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9)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20)화(19/173)
20
화
* * *
오늘, 드디어 아머스 아저씨에게 답장이 왔다!
이름은 적혀 있지 않지만 알브레온 경제 학술 연구원의 이름으로 왔으니 그 세 사람 중 한 명이 맞았던 모양이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친애하는 아리넬에게.아리넬, 네가 수도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러잖아도 언제쯤 널 만날 수 있을까 매우 고대하고 있었단다.
하지만 당장 너를 보러 가지 못하는 이유로는, 네가 편지에 보낸 내용을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
그래, 넌 언제나 대기근을 두려워했었지.
그리고 너의 주장은 부실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상당히 그럴듯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어. 네 눈을 볼 때마다 나는 그것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웠으니 말이다.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내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건 네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나는 오랜 고심 끝에 지질 조사를 시행하기로 했단다.
사실은 네가 수도에 올라오기 전부터 그 조사는 비밀리에 시행되고 있었어.
그리고 나는 조사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 한 달간 동쪽 지역에 다녀올 예정이란다.
어쨌든, 너를 다시 만날 날은 한 달 뒤가 될 것 같구나.
지금 당장 네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무척이나 아쉽지만, 나는 그날을 매우 고대하고 있다.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추신. 네가 요즘 황태자 전하와 사이가 좋은 것을 알고 있단다. 하지만 아리넬, 내게도 아들이 있단다. 본래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지.]
…….
추신은 안 읽은 것으로 하자.
어쨌든 편지를 받은 나는 뛸 듯 기뻤다.
아머스 아저씨가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지질 조사를 시행하고 있다니!
지질 조사의 결과가 원작과 같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잠시 손을 멈칫했다.
‘그러면…… 원작이 틀어지게 되는 건데?’
<폭군의 정부는 그만하겠습니다>는 피폐물 로판이며, 폭군인 파르메스 아슬렛이 즉위한 뒤 대기근으로 온 나라가 황폐해지고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갈 예정이었다.
기근으로 인해 제국은 극도로 슬럼화되며 노예 시장이 활성화되고 여주인공 아멜리아는 파르메스에게 팔려 오는데, 파르메스의 정부가 되어 이렇게 저렇게 19세 버전으로 집착당하다가 탈출한다.
아멜리아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 버린 파르메스는 날뛰며 제국을 더 엉망으로 만들고 백성들은 그의 무지막지한 폭정에 덜덜 떨게 된다.
‘그런데…… 이미 틀어졌잖아?’
계산해본 바에 따르면 원작에서는 내가 열세 살 때 폭군 파르메스 아슬렛이 즉위한다.
“그래도 기뻐해 주었으면 했는데. 계획을 앞당긴 이유가, 아리넬이 고생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였거든.”
계획을 앞당긴 그는 이미 즉위했고, 지금 나는 고작 열한 살이다.
만약 지질 조사가 성공하고 기근을 예견할 수 있다면, 이 년 뒤 있을 대기근에 대한 대비책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대기근이 사 년이나 지속되어서 탈 없이 극복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나라에서 여러 대책들도 세울 테고 내 홍사탕무 사업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는 슬럼화되지 않을 것이고 아멜리아의 등장 요건도 모호해질 것이다.
‘……내 알 바 아니야.’
머리가 복잡해지려 했지만, 나는 짧은 팔짱을 끼며 간단히 정리했다.
내가 원해서 빙의한 것도 아닌데 이 피폐물 로판 따위의 원작 병에 시달리지 않을 테다.
여주가 등장하면 반갑기는 하겠지만, 원작대로 흐르는 것보다는 내 안위가 백배 천배 중요하단 말이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건 싫어.’
* * *
“가면무도회라니…….”
파르메스의 집권 이후 처음으로 황궁에서 갑자기 무도회가 열린다고 했다.
그것도 가면무도회. 얼굴의 위쪽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참석하는…… 색다른 무도회 말이다.
그리고 나는 후작가의 후계자로서 필참을 통보받았다. 애덤은 옅은 미소를 띠고 나를 격려했다.
“폐하의 금언령 때문에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번 파티가 분명 기분 전환이 될 겁니다, 아가씨.”
마차를 타고 웅장한 황궁에 도착하자 가면을 쓴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마체르트 공녀의 생일 때와는 달리 성인 귀족들이 80퍼센트 이상으로 보인다.
나는 발끝을 살짝 치켜들고 어른들의 대화에 은근슬쩍 귀를 기울였다.
“불꽃놀이가 끝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가면무도회라니, 폐하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왁자지껄한 행사를 선호하시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일까요?”
