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51
제125장 종 (終)
“기억하거라. 북해빙공의 한기는 천지를 얼리는 기운이니라. 어떤 것도 북풍 아래 자유로울 수 없다.”
뒤에 날렵하게 날아내리는 흰 가죽을 두른 사내들.
“북해빙궁!”
그들이 나타난 순간 어느새 하늘에서는 거대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북해빙공? 익숙하다 싶더니 북해의 무공이었나?”
갑작스러운 북해빙궁의 참전은 예상치 못한 것이기는 했다.
“내상을 다스려라. 공기가 음험하구나. 사기를 몰아내야 한다.”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설태백의 등 뒤로 사뿐히 두 사람이 뛰어 내렸다.
“오랜만이야, 동생.”
소궁주 설소백과.
“괜찮으세요, 남궁 소협?”
언제나 도도하게 웃는 북해의 공주, 설악약도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천추의 한이 될 뻔하였습니다.”
일영과 함께 백궁빙영대와 북해무사들이 거대한 진군을 시작하고 있었다.
“쳇. 생각지도 못한 방해꾼이군. 명천광명전이 진법으로 이따위 것을 숨기고 있었나? 허나, 이상하구나. 북해에서 꿈쩍도 않던 너희들이 중원으로 온 것은 구천구백구십구 번의 삶 중에서도 채 아흔 번이 되지 못했거늘.”
하지만, 괘념치 않는다.
“고작 한 무리가 더해진들, 무슨 차이가 있으랴.”
이미 제단이 완성되었고, 기력이 빠져나가는 정파의 고수들은, 결코 자신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에게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명을 따르는 철사련의 수하들이 있지 않은가.
한 무리의 적이 더해진 것으로는 전황을 결코 뒤바꿀 수 없다 믿었다.
“과연 그럴까?”
“뭐라?”
설태백 궁주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능선 아래로 거대한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 저들은… 헉!”
“야수궁이다! 야수궁에서 나왔어!”
“남만야수궁이다!”
—!
거대한 코끼리를 타고, 더러는 맹수를 타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밀림이 달려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야수궁이라니. 그들은 구천구백구십구 번의 삶에서도 거의….”
허나, 호탕하게 흑상을 타고 끼루루-! 전투의 함성을 내지르는 것은 분명 남만야수궁의 궁주였다.
그것도, 거대한 대수림을 지켜야 할 이들이 모조리 몰려온 것처럼 끝도 알 수 없을 대군이 까맣게 몰려들고 있었다.
“하하하! 대전사는 어디 있는가!”
“대수림의 은인이 위험에 처했다! 모든 전사들은 두려워 말고 싸워라!”
“정화된 숲의 가호가 있을지니!”
그들이 끝이 아니었다.
“해남검각의 모두는 듣거라! 사조님의 은인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워라!”
해감검각의 검객들도 야수대를 따라 질주한다.
“큭. 아무리 저들이 가세한다고 해도….”
생각지도 못한 세외 전력의 등장에, 헝클어지는 사고를 이어가고 있을 때.
쾅!
처형대 너머에서 굉음이 일며, 거대한 광룡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누군가 입을 쩍 벌리며 외쳤다.
“뇌옥이 뚫렸습니다!”
“염룡출현? 설마 마길상 총교두가….”
“마인들이 풀려났습니다!”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린 곳에는, 취걸개와 함께 붉은색 문사복을 입고 철선을 든 이가 좌우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봉우리를 파괴해라! 제단을 부숴야 한다!”
그의 외침에, 염룡이, 마기가, 모두가, 제단으로 화해가는 봉우리를 향해 가진바 전력을 쏟아 넣기 시작했다.
펑! 펑!
제단이 파괴되어가자, 위기감을 느낀 일사도가 이를 갈아붙였다.
“혈서생! 진세현!”
잠시 잊고 있었던 존재의 등장에, 당황하는 사이.
“아아악!”
“흐흐-. 안녕 잘 있었어?”
“곡주. 뒤를 맡기겠습니다.”
한쪽에서 소리 없이 나타난 철극이 철사련의 무인들을 끌어당기고, 뒤이어 나타난 살수들이 매섭게 등판을 찌르고 후비며, 수하들을 괴멸하기 시작했다.
