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1)화(2/173)
1
화
“자자! 어서 오세요, 파넬 아저씨, 그리고 피올렛 아주머니! 시간이 되었으니 시작하기로 할게요.”
나는 오늘 우리 집 마당에 찾아온 두 이웃을 보고 인사했다.
조그만 마당에는 엄청난 거구에 험악한 인상을 가진 모히칸 헤어 스타일의 아저씨와, 동글동글한 인상에 베토벤 머리를 한 통통한 아주머니가 조신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례대로 파넬 아저씨와 피올렛 아주머니다.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작은 손에 쥔 숟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홍사탕무 셔벗은 맛과 건강 모두 잡는 일석이조의 식품이에요.”
방문 판매로 보인다고? 아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눈앞의 수강생들을 구할 궁극의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하여 홍사탕무 레시피 강연!
참고로 이곳의 홍사탕무는 현대의 홍사탕무와는 종이 완전히 다른, 달콤한 과일에 가까운 채소였다.
내가 비장하게 설명하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피올렛 아주머니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사탕무를 가공하는 데 품이 많이 들었겠구나.”
“아, 괜찮아요. 짐머 아저씨가 도와주셨거든요.”
내가 짐머 아저씨의 이름을 꺼내자 아주머니가 눈썹 끝을 미미하게 굳히며 흠칫했다.
“아……. 아, 그렇구나.”
“……크흠.”
이어서 그 옆에 앉아 있던 거대한 덩치의 파넬 아저씨도 송충이 같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콧김을 내뿜는다.
참고로 내가 방금 말한-이곳에는 없는-짐머 아저씨는 우리 마을에서 나랑 가장 친한 친구로, 늘 변변찮은 사고를 쳐서 매번 내게 혼나는 이웃 주민이었다.
뭐, 짐머 아저씨가 마을 사람들과 데면데면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배척당할 때마다 조금 슬프기는 하다.
열 살인 나에게도 어딘가 모자란 모습을 보이는 아저씨이니 어른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보이겠지.
에휴. 불쌍한 짐머 아저씨.
안 되겠어. 나라도 아저씨 편을 들어야지.
“짐머 아저씨는 정말 친절한 분이에요. 조금 바보 같아 보여도 친해지면 다시 보게 될 거라구요!”
“…….”
“…….”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 그렇구나.”
피올렛 아주머니가 여전히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어색함이 흐르던 시간도 잠시, 나의 강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강의라고 해 보았자 홍사탕무 열매를 건조시키는 방법과, 그걸 사탕무 간 것과 섞어야 할 타이밍, 그리고 뭉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었지만.
“이제 이걸 얼음 계곡에 한 시간 정도 넣어 두면 맛있는 셔벗이 된답니다!”
“세상에나. 얼리지 않은 것을 먹어도 이렇게 맛있……. 으음!”
“불타오르는 적지에 침입할 때 이것을 물고 뛰어든다면 뜨거움을 모르겠도다.”
파넬 아저씨는, 종종 그렇듯 또 이상한 소리를 하지만 넘어가자.
“그나저나, 저번에 제가 내준 숙제 잊지 않으셨죠?”
내 말에 파넬 아저씨와 피올렛 아주머니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말이 없어지자 나는 짐짓 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탕무 환 만들기요.”
“어……. 음……. 그것이…….”
“설마 숙제 안 하신 거예요? 제가 말했잖아요. 그거 숙성시키면 엄청 맛있어진다고요!”
나는 레시피 강의 후에, 항상 저장 음식 만들기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사실 이게 목적이기도 했고.
정든 마을 사람들이 흉년에 굶어 죽는 것은 보기 싫으니까 말이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나중에 엄청 무서운 폭군이 제국을 다스리게 되고, 대기근이 올지도 모른다고요!”
그렇다. 앞으로 삼 년 후, 제국에는 끔찍한 흉년이 닥치게 되고 군마조차 식량으로 쓸 만큼 나라의 재정은 거덜이 난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이웃들에게 기근을 버틸 방법을 손수 가르쳐 주고 있는 거였다!
“그, 그래. 절편이 군량미로 용이하다는 것에는 감탄했지만 본좌는 곧 이곳을 떠…….”
“파넬 씨, 조용히 해요. 아직 그 일은 아리넬에게 비밀이라고요. 쉿!”
피올렛 아주머니가 엄한 표정으로 다그치자 파넬 씨가 움찔했다.
숙제도 안 한 이 불량 학생들이 뭐라구 속닥대는 거야!