“황자셨을 때도 무도회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으셨잖아요. 제위에 오르신 뒤에도 두 번밖에 없었어요.”
“호…… 혹시…… 숙청의 일환 아닐까요.”
“하지만 3차 숙청이 끝난 뒤로, 더 이상 귀족들의 목이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잖습니까.”
“우리 꼭, 살아서 만나도록 합시다.”
푸른 가면을 쓴 귀족의 비장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숙청이 3차까지나 되었던 거야?
속이 울렁거린다.
내 어리고 작은 체구에 딱 맞는 은빛 드레스를 입고 드레스와 맞춘 은색 여우 가면을 쓴 나는 무도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우와…….”
절로 입이 벌어질 정도로 무도회장의 모습은 엄청났다.
엄청나게 넓은 실내는 둘째 치고 커튼부터 샹들리에, 작은 장식들조차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거 다 금일까, 진짜 보석일까? 하는 생각에 여기저기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귀족들의 옷차림도 화려했는데, 얼굴을 가렸지만 미모는 감출 수 없는 엄청나게 예쁜 언니들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최고의 짝을 찾고 싶어 하는 어떤 레이디들에게는 기회이겠죠. 황제 폐하의 명령으로 열린 가면무도회라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 폐하도 이 안에 계실 테니까?”
엄청나게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장미 모양의 가면을 쓴 그녀는 피올렛 아주머니, 아니, 알렌스 부인이었다.
작은 키와 통통한 체구, 그리고 왼손의 에메랄드 반지는 그녀를 바로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알렌스 부인!”
“정말 사랑스러워요. 걸음부터 자세까지, 저번보다 더 나아졌어요. 오홍홍.”
눈에 하트를 가득 담은 것 같은 부인의 눈.
부인은 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편히 말하지만, 바깥에서는 존대를 한다.
이것이 귀족들의 예법이라고 하니 나도 바깥에서는 그녀를 선생님 대하듯 했다.
“그러게요. 이제는 드레스만 입으면 저도 모르게 속에서 학춤을 추게 되어요. 이게 다 부인 덕분이에요!”
“오, 겸손하긴. 다 아리넬의 천부적인 재능이 받쳐 주었기 때문이랍니다.”
“칭찬 감사해요. 부인. 그런데…… 레이디들의 기회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나이에 짝이 없는 황제 폐하인 만큼, 황후 자리를 노리는 여성들이 많다는 이야기이죠. 아리넬의 시어머니 후보라고 할까요.”
시어머니-라는 말을 듣자 흡, 하고 숨을 삼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약혼자라는 말도 익숙지 않은데 시아빠, 시엄마라니…….’
아무튼 이렇게 아름다운 언니들이 다들 짐머 아저……. 파르메스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뭐, 그렇게 잘생겼는데 아내와 사별했으니 폭군이라는 무서운 별명이 붙어도 여자들이 눈독 들일 만하지.’
“그래서 아쉽지만 내가 아리넬의 곁에 있기는 힘들겠어요. 황가와의 혼맥을 원하는 이들에게 원치 않는 관심을 받는 몸이라서.”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알아본 여자들 몇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알렌스 부우이인!”
사람들의 엄청난 주목을 받는 인물이니만큼 그녀의 곁에 있다가는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
“정말 아쉽지만 수업 때 보기로 해요. 참, 힌트를 주자면 황태자 전하는 검은 가면을 쓰셨답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알렌스 부인!”
“어머나, 이리도 아름다운 드레스라니! 대단하세요!”
“오, 부인을 여기서 뵙다니 영광입니다.”
레이디들이 떼로……. 떼로 몰려온다. 나는 알렌스 부인에게 배운 학춤 보법을 시전하며 열심히 그녀로부터 멀어졌다.
종종종종. 이거 생각보다 엄청 빨리 움직일 수 있는데?
“오렌지 주스, 혹은 사과 주스를 드릴까요? 귀여운 아가씨?”
인파를 빠져나오자 들리는 목소리에, 얼핏 시선을 드니 하인들이 입는 단조로운 흰 셔츠와 검은 바지가 보였다.
남자는 다른 시종들처럼 잔이 여러 개 놓인 트레이를 들고 있었다.
“사과 주…….”
주스를 요청하려는데, 문득 아까 들린 목소리가 익숙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나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 목소리는……?
일렁이는 샹들리에 불빛 아래,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의, 가면을 쓰지 않은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눈을 둥글게 뜨고 그 이름을 말했다.
“……짐머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