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8)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39)화(38/173)
39
화
정령사 협회 직원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동굴 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뿜고 있는 깊은 곳을 응시했다.
아마 그곳에 ‘여신의 숨결’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슬렛 황가 이전부터 있었던 신성한 정령석으로서, 고대 정령의 힘이 담겨 있다고 한다.
서재에서 본 아빠의 책에서도 나왔었다. 그 돌을 만지고 어떤 영감을 얻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애덤의 말로는, 아빠가 갈넴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도 동굴을 다녀가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언젠가 방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정령력을 측정해 보고 싶기도 해서 오늘 이곳에 찾아온 참이다.
아무튼 정령과 친화력이 있는 자가 돌을 만지면 돌이 빛나면서 진동하는데, 그 진동의 크기는 정령사가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졌는지 알려 주고, 그 빛의 색깔은 어떤 정령과 친화력이 있는지 알려 준다고 한다.
불의 정령은 붉은색, 물의 정령은 파란색, 땅의 정령은 녹색이며, 바람의 정령은 노란색이다.
정령사들은 대부분 하나의 정령과 친화력이 있으며 자신이 친화력을 가진 정령의 힘을 통해 자연을 움직이거나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그러나 때때로 둘, 혹은 세 정령과 친화력이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아빠인 하이젠 마체른 마일라는 무려 네 정령 모두와 친화력을 가진 정령사였으며, 돌과 공명한 순간 그 진동으로 인공 동굴이 크게 울릴 만큼 강한 힘을 가진 대정령사였다고 한다.
정령성주의 직책을 맡아 정령사들을 통솔했던 아빠가 당연하게도 정령사 협회에서도 전설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애덤에게 들어 알고 있던 나는 일부러 혼자 시험장을 찾았다.
애덤의 말로는, 아빠의 딸인 내가 오면 협회에 큰 여파가 일 것이라고 했다.
협회 사람들이 나를 보러 몰려들 것이고, 기자들이 올지도 모른다.
그럼 아마 파르메스와 다른 재상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이 곧바로 전해지게 되겠지.
나는 그렇게 시끌벅적한 것은 싫었고, 굳이 대우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평범한 차림으로 와서인지 내 이름과 성을 적었음에도 무료한 얼굴의 접수원은 별생각 없이 대충 보고 접수증을 주었다.
“오늘 응시자들은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 색을 측정하라고 안내해 두었습니다.”
“뭐, 색을 측정하지 않더라도 다들 자기가 어떤 정령에 친화력이 있는 줄은 알고 있죠. 이렇게 손에 정령의 힘을 끌어 올렸을 때, 불이면 뜨거운 느낌, 물이면 습한 느낌, 바람이면 바람결이 느껴지고, 땅이면 바닥이 들썩대니까요.”
정령사로 보이는 젊은 남자 직원이 손에 힘을 끌어 올리자 그의 손에서 타닷, 타닷, 불꽃 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저 사람은 불의 정령사인 모양이었다.
‘나는…….’
지난번 황궁 가면 무도회 때, 내가 습격자들에게 나도 모르게 내보인 그 힘은…….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정령의 힘은 맞으나 일반적인 네 정령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불처럼 뜨겁지도, 물처럼 차갑지도 않았고, 땅처럼 질지도, 바람처럼 부드럽지도 않았으니까.
이질적이면서 따스한, 그리고 그리움이 느껴지는 오묘한 힘이었다.
“어쨌든 잠재력을 측정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으니 다음 응시자를 들여보내죠.”
“알겠습니다. 어디 보자 다음은…….”
종이를 든 직원이 내 번호를 불렀다.
“72번 응시자.”
나는 앞으로 나서서 인공 동굴 안에 섰다.
인공 동굴은 ‘여신의 숨결’을 오염되게 하지 않기 위해 조성된 동굴로, 응시자들은 혼자 동굴 안에 들어가서 시험을 받게 된다.
“……아직 어린 소녀군. 몇 살이니?”
“열한 살이에요.”
아까 불꽃을 내보이며 시범을 보였던 직원이 이어서 물었다.
“부모님은 안 오시고 혼자 온 거야?”
나는 직원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쁘신 모양이로구나. 뭐, 정령사는 점점 쇠퇴하는 직업이니 이런 시험에는 관심이 없으실 만도 하지.”
그의 목소리에 씁쓸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시대에 따라 선망하는 직업이 다르듯, 알브레온 제국에도 과학의 힘이 발달하며 연금학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 외에 경제학이나, 법학, 군사학 등. 모두가 정령학보다는 더 유망한 학문이다.
