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0)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31)화(30/173)
31
화
“그만하라.”
“크흠, 예. 폐하.”
“예. 폐하.”
황제의 앞이라는 것도 잊고 열심히 서로를 공격하던 둘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 아이의 재능을 칭찬하는 것은 듣기 좋지만.”
파르메스는 아리넬이 애덤을 통해 전해 주라고 한 아마리스 연고통을 매만지며 서늘하고 살벌한 눈빛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우선 순위는 똑바로 알도록.”
알브레온과 아슬렛 황가의 주인. 고강하고 차가운 그의 분위기에 알렌스 부인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리넬은 내 며느리다.”
* * *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깜찍한 프릴이 달린 핑크 드레스를 입은 나는…….
‘인형 같아!’
갈넴에서 언제나 꼬질꼬질하게 있을 때는 내가 이렇게 귀엽고 예쁜 줄 몰랐는데, 꾸며 놓으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뭐 그래 봤자 제국을 뿌실 만큼 잘생긴 브리튼 옆에 있으면 오징어가 되어 버리는 기분이지만.
“리본은 줄무늬가 있는 것이 좋을까요, 그냥 레이스가 좋을까요?”
“심플한 걸로 해 줘요.”
“예, 아가씨.”
하녀들은 인형놀이를 하듯 내 머리도 예쁘게 치장해 주었다.
갈넴에서는 머리카락 끝이 햇빛과 영양 부족으로 항상 상해 있던 것 같은데, 수도에 와서 워낙 영양 상태가 좋아져서인지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거울 앞에서 한 번 빙그르 돈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일 층으로 종종종 내려갔다.
오늘은 파르메스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가면무도회에서 그에게 황궁에 종종 들르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말을 저버릴 수는 없지.’
애덤의 생각으로는, 내가 만약 그를 또 모른 체했다가는 우리 집 근처로 황궁을 이사시킬지도 모른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읏차.”
마차에 가볍게 올라타서 푹신한 의자에 앉자, 이내 마차가 달가닥거리며 황궁으로 향했다.
창밖의 날은 좋았고, 어제 슬쩍 보았던 번화가도 변함없이 활기찬 모습이었다.
그리고 경제 학술원 쪽을 지날 무렵이었다.
“……?”
경제 학술원 앞에 서 있는 한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평범한 사람들의 옷과는 다른, 누가 봐도 귀족 자제 같은 옷을 입은 남자애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갈색 머리카락에 회색 눈. 절로 시선이 고정될 만큼 반듯하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서류, 다른 한 손에는 만년필을 들고 있는 채였다.
‘뭔가 공부……. 아니, 조사를 하러 나온 건가?’
마차가 그 소년을 지나쳐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처음 보는 그 소년과 또렷이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마차가 소년을 지나친 그 뒤로도, 그 인상은 꽤 짙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왜…… 어디서 본 거 같지?’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내가 저렇게 아우라를 풍기는 애를 봤으면 확실히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럼 이 익숙한 느낌은 뭐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생각을 털어 버리고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짧은 상념이 끝나고, 머지않아 마차가 황궁에 도착했다.
엄숙한 황궁의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등을 뻣뻣해지게 했다.
‘여러 번 왔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네…….’
철로 만든 인형처럼 늘어선 병사들이 황궁을 지키며 무시무시한 창을 들고 서 있었고, 그 뒤로 늘어선 하녀와 하인 모두가 기강이 빠릿하게 잡혀 칼 같은 각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주인이자 이 나라의 절대 군주, 파르메스 아슬렛을 만날 예정이었다.
짐머 아저씨=파르메스 아슬렛.
공식을 되풀이하며 되뇌었음에도 역시 조금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크어어억-”
마차에서 내려 손을 쭉 뻗으며 긴장을 풀던 나는 흠칫했다.
방금…… 어딘가에서 굉장히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착각인가, 귀를 기울여 봤지만 그런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문득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아리넬!”
천천히 뒤를 돌자, 파르메스가 환히 웃으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서 오렴. 기다리고 있었어!”
환하게 떠오른 태양이 그의 뒤에 있었음에도 후광을 받은 그의 실루엣은 태양보다도 더욱 찬란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의 눈이 내가 정말로 반가운 듯 예쁘게 휘어 있다.
나는 긴장한 내색을 숨기지 못하며 그를 올려다보고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잠시 뒤.
“아리넬, 공놀이하자. 공놀이!”
어……. 음.
‘진짜 같은 사람 맞지?’