“인형들아. 서로 죽여라.”
특히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지, 철사련의 무인 가운데로 뛰어든 놈은 은사를 뿌려 수하들을 멋대로 조종하기 시작했다.
푹푹.
촤악! 촥!
그가 춤추자 뭉쳐 있던 철사련의 고수들이 우수수 쓰러졌고.
“어디가아-. 숨박꼭질-?”
철극을 촉수처럼 흐느적거리며, 벼를 베듯 사람 목을 취하고 있었으니, 한순간에 방진이 무너지며 비명이 난무했다.
“어서 달려라!”
“지존께서 위험하시다!”
“와아아! 만마앙복!”
뒤이어 나타난 마교의 무인들은, 초절한 신법으로 마치 철새처럼 달리며, 장내로 뛰어들고 있었다.
“모두 손속에 여유를 두지 마세요!”
퍽!
가장 먼저 적혈사검의 머리를 깨부수며 등장한 것은 냉철한 외모를 가진 여인이었으니.
“일월신녀!”
또한, 그녀의 자매인 매난국주의 등장이었다. 몇 번째 삶에서 꽤 곤란을 주었던 이들인가.
일사도가 어금니를 빠드득 부딪쳤다.
“매난국죽이 움직였구나. 신녀가 움직였어! 혈서생 놈. 잠자코 있더니 이런 수를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상하고 깨진 무림맹 하나라면 모르되, 마도와 세외 삼세(三勢)의 군세까지 더해지자, 마치 온 세상이 적으로 뒤덮인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제단으로 변모하던 봉우리의 파손이었다.
쾅! 콰앙!
벽력탄을 던지며, 여기저기 폭발이 일어나자, 제단으로 변화하던 봉우리가 밑동부터 기우뚱거리며, 무너질 것 같이 흔들렸다.
“쳇.”
뚝 끊긴 제단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기운에, 일사도는 일보후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물러난다. 제단마저 무너져서야, 완벽을 되찾지 못한 지금의 몸으로 이들 모두를 상대할 수가 없다.’
하지만 소득은 있었다.
‘이해 불가능한 환생자. 초운휘를 거두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오직 녀석만이 모든 변수와, 운명을 뒤트는 축이 될 수 있으니까.
왈칵!
하지만, 그가 시선을 돌렸을 때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놈의 배에 오도카니 올라서.
냐오오오!
냐옿오옹!
나른한 울음을 울고 있었다.
“흐, 흑백쌍묘?”
과거의 기억에서 독과 신약을 찾는데 걸출한 영물임을 떠올린 일사도가 다급히 손을 뻗으려는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만 고양이 없지?”
“!”
잔뜩 지치고, 나른하지만, 몹시 귀에 익숙한 목소리였다.
“난 있는데.”
***
으적. 으적.
대자로 하늘을 보고 누운 놈은 뭔가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동시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오는 생기에, 일사도의 뇌리에 경종이 울렸다.
‘위험하다!’
뭔가 수작을 부리기 전에 손을 쓰려했지만, 신형을 튕기기도 전에, 죽어가던 놈이 확 일어났다.
“X라 쓰네. 북해의 천년빙정에, 대수림의 만년설삼이라니. 다 좋은데, 너무 맛이 없잖아.”
히죽. 웃으며 일어나는 놈을 보며, 사방에서 환희가 터져 나왔다.
“교관님!”
“초 교관!”
울먹이는 관도와 교관들을 보며, 씩 웃어 보인 놈이 읏차! 하며 왈칵 몸을 튕겨 일어났다.
“흐. X발. 진짜 죽었다 깨어났네. 인생 진짜.”
짜증 나는 웃음을 한가득 매달고서. 오히려, 자신을 보며 벙긋 입을 벌리는 이들을 하나하나 시선에 두고는 히죽 웃는다.
“빌어먹을 운빨, 지랄 맞은 강호. 될 대로 되라고 생각했는데, 또 이런 감동이 있네.”
“초! 운! 휘!”
“아. 넌 친구가 없어서 모르나?”
너스레를 떨며 일어나는 그의 곁으로, 묘진문주 묘광이 헐떡이며 다가와 하하 웃었다.
“늦지 않았군요.”
“딱 좋을 때 왔어.”
