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5)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4)화(5/173)
4
화
<폭군의 정부는 그만하겠습니다>의 남자 주인공은 폭군 파르메스 아슬렛이다.
그의 나이 열일곱에 연상의 부인이 아들을 낳고 죽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바로 브리튼 아슬렛이었다.
브리튼은 아버지를 닮아 매우 아름다운 용모와 소름 끼치도록 냉철한 두뇌를 가진 황태자로 묘사된다.
그런데 브리튼 아슬렛이 내 약혼자라고?
내가 원작 속 폭군의 며느리가 될 예정이라니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난 엑스트라도 못 되는 불행한 제국민1 꼬맹이 아니었냐고요.
“아저씨.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연속에 기절할 것 같았지만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브리튼의 손에서도 긴장해 꾸깃꾸깃해져 있던 내 손을 빼냈고 말이다.
“그러니까, 짐머 아저씨. 아니, 황제 폐하. 어떻게 황제 폐하가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말 정말 축하드리고요. 은발도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잘생기셨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아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는데, 내 횡설수설을 듣는 그의 입술에 미소가 고이는 것이 보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순박하고 조금은 맹해 보이던 아저씨의 느낌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말씀드릴 게 있어요. 황제 폐하께서는 더 이상 짐머 아저씨가 아니지만, 저는 여전히 아리넬 마일라인 걸요.”
내 머릿속은 혼란하기 그지없었다.
우선 여기에서 살아 나갈 수는 있는 거야? 폭군 파르메스 아슬렛이 왜 짐머 아저씨인 척한 거고, 왜 나를 여기에 데려온 거고. 설마 며느리 선언이 진심은 아니겠지? 설마 저 종이 쪼가리를 진심으로 결혼 계약서라고 생각할 리가……?
쏟아 내지 못한 질문들이 한가득이지만…….
‘내가 무해하고 아무런 욕심이 없다는 걸 강조하자.’
“제가 아저, 아니, 황제 폐하의 며느리가 되는 일은 말도 안 돼요. 그러니까…… 저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 보도록 할게요. 하하, 마차는 빌려주지 않으셔도 되니까 제가 알아서…….”
“아리넬.”
내 말을 끊은 파르메스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무거운 정적이 우리의 사이에 감돌기 시작했다.
어색하게 주위를 살피자 곁에서 나를 바라보는 브리튼의 푸른 눈동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부인…….”
뭐야, 초면부터 이 상처받은 것 같은 눈빛은?!
“그래.”
파르메스는 잠시 짚었던 미간에서 손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아리넬에게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네. 아리넬은, 이제 갈넴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란다.”
“어……. 네?”
“갈넴에 큰불이 났어. 정말 정말 유감이지만……. 그곳은 이제 쓸모없는 빈터일 뿐이야.”
쿠쿵- 하고 벼락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마을이 불탔다고?!
내가 십일 년 평생을 살아오던 마을이!!
“애덤.”
파르메스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자, 뒤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제 손을 가슴께에 올리며 대답했다.
“예, 폐하.”
익숙한 목소리, 아까 나를 데려온 납치범이었다.
“아리넬이 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라.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야 할 거야.”
짐머 아저씨가 나에게 말하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낮아진 목소리로 명령했다.
“명령 받들겠습니다.”
애덤이라고 불린 납치범 아저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수긍하고, 나는 서슬 퍼런 황제와 기사 사이의 엄숙한 분위기에 입을 뗄 수 없었다. 머리가 멍할 뿐이다.
브리튼은…… 어쩐지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옅게 미소지었다.
“……기다릴게요, 부인.”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 들어왔다.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그의 뒤에서 후광이 비추는 소년이지만, 초면인 나에 대한 이 호의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점이 싸하게 느껴진다.
“걱정 마, 아리넬. 다 잘될 거란다.”
언제 차가운 목소리로 기사에게 명령을 내렸냐는 듯이, 명랑한 목소리의 파르메스가 나를 보고 싱긋 미소 지었다.
으아아! 대체 뭐가 잘될 거란 말인가요?!
심장이 불안하게 콩콩 뛰고 있었다.
* * *
몇 시간 뒤.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엄청나게 크고 웅장한 저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택은 사람의 손을 탄 지 오래된 것처럼 조금 낡아 보였지만, 갈넴 마을 사람들이 다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으리으리하게 컸다.
“그러니까 여기가…… 제 집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아가씨.”
“제가 이것도 믿어야 해요?”
“그렇습니다, 아가씨.”
나는 내 출신을 말단 관리인 아빠와 기사 출신의 엄마 사이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애덤의 말은 내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아가씨의 부친께서는 북부 마일라 대공가의 차남이신 하이젠 마체른 마일라 후작이시며, 제국의 유일무이한 대정령사셨습니다. 모친께서는 타국 출신인데 실력만으로 황제 폐하의 전도유망한 기사가 되신 대단한 분이었지요.”
나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으며 작지만 빠른 보폭으로 애덤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내 모습을 본 애덤이 발걸음 속도를 낮추어 걷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친척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빠의 정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충격이었다.
“그리고 저는, 후작께서 떠나기 전까지 그분의 뒤를 따르는 기사였습니다. 그분께서 대공가에 계실 때부터 함께했었죠.”