무도회장에서 귀족들을 다들 덜덜 떨게 만들었던 그 파르메스 아슬렛과, 내 눈앞의 파르메스 아슬렛이 너무 다른 사람 같았다.
대형견처럼 큰 몸으로 환히 웃는 아저씨의 모습은, 내 긴장이 전혀 무쓸모한 것이었음을 알려 주었다.
“왜, 싫어? 예전에는 아저씨랑 자주 했잖아. 그래서 아저씨가 넘어지면 여기…….”
파르메스가 자신의 팔꿈치를 가리켰다.
“여기에 아리넬이 연고를 발라 줬었잖아.”
“…….”
“기억 안 나, 아리넬?”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가 내민 공을 받았다.
“그럴 리가요. 당연히 기억나요.”
“그러니까 놀자! 내가 실컷 놀아 줄게, 아리넬!”
“하지만 공놀이는…….”
이런 표현은 실례이겠지만, 파르메스의 뒤로 꼬리가 흔들리고 있는 환영이 보인다.
‘어쩐지 내가 놀아 주기를 바라는 느낌. 그리고 안 놀아 주면 삐질 것 같은 느낌…….’
눈이 휘어지게 미소 짓는 파르메스의 모습에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파르메스에게 공을 던져주기 위해 공을 내려다 보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저씨……. 아니, 폐하. 이거 공이…….”
공의 겉면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역시 아리넬은 대단하구나.”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파르메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냥 순박해 보였던 방금의 목소리와는 약간 톤이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빛나는 공을 든 채 멍하니 파르메스를 올려보았다.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싱긋 미소지으며 말했다.
“있잖아. 그거, 정령력에 반응하는 공이거든.”
가면무도회의 정원에서 나와 브리튼을 습격했던 남자들에게 어떤 힘을 썼던 일을 떠올랐다.
“……이 공이요?”
“응. 아리넬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야. 공이 예쁘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고.”
파르메스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정령력에 반응해서 빛나는 공이라니, 신기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뿜어져 나오던 그 빛과 우당탕 뒤로 나동그라지던 남자들이 떠올라 기분이 뭔가 이상해졌다.
위급한 상황에서 정령력을 각성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는데…….
‘나도 그런 경우였을까?’
“…….”
내가 생각에 잠겨 말이 없자, 파르메스는 뒤로 물러나 공을 받는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던져 봐, 아리넬.”
잠시 물끄러미 공을 바라보던 나는 파르메스에게 공을 던졌다.
밝게 빛나던 공이 그의 손에 감기자 그 빛이 먹히듯 사라졌다.
내 손에서 빛나던 공의 빛이 꺼지는 것을 보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파르메스는 빛이 사라진 공을 올려 보이며 물었다.
“아리넬도 하이젠처럼 정령의 힘을 가지고 있다니, 듣고 정말로 놀랐어. 아빠에게 물려받은 거겠지?”
나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예상치 못하게 각성하게 된 거라 확신하지는 못하지만요…….”
애덤은 내가 정령의 힘을 쓴 것 같다고 하자 매우 기뻐했었다.
역시 아가씨는 마일라 후작가의 정당하신 후계자라며 말이다.
“정령의 힘은 정말 멋져. 아름답고 신비하지.”
“…….”
“특히 하이젠의 정령술은 정말 멋졌단다. 네 아빠 말이야.”
파르메스의 말에 나는 멍하니 파르메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소중한 것을 생각하듯 추억에 잠긴 눈을 하고 있었다.
“아리넬도 분명, 하이젠처럼 대단한 정령사가 될 거야.”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던 대형견의 귀가 조금 처진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자 예전부터 묻고 싶었던 말이 입밖으로 튀어 나왔다.
“저희 아빠를 정말 좋아하셨나 봐요.”
내 말에 파르메스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그는…….”
선명한 붉은 눈이 잠시 일렁이는 것 같았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며 잠시 우리에게 큰 그림자를 만들었다.
파르메스는 뚜벅, 뚜벅, 내 앞에 다가와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그늘이 나를 향해 드리워져 있었다.
내 얼굴에 아빠의 얼굴을 비추어 보듯 슬프고 애절한 눈동자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원작에서는 하이젠이 파르메스의 발작 버튼이었는데…….
‘눈물 버튼이기도 했던 거야?’
“……아리넬.”
파르메스가 한참 아래에 있는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묵직하지만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리넬은 강한 아이이지만,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나에게 솔직하게 말해 줘. 언제든 아리넬을 도울 테니까.”
파르메스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입을 달싹여 되물었다.
“아빠처럼요?”
내 말에 파르메스의 붉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잠시 후 그는 기쁜 듯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아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