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d as the Tyrant’s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9)
폭군의며느리로점찍혔습니다 (8)화(9/173)
8
화
애덤의 손이라고 생각하고 반사적으로 그 위에 손을 올렸는데……. 나는 손이 닿고 나서야 그 손이 애덤의 손보다 조그맣고 부드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발을 뗀 나는 멈칫했지만 손의 주인 쪽으로 몸이 기우뚱했고,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브리튼!’
아름다운 은발과 또렷한 눈매 속 푸른 눈동자, 화보집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미소년의 정석 브리튼 아슬렛과 눈이 마주친 순간 가슴이 덜컹였다.
나는 중심을 잃은 채 몸이 쏠렸고 브리튼은 살짝 비틀거렸지만 곧바로 내 몸을 지탱해 주었다.
나는 브리튼의 손을 잡고 살짝 안긴 채,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수 초의 시간이 흐르고 브리튼의 입가에 밝은 미소가 고였다.
“잡았습니다, 부인.”
다정하고 달콤한 미성이 귓속으로 흘러들었다.
“열심히 쫓아온 보람이 있네요.”
나는 당황한 눈으로 브리튼을 바라보았다.
브리튼은 아무렇지 않게 감싸고 있는 나의 허리를 조금 올려, 내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부인과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고 싶었는데, 오늘도 가 버리셔서…….”
그리고 조금 서운한 듯한 음조를 섞어 말을 이었다.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따라와 버렸어요.”
이윽고 마주친 브리튼의 아름다운 사파이어색 눈동자가 영롱하게 반짝였다.
나는 소년의 미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하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 * *
후작가의 응접실, 적응되지 않은 큰 규모의 이곳에서 손님을 대접해 보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한 채로 나는 브리튼을 바라보았다.
브리튼은 찻잔을 들고 얼그레이의 향을 음미하다가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의 입가에 다시 옅은 미소가 스쳐 간다.
“다음에는 차와 어울리는 달콤한 디저트를 가져오도록 할게요.”
잠깐 동안 브리튼을 대하며 느낀 것은, 그러니까…….
장차 모든 여자들이 원하는 백마 탄 왕자님의 정석이 될 거라는 것이다.
지성과 아름다운 외모, 고귀한 인성까지 결합된 될성부른, 아니, 될 것이 확실한 유니콘 같은 남자의 싹!
신분부터 금수저를 넘어선 다이아몬드 수저, 황태자이기도 하고 말이다.
‘역시 너무 부담스럽다고.’
빙의 전, 현대에서 살 때 어쩌다 보니 선망받는 남자 직원과 사내 커플이 된 적 있었는데, 설명하기 힘든 고초를 겪었었다.
그 이후로 나와 급이 맞지 않는 남자와의 연애는 피했었고, 지금도 그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
파르메스를 설득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브리튼을 설득할 수밖에 없어!
“저, 황태자 전하.”
“네, 부인.”
나는 본론을 꺼내기 위해 주먹을 꽉 쥐고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황태자 전하께서는 저희의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연신 내게 생글거리는 표정만 짓는 브리튼도 뭔가 불만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졸지에 시골에서 올라온 여자애와 결혼이라니.
특히 이런 둘만의 자리에서는 진심을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그의 대답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사실은 너무 기대되어서…….”
소년의 입술이 달싹이며 수줍은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바깥을 거닐고는 합니다.”
뭐, 뭐어어?!
예상치도 못한 브리튼의 반응에, 나는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브리튼은 아랑곳하지 않고, 즐거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결혼 연령이 될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 야속하지만, 그전에는 이렇게 부인과 자주 만나서 함께하고 싶습니다.”
“…….”
“부인도 같은 생각이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원하는 대답은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자꾸 속이 간지러울까.
이 애, 너무 귀…… 귀여……. 안 돼!
예쁜 얼굴로 생글거리며 혼을 빼놓는 브리튼으로부터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저희는, 황궁에서 처음 만난 거잖아요.”
“……네, 부인.”
잠깐 뜸을 들이듯 몇 초의 시간이 지나고, 브리튼이 화사하게 대답했다.
응? 방금 분위기가 살짝 이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말을 이었다.
“황태자 전하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정략혼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얼굴도 보지 못했던 여자애와 결혼하라고 통보받았잖아요.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우리가 대책을 함께 세운다면 짐머 아저씨, 아니, 황제 폐하께서도…….”
“부인께서는…….”
브리튼의 푸른 눈동자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저와의 결혼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내게 생글생글 웃던 이 소년이, 내가 무슨 말을 하건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눈썹 끝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얼굴로 이런 표정은 반칙이다.
내 대답을 기다리던 브리튼이 곧이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다소 처연하기까지 했다.
