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4)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35)화(34/173)
35
화
* * *
소설 속의 파르메스 아슬렛은 폭군 그 자체였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쯤으로 여기고 쥐락펴락하며, 광기에 취해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두려운 존재 말이다.
그리고 <폭군의 정부는 그만하겠습니다>라는 피폐 로판 소설의 여주인공 아멜리아.
아멜리아가 반역으로 황좌를 차지한 파르메스의 눈에 띈 것은, 그녀에게는 크나큰 시련의 시작이었다.
파르메스는 아멜리아를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대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미친 듯이 집착했는데, 아멜리아가 황궁에서 도망치려 하자 그녀의 하녀들에게 무자비한 화풀이를 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아멜리아는 그의 곁에 머무르기로 하였고, 잠시 스톡홀롬 신드롬 같은 증상을 느끼며 사이가 좋아지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사건을 계기로 둘의 사이가 확 나빠진다.
‘그 단락에서 파르메스를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었지.’
아멜리아가 하이젠의 복식을 하고 나타났을 때였다.
아빠가 죽고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국가 부처들 중 하나인 정령성의 정령사들은 금사로 마감된 길고 흰 원피스에, 4대 정령을 의미하는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의 띠를 허리에 착용한다.
대정령사이자 정령성을 이끄는 정령성주였던 하이젠은 금색 띠를 찼다고 하고 말이다.
아멜리아가 하이젠의 복식을 하고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고, 악역이었던 단트 후작 부인의 계략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파르메스가 이성을 잃고 폭주하게 된다.
붉은 눈동자에 광기가 어리고, 검을 뽑아 들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베며 난장판을 만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여주인공인 아멜리아조차 죽이려고 했었다.
‘아니, 아빠를 파르메스의 전 여친으로 오해할 만했다고.’
하이젠의 존재는 파르메스에게 발작 버튼이었다.
아무튼 아멜리아는 겁에 질려 도망쳤고, 그 고구마 전개에 무수한 독자가 탈주했는데……. 나는 고구마를 꽤 잘 견뎠기에 탈주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아멜리아가 돌아온 이후에도 그 사건 때문에 하이젠의 이름과 하이젠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황궁에서 금기가 되었다.
‘그런데 아빠의 옷을 입으라고요?’
소설 속 폭군과는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 주고 있는 짐머 아저씨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위험 속에 내던지고 싶지는 않다고!
“이걸 입은 아리넬을 보면 폐하께서도 더 귀여워하실 것 같아서. 특별 제작을 맡겼단다.”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이건…… 절대로 나중에 입을게요, 부인.”
알렌스 부인의 권유를 마다하고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나는 황태자의 처소를 찾았다.
알렌스 부인은 내가 뭘 하든 파르메스가 날 귀여워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난 근거 없는 부인의 믿음에 목숨을 걸고 싶진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황태자비 전하.”
내가 황태자궁에 도착하자 황궁 시종들이 나를 맞았다.
“도망치세요, 부인.”
위협이 닥쳤을 때 나를 뒤로 밀던 브리튼의 모습이 생생했다.
온실 속 귀공자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나를 보호하려는 눈빛이 정말 굳건했었다.
그런 브리튼이 심한 감기에 걸렸다니…….
“콜록-”
복도를 돌아 문 앞에 서자 방 안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조금 망설이다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걸터앉은 채 나를 바라보는 브리튼의 모습이 보였다.
감기가 심한지 얼굴이 꽤 붉었고, 또렷하던 눈매가 부드럽게 풀려 눈썹 끝이 내려와 있었다.
“괜찮으세요, 황태자 전하?”
나는 조심스러운 보폭으로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꼭 하얀 강아지 같아.’
은발과 색이 비슷한 흰옷을 입은 소년이 열이 올라 달뜬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손으로 입을 막으며 다시 기침을 했다.
“콜록, 부인. 여기까지 오셨는데…….”
푸른 눈망울이 애처롭게 일렁였다.
“쉿! 무리하지 마세요.”
나는 협탁에 내가 가져온 바구니를 콩, 내려놓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츄피 열매 기름이에요. 하루에 두 스푼씩 먹으면 목 통증에 좋아요. 그리고 이건 밤비나무 조각인데 머리맡에 놓고 자면 다음 날 조금 개운해진답니다.”
“부인…….”
그리고 준비해 온 다른 것들도 보여 주었다.
“튜란 잎이에요. 향신료로도 좋은데 코가 뚫리게 하는 효과가 있어요. 저도 감기에 걸렸을 때 써 봤는데 꽤 좋더라고요.”
황궁에는 의사가 있지만, 이곳에서도 감기는 컨디션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빼고는 딱히 치료법이 없다.
그러니 이 약초들을 통한 민간요법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리바리 약초들을 싸서 가져왔다는 것을 안 브리튼의 눈망울이 감동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부인…….”
“감동은…….”
나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말을 끊었다.
푸른 눈동자가 옅게 흔들렸다.
“쾌차하는 걸로 보답해 주세요.”
씨익. 내가 브리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의 창백한 입가에도 아주 천천히, 미소가 고였다.
“그럼 이만 저는 돌아가 볼게요. 이것들만 전해 주러 온 거예요.”
돌아서는 내 뒤에, 브리튼의 목소리가 들렸다.
“콜록, 저는 부인께서…… 저를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줄 알아 고민했습니다.”
