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72)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172)화(172/173)
외전
7
화
“이건…….”
나는 꿈속에서 정령수의 수호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또한 네가 사는 땅은, 기근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한정 없는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란다.
‘그 말이…… 이런 뜻이었다니.’
멍하니 있는데 브리튼이 다가와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리넬?”
“아……. 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해 있었다.
파르메스 역시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카인은 입까지 쩍 벌리고 있었다.
마녀족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이건…….”
병든 녹귀리가 갑자기 이렇게 치유되어 버리다니, 내가 이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꿈속에서 정령수를 만났는데, 정령수가 저를 축복해 주어서……. 아마도 그 영향인 것 같아요.”
“정령수라면…….”
눈을 크게 뜬 카인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마녀족의 전설에도 정령수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령수는 생명의 신으로 세상 모든 힘의 근원이라고 하지만, 인간과는 파장이 맞지 않아 인간으로서는 그 존재를 느낄 수 없다고 하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며 녹귀리들을 흔들리게 했다.
내 금빛 머리카락도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그런데 정령수의 축복이라니…….”
카인이 감탄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황태자비께서 정령수의 축복을 받았다면, 이곳의 백성들에게는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군요. 아니, 알브레온 전체가 기뻐할 일입니다.”
카인의 찬사에 괜히 몸 둘 바를 몰라 얼굴이 조금 붉어졌을 때, 브리튼이 내 손을 살짝 잡아 올렸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맞추며 속삭였다.
“언제까지 나를 놀라게 할 거야. 아리넬.”
일렁이는 눈으로 브리튼을 보고 있을 때,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 왔다.
“아리넬 님, 감사합니다!”
“황태자비 전하 만세!”
“알브레온 제국 만세!”
열심히 지은 농작물을 망치지 않게 되었음에 그들은 정말로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녹귀리의 병변이 전부 사라졌어!”
“살았다! 살았다고!”
“제국의 영웅 아리넬 마일라 님 감사합니다!”
내 새로운 능력에 놀랐던 파르메스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봤지?”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콧대를 세웠다.
“내 며느리가 이 정도라네.”
어깨를 으쓱으쓱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브리튼의 손을 잡은 채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지로 사라져 버린 정령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지만, 정령수의 축복이 여전히 내게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고마워요, 정령수님.’
* * *
“……방금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
갈넴의 신식 건물 중에서도 황제를 위해 급히 꾸며진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내실, 금색 의자에 앉아 있는 파르메스 앞에 선 카인은 황당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저는 죄인입니다. 폐하.”
파르메스는 카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옆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다 마신 뒤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제 의자보다 아래쪽에 있는 카인을 내려다보며 되물었다.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카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하마터면 제국을 망하게 할 뻔하고, 황태자 전하와 황태자비 전하를 위험에 처하게 했는데, 저를……. 마법성주로 임명한다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
오늘 파르메스는 갈넴에 온 김에 카인 툴라로스에게 마법성주직을 제안했다.
마법은 마녀족이나 마녀족의 혼혈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인데, 현재 제국의 마법사들은 모두 마녀족의 혼혈이었다.
선황 대에 있었던, 위폐로 인한 마녀족 학살 사건 이후, 제국민들은 마녀족이 사용하는 힘은 ‘흑마법’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배척하기 시작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제국 마법사들의 마법과 차이가 없었다.
마법의 근원은 어둠이고, 그 어둠이 딱히 악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사용하면 편리하고,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된다.
과거에 정령사들을 이끄는 정령성을 재건했듯, 파르메스는 지금 마법성을 만들어 마법사들을 통합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마법성주로 카인 툴라로스를 임명한다니.
카인으로서는 다소 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평생 유배당해도 할 말 없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리넬이 용서했다.”
“……예?”
파르메스는 아주 간결하게 그가 마법성주직에 올라도 문제가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황태자비께서…… 용서하셨다고 해도…… 그래도, 그건…….”
과거에 엄청난 죄를 저질렀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리넬 때문이었다.
그녀는 카인에게 파르메스를 설득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고, 카인은 하이젠의 영혼을 붙임으로써 파르메스에게 마녀족의 목숨을 구해 냈다.
그리고 아리넬은 자비롭게도 카인의 사과를 받아 주었고, 카인 역시 아리넬의 홍사탕무를 가공해 최고의 술을 담아 주며 그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했다.
뭐 오늘, 또 마녀족의 녹귀리 밭을 되살림으로써 큰 빚을 지게 되었지만.
하지만 그건 아리넬의 개인적인 용서이고, 그래도 황태자를 죽일 뻔했던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는데.
“증오의 사슬은 또 다른 증오를 낳는다.”
“……!”
파르메스의 말에 카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 며느리가 그러더군……. 그래서 우리는 남의 실수를 관대하게 용서해야 한다고.”
증오의 사슬.
한때 카인은 그것에 매달려 알브레온 전체를 망하게 하고자 했다.
세세히 따져 보면 아멜리아를 막지 못한 자신에게도 그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었음에도, 남에게 분노를 풀어 내고자 했다.
알브레온에 대한 마녀족의 원한은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지만, 새 황제가 마녀족의 원수인 선황에 반역하도록 도왔던 자신은 그 사슬을 끊어 낼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평화보다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자극적인 분노와 복수이기에 그것에 매몰되었던 것이다.
“카인.”
파르메스는 서늘한 미소를 띤 채 카인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는 우리에게 빚을 졌다.”
카인은 흔들리는 눈으로 파르메스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제국을 위해 봉사할 의무이니. 명령을 받들어라.”
파르메스의 말은 카인의 가슴에 깊게 와닿았다.
카인의 능력은 제국의 마법사들 중 가히 최고였지만 그는 감히 마법성을 이끌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법성주로서 일하며 자신이 끼쳤던 피해를 갚을 수 있다면,
“존명.”
카인은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꿇으며 파르메스의 임명을 받들었다.
“카인 툴라로스, 마법성주로서 제국과 황제 폐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두 번째 맹세였다.
첫 맹세 때는 파르메스의 곁에 하이젠이 있었었지.
당시에는 폭군의 광기를 하이젠 마일라의 도움으로 억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면, 지금 카인 눈앞의 파르메스는 혼자만으로도 온전한 성군이었다.
이제 알브레온의 역사는 이전보다 더 빛나게 될 것이며, 마녀족 또한 더욱 당당하게 제국민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제게 충성을 바치겠다 맹세하는 카인을 보며 파르메스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런데…….”
카인은 슬쩍 고개를 들어 파르메스를 보았다.
“아리넬 에디션 블랙 라벨, 그 술 말이야.”
“네. 폐하.”
파르메스는 엄지와 검지를 매만지며, 바라는 것이 있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더 만들어 놓은 것 없나?”
“아……. 만든 술은 모두 황태자비 전하께 보냈습니다.”
그 술, 엄청나게 맛있긴 했었지. 생각하며 카인은 대답했다.
“……정말 더 없어?”
“…….”
“진짜로? 정말로? 거짓말하지 마.”
십수 년 전에도 그랬지만, 파르메스 아슬렛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사람의 속내를 죄다 꿰뚫는다.
“황태자비 전하께 더 달라 하시면…….”
“선물 줄 것도 모자란다잖아. 그러니까 내놔. 카인.”
다시 카인의 주군이 된 파르메스는 뻔뻔스럽게 공물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하품으로 몇 병 남은 거라서…….”
“상관없다.”
어떻게든 압수를 피해 보려는 카인이었지만 요원치 않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