“헉…….”
납치범 아저씨가 우리 아빠의 기사였다니!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곱슬기가 있는 갈색 머리에 연두색 눈동자를 가진 애덤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잘생긴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묵직한 문을 가벼운 손동작으로 열자 먼지가 날리며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안으로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고풍스러운 홀이 보였고, 양옆의 아치형 계단의 사이엔 한 남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애덤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대정령사는 제국의 정령사들 중 가장 고강한 한 분만 가질 수 있는 칭호입니다. 아가씨께서는 그러한 분의 혈통을 물려받으신 고귀하신 분이십니다.”
초상화 속 아빠의 얼굴은, 어릴 적 엄마가 설명해 주었던 얼굴과 비슷했다.
갸름한 턱과 또렷한 녹안. 그리고 부드러운 모양의 눈썹까지.
어쩐지 나와 많이 닮은 모습이었다.
오묘한 감정과 함께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왜 저는 갈넴에서 자라게 되었나요? 아빠는 왜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왜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죠? 그리고 저는 왜 다시 여기에…….”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자 애덤은 할 말이 많아보이는 듯한 눈빛으로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걸까?
초조한 마음으로 애덤의 대답을 기다리던 나는 흠칫 놀랐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어 나와 시선의 높이를 맞추었기 때문이다.
“왜 황제 폐하와 아가씨께서 갈넴에 계시게 되었는지는 차차 알게 되실 겁니다. 하지만 전부 알지 못하시더라도 단 하나는 기억하셔야 합니다. 아가씨의 아버지인 마일라 후작께서는…….”
슬프기도 하고 벅차기도 한 것 같은 감정이 그 눈동자 안에 일렁이는 것 같았다.
“제국과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은인이십니다.”
확신이 담긴 그 말에 나는 어쩐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우리 아빠가…… 파르메스의 은인이라고?
‘아무래도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아.’
“그분의 따님이신 아가씨는 그분을 따르던 모든 이들에게 소중한 분이세요. 제게도요.”
이어지는 애덤의 말. 흉악무도한 납치범인 줄로만 알았던 그의 눈빛이 따뜻한 애정을 담아 나를 향했다.
“…….”
이야기를 마친 애덤은 초상화에서 뒤를 돌아 다시 문 쪽으로 갔다.
그리고 바람에 자연스레 닫혀 있던 문을 열자,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그중 반은 하녀복을 입은 여자들이었고, 절반은 하인의 복장을 한 남자들이었다.
애덤은 내게 말했다.
“마일라 후작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대공가와의 연락이 끊어졌으나, 아가씨가 돌아오셨다고 연통을 했으니 그쪽에서도 머지않아 사람이 올 것입니다.”
“아…….”
“더불어 황제 폐하께서 마일라 후작가의 재건을 위해 고용인들을 보내셨습니다. 앞으로 아가씨와 저택을 위해 일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윗사람을 대하듯 내게 몸을 숙여 인사했다.
나는 아직도 꼬질꼬질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어린애였고,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어른들의 인사에 당황해서 맞인사를 하려 했지만 애덤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흠칫 자신을 바라보는 내게 애덤이 귀엽다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후작가의 정당한 후계자이자 소유자이십니다. 사용인들에게 고개를 숙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낯설어하는 나의 눈을 보고 애덤이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많이 혼란스러우시겠죠. 그러나 아가씨가 나아가는 모든 걸음걸음, 제가 곁에 서서 돕겠습니다.”
애덤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나는 일렁이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는 내내, 아가씨께서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애덤은 다시 시작된 마일라가의 희망에 벅찬 얼굴로 내게 말했다.
오늘 일어난 모든 일들이 꿈만 같았다.
* * *
캄캄한 밤이 찾아오고, 갈넴에 있는 우리 집 면적의 몇 배는 될 것 같은 후작가의 새 방은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침대가 어른 세 사람은 누워도 될 만큼 큰데, 이렇게 큰 침대조차 방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아.
내 작은 체구에는 운동장이나 다름없다.
나는 넓은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멀리 있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잠이 올 리가 없잖아. 누구라도 이런 일을 겪으면.”
짐머 아저씨가 내가 읽은 원작의 그 무시무시한 폭군이었다니.
그리고 돌아가신 우리 아빠는 제국의 대정령사 마일라 후작!
농촌 소녀에서부터 후작가의 후계자까지, 하루 동안에 완전히 바뀌어 버린 운명이 당황스럽지만, 어쨌건 나는 다시 방향을 찾아야 했다.
갈넴에 돌아갈 수 없다면, 이곳이 새로운…… 나의 집이니까 말이다.
애써 혼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우며 지금껏 갈고 닦은 나의 생존력을 믿고 의지를 빛내려던 때였다.
툭-
무언가가 창문을 건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내가 긴장으로 몸을 굳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 방은 3층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다 알고 지내는 사이인 시골과 달리 도시는 도둑들이 많다고 들었다.
덜컥 겁이 나 주변에 방망이 같은 것이 없는지 황급히 찾아보는데,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그리고 내 앞에 드리운 그림자의 끝을 따라 시선을 올려다보니,
“……!”
나는 굳은 듯 멈추어서서 한참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