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71)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171)화(171/173)
외전
6
화
“정령수의…… 축복이요?”
내 말에 여자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수의 축복을 받게 되면, 더없는 행운이 너를 뒤따를 거란다. 그 행운은 네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미치지.”
“…….”
“또한 네가 사는 땅은, 기근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한정 없는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란다.”
나는 포근한 느낌을 주는 정령수를 바라보았다.
“정령의 호의를 받아 주려무나.”
정령수는 어서 대답하라는 듯 꽃을 밝게 빛내고 있었다.
마치 기특하게 자신의 일을 잘 해낸 자녀에게, 선물을 주려는 부모님 같은 느낌이다.
나는 은은히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축복해 주세요, 정령수여.”
그러자 내 손을 통해 정령수의 따스한 기운이 스미기 시작했다.
그 온기는 나의 온몸을 완전하게 감싸 왔는데, 마치 태고에 엄마의 배 속에 있었던 듯한 포근하고 따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아리넬.
정령수가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저를 이렇게 좋아해 주시는 건가요?
나는 정령수에게 물었다.
-너는 사랑스러운 존재.
머리를 쓰다듬는 듯한 정령수의 사랑이 느껴졌다.
-먼 곳에서 찾아와 길을 스스로 찾는 아이.
포근한 흙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었지.
-기특한 나의 아이.
정령수가 가지들을 뻗어 나를 안고 등을 두드리는 듯한 환영이 느껴졌다.
정령수는 나를 칭찬하고, 대견해하며, 축복하고 있었다.
-잘해 왔다.
-당신 덕분이에요, 정령수님.
정령수가 모든 정령들의 어머니라면, 지금까지의 일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닌 그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정령의 힘이 나를 돕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오늘이니까.
-앞으로도 너를 지켜 주마.
이윽고 따스한 바람이 나를 휘감고 나서 몸에 다시 채워지는 신성한 정령력.
기존에 내가 가진 정령력도 강하고 정순한 것이었지만 정령수가 직접 옮겨 준 정령력은, 태고의 정령력과 맞닿아 있는 가장 순수하고 강한 것이었다.
내가 사는 땅이 기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수호자의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세상의 축복이 온통 내 안에 가득 찬 느낌이었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분명 그렇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마워요, 정령수님.
그 새로운 힘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
내가 정령수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차에 타 있었기 때문이다.
‘꿈을……. 꾼 건가?’
나는 내 손을 들어 올려 보았다.
아까 나를 감싸던 풍만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꿈속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신성한 정령력도 딱히 몸 안에 감돌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결론지었다.
‘그냥……. 꿈이었나 봐.’
정령계에서 정령수를 만난다니. 아빠의 일지를 보았지만 그런 기록은 없었다.
정령계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기는 한데, 전부 추측에 불과한 설들을 정리해 놓은 것일 뿐.
만약 그것이 있더라도 인간의 몸으로 정령계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빠의 결론이었고, 나 역시 수긍했었다.
탁-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 브리튼이 마차의 문을 열며 나를 바깥으로 에스코트했다.
“내리시죠. 나의 황태자비.”
야생의 마스와 고귀한 브리튼이 반반 섞인 것 같은 눈빛과 말투.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바깥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갈넴의 풍경을 보았다.
“아…….”
갈넴 마을. 내가 살던 정겨운 이 마을은 조금 변해 있었다.
높은 건물 하나 없던 곳에 삼, 사 층의 건물들 십수 개가 들어서 있었고, 마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활기차게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크게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는데.
마을의 길목을 지키는 나무, 애드가 씨의 꽃밭,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집들이 그렇다.
주황색 지붕의 우리 집을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나는 브리튼의 손을 잡고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가 볼까요, 마스 씨?”
브리튼의 입가에도 미소가 고였다.
찌뿌둥한 팔을 들어 기지개를 켜던 파르메스도 자신이 살던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재상들도 같이 왔으면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몽땅 황궁을 비우면 안 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브리튼의 손을 잡고, 내가 살던 우리 집으로 갔다.
길목은 마차가 다닐 수 있게 조금 넓어져 있었지만, 집의 모양은 그대로였다.
