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50
제124장 인연을 담아 (5)
완벽한 혼란.
맹주 이준호는 하나둘 나타나 막아서는 이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아이는 남궁세가의 적손이 아닌가. 백리세가의 아이도, 제갈가의 아이도. 모용가의 아이도.”
뿐만이 아니었다.
“저, 맹주.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운이. 저 녀석이 왜 저런 곳에….”
“옥랑아! 돌아오거라!”
어른들의 싸움에 난입한 자파의 제자들을 보며, 각자 가문과 문파의 어른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손을 쓰자니, 위험하기 짝이 없고, 두고 보자니, 무림맹의 명령 체계를 위협하는 짓이다.
“당 가주. 그대가 나서 저들을 제압해 줄 수 없소?”
말을 했지만, 사박사박 장내를 걸어 나오는 소녀를 보며 당군악은 대뜸 물었다.
“역시 네 결정은 그쪽이냐?”
“네. 제가 한 고집 하잖아요?”
“흐흐. 그렇지. 나를 닮아서 그런지 똑똑하구나.”
당애희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눈, 당군악이 팔짱을 풀었다.
“미안하오. 맹주. 나는 팔불출이라오. 금쪽같은 딸이 바란다면 어쩔 수 없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툭.
발치에 뒹구는 것은 쪼개진 당가은패다. 가문의 은인에게 하사한다는 물건.
“?”
주변에 있던 이들이 의아함을 떠올렸을 때.
“쿨럭!”
“컥!”
독왕 당군악의 주변에 있던 정사의 무인들이 목을 부여잡고 고꾸라졌다.
“!”
파라락!
두 팔을 펼쳐 올리자, 스르륵 저절로 품속에서 날아오른 암기가, 허공에서 거대한 꽃봉오리처럼 뭉치며, 가공할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만천화우….”
일수에 만 개의 암기를 뿌려대는 사천당가주만의 독문비기.
“딸아. 그놈. 꽉 잡아라. 뒤는 아비에게 맡기고.”
짜우!
그가 두 손을 맞잡자, 허공에 둥실둥실 떠다니던 꽃 무리가 비산하며, 사람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
“맙소사.”
금상첨화는 공손여가 백인대장을 이끌고 가담하며 최악으로 치달았다.
“여야! 넌 또 왜 끼어드느냐!”
“친해져 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힘들 때 손을 내밀어야 친해질 수 있을 테지요.”
“아둔한 녀석아! 상황 파악을 좀 해라!”
‘완전 개판이군.’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위기감을 느낀 것은 철무혼이었다.
“놈을 죽여야 한다.”
결국 감추었던 마기를 풀어내며, 철무혼이 본격적으로 가담했다.
나아가 사군들이 움직이자, 일개 무인들이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조용히 모두. 제압하도록.”
은밀히 맹주를 지키던 하웅을 비롯한 백의정의전의 무인들과, 여러 명숙들이 가담하자, 판세는 급속히 기울었다.
“헉. 헉.”
“하악. 학.”
각자 지친 채 죽기 살기로 검을 휘둘렀지만, 한 줌도 채 되지 않은 이들로 이곳에 모인 고수들을 막아서는 것은 무리였다.
고작 한식경.
그러나, 이 잠깐의 시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헉헉.”
남궁윤호는 후들거리는 두 팔로 또다시 일합거도의 기수식을 취했다.
하지만, 철벽은 금이 가고 찢어졌다.
무복 위에는 수많은 검상이 남아, 핏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고, 안색은 당장에 쓰러질 것처럼 창백했다.
“후아. 후아… 끝도 없네요.”
백리설도 마찬가지.
기세 좋게 막아설 수는 있었으나, 최종 결전을 위해 꼽힌 이들은 강호의 초강자들.
지금까지 그녀가 쓰러트리고 밀어낸 숫자가 서른이 넘는 것만 해도 상당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군.”
제갈탄의 공력이 바닥나며, 교관을 감싸고 있던 진법이 흩어졌으며.
“…이제는 한계예요.”
피막이 찢어진 모용소혜는 더 이상 날지 못했다.
“제길. 하나같이 단단한 놈들 뿐이야.”
언호승 또한, 주저앉았고.
“누님. 죽겠소.”
“아버지. 독과 암기가 바닥이 났어요.”
당애희와 당가십수도 빈 암기 주머니를 땅에 패대기치며, 독기만 남아있었다.
애초에 병법자에 불가한 묵가의 사람들은 진작에 제압당했다.
백리세가의 무인들도, 진주언가의 무인들도, 뇌호문의 무인들도.
고군분투했지만, 얻은 것은 고작 짧은 수준의 대치였을 뿐.
변한 것은 없었다.
“흐흐. 이렇게 무너질 것을 몰랐더냐? 끝까지 번거롭게 하더니.”
철무혼은 사로잡힌 이들을 돌아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맹주. 이들을 내게 넘기시오. 그렇다면, 혼란을 일으킨 죄는 묻지 않겠소.”
“지금 맹의 사람들을 내어 달라는 건가? 그럴 수 없네.”