조금 고개를 숙인 그의 볼이 붉었다.
열 때문에 그런 것인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더욱 그래 보이는 것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제가요?”
“네.”
푸른 눈동자 속에 내가 맺혀 있었다.
“부인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나 하는 생각에요……. 저를 밀어내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리가요.”
내 가벼운 부정에 브리튼의 눈망울이 다시 흔들렸다.
“그냥 제가…….”
브리튼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낯을 가릴 뿐이에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는요.”
나는 지금, 브리튼은 꽤 좋은 아이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를 대하는 브리튼은 언제나 친절했고, 늘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었으니까.
그리고 나를 지켜 주려 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니, 그럴 필요 없어요. 황태자 전하께서는 그러지 않아도 자체만으로 멋진 분이신 걸요.”
브리튼이 잔잔히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이제 진짜 가 볼게요. 쉬어요, 황태자 전하!”
* * *
황궁 정원 안.
“금괴 두 상자와 은괴 스물여덟 상자, 마석 서른 바구니……. 이것이 그대가 내게 바치는 뇌물의 전부인가?”
파르메스의 말에 마체르트 공작이 움찔 몸을 떨었다.
고고한 아슬렛 황가의 황제는 턱을 조금 치켜든 채 마체르트 공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뇌…… 뇌물이라니요, 폐하. 제가 감히 황제 폐하께 어떻게 그런 것을 드리겠습니까. 단지, 저번의 무례에 대한 아주 작은 사죄의 표시일 뿐입니다.”
“공작의 딸에 대한 조치를 풀어 달라고 찾아온 것은 아니고?”
파르메스의 직설에 마체르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릴 뿐이었다.
황제는 돌려서 말하는 법을 모르는 사내였다.
이것으로 완전히 황제의 마음을 풀 자신은 없었더라도, 이렇게 불통일 줄이야.
그날의 일은 단순히 라리엘의 황궁 출입 금지령 이상의 여파가 있었다.
마체르트가에 황제의 미움을 받는 식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마체르트의 명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대가를 요하지 않는 성의의 표시라고 하니 잘 받도록 하지.”
황제는 파르메스의 속내를 무시하면서도 그것을 챙겨 가는 것은 잊지 않았다.
끄응, 나오지 않은 신음이 마체르트 공작의 입 안에 맴돌았다.
“폐하, 마일라 아가씨께서 드셨습니다.”
“마침 잘되었군. 어서 들라고 하거라.”
갑자기 들려온 마일라의 성에 마체르트는 곧장 눈썹을 찌푸렸다.
겨우 독대 시간을 잡았는데, 그 눈엣가시 같은 마일라가의 계집애가 찾아왔다니.
라리엘 일의 원인이 된 그 애가 말이다.
잠시 후 나타난 조그마한 체구의 아리넬이 황제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황제 폐하.”
“그래, 아리넬. 어서 오렴.”
하녀가 급히 의자를 빼 주자 아리넬이 그곳에 앉았다.
높은 의자라 의자에 엉덩이가 닿자 발이 살짝 뜬 아리넬은 마체르트 공작을 보면서도 싱긋 웃었다.
“공작 전하도 안녕하세요!”
‘제기랄…….’
이 계집애의 앞에서는 황제에게 라리엘의 황궁 출입 금지 조치에 대해 더 언급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마체르트 공작인 자신이 이 일로 끙끙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러잖아도 무너졌던 마체르트의 자존심이 더 엉망이 될 것이다.
“그런데 폐하, 마체르트 공작 전하와 국정을 논의하던 중이셨던 것 같은데, 제가 끼어도 괜찮은 걸까요?”
‘괜찮을 리가 없잖아! 이 눈치 없는 꼬맹이야!’
“물론이지. 이 황궁에서 아리넬이 끼지 못할 곳은 없단다.”
마체르트 공작 내면의 소리와는 정반대의 대답.
어쩜 마일라가의 여자아이에게는 이리도 다른 태도일 수 있을까.
서릿발 날리는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이 꼬마에게만 밝고 따스하다. 무서울 정도로.
목소리 톤은 또 어떠한가. 이게 정녕 그 잔혹한 파르메스의 목소리가 맞긴 하단 말인가.
‘어쩌면 갈넴에서 이 꼬맹이도 함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진실일지도 모르겠군.’
아리넬이 이 자리에 온 순간부터 마체르트 공작에게는 가시방석이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가 황제에게 예를 표하고 일어나려는 때.
“그러고 보니.”
파르메스의 말이 마체르트의 발목을 잡았다.
“아리넬에게 상을 줘야겠구나. 크래뮬이 몽땅 화재로 타 버려서 파티의 마지막을 장식할 디저트가 없었던 상황에서 아리넬의 기지가 빛을 발했으니 말이야.”
“아, 별것도 아니었는데요. 뭐.”
아리넬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황제가 소녀에게 제안했다.
“소원을 말해 보렴. 아리넬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 주도록 하지.”
“정말 괜찮은데요.”
“빌어 보래도.”
소원이라는 말에 마체르트 공작의 손이 움찔했다.
순간, 아리넬이 빤한 눈으로 마체르트를 바라보았다.
“……!”
움찔. 마체르트는 고작 작은 소녀의 눈빛이 자신의 속내를 뚫어보는 것 같아 흠칫했다.
잠시 후 아리넬이 싱긋 웃었다.
“그럼 폐하. 이거,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