“천만다행입니다. 찾는데 정말 고생했습니다. 까딱하면 늦을 뻔했지요.”
“수고했어. 그런데, 어쩌나. 고용주로서 네게 알려줄 불행한 소식이 있어.”
“그게 무엇이십니까?”
“나 X 됐다. 정체도 다 까발려지고, 무림공적에, 관부에서 현상금까지 내건 모양이야. 집도 절도 없이 도망 다니게 생겼네. 나랑 친하게 지내면 위험해.”
“후후. 그럴 줄 알고, 요란 루주께서 준비하신 것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저 멀리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북과 꽹과리를 치며, 덩실덩실 춤추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노래하고 있었다.
“만 리 길은 필히 고독한 법이라지. (萬里行必孤).”
“고독하거들랑 사립문을 열어두시오. (孤獨施開扉).”
“그리고 객을 위한 한잔 술을 마련해두고 기다리시오. (一酒與望客).”
북이나 꽹과리. 그것이 없는 이들은 국자나 돌멩이를 부딪쳐 소리 내며,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다.
“고독한 나그네가 가장 먼저 울음을 들어줄 터이니. (孤客最先聞).”
“고독한 나그네가 가장 먼저 울음을 들어줄 터이니. (孤客最先聞).”
“고독한 나그네가 가장 먼저 울음을 들어줄 터이니. (孤客最先聞).”
암존최선래.
저들은 하오문과 복건성의 민초들이 아닌가.
한때, 쌍룡문에 고통받던 민초들이 도움이 될까 싶어 발이 찢어지도록 고된 길을 찾아와 노래 부르고 있었다.
암존의 방문을 노래하면서.
“…….”
일초반식의 무공도 익히지 못한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걸어들어오는가.
“…하.”
특히 요란과 하오문도들과 함께 벙긋벙긋 웃는 외팔이 노인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살아가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묘광이 말했다.
“천하에 갈 곳이 없어진들, 도망자가 된들 무슨 상관입니까? 그들은 주군을 위해 기꺼이 문을 열어둘 터이니, 그곳에서 쉬어가시면 됩니다. 계속 그들 곁에 계시면 됩니다.”
내뱉는 말에, 픽 웃은 초운휘가, 손을 뻗어 중얼거렸다.
“이제 천마 영감의 말을 알 것 같네.”
빈손을 꼼지락거리며, 천마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 일사도는 무서운 존재다. 너의 절망을 눌러 담은 검도 그자에게 닿을 수 있을지 싶다.
말하며 자미작 천마삼검식을 녹여 벼린 하나의 절대검을 일러 주었다.
해남검각의 각주의 품에 안겨 죽어가면서도, 미완성의 검법을.
– 네 검에는 후회와 울분과 고뇌만이 가득 차 있다. 하여, 역으로 나는 다른 것을 채워 보았지.
무엇이냐 물었을 때, 천마 영감은 말했다.
– 인연(因緣).
짧은 대답과 함께, 마지막 숨소리에 섞인 설명을 덧붙였다.
– 내가 다시 살아나 얻은 심득이다. 후회가 검이 될 수 있다면, 어찌 오욕칠정의 애정이 검이 될 수 없을까? 세월을 거듭하는 존재가 잊은 인연이야말로 놈을 죽일 유일한 열쇠다.
‘아아. 영감의 말이 맞았어.’
허공을 잡은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았지만, 문득 따스한 것을 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맞아. 비통과 슬픔을 검에 담을 줄만 알았지, 어찌 따뜻한 인연을 쥐려 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내 외톨이 생활이 너무 길었던 모양이야.”
너스레를 떨며, 악귀 같은 얼굴로 자신을 향해 양손을 휘저어 오는 적을 바라보았다.
“초운휘! 초운휘!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구천구백구십구 번의 삶을 살아온 자! 영원한 하늘로 존재해온 자! 진정한 마신이로다!”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일사도, 아니 구천구백구십구 번째, 환생자는 강력한 기도를 뿜어내며, 마신을 자처하기에 충분한 위압감을 뿌려대고 있었으나.
“추하네.”
초운휘는 그 모습이 욕심과 미몽에 휘둘리는 추레한 이의 절규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교관님?”
“고마워. 잘했어.”
