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2)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23)화(22/173)
23
화
그리고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 우리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브리튼은 방어할 무기조차 없으면서 나를 뒤로 떠밀려 했다.
나는 나보다 반 뼘 정도 큰 브리튼의 체구를 끌어안으며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손을 내밀었다.
‘죽기 싫단 말이야!’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 순간, 문득 손바닥이 불에 덴 듯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혹시 손에 검이 꿰뚫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뜨거웠다.
그때 손 주변에서 불어오는 엄청난 바람과 파동.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자, 내 두 손이 밝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백열전구가 손에 달린 것처럼 말이다.
‘으앗, 이게 뭐야?!’
펑-
그리고 작은 폭발 소리와 함께,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남자들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헉!”
“으아악!”
브리튼이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그 얼굴이 놀라움에 굳어 있었다.
화끈거리는 내 손에 낯선 기운이 아주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방금…… 이 폭발은 뭐지?’
나는 놀라 굳은 채, 넘어져 있는 남자들을 쳐다보았다.
나의 갑작스러운 장풍 공격에도 불구하고, 충격이 충분히 강하지 않았는지 그들이 다시 비틀대며 일어서고 있었다.
“헉……. 헉……. 정령사인가. 이 계집애부터 죽여 없애야겠군.”
“귀찮은 꼬마가 옆에 있었어.”
무릎을 털며 남자 하나가 나를 향해 적의를 빛냈다.
‘내가 정령사라고……?’
“도망치세요, 부인.”
그때 내 어깨를 미는 브리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도망치셔야 합니다.”
내 힘은 그들을 넘어뜨린 것일 뿐이지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지는 못한 것 같았다.
“어서, 아리넬.”
브리튼의 재촉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브리튼의 말이 맞다. 당장 도망쳐서 누구에게라도 이 상황을 알려야 한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황태자 전하.”
브리튼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인 내가 황급히 발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저벅- 저벅-
우리의 뒤쪽에서 긴 그림자가 나타났다.
성큼, 성큼, 걸어오는 발소리. 그림자의 형태는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이윽고, 어둠 속에 묻힌 그의 형태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한 쌍의 노란 눈이 보였다.
악마의 눈 같은 그것이 심장을 덜컹거리게 했다.
‘적들이…… 더 있었던 거야?’
그 생각이 들자마자 정신이 절망감에 물들었다.
얼굴이 보인 것도 아닌데, 기척만으로 방금 네 명의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낯설기는 하나 정령의 힘이 몸에 감돌고 있었기에, 나는 더욱 민감하게 그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저런 남자에게서는 도망칠 수 없어.’
“……오셨군요.”
하지만 옆에서 들리는 안도 어린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움찔했다.
나를 보호하는 데 온 정신을 쏟고 있어서 굳어 있었던 브리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뭐지?
나는 으슬으슬한 기운에 브리튼의 곁에 바짝 붙었다.
손에 맴돌았던 낯선 기운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
내 파동에 넘어졌던 네 명의 남자들이 모두 몸을 일으켜 섰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뒤에서 나타난 노란 눈의 남자를 보고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러면…… 지금 우리 뒤에 있는 남자가 아군이라는 뜻일까?’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는 남자의 키는 족히 2미터는 넘어 보였고, 어깨와 몸은 성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내 키보다 훨씬 큰 검을 들고 있었는데, 검인지 몽둥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두툼하고 무거워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머리에 지끈한 통증을 느끼며 옅은 환영을 보았다.
“……파넬?”
삼지창처럼 생긴 쇠스랑을 들고 엄청나게 넓은 밭을 개간하던, 내 등짝보다 훨씬 큰 손.
험상궂은 얼굴에 다정한 노란 눈.
햇볕에 건강하게 탄 검은 피부와 모히칸 헤어 스타일까지.
기억 속 누군가가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파넬…… 아저씨?”
“아주 날쌔도다, 아리넬. 자질이 있어.”
쿵-
그리고 이 순간.
투구를 썼지만 분명 알아볼 수 있었다.
저 몸집과 저…… 야수 같은 노란 눈. 갈넴 마을의 파넬 아저씨라는 것을!
나는 정신이 아득해져서 이마를 짚었다.
‘말도 안 돼! 아저씨가 왜 여기에!’
내 앞에 선 파넬 아저씨는 나를 내려보며 다시 한번 쇳소리가 섞인 감탄의 목소리를 내었다.