“어차피 무림맹을 배신한 자들이 아니오. 나는 내 등 뒤를 찌른 놈을 용서하지 않소. 이들 또한 마찬가지. 벌을 받아야 하겠지.”
“무슨 개소리를….”
말을 하던 이준호는 갑자기 기세가 바뀐 상대의 눈빛에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뭐지. 이 무거운 압박감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기세를 드러낸 철무혼은 일전에 손속을 겨루었던 수준과는 아예 격을 달리하고 있었다.
흡사.
‘사람이 완벽히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다혈질에 격정적인 눈빛 안에는 차가운 교활함이 빛나고 있었고, 검은 동공은 무저갱을 바라보는 것처럼 심후해, 바라보는 것만으로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아낸다.
“내 말을 거절하겠다는 건가? 이것 참 애석하군.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취하겠다니….”
“그대는 누구인가?”
문득 그렇게 물은 것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물어보고도 이내 그는 자책하고 말았다. 천하의 철사련주를 향해 질문을 해 무엇을 바랬단 말인가.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달랐으니.
“눈치가 빠르군. 뭐, 너무 늦은 감은 있지만 말이야.”
“……!”
“사군들은 나를 따르라. 경천신마를 죽이고, 나아가 맹주를 죽이겠다.”
갑작스러운 선전포고.
하지만, 맹주 이준호는 그것보다, 한층 더 선명해지는 불길한 기운에 긴장했다.
익히 느껴본 적이 있는 역겨운 기운이었으니까.
‘왕묘에서 느껴지던 사기. 어째서 철무혼에게서 망각묘수가 풍기던 악기가 느껴진단 말인가.’
설마 하는 생각에 심장이 뚝 떨어진 순간, 철무혼이 움직였다.
“우선. 이놈부터 끝장을 내지.”
잔상과 함께 사라진 철무혼의 모습이, 경천신마를 향해 쏘아졌다.
“멈춰!”
바람처럼 움직인 그를 막아 세운 것은 능풍운이었다.
검 끝에 매화가 연거푸 피어오르며, 그의 발걸음을 막아섰지만.
“끌끌.”
간단히 휘저은 손길에 매화가 무참히 찢겨나갔다.
“능 교관님!”
뒤이어 아미파의 금정도.
“이익! 이판사판이다!”
“가요! 언니!”
“여인들의 뒤에 숨어 있을 수는 없지.”
모용선야도, 여매홍도, 신공표와 다른 교관들도, 어떻게든 철무혼을 막아서려 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날파리들이 앵앵대는군.”
가공한 기운이 일렁이는 권격에 튕겨 나가 이십 장 너머로 처박히는 모습은 가공하다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한꺼번에 지워주지.”
손을 뻗자, 허공에서 시커먼 마기가 안개처럼 뭉치며, 암광.
콰콰콰쾅!
막아서던 교관들을 일제히 날려버렸다.
“이런.”
비죽. 콧날을 찌르는 검을 상체를 기울여 피하고.
퍽퍽퍽!
백룡검객 백리정순을 걷어차고, 주먹을 밀고 들어오는 언가주의 머리를 잡아 바닥에 처박으며, 풍객의 쇄골을 내리쳐 침묵시키고는, 빛살 같은 속도로 서 있는 이들을 두들겼다.
“합!”
순식간에 접근한 철무혼에, 발작적으로 진설향이 검기를 뿌렸다.
파파파팟!
연거푸 이어지는 검법을 뒷짐 지며 피하는 철무혼의 모습은 표설천봉공을 펼치는 진설향을 희롱하는 것 같았다.
“생경하나, 아름다운 검법이로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빙백의 무공이구나.”
“잇!”
“저런.”
뒷짐을 진 채, 한 걸음 앞서 검을 피하고, 등 뒤를 점해 속삭이는 철무혼의 목소리에 음심이 일었다.
“너를 가진다면, 평생 보지 못한 새로운 것도, 감정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지?”
“크윽!”
발작적으로 진설향이 신형을 회전하며, 낮게 주저앉아 등 뒤를 찔렀지만, 이미 철무혼은 다시 그녀의 앞으로 돌아온 채였다.
“천의무봉의 무공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공력이 부족하구나. 심후한 검법에 힘이 부족해. 반쪽의 검법이로다.”
진설향은 목숨마저 내던질 듯 방어를 도외시하고 검격을 날렸지만, 그녀의 필사적인 검격은 결국 철무혼에 닿지 않았다.
“쯧쯧.”
구경할 것은 다 구경했다는 듯, 철무혼이 손날을 세워, 검신을 때렸다.
“악!”
단순히 검신을 두들긴 것만으로 진탕되는 내력에 피를 토하며, 진설향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느냐?”
“…교관님을 데려갈 수 없어.”
“흐흐. 반쪽의 실력에 비해 의지 하나는 뜨겁기 짝이 없군.”
비릿한 비소를 지은 철무혼이 본격적으로 기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기운은.”
“어떻게 이리 사특한 기운을….”
비로소 숨겨둔 기력을 해방한 압도적인 존재감에 맹주 이준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착각이 아니었던가?”
우드득. 우드득. 철무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밀가루처럼 꾸물거리더니 다시 뭉쳤다.
