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0)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21)화(20/173)
21
화
짐머 아저씨의 모습을 한 파르메스가 싱긋 미소 지었다.
나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아저씨의 손을 잡고 테라스로 끌고 나왔다.
아저씨는 지나가는 다른 시종에게 트레이를 맡기고, 나를 따라 나왔다.
테라스의 문을 닫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이게 무슨 일이에요?”
파르메스의 머리카락 색은 은색이고 눈동자는 붉은색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흔해 빠진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갈넴 마을에서의 짐머 아저씨처럼.
그 덕분에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상태였고 말이다.
“놀랐어? 아리넬.”
짐머 아저씨의 모습을 한 파르메스를 보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는 살짝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다정한 눈동자 속에 은색 가면을 쓴 내가 담겨 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지금 이 모습…… 제가 알고 있는 짐머 아저씨의 모습이잖아요.”
“연금술사의 약을 먹으면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 정도는 쉽게 바꿀 수 있어. 약에는 가끔 일시적인 부작용이 뒤따르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목소리를 잃는다든지.”
‘부작용’이라는 말에 내 눈동자가 지진난 듯 흔들리자 그는 옅게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부작용이 없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나는 안심하며 한참 동안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짐머 아저씨의 모습은 누가 봐도 그냥 엄청 잘생긴 시종인 줄 알 것이다.
“그럼 갈넴에서 항상 그 약을 드신 거예요?”
아저씨는 대답 대신 웃음기를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연금술사의 약의 장점이자 단점은 휘발성이었다.
약초는 몸에 남아서 오랫동안 작용하고, 독이 있을 경우 후유증도 남는 것에 반해 연금술로 만든 약은 길어야 하루 정도의 효과를 나타낸다.
‘그래서 병을 고치는 용도로는 쓸 수 없다고 들었는데…….’
외양을 바꾸는 데 쓸 수도 있었구나.
“그때의 나한테는 나쁜 적들이 있었고, 본래의 모습은 불리했거든.”
그는 눈썹 끝을 내리며 슬퍼하듯 중얼거렸다.
“그래서 너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 점에 대해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아리넬, 많이 서운했었지?”
아저씨를 빤히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나게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 같다.
은발은 아슬렛 황가의 고유한 특징이었는데, 갈넴 같은 오지 마을에 은발의 남자가 기거한다는 것이 외부인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오랜 시간을 들인 계획이 위태로워졌을 테니까.
나는 홱 고개를 들며 씩씩하게 말했다.
“용서해 드릴게요, 특별히.”
내 말에 잠시 쭈굴해졌던 짐머 아저씨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고마워, 아리넬. 그럼 앞으로는 매일매일 황궁에 와서 놀아 주는 거지?”
그리고 해맑게 묻는 아저씨.
‘이익. 이 아저씨가 폭군이라니, 역시 이해가 안 된다니까!’
나는 아저씨의 물음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런데 오늘 폐하께서 가면무도회에서 모습을 바꾸신 이유도 비슷한 건가요?”
이런 차림으로라면 삼삼오오 모인 귀족들이 나누는 날 것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
“호…… 혹시…… 숙청의 일환 아닐까요.”
문득 어느 귀족의 목소리가 다시 맴도는 것 같았다.
‘누가 누구인지 모르기에 입조심해야 하는 가면무도회지만, 그 누구도 시종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황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뭐 그런 이유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이것도 아리넬 때문이야.”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런 모습을 하고 다가가면 아리넬이…… 다시 마음의 문을 열어 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어쩐지 동정심을 자극하는 그 표정에 나는 손을 움찔했다.
“아리넬은…… 계속 나를 피했잖니.”
‘으윽. 저 표정을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황궁에 가자고 떼쓰는 애덤의 말을 무시했었지.
그렇다고 나 때문에 가면무도회까지 열다니……!
“저……. 일부러 폐하를 멀리하려던 건 아니었고, 일이 많았어요. 조금 한가해지면 가려고 했어요. 진짜요!”
나는 거짓말을 30퍼센트 정도 섞으며 양손을 모았다.
“하지만 이 가면무도회, 멋져요. 저도 폐하를 뵈어서 너무 반갑고…….”
이 부분은 진심이었다. 영화나 웹툰에서만 보던 가면무도회의 풍경은 새롭고 두근거린다.