살짝 곁에 기대선, 진설향의 어깨를 감아 토닥이고는, 초운휘가 비틀비틀 놈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에 토끼 눈을 한 높디높은 상급자를 향해 농담을 건네며.
“거. 총관주님.”
“나, 나 말인가?”
백의판관 선인혁은 호명에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다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덜덜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며 히죽 웃어 주었다.
“이거, 다. 초과 근무입니다?”
“당연히… 뭣?”
손을 들자, 뜨거운 무형의 기운에 이끌린 철 조각들이 모여들었다.
깨진 암혼의 조각들이었다.
스스슥.
빠스슥.
하나둘 작은 철 조각들이 손잡이 위 허공으로 붉게 달궈지며, 뭉쳐 들었다.
거대한 용광로에 달궈지는 것처럼, 붉은 화광을 번쩍이다, 어느새 백광을 일으키고 있었다.
“암혼. 마지막까지 고마워.”
그리고 너. 일사도.
너 이 개새끼야.
“드루와!”
초- 운- 휘-!
실핏줄이 벌게진 채로, 일사도가 긴 고함을 내질렀다.
“너를 죽여 지긋지긋한 윤회로 돌아가지 않겠다!”
“죽기도 무섭고, 다시 시작하기도 두려운 잡놈아. 부탁인데 영원히 환생 속에서 살아라.”
유유무극검(幽幽武極劍).
‘아니, 이제는 아니지.’
기억 속에 선연한 수많은 무공구결이 흩어지고, 한줄기 검로를 만들어내며, 마기를 밀어내고, 신성하게 빛나는 하나의 검로만이 뇌리에 떠올랐다.
다시 찾은 암혼을 휘둘러, 백광을 따라 검을 뻗었다.
명필이 그림을 그려내듯.
피리릭!
경쾌한 파공성과 함께 한줄기 명화를 완성했으니, 이제 이름을 짓는 것만 남았나?
“무한인연(無限因緣).”
뇌까린 순간, 흘러간 검로가 다시금 생명을 머금고, 완벽한 극상의 초식으로 현신하였다.
– 일검(一劍). 무한인연.
인연의 굴레 속에 갇히도다.
검이 천지를 베어냈다.
시간과, 자연을 베어냈다.
나아가.
인연을 베어내고, 다시 이어 붙였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일검에, 광폭하게 달려들던, 일사도의 몸에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혈선이 그어졌다.
“…이게 무슨. 신을 베어내는 검이라니….”
신살검. 무한인연.
마지막 흩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혈선이 번져가며, 일사도의 좌우 신체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촤아아아악!
그리고는 피의 분수를 뿌리며, 양쪽으로 반듯이 나뉘어, 털썩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하… 지치네.”
전력을 쏟아 넣은 일격에 힘이 빠진 초운휘가 철푸덕 등부터 쓰러지며, 대자로 누웠다.
“교관님!”
“초 교관님!”
“주군!”
“지존!”
“경천검괴!”
여기저기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귀에 담으며, 누워 하늘을 보고 초운휘는 말했다.
“살아가기 참 좋은 날이네.”
어느새.
어둠이 물러나고 여명이 트고 있었다.
길고 지난한 겨울이 물러나고, 이제 봄이 오는 날의 일이었다.
결혼적령기 무림교관 : 후일담 (後日談)
따뜻한 날이었다.
취걸개는 언제나처럼 식당의 담벼락 아래 자리 잡았다.
절묘하게 비쳐드는 햇빛을 만끽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해가 중천에 걸리는데 오늘 구걸은 성공적이군.”
철전이 짤랑이는 바구니를 흔들어 무게를 가늠하고 있는데, 역광 아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를 보며 취걸개가 지저분한 턱수염을 쓸며 끌끌거렸다.
“사람을 잘못 찾은 것 같은데.”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군.”
철렁. 바구니를 깨트릴 듯한 은자에 취걸개는 하하 웃었다.
“또 내게 바라는 것이 있는 건가?”
“흐흐. 사람이 바라는 것이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어.”
불청객의 주인은 초운휘였다.
“그래. 들어나 보지. 또다시 가짜 신분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할 참인가?”
“그건 되었어. 아무리 가짜 신분을 만들어도 이제는 도움이 안 될 것 같거든.”
