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69)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169)화(169/173)
외전
4
화
외전 2. 아리넬의 일기
“이……건?”
나는 갈넴에서 온 소포를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그것을 개봉했다.
카인 씨가 칼넴에 갔다는 것을 듣고 종종 그와 편지를 주고받았었는데, 그는 내게 이것에 대해 언급했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었고, 결론지은 방법대로 완성한 것을 내게 보내 주겠다는 편지를 받긴 했었는데…….
“……와아…….”
이렇게 예쁠 줄이야.
영롱한 크리스털 병 안에는 분홍색 액체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술을 먹은 홍사탕무 절편이 다소곳이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노을이 내리는 갈넴의 풍경처럼 아름다운 술이었다.
그렇다. 이건 다름 아닌 홍사탕무 과실주!
어릴 적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빚었던 나의 노동 결과물이다.
홍사탕무는 생과보다는 말린 과일로 술을 담는 것이 향취가 더 좋은데, 마침 갈넴을 떠나기 전의 내 집에는 홍사탕무가 잔뜩 묻혀 있었다.
기근이 올 줄 알고 열심히 홍사탕무를 말려 보관해 두었으니까.
그것들은 내가 갈넴을 떠나 체르안을 거쳐 마일라 대공가에서 지내고 있는 동안 수년 동안 잘 숙성되어 있었고, 술로 빚어 보자 더할 나위 없이 일품이었다고 한다.
거기에 카인이 알고 있는 마녀족의 전통 비법까지 더해지니 이렇게 완벽하게 멋진 술이 되어 버렸다.
이름하여 아리넬 에디션 블랙 라벨!
그것이 갈넴에 내가 묻어 두었던 홍사탕무로 만든 이 걸작의 최종 이름이었다.
아직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카인의 말로는 자기가 먹어 본 술 중 가장 훌륭하다고 하니 기대가 되는 중이다.
술과 함께 동봉한 카인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다른 술들도 곧 황궁으로 보내겠습니다. 황태자비 전하의 언급대로, 저를 포함해, 갈넴에 있었던 재상들과 성주들에게도 한 병씩 보내고요.]다들 한 병씩 보낸 뒤에도 열두 병이 남는다고 하는데 그건 내 자산 중 일부가 될 것이다.
내가 마셔도 좋고, 아니면 앞으로 만날 손님들에게 주어도 좋겠지.
“그게 아리넬 에디션인가 보군.”
홀린 듯 영롱한 술병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브리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흠칫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 황태자 전하.”
찬란한 아침 햇살에 부드러운 은빛 머리카락이 반짝인다.
그 아래 푸른 눈은 영롱한 호수처럼 맑고 깊었고, 그는 다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신혼 생활을 하고 있는 내 남편. 브리튼 아슬렛. 알브레온 제국의 황태자이다.
그는 내게 다가와 다정하게 내 어깨를 감싸며 속삭였다.
“오늘 밤에는 이 술로 분위기를 데우면 좋겠는데.”
그 나직한 목소리에 열이 올라오며 나는 얼굴이 붉어져 버렸다.
“어떻게 생각해?”
“…전하아…….”
눈썹을 꿈틀거리며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살짝 그를 떼어 내고는 두 손을 올려 뜨거운 볼에 데었다.
“그러니까…….”
“…….”
“때로는 쉬는 날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신혼이라기는 하지만 브리튼은 나를 너무 좋아한다.
정무를 보는 중에 중간중간 찾아와서 나를 빤히 보고 있거나, 나들이를 다니는 건 그렇다고 쳐도…….
어떻게 매일 밤 내게 안 떨어지고 붙어 있냐고.
처음에는 변태인가 의심도 했는데, 그냥 활력이 많이 왕성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정말 틈만 나면 껴안고 몸을 붙이는 건 뭔가 좀 그렇잖아? 뭐 그렇게 싫지는 않지만, 사실 많이 좋기도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황태자인데 말이다.
정기 검진을 하는 황의에게 몰래 브리튼의 행동에 대해 상담했는데 부인을 너무 좋아하는 남편에게서 나타나는 부인 애호증이니 걱정하지는 말라고 했었다.
“쉬는 날이라니.”
문득 브리튼이 슬픈 표정으로 눈썹꼬리를 살짝 내렸다.
“사랑에 쉬는 날이 어디 있어. 아리넬.”
이런 얼굴에 이런 표정은 반칙이라고!
“오늘은 덜 피곤하게 해 줄게. 응?”
브리튼은 사탕을 조르는 어린아이처럼 애절하고 다정하게 속삭였다.
뭐, 내 체력을 많이 고려해 주며 밤을 보내기는 한다.
그와의 밤은, 언제나,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좋아서 결국에는 내가 매달리는 모양새가 되어 버릴 때도 있고.
“사근사근 녹을 수 있게. 마사지도 해 줄게. 아리넬.”