내가 두 사람을 질책하려 할 때, 황급히 말을 돌리려는 피올렛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아리넬은, 역시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니?”
나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제국 수도의 아이들은 현대처럼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네, 저는 그냥 혼자 책 읽는 게 좋아요. 혼자서도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어요.”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학교에 갈 생각이 없었다.
대기근이 오면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꼼짝없이 굶어 죽을 것이다.
풀뿌리라도 뽑을 수 있는, 그리고 소중한 홍사탕무환이 있는 내 집이 낫지.
음! 그렇고 말고. 나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넬, 내가 보기에 너는 특별해. 수도에서 수천 명의 숙녀들을 졸업시켰지만…….”
“네?”
피올렛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아, 내 품에서 말이지. 내가 젊었을 적……. 수도에서 보육원을 운영했었거든. 그…… 아름다운 숙녀들을 위한 보육원.”
“정말요?”
평범한 촌부로 보이시는 아주머니가 보육원 원장님이었다니, 대단하다!
그런데 보육원에서도 ‘졸업’이라는 개념을 쓰나?
파넬 아저씨가 다시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크험!”
“최고의 안목을 가진 내가 보기에 아리넬 너는 특별하단다. 이렇게 똑똑하고 창의성과 생존력까지 넘치는 아가씨는 흔치 않지. 틀림없이 꽃 중의 꽃이 될 거야.”
갑자기 내 손을 잡으며 눈을 빛내는 피올렛 아주머니를 보며 나는 흠칫했다.
아주머니의 볼에 홍조가 발갛게 떠올라 있었다.
“나중에 말이야, 학교가 아닌 곳에서 뭔가를 배워야 할 때가 틀림없이 올 텐데, 그때는 꼭 나를 불러 주렴.”
“아리넬.”
피올렛 아주머니가 말을 끝내자마자 파넬 아저씨가 불쑥 끼어들었다.
“숙녀들의 소양이라는 것은 피 튀기는 진짜 전투에선 무쓸모한 것이도다. 본좌가 보기에 너의 진정한 자질은 따로 있노니…….”
“공……. 아니, 파넬 씨! 아리넬은 내가 먼저 찜했어요.”
피올렛 아주머니의 새된 항의가 들렸다.
“아리넬은 본좌의 휘하에 자리 잡을 터, 부인이야말로 허튼 기대 말지어다!”
파넬 아저씨가 두꺼운 팔을 내저으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파넬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군요. 그래도 그렇지, 남의 영업 중에 끼어들어…….”
“규칙 위반은 부인이 먼저 했거늘!”
‘에고, 또 싸우시네.’
두 분은 틈만 나면 늘 내가 자신들의 뒤를 따라야 한다며 열정적으로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도대체 사교계의 교양이나 전쟁터의 전술 같은 것이 이런 시골에서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들 그만하십시오.”
그때, 갑자기 과열된 분위기에서 나를 구해 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 나타난 거지?
오늘 수업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지각생. 갈색 꽁지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온 아머스 아저씨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싸우던 두 사람을 저지했다.
아머스 아저씨는 아까 언급했던 짐머 아저씨의 옆집에 사는데, 귀족의 말투도 아니고 평민의 말투도 아닌 이상한 말투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귀족을 흉내 내는 평민이나…… 아니면 그 반대?
“아이 앞에서 뭐 하는 겁니까. 싸우는 줄 알고 아리넬이 무서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두 분.”
아머스 아저씨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파넬 아저씨와 피올렛 아주머니가 흠칫 굳었다.
“처음 정한 규칙을 어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두 분이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저도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협박 같은 그 말에 파넬 아저씨와 피올렛 아주머니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아마 둘 다 아머스 아저씨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피올렛 아주머니는 작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아리넬.”
“커흠. 본좌의 욕심이 과했도다.”
파넬 아저씨도 내게 사과했다.
잠시 후, 그들은 내게서 받아 적은 홍사탕무 셔벗 레시피를 들고 자리를 떴다.
“다음 시간에는 꼭 숙제해 오셔야 해요!”
그들의 뒤통수에 대고 당부하는데, 옆에서 아머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 말고도 마을 사람들이 너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겠다고 제의한 적이 있었더냐?”
“아. 애니 이모가 법에 대해 알려 준다고 했던 적도 있고, 버넬 삼촌이 연금술이 궁금하지 않냐고 물어본 적은 있어요. 근데 먹고 살기 바쁘기도 하고……. 관심이 생기지 않아서 거절했어요.”