“우아아…….”
모녀 단둘이 살기 적당한 사이즈의 집도, 그리고 브리튼이 내 홍사탕무를 심술궂게 올려놓았던 나무도 전부 제 위치에 있다.
삐거덕,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집 내부에 들어가자 아주 낡은 이불과 낡은 생활용품들이 보였다.
세월이 흐른 만큼 변해 있었지만, 오히려 변한 것이 더 과거의 향취를 짙게 했다.
“흐음…….”
행복한 표정으로 이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나를 보며 브리튼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사 올까?”
“네에?”
“아버지께 말씀드려 황궁을 이곳으로 옮기자고 하는 건 어때.”
그런 표정으로 그렇게 진지한 농담 하지 말라구요!
“아리넬은 정말 갈넴을 좋아하는 것 같아.”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니까요.”
고향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다시 여기에서 살라고 하면……. 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는 안 돼요.”
물론 가끔 놀러 오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른 의미지.
지금 내 집은 알브레온의 황궁이었다. 안락하고 맛있는 것도 많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가득한 곳.
갈넴의 내 집은 아주 소중한 장소였지만, 추억은 추억일 때 더 의미가 깊은 것.
“가끔 이렇게 놀러 오는 것은 좋지만요.”
내 말에 브리튼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리넬. 나도…….”
그의 눈이 내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곳에 오니 예전으로 돌아온 것처럼 기뻐.”
나는 브리튼의 가슴에 기대어 이곳에서의 행복한 순간을 즐겼다.
옛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감회를 실컷 느끼고 나서 우리는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집 바깥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문득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걱정 어린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쪽으로 향했고, 우리가 오자 사람들이 흠칫하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카인 씨?”
큰 밭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는 카인, 한때 큰 죄를 지었으나 지금은 이곳에 유배되어 마녀족과 함께 제국에 협력하고 있는 자였다.
갈넴에 있을 때는 에드가 아저씨이기도 했었고 말이다.
“아, 황태자 전하와 황태자비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카인의 곁에는 이미 그의 인사를 받은 듯한 파르메스가 서서 먼 곳의 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브리튼의 물음에 카인은 입을 열었다.
“네. 마녀족의 주식은 녹귀리인데, 종종 식물에 병이 들고 합니다. 올해는 하필 그 병이 극심하여…….”
그 말을 들은 나는 밭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녹색 귀리에 거뭇거뭇한 뭔가가 잔뜩 올라와 있었는데, 넓은 밭 전체가 그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식량 수확이 불가할 것 같습니다.”
마녀족은 죄다 얼굴이 울상이었고,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한 해의 농사를 망쳐 버렸으니 그럴 만하다.
인간과 동물에게 전염병이 돌 듯 식물에게도 전염병이 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심하다니.
“만회할 방법은 없나?”
“그렇습니다. 폐하. 몽땅 폐기하고, 1년간은 농사를 짓지 않아야 다음 녹귀리 농사 때 작물을 수확할 수 있습니다.”
많은 마법 기술을 가진 마녀족이라 할지라도, 이런 것에는 무력한 모양이었다.
병든 녹귀리를 살피던 나는 천천히 그것들 사이로 발을 내디뎠다.
-아리넬.
바람을 타고, 어디에선가 내 이름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꿈속에서 들었던 정령수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와 흡사 닮아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병든 작물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내 손에서 뻗어 나온 빛이 작물을 감싸더니 땅에 스미기 시작했다.
이내 밭 전체가 밝게 빛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
파르메스와 브리튼, 카인의 시선이 모두 내게 향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부끄럽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지금 이 불쌍한 사람들과 작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병을 치유하고 싶어.’
정령수의 기운이 땅에 전해지고, 밭의 온 작물에게 전해져 갔다.
새카맣게 뜬 부분들이 제 색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초의 시간이 더 지났을 때, 빛은 마치 근원으로 돌아가듯 땅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단지 바람에 흔들리는 녹귀리 밭 가운데 서서, 병변 하나 없이 푸르게 제 모양새를 자랑하는 녹귀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