“손에 감긴 정령의 특별한 빛은 어둠 속 병사들의 진로가 되어 줄 것. 필시 대장군의 자질이로다. 나의 눈은 틀리지 않구나!”
…….
……저요?
내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작은 손가락으로 나 자신을 가리키자 파넬 아저씨가 기차처럼 콧김을 뿜었다.
어릴 때 밥을 워낙 잘 먹어서 장군감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지만, 대장군이라니…….
“……청혈의 악마이다!”
“군사부 재상 파멜 거먼트!”
“제기랄, 여기가 우리의 마지막이겠군…….”
그리고 앞에서 들리는 네 남자들의 두려움에 찬 목소리.
군사부 재상 파멜 거먼트라고?
원작을 떠올리며 작성했던 내 노트에 파멜 거먼트 공작에 대한 설명도 쓰여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라의 군사권을 통솔해 온 군신 가문의 수장이라고 말이다.
그들의 위세는 보는 것만으로도 몸을 떨리게 만들며 오싹한 푸른 피가 흐를 것이라고 하여 군사부 재상은 청혈의 악마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군사부 재상이…… 파넬 아저씨라고?
“2황자의 버러지 같은 잔당들이 감히 내 후계자와 황태자 전하를 노리다니…….”
뒤에 선 파넬 아저씨, 아니, 파멜 거먼트 공작이 콧김을 내뿜었다.
“부인…….”
브리튼이 살풋 미소 지으며 내 어깨를 감싸고 뒤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옆으로, 거구의 공작이 스쳐 지나갔다.
“정서 발달에 좋지 않겠습니다.”
친절한 브리튼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뒤, 뒤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뭔가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퍽- 퍽-
“으악!”
“억!”
와장창-
검이 부러지는 소리.
온몸에 소름과 오한이 돋는다.
“……저 사람들은 누구였죠?”
“아버지의 형제, 그러니까 제 큰아버지를 따르던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치열한 황권 전쟁의 패배자들일 뿐이죠. 일 년간 거의 다 숙청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저렇게 남아 있을 줄은 몰랐군요.”
아까 나에게 도망치라고 했던 브리튼의 다급한 목소리가 아직도 선연했다.
우리…… 방금, 정말 죽을 뻔했다.
“많이 놀라셨습니까? 부인.”
“네.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황태자 전하는…… 괜찮으세요?”
나만큼이나 브리튼도 놀랐을 것이다.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은 나이인 그도 어린아이인 것은 마찬가지이니까.
내가 브리튼에게 되묻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가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네……. 저도 괜찮습니다. 부인이 다칠까 놀랐을 뿐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 괜찮아요. 그리고 아까 제 손에서 나온 빛은…… 저도 처음 쓴 거라서.”
뭐였을까?
혼란스러워 하는 내 말에 브리튼의 눈동자 속 푸른빛이 깊어지는 듯했다.
어느덧 조용해진 뒤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브리튼이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좀더 기다리십시오. 보기 좋지 않아요. 보게 되면 악몽을 꿀지도 모릅니다.”
소년은 이런 상황을 전에도 몇 번 겪었던 것처럼 말했다.
‘이 황궁, 마냥 안전한 곳은 아니었던 걸까.’
그때, 쿵, 쿵, 소리가 들리더니 남자들을 다 처리한 것으로 보이는 파멜 공작이 나타났다.
그의 은색 투구에 묻어난 피를 보자 어깨가 절로 움찔 튀었다.
파멜은 나를 보고 눈 한쪽을 씰룩이며 나른한 웃음기를 보이더니 브리튼에게 말했다.
“적당히 처리했도다. 병사들을 불러 지하 감옥에 옮길 예정이오. 저 중 몇 놈이나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맙습니다, 스승님.”
브리튼의 말에 나는 다시 손을 움찔했다.
‘파넬 아저씨가 브리튼의 스승이라고?’
“그리고…… 아직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가면무도회를 틈타 들어온 불순한 세력들이 더 있을 수 있으니까요.”
조용히 잡초를 뽑았으면 한다는 듯 브리튼이 말했다.
그 말에 동의하며 파멜 공작이 다시 성난 황소처럼 콧김을 뿜었다.
“오늘 그들이 이 파멜 거먼트의 철편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잘못 생각한 것이오. 그 어느 때보다 화가 났으니.”
그리고 형형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노란 눈의 위압감에 나는 다시 어깨를 움찔했다.
“감히 군사부의 대장군감을 건드리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소이다.”
그리고 애써 외면했던 단어가 다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