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1)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32)화(31/173)
32
화
* * *
아리넬이 황궁에 황제를 만나러 간 사이 애덤은 광장에 좌판을 미리 설치하며 홍사탕무 시식 행사 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짓밟힌 내 명예.’
애덤은 시장에서 자신을 천하의 쓰레기 취급하던 상인들을 생각하며 밀려드는 우울감을 고개를 저어 털어 냈다.
‘이제 회복이 머지않았다!’
아가씨가 사랑하는 홍사탕무가 얼마나 달콤한 과일인지 널리 알려진다면, 그 사람들은 무고한 자신을 욕한 것을 후회하게 되리라.
“……흠.”
애덤은 다시 헛기침을 하고 차가운 이성을 되찾았다.
그때, 누군가의 발이 애덤의 앞에 멈추어 섰다.
광장을 지나는 사람은 워낙 많았기에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가 먼저 애덤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더 아래에 걸게.”
“…….”
애덤은 그 말에 현수막을 다느라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말을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남자를 보자마자 놀라 얼굴을 굳혔다.
언젠가 후작을 모실 때, 그의 얼굴을 본 적 있었다.
매우 오래전이었지만 그를 마주하자마자 느꼈던 차가운 위압감을 잊을 리가 없었다.
그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차갑게 빛나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상품은 시야에 잘 들어와야 주목을 받고, 주목을 받아야 많은 이들이 몰리는 법이니.”
“고…… 공…….”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애덤을 보며 그는 흰 장갑에 싸인 검지 손가락을 입술 위로 올렸다.
“쉿!”
“……예, 예!”
입단속을 시킨 뒤 그는 말을 이었다.
“알렌스 부인의 활약만으로는 홍사탕무에 대한 인식 개선의 여지가 부족해서 손을 조금 썼네.”
“…….”
“허약한 아이를 튼튼하게 하고 사내의 활력에 좋다는 소문을 퍼트렸지.”
“……아!”
애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구매력은 본디 여인들이 가장 큰 법이니, 물건을 팔려 할 때는 판매 타깃이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해야 하네.”
그는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좌판을 스르륵 훑었다.
그리고 손끝을 단단하게 해서 퉁퉁 두드려 보았다.
“유리병을 올려놓기에는 재질이 튼튼하지 않으니 철판을 보강해야겠군. 대중에게 상품을 선보이는 첫 순간부터 허술해 보이지 않기 위해선 말일세.”
“헙, 예.”
애덤은 급히 셔츠에서 종이를 꺼내서 아까 그가 말했던 것을 적기 시작했다.
따각, 따각.
값비싼 고급 구두의 소리가 들렸다.
갈색의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그가 좌판의 기둥도 툭, 툭 두드려 보았다.
“이건 더 보강할 필요가 없을 듯하고.”
“예!”
“종이는 유자 딱종이를 썼나? 시식용 컵으로.”
“아니요. 유자 딱종이는 너무 빳빳해서, 오동 풀종이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이야. 오동 풀종이는 부드러운 감촉은 좋지만 음식을 넣으면 금방 물러지거든. 무엇보다 특유의 향이 강해 시식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네. 유자 딱종이가 낫네.”
“앗, 이런. 곧장 변경해야겠군요.”
그는 눈으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그 허점과 그것을 대체할 방법까지 말해 주었다. 과연 제국 최고의 두뇌다웠다.
“그리고.”
그는 손을 뻗어 애덤이 쓰던 종이와 펜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애덤이 적은 것들 중 한 문장에 펜으로 두 줄을 그었다.
의아해하는 애덤에게 그가 말했다.
“내가 다녀갔다는 것은 비밀로 하게.”
“하지만 지크프리트 공작 전하, 어째서…….”
“그 애는 내가 누구인지 아직 모르니까.”
철혈의 경제부 재상 지크프리트 공작. 그가 다시 안경을 치켜올렸다.
번뜩이는 볕이 반사되어 문득 안경 속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
“더해서 나는 지금 공식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을 맡고 있거든. 곧 마무리되기는 하지만, 그 일을 끝낼 때까지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셈일세.”
“아…….”
“원래 모든 연극의 주인공은,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법이니. 아주 강렬한 인상을 줘야 상품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되지.”
