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8)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168)화(168/173)
외전
3
화
그 소리에 나를 잡고 발길질하던 사람들이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을 쓴 낯선 사람들이 이곳으로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수는 이 범죄자 일당들보다 많았고, 무리를 이끄는 맨 앞에는 나와 비슷한 체구의 누군가가 흰 가면을 쓴 채 서 있었다.
“누…… 누구냐……!”
여자가 당황한 목소리를 냈고, 흰 가면을 쓴 자는 곧장 검을 뽑아 여자에게 돌진했다.
두 개의 검이 맞부딪히는 굉음이 들리고, 여자는 곧장 뒤로 나가떨어졌다.
구속이 풀린 나는 엉거주춤 서서 멍하니 흰 가면의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의 뒤에 있던 부하들이 빠르게 이 실험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당들을 퇴치했다.
흰 가면 속에서 소년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의 개도 살려 놓지 말아라.”
그 목소리에 나는 놀라 몸을 움찔했는데, 그것은 그 속에 섞인 아득한 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가 이들을 죽였는지 눈치채지 못해야 한다.”
나는 이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검은 옷을 입은 그의 부하들은 감옥 문을 열어, 갇혀 있던 사람들을 풀어 주었고,
나를 납치한 사람들은 그들의 검에 명을 다하고 죽어 가고 있었다.
피가 난자하는 참혹한 풍경을 적나라하게 담으면서도 가면 속 붉은 눈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언제나 이런 것을 보아 왔다는 듯, 아득히 깊고 잔잔한 그 눈동자.
“……돌아가라. 정령사.”
내게 경고하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발을 떼지 못했다.
그저 이상한 기분으로 소년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리고 소년이 발을 앞으로 옮겼을 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소년의 팔을 붙잡았다.
가면 속 붉은 눈이 나를 향한다.
“…….”
그래, 이 애는 그 애가 맞다.
어젯밤 내 저녁을 잔뜩 먹어 치우고, 내 침대를 훔쳐 하룻밤을 잔 그 뻔뻔한 애.
그리고 방금, 나의 목숨을 구해 준, 이제는 생명의 은인.
“……당신은…….”
나는 마른 입술을 떼어 그에게 물었다.
“……누구예요?”
생각해 보니 소년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를 바라보던 소년은 천천히 얼굴을 가린 가면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내었다.
“내 이름은 파르메스 아슬렛.”
그 입술은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며 조용히 달싹인다.
“황제가 될 남자다.”
* * *
“진짜? 진짜 황자 전하세요? 진짜로?”
별이 쏟아지는 밤의 풍경 속, 우리는 그루터기에 나란히 앉아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로 광룡의 피가 섞였다는 아슬렛 황가의 그…….”
“…….”
은빛 머리카락의 소년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나를 바라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광활한 밤 호수를 담았다.
“그런데 왜…….”
제 저녁을 뺏어 드시고 제 침대도 차지하신 건가요.
꼬르륵-
꼬르륵-
그 순간, 우리의 배 속에서 동시에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천천히 얼굴을 돌려 그와 시선을 마주한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생각해 보니 나도, 식사를 못 했지.
그때, 파르메스가 제 안주머니 안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얇은 은박지에 싸인 무언가였는데 그가 얄쌍하고 예쁜 손으로 그것을 벗기자 곡물 바가 드러났다.
그는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그것을 받아 들었다.
파르메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귀한 것이지만, 주겠다.”
그……렇게 귀해 보이지는 않는데.
아무튼 내게 그것을 준 파르메스는 다시 시선을 돌려 밤 호수를 바라보았다.
“너도 내게 식사를 양보했으니. 영 보잘것없는 식사기는 했지만.”
나는 멍하니, 파르메스가 준 곡물 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며칠 만인지 모르겠어. 안심하고 음식을 먹은 건 말이야.”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나는 흔들리는 눈으로 다시 그를 보았다.
잔혹한 아슬렛 황가에는 네 황자가 있다고 들었다.
그중 가장 유력한 차기 황제는 2황자인 카르힌 아슬렛. 그는 네 황자들 중에서도 세력이 강하고 손속이 잔인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만약 형제들을 죽이려 한다면…….
음식에 독이라도 탄다면, 파르메스는 황궁 안에서 안심하고 음식을 먹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굶었던 것이고, 그날 쓰러졌던 것이겠지.
그렇다면 이건…….
“…….”
나는 다시 곡물 바를 파르메스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안전한 음식이잖아요. 전하에게 소중한.”
그가 받지 않자 나는 손을 뻗어 내게 준 곡물 바를 강제로 쥐여 주었다.
“그러니까 전하 드세요. 저는 음식이 많으니까.”
파르메스의 붉은 눈동자가 옅게 일렁이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제 침대에서 하루 잔 비용과 제 저녁을 먹어 치운 비용 모두, 오늘 저를 구해 주신 걸로 이미 받았어요.”
그가 부하들과 들이닥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도 싫다.
그는 곡물 바를 쥔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을 돕는 정령사가 되고 싶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내 정령력으로 도와 그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정령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도 있는 것 같다.
“혹시 또 배고프시거나 잠자리가 필요하시면…….”
나는 돌아서며 파르메스에게 말을 남겼다.
“찾아오셔도 돼요. 그 정도는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정령들이, 파르메스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뭐, 이 정도면 인사는 충분히 한 거겠지?
나의 입가에 미소가 고였다.
* * *
간만에 마일라 대공가에서의 꿈을 꾸었다.
좋은 꿈은 아니었다.
드넓은 설원에 나 혼자 있었고, 눈늑대에게 쫓기고 있었으니까.
흰 털을 가진 늑대는 내가 아무리 도망쳐도 나를 끈질기게 추격해 왔다.
그런데 저 늑대, 표정이 묘하게 웃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헉, 헉…….”
나무 뒤에 숨어 있는데 늑대가 킁킁거리며 숲을 지나다니며 나를 찾고 있었다.
가슴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뛰고 있었고, 나는 늑대에게 잡힐까 숨을 헐떡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나무 뒤쪽에 움츠려 있던 나는, 주변이 조용해지자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때, 나무 위로 올라간 늑대와 눈이 마주쳤다.
자, 잠깐만, 나무 타는 늑대라니, 반칙이야!
늑대는 곧장 나를 덮쳐 왔다.
이로 나를 물어뜯지는 않았지만,
푹신한 털과 집채만큼 묵직한 늑대의 몸체가 나를 짓눌러 온다.
으으, 숨 막혀!
“……으으…….”
나는 끙끙 앓으며 눈을 떴다.
그리고 내 쇄골께를 누르고 있는 팔과 내 허벅지 위에 겹쳐져 있는 다리를 겨우 치워 냈다.
여기는 내가 머물고 있는 여관의 내 방이었다.
그리고…….
쿠울-
지금 내 침대를 차지하고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소년은 파르메스 아슬렛, 이 알브레온 제국의 4황자이다.
“으음…….”
잠버릇이 지독한 파르메스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눈썹을 구기며 옆으로 몸을 돌려 또 내게 철퍼덕 팔과 다리를 올렸다.
“으으……. 저리 가란 말이에요!”
나는 간신히 파르메스의 덫과 같은 팔다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직 캄캄한 창문 밖을 보며, 파르메스에게 잠자리가 필요할 때는 찾아오라고 했던 내 과거를 후회했다.
제기랄. 괜히 착한 척했어!
“친구 하자, 정령사.”
그날 밤 내 귀에 잔잔히 들려오던 그 목소리가 떠올랐지만……. 그래도 피곤하다고!
외전 1.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