“확실히 너무 얼굴이 팔려 버렸지. 그럼?”
“개봉부에 아는 사람 있어?”
“개방의 본단이 개봉부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테고.”
손바닥을 세워 소곤대듯 초운휘가 말했다.
“가장 목 좋은 곳에 만둣집을 차리고 싶어.”
“만둣집 말인가?”
“응. 어여쁜 색시와 함께 만둣집이나 차리고 살아갈 거야. 강호는 너무 험난해서 살기 어려울 것 같거든.”
“은퇴하겠다는 뜻이로군.”
“그리고 말이야, 이번에는 내 신분을 지워줄 수 있어?”
“자네의 신분을 말인가?”
“금분세수니 뭐니 있잖아. 이제 강호에서 손 털고, 만둣집이나 운영하며 살아갈 거야. 개방이라면 할 수 있지?”
듣고 있던 취걸개가 쌤통이라는 듯 끌끌 웃었다.
“불가하네.”
“뭐? 왜.”
“천하에 강호의 구원자이자, 경천신마라 불리며, 나아가 경천의 고금제일인에 대한 관심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이 누구 하나 모르는 이가 없네. 아무리 개방이라도 자네 소문은 못 막아.”
“제길.”
“차라리 괜한 생각 말고 명성에 만족하며 살아가게. 누가 아나? 나중에 강호 역사 최초로 정사마를 아우르는 최초의 공동 맹주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자유시간이 줄어들잖아. 그런 삶은 전혀 원하지 않아. 개방은 못 쓰겠군. 도움이 전혀 안 되잖아.”
머리를 버부적거리며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취걸개가 빙그레 웃었다.
“못 쓰겠다니. 이제 하오문과 손잡고 역대 최강의 정보를 쥐고 흔드는 거대방파가 되었는데. 참, 그거 아는가?”
“뭐 말이야?”
“자네. 올해 19살이 된다지?”
“!”
“어때? 이래도 개방이 쓸모가 없나?”
초운휘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 귀중한 극비정보를 떠들어 대는 거야!”
“끌끌. 이거 잘 이용해 먹으면, 자네의 제자들을 형님 누나로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이용해 먹어야 잘 써먹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래도 개방이 쓸모가 없나?
되묻는 듯한 시선에 초운휘는 빠르게 침몰했다.
“아니. 내가 잘못했어. 개방 최고. 개방 천하제이이일-.”
“끌끌. 어서 들어가 보게. 한적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만 해도 무한지부의 전력이 동원되었다네. 천하의 경천신마의 행적을 감추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야. 명천광명전은 물론, 마교 혈서생의 간자들까지 모두 뒤를 쫓고 있거든.”
“고마워.”
감사를 표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객잔 안은 한적하기 짝이 없었다.
개방에서 나름대로 손을 써준 탓이었다.
몇 개의 가림판 너머에 손님들이 몇 있는 것 같았지만, 이 황량한 객잔에 그 정도야 뭘.
그보다 자연스레 한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
가장 차양이 잘 드는 곳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진설향.
그녀는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인기척을 알아보며 활짝 웃었다.
“초 교관님.”
손을 흔드는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초운휘는 다가갔다.
“벌써 나와 있었어?”
“좀 여유가 있었어요. 그리고, 만남이 기다려지기도 했고요.”
방긋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감동이 격하게 밀려온다.
‘말하는 것도 어째서 이렇게 예쁘게만 하는지.’
문득 그녀의 옷차림에 시선이 닿았다.
아미파의 정식 제자가 된 그녀는 동시에 북해빙공의 적손으로 공언 받게 되었다.
때문인지, 과거 기워입던 허름한 옷 대신 깔끔하고, 단정한 옷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있었다.
무복이 아닌, 화려한 궁장에 연지로 멋을 낸 색시를 보는 것은 또 다른 감동이라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검을 새로 구했네.”
“궁주님께서 선물로 주셨어요. 스물두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고.”
“쿨럭.”
“왜 그러세요?”
“아니. 너무 꽃다운 나이다 싶어서. 내가 그 나이 때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
거짓말은 아니다.
이번 삶의 스물두 살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거든.
“그래요?”