애덤은 지크프리트 공작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오늘 그가 조언해 준 것들은, 아리넬의 사업 준비를 보필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 * *
“또 아리넬이 이겼구나!”
“야호!”
골대까지 설치해서 신나게 공놀이를 하다가 공을 품에 안은 나는 종종거리며 파르메스에게 다가갔다.
“참, 아저씨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게 있는데. 다들 떠나신 뒤에, 갈넴 마을에서 좋은 친구를 만났어요.”
나는 마스를 떠올리며 파르메스에게 말했다.
일 년간 혼자 빈 마을에서 지냈던 그때, 마스가 아니었다면 외로워서 맨날 우느라고 눈이 퉁퉁 부어서 지냈을지도 모른다.
“친구?”
“네, 흰 가면을 쓴 친구예요. 이름은 제가 붙여 줬는데. 마스라고……. 나이도 모르고 진짜 이름도 모르지만, 제 곁에 있어 줘서 외롭지 않았어요. 기회가 된다면 폐하께도 소개해 드릴게요!”
짐머 아저씨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은 없다.
소중한 친구에 대해 말하는 나를 바라보던 파르메스의 눈에 문득 즐거움이 어렸다.
“그렇구나. 아리넬의 친구라니, 정말 기대되네. 나중에 소개시켜 줘.”
나에 대해 뭐든지 궁금해하는 파르메스답지 않게 그는 마스에 대해서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제안을 했다.
“그럼 아리넬, 공놀이가 시시하면 이만 들어갈까? 아리넬을 위해 최고의 디저트를 준비해 두었어. 그리고…… 아리넬에게 어울릴 만한 보석이랑, 목걸이랑……. 으음…….”
공을 시종에게 건넨 파르메스는 내게 줄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황궁에 들를 때마다 뭔가를 꼭 들려 보내려고 했다.
“있잖아요, 폐하. 선물은 항상 감사하지만…….”
나는 파르메스와 나란히 회랑을 걸었다.
좁은 내 보폭에 맞추어 그가 반 박자 느리게 걷는 것이 느껴졌다.
“그…… 너무 무리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무리라니?”
“그러니까 비싼 건 쓰지 말고 잘 아껴 두세요. 나중에 어려운 시기가 올지도 모르고, 사람들의 민심이 나빠질 수도 있잖아요. 황제 폐하께서 아리넬이라는 꼬맹이한테 너무 돈을 많이 써서 재정이 위태롭다고 욕하면 안 되잖아요……!”
“……아리넬.”
파르메스가 우뚝 멈추어 섰다.
“날 걱정해 주는 거야……?”
감동한 듯 나를 바라보는 파르메스의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인 걱정이라기보다는, 파르메스가 원작의 폭군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내가 읽었던 원작 속 파르메스는 재정도 자기 멋대로 탕진하고 백성들마저 착취하는 악당 폭군이었으니까.
나를 대할 때는 완전히 딴 사람 같지만……
저번에 가면무도회 때, 파르메스를 보는 귀족들의 두려움 섞인 시선만 봐도 앞일은 모르는 일!
“아리넬의 따뜻한 마음은 언제나 감동이야.”
* * *
“후우, 애덤. 준비되었어요?”
“완벽합니다, 아리넬 아가씨.”
다음 날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나는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알렌스 부인 덕분에 귀족 부인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져 나가던 홍사탕무의 달콤한 풍미는, 이제 더 광범위한 계층에 널리 전해졌다고 한다.
의도하지는 않았고, 과학적 근거도 없지만 홍사탕무가 정력과 두뇌 발달에 좋다는 소문이 돌며 평민들이 요즘 홍사탕무를 찾는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말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준비한 것.
기근의 극복에 도움이 될 홍사탕무의 대중화에 기여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길 수 있고, 앞으로 시작할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그것은…….
바로 ‘시식 행사’였다!
고무 재질의 장갑을 낀 애덤이 통 안에 절인 사탕무 샐러드를 휘젓고 있었다.
달콤한 맛을 배가시키는 향신료가 사탕무 조각에 잘 배도록 말이다.
새로 뽑은 직원들도 위생복을 입고 열심히 사탕무 통을 옮기고 있었다.
광장엔 오늘 행사를 위한 천막이 준비되었다.
“저건 뭐지?”
“저기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는 거 같아요.”
“킁킁, 그러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아이와 엄마가 갸웃대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