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8)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19)화(18/173)
19
화
“설마, 황태자의 눈은 파란색이야. 하지만…….”
짐머 아저씨의 눈도 갈색이었다. 하지만 황제가 된 파르메스는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머리 색과 눈동자 색을 변환시킬 수 있는 그 방법을 브리튼이 사용한 거라면?’
생각해 보지 않은 어딘가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아. 성격도 완전히 다른걸.”
마스는 무뚝뚝하고 조용한 성격인 것에 반해 브리튼 황태자는 밝고 온화했다.
무엇보다 제국의 황태자가, 나 때문에 일 년이나 갈넴 같은 촌구석에 머물다니.
그는 그런 수고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마스의 가족들이 도시에서 사업을 한다고 했었는데. 그게 설마…….”
아냐, 갈넴에서 함께 지내던 마스와 브리튼 황태자는 전혀 느낌이 다르단 말이다.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때, 창문 밖에서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창문이 열리고 오늘 만나기로 한 마스가 내 방 안으로 훅 들어왔다.
“……마스!”
검은 옷에 흰 가면, 늘 한결같은 차림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반 뼘 정도 큰 키.
나는 소년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도, 아까 했던 생각이 못내 머릿속에 맴돌아 불안했다.
‘혹시 브리튼 황태자가…….’
마스가 내게 다가와 손을 뻗었다.
나는 문득 멈추어 서 있다가, 이내 마스의 손을 잡았다.
소년은 한 발 더 내게 다가온 뒤 내 몸을 기울여서 공주님을 안는 것처럼 나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조금 당황한 나와 달리 마스는 태연하게 성큼성큼 걸어 창문에 섰다.
그리고 나를 안은 채 그대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여기 삼 층……!! 악!!!”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나는 마스의 목 부근을 끌어안았다.
“꺄아!!”
이게 뭐야! 무서워!!
저택의 담을 한번 디딘 마스는, 거리 쪽으로 다시 한번 힘차게 점프했다.
그리고 다시 날아오른 뒤 훅 떨어지는 느낌.
그러나 마스의 발이 땅에 닿았을 때, 생각했던 것만큼의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스의 목을 끌어안은 채 반사적으로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어떻게 이 작은 몸이 그렇게 충격을 잘 흡수하는 거지?
아니, 그것보다도.
“좀 더…… 안전한 방법도 있었잖아.”
‘내 방 삼 층인데…….’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단 말이다.
마스가 나를 내려 주자 긴장해서 꽁꽁 얼어 있던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며 몸을 가누었다.
거리에는 신이 난 듯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불꽃놀이가 시작할 것 같아!”
“어서 광장으로 가자! 황태자 전하께서 축사하시기로 했대.”
“정말? 황태자 전하께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흘려들은 말에, 나는 휙 고개를 돌려 마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까 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마스가 내가 했던 착각을 안다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게 바로 자의식 과잉이라는 건가.
괜한 생각에 빠지지 않고 오해가 풀렸으니 되었다.
내가 마스의 손을 잡자 소년의 검은 눈동자가 순간 옅게 일렁였다.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가자!”
굳이 브리튼의 축사가 있을 광장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불꽃놀이는 멀리서도 잘 보일 테니까.
“우리, 이렇게 이틀 내내 보니까 너무 좋다. 그렇지?”
“…….”
“뭐 나만 좋으면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인파가 많은 골목을 지나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 위에는 경제부 재상이 관리한다던 경제 학술원이 있었는데, 건물 가까이 올라가니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아주 잘 보였다.
어느덧 붉은빛을 띠는 노을까지도 자취를 감추고 완전히 주위가 새카매졌을 때.
펑-
무언가가 솟아오르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 아름다운 색색의 불꽃이 수놓아지기 시작했다.
연금술 폭죽으로 만든 화약의 빛깔은 아름다워 잠시 넋을 놓을 정도였다.
“우와…….”
갈넴에서 마스와 보던 밤하늘은 너무도 새카맸다.
별들은 많았지만, 늘 같아 보여 조금은 심심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채롭게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를 마스와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오늘은 마법처럼 그 생각이 이루어진 것 같다.
“정말 예뻐……! 그렇지?”
오색 찬란하게 밤하늘을 꾸미고 있던 불꽃놀이를 감상하다가 나는 문득 마스를 돌아보았다.
“…….”
소년의 흰 가면에도 오색의 불꽃 빛깔들이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면 속 검은 눈동자에 붉은색, 푸른색 불꽃이 축제처럼 퍼져 나갔다.
‘이렇게 집중해서 보는 모습을 보니까…… 마스도 영락없는 아이 같네.’
나는 어쩐지 간질간질한 마음을 삼키며 다시 밤하늘에 퍼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 * *
연금술사들이 제작한 폭죽으로 거행되는 불꽃놀이는 사십 분가량 지속되었다.