“부인께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시면…….”
나는 브리튼의 말에 손을 멈칫했다.
그래, 가슴이 따끔거리기는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있는 것 같다.
모름지기 제국의 황태자인데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리 없다.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엥?
내 기대와는 반대로 흘러간 브리튼의 목소리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해맑은 미소.
미소년이 웃음을 지으니 그의 뒤에서 꽃이 수만 송이 피어나는 것 같다.
브리튼은 당황한 표정의 내게 살짝 고개를 숙여 얼굴을 붙인 뒤, 수줍은 듯 말을 덧붙였다.
“저는 부인이 정말…… 좋거든요.”
나직한 그 목소리에,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다정한 듯 다정하지만은 않은 어린 소년의 목소리는 약간은 파르메스를 닮아 있었다.
* * *
“오늘도 십 년은 늙어 버린 것 같아요.”
한숨을 푹 내쉬는 나를, 애덤은 다정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고작 십 년 남짓 사셨는데 그러면 안 되죠. 오늘은 아가씨께서 좋아하시는 피칸 초코 케이크를 준비하라고 일러야겠군요.”
“음, 좋아요.”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내 성격을 애덤은 벌써 잘 파악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마스가 안 오려나?’
이 저택에 들어온 지 일주일째, 마스는 하루걸러 하루 텀으로 밤마다 내게 찾아왔다.
말을 할 수 없어서 말동무가 되어 주지는 못했지만, 소년은 내 하소연을 꼬박꼬박 들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낯선 일상에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저, 애덤.”
“말씀하십시오, 아가씨.”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요.”
최근 나에게 일어난 일들은 죄다 믿지 못할 일들뿐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아는 나에게, 내가 피해야 할 일은 명확했으며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내게 필요한 것은.
“저, 후작가를 재건하고 그 명성을 회복할 거예요.”
작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나는 이 년 뒤 도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길거리에 널려 있는 시체들과 바싹 말라 있는 빈민들의 얼굴. 그중에 하나가 마스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갈넴 마을 사람들도 그중 몇이 될 수 있겠지.
“있잖아요, 황태자 전하. 제가 나라의 미래에 대해 아주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는데, 그게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정도의 것이라면…… 사람들이 제 말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일라 후작께서는 인망이 깊으셨다고 합니다. 대정령사인 그가 하는 말을 쉬이 듣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죠. 결국 말의 영향력은 얼마나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인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 사람인가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그래. 막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애가 흉년이 온다고 경고해 보았자 아무도 들어 줄 리가 없어.
후작가의 후계자이자 황태자의 약혼녀, 둘 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지위가 아니다.
‘브리튼의 말로는 수년 치의 식량을 마련할 만큼의 엄청난 예산 지출을 위해서는 황제의 인가와 네 재상들의 동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지.’
폭군이라 불리는 파르메스에게는 네 재상이라는 단단한 지지 기반이 있다.
궁내부, 경제부, 군사부, 외교부.
그들은 황제의 바로 아래에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한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아빠의 후계자로서 바로 서야겠지.
그리고 꼭 이 년 뒤의 흉년을 막는다!
휴고브린트에 있는 내 돈도 꼭 지킬 거야!
“……아가씨, 참으로 감동스럽습니다.”
애덤은 내 의지에 감동받은 듯 조금 젖은 눈동자를 일렁였다.
“아가씨가 이리 장하게 성장하셨다는 것을 알면 마일라 후작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잠시 나를 보던 애덤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께서 조금 적응하신 뒤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아가씨의 후작가 재건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신 듯하니 지금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애덤의 눈빛이 더욱 진중해졌다.
“휴고브린트의 신탁 외에도 후작께서 남기신 자산이 있습니다. 이 자산은 아가씨께서 성년이 되기 이전에도 찾으실 수 있고요.”
자산이라는 말에 나는 눈을 반짝였다.
“그게 뭔가요?”
“잠시 저를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애덤의 말에 나는 그를 종종거리며 따라갔다.
그는 아빠의 서재를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서재의 끝, 오른쪽 벽에 붙어서 내게 말했다.
“이 손자국에 손바닥을 대 주십시오.”
벽에 커다란 손바닥 모양의 얼룩이 있었다.
나는 작은 손바닥을 펴 그곳에 대었고, 잠시 후 벽의 일부가 미닫이문처럼 열리더니 작은 금고 하나가 보였다.
“이건…….”
금고에는 비밀번호 대신 동그란 모양, 세모 모양, 네모 모양의 홈이 있었는데, 아마 그곳에 무언가를 끼워 넣어야 열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금고를 골똘히 바라보았다.
“이 안에 든 게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