내 말에 아머스 아저씨의 눈동자에 타다닥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주먹을 쥔 채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다들 아닌 척하더니 물밑 작업에 열심이었구나.”
착각일까, 배신당한 것처럼 분해 보이는 이 모습은.
잠시 후 시선을 든 아머스 아저씨는 낮은 목소리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들이 말하는 것들은 삶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그저 곁가지일 뿐이지.”
“아…….”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고 네가 꼭 배워야 할 것은.”
진지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차가운 재질의 안경 너머 짙은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돈이란다.”
* * *
내 이름은 아리넬 마일라, 흔한 환생 트럭의 희생자이자 로판 빙의자이다.
내가 빙의한 소설은 <폭군의 정부는 그만하겠습니다>라는 피폐물 로판으로, 폭군의 정부 아멜리아가 폭군에게 집착당하는 이야기이다.
무시무시한 폭군의 이름은 파르메스 아슬렛. 속칭 ‘은발의 악마’라 불리는 자로 그를 돕는 네 명의 재상들과 함께 향후 제국을 공포로 물들이게 된다.
궁내부, 군사부, 경제부, 외교부를 대표하는 재상들은 파르메스와 함께 소설 속에서 피폐함을 담당하는 무시무시한 악당들이기도 했다.
내가 향후라고 한 이유는, 소설 속에서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라 불리는 ‘그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일어날 일이고, 나는 그 일을 막을 수 없어.’
왜냐하면 나는 황궁과는 관계가 전혀 없는, 촌부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난 엑스트라 1도 못 되는 제국민 1이라고 할까.’
엄마는 어느 귀족의 기사였다고 하는데 나를 임신하고 시골 중의 시골인 갈넴 마을에 이주해 왔다고 한다.
일곱 가구밖에 살지 않는 이 마을에서 나는 들풀을 꺾으며 자랐고, 일곱 살에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음식 레시피를 개발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거나 야무진 손으로 홍사탕무를 키우고 약초를 캐며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특이하기 짝이 없었으나, 다들 성격은 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갈넴 마을의 이웃 중 지금 내 눈앞에 울상으로 찾아온 이 사람은…….
“세상에나, 또예요? 하아…….”
앞서 말한, 내가 보살피고 있는 우리 마을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말썽꾸러기인 욘 짐머 아저씨이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지. 계단에서 구르다 튀어나온 못에 스쳤다며 짐머 아저씨가 발목의 상처를 보여 주었다.
나는 작은 주먹을 허리춤에 올리며 짐짓 화가 난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어른이 애들보다도 많이 다치냐고.
“아리넬이 또 치료해 주면 되잖아.”
“몰라요. 다음번에는 모른 척할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약초함에서 직접 만든 연고를 꺼내 아저씨의 발목에 발라 주었다.
꽤 깊게 베인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정도면 흉터는 남지 않겠지.
“정말로 다음번에는 치료해 주지 않을 거야?”
아저씨가 눈썹을 축 내리며 불쌍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뭐야, 지금! 어른이 고작 열 살인 내게 치료받으면서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정말로?”
으으, 이번에는 진짜 화내려고 했는데.
하지만 그런 얼굴에 그런 눈빛으로 물으면, 빙의 전이나 후나 미남에 약한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아니요, 제가 어떻게 아저씨를 외면하겠어요. 하지만 저는 아저씨가 다치면 속상하다구요. 아저씨는 저를 소중하게 생각하신다면서, 제가 마음 아파하는 꼴을 보고 싶으신 거예요?”
또박또박 따지는 내 말에 짐머 아저씨의 평범한 갈색 눈이 옅게 일렁였다.
착각이었을까. 순간 짙은 붉은빛이 도는 것 같았는데.
짐머 아저씨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다치지 말아요. 저를 위해서라도.”
치료를 마친 나는 다시 한번 아저씨에게 당부했다.
나의 이웃인 욘 짐머 아저씨.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될 만큼 잘생긴 얼굴에 차츰 순박한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난 아리넬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아저씨의 미소.
그 미소를 보며, 나는 짐머 아저씨를 비롯한 이웃 주민들과의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다.
급하게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인사도 없이 떠나는구나.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겠지만 씩씩하게 기다려 주렴.
꼭 데리러 올게, 아리넬.
거짓말 같은 편지를 남긴 채 짐머 아저씨와 마을 사람들이 비 내리는 어느 날, 증발한 것처럼 마을에서 사라지기 전까진.
그리고 같은 해, <폭군의 정부는 그만하겠습니다>의 주인공 폭군 파르메스 아슬렛이 반역에 성공하여 황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