그리고 이 순간 아저씨의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 그리고 밤의 풍경.
“조금은 갈넴 마을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가면을 쓴 사람들은 누구나 같잖아요. 신분도 계급도 보이지 않고……. 이렇게, 짐머 아저씨도 있고.”
“정말 마음에 들어?”
내 말에 파르메스의 눈동자가 맑게 일렁인다.
곧 그가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갈넴과 이곳은, 다를 것 없어, 아리넬. 그 가면 속에 똑같은 아리넬이 있는 것처럼…….”
“…….”
“……내가 어떤 모습이건, 난 아리넬의 가족이야. 잊지 마.”
아저씨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
“바깥은 떠들썩하고 이곳은 둘뿐이니, 오늘은 아리넬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네.”
“…….”
“아리넬의 짐머 아저씨로서.”
나는 그의 갈색 눈을 바라보다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흙냄새도 나지 않고 화려한 음악 소리가 들리는 대리석 바닥을 딛고 있지만, 내 앞에 서 있는 그는 내 소중한 친구이자 이웃, 짐머 아저씨였다.
* * *
나는 파르메스와 오랜만에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알렌스 부인에게 학춤 예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과 후작가의 영지 관리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까지.
예전에 갈넴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조잘거리던 것처럼 많이도 조잘댔다.
파르메스도 그때처럼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의 식단에는 쓴 풀들이 꼭 한두 종류씩은 나온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풀의 모양을 듣고, 그게 건강의 어느 부분에 좋은 풀들인지 알려 주었다.
그리고 주먹을 꼭 쥐고, 건강을 위해서는 편식하지 말라고 한바탕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아무튼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파르메스와 수다를 떨었다.
‘짐머 아저씨의 모습이어서 그런지, 꼭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저 이만 가 볼게요. 폐하와 노는 것도 즐겁지만, 가면무도회를 즐겨 보고 싶어서요.”
“누가 괴롭히면 일러! 아저씨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에이, 누가 한가하게 저 같은 꼬마를 괴롭혀요.”
자녀를 초등학교에 처음 보내는 아빠처럼, 파르메스는 내가 나가는 순간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내일은 꼭 황궁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그는 더 잡지 않았다.
테라스를 나선 나는 작은 체구를 들이밀며 다시 무도회장의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대체 황제 폐하께서는 어디 계신 거지?”
“저기 금색 가면 아니야?”
“아냐. 키가 작잖아. 황제 폐하의 키가 얼마나 크신데……!”
“아니면 저기? 키도 훤칠하고 가면도 고급스러운데?”
붉은 가면과 핑크색 가면을 쓴 레이디들이 대화를 나누다가 앞다투어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언니들…… 잘못 짚으셨어요.’
언니들이 찾는 황제 폐하께서는 서빙 알바복을 입고 계신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계속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우리도 대책을 찾아야 해요. 폐하께서는 흑반이 심화되기 전에 모든 걸 본인의 뜻대로 하실 거라고요. 눈엣가시 같은 마일라가의 계집애를 황태자의 곁에 두고, 지크프리트의 힘으로 우리들의 재산을 잡초 뽑듯 뽑아 대겠죠.”
문득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힐끗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귀를 살포시 대었다.
음? 방금 내 이야기가 들린 것 같은데.
무도회장에는 사람들이 밀담을 나눌 수 있는 여러 테라스 공간들이 있었고, 목소리는 열려 있는 그 틈에서 들렸다.
“조용,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단트 후작가의 사정도 마체르트와 별반 다를 바 없을 텐데요. 폐하의 권력 찬탈 이후로, 우리를 지지하는 가문들이 몽땅 물갈이되었어요. 지크프리트 공작가와 거먼트 공작가만이 특권을 얻고 있죠. 심지어 폐하의 근위 기사단까지 바뀌어 황궁의 정보 줄까지 막혔어요.”
“마체르트 부인. 부인의 급박함은 이해합니다만, 우리는 끼어들고 싶지 않소. 폐하께서 자신의 이복형제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게 된다면 부인도 그 잔혹함에 혀를 내두를 것이오. 그분은 무자비한 분이오. 결국 아슬렛 황가의 저주 같은 흑반…….”
아마 테라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는 마체르트 부인과, 단트 후작가의 누군가인 것 같았다.
내가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기 위해 볼살을 들이밀며 더 문틈에 귀를 가까이 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