묘하게 샐쭉해지는 그녀의 눈빛에 속이 좀 켕겼지만 하늘도, 강호도 속이던 몸이다.
잠깐의 거짓말 정도로 속내를 드러낼 만큼 수양이 얕지 않다.
“여튼, 다들 잘 해줘?”
“네. 아미파 분들도 모두 친절하세요. 사부님께서도 무척 기꺼워하시고.”
이어 재잘재잘 이어지는 말은, 아미파에서 얼마나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새로운 한 해가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따위의 자질구레한 신변잡기의 이야기였다.
‘보기 좋네.’
햇빛이 비쳐드는 창가에 앉아 종달새처럼 지저귀는 모습은 한참이고 구경해도 질리지 않을 즐거움이 있었다.
전생에서 외롭게 죽어가던 그녀에게서는 본 적 없는 모습이니까.
“드십시오.”
유독 친절한 점소이가 다가와 만두를 내밀자, 그녀는 양 볼이 불룩해져라 맛있게 만두를 갉아 먹었다.
‘보는 것만 해도 배가 부르네.’
연상의 교관으로서 의젓하게 만두를 찢어 먹고 있자니, 손가락을 쪽쪽 빨며 진설향이 운을 뗐다.
“참. 이야기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
“철사련이 와해하였다는 이야기요. 암존께서 새로운 련주로 추대되었다고.”
“아하.”
그녀의 말대로였다.
각종 패악질을 부리며 권도를 휘두르던 철무혼은 일사도의 죽음과 함께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뒤이어 새로운 사파 지존의 자리를 놓고 피바람이 불었으나, 의외로 싸움은 간단히 끝나 버렸다.
‘위지극에 구자극 교주가 가세했으니, 버틸 놈이 누가 있겠어?’
본인이야 매난국죽을 비롯한 마도의 새싹들을 교육시킬 좋은 기회라며 뛰어든 모양이지만, 사파 고수들에게는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졌겠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철사련뿐이 아니다.
마교 또한 갈중혁 교주가 새로 물갈이를 시작하며, 마인에 대한 대대적인 척살을 시작했다.
‘망천회가 힘을 얻은 것도, 마인(魔人). 마공에 폭주한 인간들이 가세한 탓이 컸으니까.’
한동안 싸움을 금지하고, 내실을 다지겠다는 뜻에 강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 분명하다.
“벌써 다 먹었네요. 이 집은 언제나 과식을 하게 된다니까요?”
“그래. 좋지. 참, 혹시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해봤어? 만두를 좋아하니 만둣집을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전생의 그녀는 말했었다.
복잡한 강호를 떠나 한적한 곳에 만둣집을 열어, 좋아하는 만두를 매일 먹으며 살고 싶었다고.
‘이번 생은 어떨지 모르지만, 일전에 제안했을 때는 딱히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슬며시 떠보았을 때는, 한쪽으로 귀엽게 몰리는 눈동자도 보았다.
하여 물었던 것인데.
“헤헤. 그건 나중으로 미뤄둘게요.”
“뭐?”
“최근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거든요.”
“하고 싶은 일?”
“함께 하고 싶은 분도 생겨서요. 참, 오늘 잘 먹었어요. 언제나 제가 신세를 졌으니, 오늘은 제가 낼게요.”
철전을 놓고 총총 도망치는 진설향에 초운휘는 동공을 덜덜 떨었다.
‘하고 싶은 일?’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대체 누구야!’
그녀가 문밖으로 사라지자, 초운휘는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크와와 비명을 질렀다.
“어떤 잡놈이 내 연애 사업에 끼어든 거냐!”
“살려두지 않겠다! 지옥 끝까지 찾아가서 찢어 죽여주마!”
“내가 처음부터 공들였단 말이다!”
괴성을 지르고 있자니.
“뭐야? 내 만두가 그렇게 맛이 없었어?”
귀갑철극으로 만두를 빚던 단야가 광분하는 모습을 보고는 끼약 비명을 질렀다.
“곡주님! 튀십시오!”
사막살수들아 그렇게 떨 것은 없지 않냐? 아니, 근데 얘네들은 왜 점소이 차림인 건데?
“마왕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마왕이라니. 사람을 앞에 두고 못 하는 말이 없다. 뼈 자르는 칼을 들고 덜덜 떠는 특급살수를 보니 내가 다 미안해질 지경이다.
