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2)화(3/173)
2
화
* * *
“읏차! 오늘 하루도 활기차게 시작해 볼까?”
아침 햇살이 창문을 넘어 들어온다.
나는 오늘 햇살이 좋은 걸 창문 너머로 확인하고는, 빨랫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마을의 주민은 나 혼자뿐이니, 빨랫감이 거의 내 몸집만 하더라도 직접 빨래를 해야 했다.
문득 일 년 전, 마을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던 때가 떠올랐다.
“파넬 아저씨! 아머스 아저씨!! 부인!!”
장마라고 해도 너무 인기척이 없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불러 댔는데,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문을 연 집마다 비어 있었고, 짐머 아저씨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 어디 갔어요? 짐머 아저씨!!!”
비는 점점 세차게 내렸고, 마을 사람을 한 명도 찾지 못한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급하게 집을 나오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다.
짐머 아저씨가 사냥한 고기로 만든 듯한 육포 한 자루가 마당에 있었고, 집 주변에는 아마도 파넬 아저씨가 쳐 놓은 것으로 보이는 들짐승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덫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피올렛 아주머니의 솜씨로 짠 것이 분명한 뜨개 원피스, 그리고 아머스 아저씨의 서고 열쇠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정말 어딘가에 급하게 가야 할 일이 생긴 것일까?
이웃들이 나를 위해 남겨 놓은 물건들을 보며 나는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그렇게 모두가 떠난 이 마을에 나만 남은 지 벌써 한 해가 되었다.
처음에는 금방 돌아오겠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서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어떻게 어린애를 혼자 남겨 두고 이렇게 오래 마을을 비울 수가 있어!
‘마을 사람은 아니지만 새로 사귀게 된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외로워서 매일 울었을지도 몰라.’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깨끗이 빤 빨래를 낑낑거리며 겨우겨우 널어놓은 나는 밭에서 내 팔뚝만 한 홍사탕무를 껴안고 힘껏 뽑아내며 생각했다.
‘식량의 비축밖에 없어!’
홍사탕무는 절여 놓으면 삼 년까지도 보관할 수 있고, 열량이 높아 적은 양으로도 오래 버틸 수 있다.
제일 좋은 것은 말려서 환을 만드는 것인데 보관 기간이 무려 십 년이나 되었다.
‘앞으로 이 년 뒤부터 사 년간 대기근이니까 그 기간만 잘 넘기면 살아남는 데는 문제 없을 거야.’
내가 열심히 식량을 비축하는 이유는 바로, 파르메스의 폭정 기간에 있을 ‘고난의 대기근 사 년.’ 때문.
역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가난한 백성들이었고 굶어 죽는 사람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흉년이 파르메스의 탓은 아니었지만, 백성들의 원망은 모두 폭군 파르메스에게 향한다.
물론 파르메스는 폭군답게 반발하는 도시의 귀족들과 백성들을 본보기로 처형하고……. 난리도 아니었지. 아무튼 모두에게 처참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나 같은 어린애에게 이 비극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도시보다는 시골이 버티기도 수월할 것이니 흉년이 끝나기까지는 계속 여기서 살 계획이었다.
홍사탕무 환을 만들어 대비하며 말이다.
조금, 어쩌면 많이 외롭겠지만.
그렇게 오늘도 하루 종일 홍사탕무 환을 만들고 집안일을 했다.
온종일 계속된 노동으로 작은 손이 쭈글쭈글해진 채 꾸벅꾸벅 졸던 나는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똑-
“……잘못 들었나?”
쥐 죽은 듯 조용한 정적에 다시 눈을 감으려던 때, 문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또로똑똑 똑똑♪
응? 이 노크 소리는……!
익숙하고 그리운 소리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커다란 손을 마지막으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일어나십시오.”
한참 뒤에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여긴……?”
내 눈 위에 천이 덮여 있어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내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러자 바닥에 잘 닦인 매끈하고 딱딱한 돌바닥이 닿는다.
분명 ‘그 신호’를 듣고 문을 열었을 뿐인데……. 나 납치당한 거야?
“아저씨들…… 누구예요?”
눈에 덮인 천을 내리려다가, 문득 납치범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멈칫했다.
얼굴을 봤다가는 더 복잡해질 수도 있어.
“정중히 모시려 하였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분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이니, 용서 부탁드립니다.”
딱딱하고 깔끔하며 정중한, 기사들이나 낼 법한 목소리였다.
기사라니, 말투나 쓰는 단어들은 부드러웠지만 아동 유괴범들 따위가 반듯한 놈들일 리 없지.