지금 정령사의 과반수 이상은 정령사로 등록만 해 놓았지, 전공을 살리지 못한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 같다.
이세계판 문사철 학과라고 할까.
“내가 같이 들어가 주마. 동굴은 아이 혼자 들어가기에는 어두우니까.”
그런 판국에 그나마 이렇게 자기 전공을 살려 일하고 있는 이 직원은 대단한 축인 것 같다.
“손잡으렴. 바닥이 미끄러워.”
원래는 응시자 혼자 동굴에 들어가서 여신의 숨결을 만지고 나타난 색을 통해 자신의 정령 친화도를 확인한다. 직원들은 바깥에서 미세한 진동의 규모를 통해 그 잠재력을 측정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린아이라는 것을 고려한 듯, 그는 선뜻 같이 가 주겠다고 제안했다.
“네. 고맙습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직원의 손을 잡은 채 동굴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동굴 안은 습하고 어두웠다.
그리고 바닥에 물기가 많아 나 같은 어린애 혼자 이동하기에는 위험한 느낌이긴 했다.
문득 혼잣말 같은 푸념이 들렸다.
“그분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정령학의 인기가 식지 않았을 텐데.”
나는 직원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분이 누구예요?”
“아, 너도 들어 봤을 거다. 하이젠 마체른 마일라 후작. 위대한 대정령사셨지.”
아빠의 이름에 나는 속으로 흠칫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우리 같은 실력 없는 정령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나무 꼭대기의 열매 따는 정도지만, 대정령사이신 그분께서는 물에 잠기기 일보 직전인 마을을 구하거나, 불길을 일으켜 적들을 쫓거나, 심지어는 마른하늘에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있었다고 해.”
“정말요?”
“그래. 게다가 정령학을 깊이 연구하셨는데, 간간이 새로운 이론들을 발표하시고는 했어. 4대 정령의 상위 개념으로 다른 정령의 힘이 있다는 등의 이론 말이지.”
“다른 정령이라면…….”
“빛의 정령. 모든 정령의 원초이자 근원적인 힘을 가진 정령이라고 주장하셨지. 그리고 어딘가에는 빛의 정령과 친화도를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그 힘으로 나라를 구하거나 병을 고치거나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말끝에는 설마, 하는 뜻의 웃음이 뒤따랐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뭐, 당연히 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이론이었지만 살아 계셨더라면 더 엄청난 일들을 해내셨을 거야.”
애덤의 말대로, 아빠는 수많은 정령사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이셨던 것 같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생각을 하셨고 말이다.
“후우, 도착이네.”
한참 동안 걸어온 우리는 커다란 돌 앞에 멈추어 섰다.
‘이게 그 여신의 숨결?’
둥근 모양의 돌은 자동차 핸들 정도의 반경으로, 지지대 위에 올려진 채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눈을 얼얼하게 하는 광선의 빛은 아니었고, 오묘한 따스함을 가득 품은 빛이었다.
“어? 더 밝아졌는데?”
직원이 눈을 크게 뜨며 돌을 보았다.
“아까 확인했을 때는 이 정도로 밝지 않았었는데……. 오늘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돌은 하나의 광원처럼 환하고 큰 빛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을 본 나는, 문득 기시감에 휩싸였다.
내가 가면 무도회에서 남자들을 정령의 힘으로 쓰러트렸을 때, 내 손에서 터지던 그 빛.
그리고 갈넴에서 언젠가 구덩이에 빠져 죽을 뻔한 나를 따뜻하게 감싸 주던 그 빛.
그것들이 다 이 빛과 같은 것이라면…….
“얘야, 아무래도 측정은 다음번에 하고 그냥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다음 응시자들도 돌려보내야겠구나. 우선 이 빛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
나는 홀린 듯 돌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때.
“……너!”
나를 돌아본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괜찮니, 꼬마야?! 너 방금…… 이게 무슨 일이지?”
직원은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헉! 저도 모르겠어요…….”
그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뒤, 너무 놀라 황급히 돌에서 손을 뗐지만, 돌에서 흘러나온 빛은 내 손을 향해 마치 실처럼 이어져 흘러들고 있었다.
내 손가락과 얼굴, 몸의 모든 곳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묘한 바람에 살랑인다.
‘이 따스한 기운은 대체…….’
안도를 느끼게 하는 어떤 힘이 몸에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