그가 내 머리카락을 살짝 넘기며 속삭였다.
“그러니까 내게서 떨어질 생각 하지 말아 줘.”
“…….”
“그것도 싫으면 손이라도 꼭 잡고 있을 거야. 응?”
나는 볼이 붉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뭐, 브리튼의 마사지는 정말 훌륭하니까.
우리가 하루라도 다른 침대를 쓰는 날은 앞으로 찾아오기 요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 *
쪼르르-
밤이 왔다.
신방 테라스의 테이블에 마주 앉은 나는 브리튼이 내 잔에 아리넬 에디션을 채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와인 잔에 차오르는 분홍빛의 술은 모양부터 영롱하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아주 미세한 홍사탕무 조각들은 마치 꽃비를 내리는 것처럼 잔 안을 떠다니고 있었다.
이런 효과는 마녀족의 특제 비법의 결과물일까. 아무튼 신기하고 아름다운 술이다.
이내 브리튼의 잔에도 아름다운 술이 차올랐다.
우리는 잔을 들고 가볍게 그것을 맞부딪힌 뒤 잔을 입에 댔다.
상큼하고 화사한 향이 코끝을 타고 올라오는데 향기만으로도 감미로워 눈동자가 옅게 흔들렸다.
이내 잔을 기울여 그것을 입 안으로 흘려보내자 난생처음 느껴 보는 화사하며 깊은 술맛이 입을 부드럽게 간질였다.
카인이 이런 완벽한 술은 처음이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달콤하고……. 향긋해.’
술맛을 음미하기 위해 눈을 감자, 아름다운 봄꽃으로 가득 찬 갈넴의 풍경이 시야에 어른거리는 것 같다.
우리가 그곳을 떠나 있는 동안 변해 왔던 갈넴의 풍경.
그것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갈넴은 언제나 아름답다.
아, 갈넴을 몽땅 태워 버렸다는 파르메스의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그곳에 있는 반역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는 몽땅 태우고 우리들의 집을 전부 폐쇄한 것은 맞다.
당시에는 카르힌 잔당들이 활동하던 시기라, 적들이 우리의 흔적을 찾으면 내게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었으니.
하지만 내 마당 속 홍사탕무를 포함해 집을 부수어 버리거나 하지는 않았고, 수년 만에 돌아온 카인과 마녀족이 갈넴을 재정비했다고 한다.
그곳에 내 집도 수리해 별장으로 만들어 놓았고 우리는 여름에 그곳으로 휴가를 갈 예정이다.
마당 속에 묻어 두었던 홍사탕무로 마녀족의 비법을 사용해 이렇게 술을 만들어 보내 주었고 말이다.
아무튼 달콤한 술에는 그곳에서 있었던 우리의 역사가 생생히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뜨자 브리튼의 유리알 같은 눈이 보였다.
마주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깊었고, 갈넴에서 만나 의지하게 된 그의 소년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정답게 미소 짓자, 브리튼의 입가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흘렀다.
“옛날 생각 나요.”
“……나도.”
“처음에 저 봤을 때 무슨 생각 했어요?”
“예쁘다는 생각.”
“거짓말.”
나는 속일 생각 말라는 듯 볼을 부풀렸다.
그때 엄청 쌀쌀하게 대했던 거 다 기억나거든요!
“정말이야. 너무 예뻐서……. 미웠어.”
“에?”
“틀림없이 좋아하게 되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났어.”
나는 브리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가항력. 아슬렛은 그런 걸 싫어하거든. 이 핏속에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어서.”
여전히 뭔 말인지 모르겠으니 술이나 마셔야겠다.
꿀꺽꿀꺽, 아리넬 에디션 블랙 라벨이 내 목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크으! 정말 완벽한 술이야.
“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어. 처음부터 아리넬은…….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렇게 귀엽고 예쁘고 당찬 아리넬을…….”
브리튼도 술을 넘기며 약간의 한탄을 섞어서 중얼거렸다.
팔불출 같은 대사와 함께 말이다.
피식, 술기운 때문인지 웃음이 난다. 얼굴도 조금 뜨겁고.
“사랑해, 아리넬.”
앞에 앉은 브리튼이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밤바람은 꿈결처럼 부드럽고, 내 앞의 그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밤이 짙어지고, 나는 오늘도 브리튼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아. 내일은 폐하와 다 같이 피크닉을 가기로 했는데. 너무 지치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는 홀린 듯 브리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살짝 몸을 숙여 브리튼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달콤하다. 이 특별한 술만큼이나 브리튼의 입술은 늘, 사탕을 문 것처럼 달다.
브리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동시에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달빛을 등진 채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아리넬. 사랑해.”
아른한 그의 목소리에 더욱 취기가 돌았다.
발코니 문이 열리고 우리는 침대로 쏟아지듯 올라왔다.
그의 입술이 다시 나를 덮쳤다.
오늘도 신혼의 밤은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