정중히는 무슨!
“콜록, 콜록. 저, 폐병이, 콜록, 콜록, 이러다 다, 콜록, 다 죽는.”
나는 급하게 하등품인 척하며 시간을 끌었지만, 남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이끌었다.
딱딱한 바닥에서 전해지는 감각만 봐도 이곳은 갈넴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도시였다.
“아저씨들은 제가 불쌍하지도 않나요?! 살려 주세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약속한 듯 묵묵부답이다.
내 머릿속에는 소금 광산으로 팔려 가거나 새우를 잡는 것을 포함해 온갖 비극적인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었다.
티 파티 한번 즐기지 못하고 열한 살에 노예로 팔려 가는 이런 로판 빙의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으앙!
뚝-
한참을 딱딱한 바닥을 걸어 나는 어딘가에 멈추어 섰다.
눈이 가려져 있었지만, 지금이 낮이고, 이곳이 꽤 환한 실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또 발소리가 울리는 것을 보니 상당히 웅장한 공간.
“아가씨께서는…….”
뒤에 선 놈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납치해서 끌고 와 놓고서 웬 아가씨?
“……위대한 분을 뵙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위대한 악당, 위대한 납치범, 위대한 노예 상인……. 어느 쪽을 상상하건 끔찍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작은 어깨를 더욱 불쌍하게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끌려오는 동안 느끼지 못한 위압갑이 갑자기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뭐…… 뭐야……?’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이 뒤로 차츰 물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가지런하고 규칙적인 구둣발 소리.
이윽고 누군가가 내 앞으로 차츰 다가왔다.
남자 한 명의, 둔탁한 발소리였다.
“…….”
나는 너무 무서워 차마 내 눈을 가린 천을 내 손으로 풀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앞에서 다가온 다른 살결이 내 손등을 스쳤다.
그리고 뒤통수 쪽에서 묵직한 느낌과 함께 천천히 천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움찔 어깨를 움츠렸고, 그 순간 눈 앞을 가리던 검은 것이 아래로 훅 떨어졌다.
“…….”
오래 눈을 가리고 있어서인지 눈앞이 바로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흐릿한 와중에도 이곳이 화려하고 웅장한 공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마치 대귀족, 혹은 왕족의 집무실 같은…….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는 큰 키에 찬란한 은발의 남자가, 천천히 팔을 거두었다.
경량형의 갑옷을 입은 듯, 남자의 옷에서 딱딱한 쇳소리가 들렸다.
나는 남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눈썹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후광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남자의 얼굴 윤곽이 내 시야에 점차 들어왔다.
아름다운 은발과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
“……!”
나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
하지만 벌어진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흘러나오지 못했다.
내가 너무 놀랐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의 붉은 입술 끝에 서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한참 뒤에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짐머 아저씨?!!!”
머리카락의 색깔도, 눈의 색깔도 다르지만…… 분명 눈앞의 남자는 짐머 아저씨였다.
검의 날처럼 반듯하고 높은 코와 서늘한 눈매, 그리고 깎아지른 듯한 턱선.
볼 때마다 감탄하게 만드는 짐머 아저씨의 외모란 말이다.
그런데 왜 짐머 아저씨가…… 왕관을 쓰고 있지?
나는 멍하니 아저씨의 머리 위로 시선을 올렸다.
“…….”
아저씨는 내 생각을 알아챈 듯 입을 열었다.
“놀란 모양이구나, 아리넬.”
그리고 곧장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떤 근심 걱정 앞에서도 안심하게 해 주었던, 다정하고 따뜻한 손길.
이 느낌은, 분명 짐머 아저씨가 맞는데……. 눈앞의 짐머 아저씨는, 짐머 아저씨가 아닌 것 같다.
머리카락도, 눈도, 그리고 느껴지는 기운조차도 다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아저씨가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그래도 기뻐해 주었으면 하는데. 계획을 앞당긴 이유가, 아리넬이 고생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였거든.”
무슨 이야기인지, 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늦었지만 다시 나를 소개할게. 내 진짜 이름은…….”
한 폭군이 반역하여 알브레온의 주인이 된다.
그는 잔혹하고 아름다운 군주였으며 그를 도와 폭군의 시대를 연 재상들은 백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파르메스 아슬렛. 황제란다.”
파르메스-
파르메스 아슬렛-
파르메스 아슬렛- 황제-
나의 검은 심연에, 그의 이름이 메아리치며 여러 번 울려 왔다.
“……!!!!”
그 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