았다.
“네, 아주머니.”
나는 습관처럼 헤헤 웃고는 빗자루를 가지고 여관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마른 나뭇잎들을 깔끔하게 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손을 올려 살짝 위로 뻗었다.
눈을 감으니, 가을 땅에 가득한 정령의 기운이 느껴진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올라왔다.
‘따뜻해.’
내가 집을 떠나 체르안으로 온 이유, 그것은 더 많은 정령의 힘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령사다. 그것도 네 가지 정령의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정령사.
눈으로 뒤덮인 마일라 대공가는 물의 정령의 기운은 강했으나 상대적으로 다른 정령들과 놀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사시사철 온화한 체르안은 정령들이 한데 어우러져 노는 낙원이라는 내용을 책에서 읽었는데, 정말일 줄이야.
나의 손이 움직이자 바람의 정령이 땅의 마른 나뭇잎들을 쓸었다.
정령들의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즐거워.’
그렇게 한참 동안 정령들을 느끼며 청소를 한 나는 눈을 떴다.
어느덧 뒷마당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렇게 세밀한 정령술을 펼치게 되기까지 엄청나게 연습했는데, 보람이 있네.’
정령의 근본은 자연, 그리고 조금만 힘을 잘 못 조절하면 재해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형과 누나가 열심히 검과 활 연습을 하는 동안, 나는 정령술 연습을 했었다.
둘 다 그걸 영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눈치이긴 했지만.
이제 뭐 어쩌겠어.
당당하게 편지 한 장 남겨 놓고, 가출에 성공했는데 말이다.
-정령사 시험을 보러 다녀오겠습니다. 저를 찾지 마세요. 하이젠 올림.
어깨를 으쓱하며 발을 옮기던 그때.
움찔.
갑자기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정령들이 파동했고, 나 역시 놀라서 바싹 굳어 섰다.
‘이 기운은…….’
퀘사 누나나 헬리오 형이 벌써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는데.
일부러 대공가와 이어진 외부의 길이 얼어붙기 시작한 초가을에 대공가에서 출발했다.
쫓아오지 말라는 염원을 담고 말이다.
며칠 방에서 안 나오고 연구를 할 거라고 말을 해 놓고 도망친 거라, 내 편지를 발견했을 즘이면 이미 길이 눈에 막혀 쫓아오지 못했을 터.
‘하지만 이렇게 숨이 막히는 강한 느낌은……!’
맹수와는 눈을 맞추지 말랬는데,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문득 나무 위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하얀…….’
그 사람을 본 첫 순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늑대 같아.’
바람에 살랑이는 은빛 머리카락과 유려하고 아름다운 선의 얼굴.
시원해 보이는 눈매 속에는 눈늑대와 닮은 붉은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소년 같은 느낌을 보면 나와 비슷한 또래인 것 같은데, 뭔가 현실의 존재가 아닌 것처럼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에 나는 꿈을 꾸듯 멍하니 그를 보고 있었다.
“…….”
나와 마주친 소년은 한참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아래로 훅 뛰어내렸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이봐요! 조심해요!”
왜냐하면 나무는 굉장히 높았기 때문이다.
그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다리가 부러진다고!
놀라서 황급히 소년에게 다가갔는데, 바닥에 착지하며 잠시 몸을 굽혔던 소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툭 털고 일어났다.
“……괜찮아요?”
뭐야. 왜 저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하지?
소년은 한 발짝, 두 발짝 내게 다가왔고 나는 긴장한 채 소년을 보고 있었다.
어…… 엄청 센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내 손에는 빗자루가 있으니 여차하면…….
코앞까지 다가온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붉은 눈동자. 으으, 잡아먹힐 거 같아. 정령들도 덜덜 떨잖아.
눈가를 움찔하며 물러서려는데, 소년의 몸이 내게 힘없이 무너졌다.
나는 갑자기 안기다시피 한 소년을 엉겁결에 붙잡았고 내가 들고 있던 빗자루는 바닥에 쓰러지며 툭, 하는 소리를 냈다.
“저, 저기요?”
내게로 쓰러져 기대어 있는 소년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소년은 기절했는지 답이 없었다.
이거……. 어떻게 된 상황이야?
그때 소년의 배에서 새어 나온 요란한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꼬르르륵-
* * *
꿀꺽, 쩝, 스윽스윽.
소년이 음식을 먹는 소리가 내 방을 가득 채웠다.
쩝쩝, 후루룩.
나는 사라져 가고 있는 나의 저녁 식사와, 먹는 데 집중하는 소년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배고파서 쓰러진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러고 보니, 꽤 가벼웠던 것 같기도?’
수프 그릇을 들고 마시는 손목이 꽤나 얄쌍하다.
소년은 오랫동안 먹지 못한 듯 내 저녁을 아주 깔끔하게 다 먹어 치워 버렸다.
그리고 태연하게 기지개를 켰다.
“이제 좀 살 것 같군.”
“…….”
“며칠 만인지 모르겠어. 안심하고 음식을 먹은 건 말이야.”
안심하고 먹다니, 무슨 말이지?
잘생긴 얼굴도 그렇고, 입고 있는 부티가 나는 옷도 그렇고, 굶고 다닐 애로는 안 보이는데…….
소년은 얼떨떨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말했다.
“영 초라하지만 잘 먹었다.”
감사도 칭찬도 아닌 그 말에 나는 발끈했다.
“뭐라고요!”
아니, 남의 저녁을 그렇게 몽땅 먹어 치워 놓고서 그런 말이 나와?
게다가 초면에 반말이 자연스럽네.
영 제멋대로인 부잣집 도련님이 분명하다.
“정신 차리셨으면 이제 나가 주세요.”
어느새 바깥이 어둑해져 있었다.
저녁을 몽땅 빼앗긴 것이 조금 슬프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시선을 휙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하자 소년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아니.”
엥? 뭐가 아니라는 거야.
어이없다는 듯 다시 눈을 맞추는 내게 그는 마치 선심을 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추하지만, 자고 가야겠다.”
나는 곧바로 받아쳤다.
“아니, 누구 마음대로요!”
이 녀석,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