실로 경악스러운 모습에 봉우리에 모인 군웅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결국 새로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망각묘수.”
누군가 뇌까렸다.
요사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나아가 기가 질릴 정도로 어둡고, 잔혹한 존재감.
그는 왕묘에서 자신의 동료들을 도륙하던 존재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려, 련주님.”
변화를 본 철사련의 무인들마저 경악에 차 말을 더듬었지만.
“나를 따르는 자는 살 것이고, 거스르는 자는 한 줌 핏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워낙 가공할 기세에 사군들은 물론, 사파인들마저 동공을 떨며 주저앉고 말았다.
“제안이 아니라. 권고다. 맹주. 이 아이들을 놓고 꺼져라.”
“…설마 경천신마는.”
“마지막까지 꽤 나를 즐겁게 해주더군. 뭐, 그래봐야 내 손바닥 안이지만. 노력이 가상하니 곧 편하게 해줄 셈이네.”
“그대가 모두를 속였구려.”
“흐흐. 모두가 속았지. 너무나도 쉽게.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야!”
경악과 당혹, 불신과 패배감이 팽배한 장내를 돌아보며,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귀찮은 것도 사라졌으니, 원하는 것을 취하면 될 뿐. 깨지고 상한 너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오직 하나.
검지를 세우며 그가 말했다.
“영원히 존재해온 망천의 뜻에 따라 머리를 조아리는 것.”
거절한다면, 이 자리에서 모두 죽여주지.
화아아악-.
폭사하듯 철무혼, 아니 구천구백구십구 번째 회귀자에게서 펼쳐진 공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억겁에 가까운 삶을 살아오며 쌓아 온 공력은 감히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고작 이 정도인가? 그래도 여기의 모두를 죽이기는 어렵지 않겠군.”
군웅들이 빽빽하게 운집한 망혼봉의 봉우리 위로 거대한 사기가 뭉치며, 암운이 드리웠다.
“맙소사.”
인간의 힘으로, 천기를 움직여 천변만화의 이적을 만들어내자, 감히 대적할 마음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퍼져나갔다.
– 후후. 왕묘가 무엇인 줄 아는가?
거대한 봉우리가 보이지도 않는 의지에 깎여나가고 있었다.
사각. 사각.
수백, 수천 년을 자리해온 암석이, 절벽이, 손길을 따라 잘려 나가고, 다듬어지며, 거대한 제단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나의 삶을 이어 나가게 해줄 제물들의 안락처.
왕묘개문(王墓開門).
– 이곳에 왕묘를 열어, 너희들을 내 힘의 밑거름으로 만들리라.
그제야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우쳤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무덤으로 만들려고 하는구나.”
거대한 산맥이 통째로 제단으로 변하는 모습에, 경악하던 이들은, 공기가 바뀌며, 하나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맹주! 공력이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쿨럭. 우리 모두를 인신공양의 제물로 쓰려는 건가…?”
허나, 본색을 드러낸 구천구백구십구 번째의 망각묘수를 향해 맹주 이준호는 이를 갈아붙였다.
진기가 빨려 나가는 것을 느낀 이들은, 애써 결착을 보려 했지만, 털썩 쓰러지는 형제를, 사제를, 동료를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몇 번이고 반복되던 일이다. 너희들의 얕은 희망은 언제나 기대를 배반하게 될 운명이지.”
“고작 다치고 상한 너희들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다시 멸망을 반복하마.”
뇌까린 그가 초운휘를 향해 손을 뻗을 때.
번쩍!
손끝에서 쏘아낸 검은 낙뢰를 향해 뛰어드는 이가 있었으니.
“교관님!”
일사도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무시한 채,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검지 위로 위험한 기운이 번쩍이자, 진설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죽어어어어어!”
하나둘 쓰러지는 사람들의 생기를 흡수해 완벽한 신으로 탈바꿈해가던 일사도는 웃었다.
“여아야. 너의 검으로는 나를 결코 해할 수 없다.”
단정하던 그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아니.”
화려하지만 매서움이 부족한 검술. 고작 인간의 범주에 아른거리는 예기. 위기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던 검법이 한순간에 진화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게 한 것은 그조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검에 실리는 기세다.
‘이 찰나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놀랍긴 하군. 변수라더니, 자질은 충분하군. 허나.’
하지만, 그는 곧 대경하고 말았으니.
사라락. 사라락.
그녀의 검에서 서리가 일어나더니, 검 끝으로부터 마치 눈보라가 몰아치듯 확 한기가 폭사하기 시작한 탓이다.
“!”
대경한 일사도가 손을 들어 막고 탁한 기함을 삼키며 밀려났다.
“…….”
손아귀가 찢어져 있다.
‘고작 방년도 안된 소녀의 일격에 육신이 충격을 받았다고?’
경악에 떨리는 시선 속에서.
“하악. 하악.”
자신이 펼쳐낸 검격이 스스로도 놀라운지 무너져 내리는 소녀가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에는.
새하얀 백웅의 가죽을 동여맨 냉막한 중년인이 그녀의 등 뒤에 손을 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