그리고 불꽃놀이가 거의 끝날 무렵, 브리튼은 제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아리넬을 바라보았다.
금발은 조금 부스스하고, 긴 속눈썹은 아리넬의 눈 아래 풍성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브리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불꽃놀이가 시작하기 전, 아리넬은 마일라가의 서재에서 공부도 하고 알렌스 부인의 교육도 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피곤할 만도 하지.
“으음…….”
불꽃놀이가 끝나고 정적이 찾아들었음에도 아리넬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원래 아리넬은 한 번 잠들면 세상이 무너져도 깨어나지 않는다.
갈넴에서 아리넬과 일 년을 함께 지냈던 소년은 아리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천천히 가면을 벗은 소년의 입 모양이, 들리지 않는 소리를 발음하여 중얼거렸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네, 아리넬.’
브리튼은 긴 손가락으로 볼을 살짝 뒤덮은 그녀의 잔머리를 넘겨 주었다.
이틀 내내 보니까 좋다는 말에 자신이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아리넬이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거 알아?’
달을 가리던 구름이 다시 서서히 그들을 비추자 검은 눈동자가 서서히 푸른 빛을 찾아 갔다.
‘불꽃이 터지는 소리보다 내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어.’
자신을 철석같이 친구로만 보고 있는 아리넬은, 제가 좋아한다는 표현을 하면 영영 멀어지고 말 것이다.
부드럽고 화사한 약혼자 브리튼이라면 몰라도.
갈색을 띠는 머리카락 역시 달빛처럼 옅게 변해 갔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건국 기념 축사를 하시다니, 놀랐어.”
“맞아. 황태자 전하께서 하시는 줄 알았는데. 두려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곳에서 볼걸…….”
“뭐 다들 꿇어앉았잖아.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목숨이 날아가는데 어쩌겠어.”
“그나저나 알브레온의 기술력은 정말 대단하지 않아? 이렇게 긴 불꽃놀이는 처음 보았다고. 황제가 바뀌고 많은 귀족들이 죽었지만 이번엔 뭔가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집에 돌아가는 이들의 대화 소리가 잔잔하게 들렸다.
‘더 오랫동안 있고 싶은데 밤기운이 차구나.’
아쉽게 느껴진다.
브리튼은 아리넬의 몸을 완전히 제게 기대게 한 뒤 그녀를 끌어안으며 일어섰다.
이제 집에 데려다줘야 할 시간이다.
“……음?”
브리튼의 품에 안긴 아리넬은 잠시 고개를 들며 눈을 떴다.
하지만 관성대로 그녀의 눈은 다시 감겼고 브리튼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이 발걸음을 옮겼다.
* * *
“……방금 뭐라고 했지?”
파르메스의 살기 어린 서늘한 눈빛에 애덤은 목이 막히는 것 같았다.
아니, 문자 그대로 숨이 막혔다. 소드 마스터 급의 파르메스는 애덤 같은 중급 기사로서는 기운도 받아 내기 벅찬 상대이다.
아리넬로부터 티타임 초대를 거절당했다고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지, 그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송구하지만 오늘도 할 일이 많으시다고 하셔서 저도 더 강요드리…….”
“경의 탓이군.”
말을 끊고 날아드는 비난에 애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체리 셔벗과 딸기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다는 말을 빼먹은 게 분명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아리넬이 좋아하는 호박 사탕으로 가득 찬 와인 잔 이야기를 깜빡했겠지.”
“그것도 말씀드렸습니다. 폐하께서 준비하신 모든 것들……. 아리넬 아가씨의 이니셜이 적힌 현수막과 만국기에 대해서도요.”
“그런데 왜 거절한 거지?”
아리넬의 거절을 파르메스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무시무시한 지크프리트 공작마저도 파르메스의 냉철한 이성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파르메스의 상태는, 1 더하기 1이 2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보다 아리넬이 티타임을 계속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려워 보였다.
목이 계속 조이는 듯한 압박감에 애덤은 손으로 제 목울대를 쓰윽 훑었다.
그 누구의 관심도 굴욕을 주며 거절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파르메스 아슬렛이, 아리넬에게만은 애정결핍의 어른처럼 군다.
‘폐하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아리넬은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반짝거린다. 분명 갈넴에서도 그랬을 테고, 그랬기에 황태자비로 내정해 두셨던 것이겠지.
“아무래도 아리넬의 옆집을 사는 게 낫겠군.”
심각한 표정이던 파르메스의 입술이 달싹였다.
이러다가 지금도 십 년은 늙은 것 같다고 하소연하는 아가씨의 한숨이 더 깊어질지도 모른다.
애덤은 이 진퇴양난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새로운 묘안을 강구했다.
모두가 아리넬을 위한 것이었다.
“황제 폐하. 혹시…….”
파르메스가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아가씨를 위해 새로운 이벤트를 여시는 것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