“우우우.”
울적해 하고 있자니, 한쪽의 가림막이 열리며 은밀히 숨어 있던,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조카는 쉽게 넘겨줄 수 없네!”
“맞아! 새카만 사내놈이 어디를 넘봐!”
북해빙궁의 궁주와 소궁주였다.
배신자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이따위로 대우해?
싶었지만.
“하하.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거지.”
반대쪽 가림막이 열리며 독왕 당군악이 만두를 으적이며 말했다.
“사위. 매운맛이 좀 있으면 좋을 것 같네. 내가 사천의 기가 막힌 양념장을 알려주지. 우리 집이야.”
끄덕. 끄덕.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는 당가십수와, 곁에서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리정순, 모용주, 제갈양소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흠흠. 당 가주. 선을 넘지 마시오.”
“맞네. 저노무 자식 때문에 내 딸자식과 손녀 같은 아이가 죄다 혼삿길이 막혔어. 콱 목이 메여 죽어라.”
“하하. 너무 초 교관을 곤란하게 하지 맙시다.”
만두를 다섯 개나 입에 밀어 넣던 언가의 가주, 회색곰 아저씨가 접시를 내밀었다.
“여기 만두 추가.”
항상 바쁘다는 사람들이 왜 이런 곳에 한가롭게 있는지 모르겠다.
‘어흑. 색시. 어디 가는 거야? 어떤 놈팽이에게 홀린 거야?’
울먹이며 나가려는데, 관복을 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 들어왔다.
개중에 가장 앞에 선 이. 이제 명실상부히 천부장에 올라선 대장군 공손여가 왁 웃었다.
“뭐야. 초운휘. 차인 거냐?”
퍽!
“억!”
대뜸 놈을 걷어찼다.
‘빌어먹을 세상. 콱 망해 버려라.’
만둣집의 꿈을 잃어버린 초운휘는, 울적하게 터덜터덜 객잔을 나섰다.
***
둥둥둥둥.
은천관의 문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입관식. 여기저기에서 무수히 많은 관도들이 들뜬 꿈을 꾸며 꾸역꾸역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수를 보며, 초운휘는 질린 듯이 말했다.
“뭐야. 올해는 작년보다 갑절은 많은 것 같은데?”
“후후. 그럴 수밖에요.”
여매홍이 쿡쿡 웃었다.
“엄청난 싸움이 있기도 했고, 세상 유명한 분이 교관으로 있는데 누가 오고 싶어 하지 않겠어요?”
“아. 싫다. 일 안 하고 월급만 받고 싶다.”
“또 그런다.”
“정말이라니까요?”
일사도를 죽인 후, 정말이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망가진 몸을 회복하느라, 한세월 요양을 해야 했고, 여파는 아직까지 이어져 비만 오면 뼈마디가 쑤신다.
‘어서 습지로 돌아갔으면.’
복작복작한 세상을 떠나, 한적한 보금자리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자니.
우르르 동료 교관들이 들어섰다.
“생각 이상으로 많군. 올해는 꽤 바쁘겠어. 안 그런가? 친구?”
“능 소협. 가만두세요. 저 얼굴, 아무 생각도 없는 표정인걸요?”
“아. 그렇군요.”
금정의 말에 능풍운은 기분 나쁘게 빙글빙글 웃었다.
“?”
그러고 보니, 여매홍도.
“완전 인기인이네요. 올해 초 교관님은 꽤 고생하실 듯.”
모용선야도 묘하게 섬뜩한 미래를 예고해온다.
슬그머니 눈동자를 굴려 이쪽을 바라보는 교관들을 살피니.
“…부럽다고 해야 할지. 안쓰럽다고 해야 할지.”
“자업자득이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공표 교관과 관철 교관도 이쪽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저는 마냥 부럽습니다. 크윽.”
“맞습니다. 후환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그저 부럽지요.”
“뭐, 이해는 가지만요.”
어지간한 일로는 물어뜯기에 바빴던 야소곡을 비롯한 구파 출신 교관들도 뭔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연신 보내오고 있었다.
‘뭔데. 왜 그러는 건데?’
싶어 눈동자를 데구르 굴려 천사표 교관 여매홍에게 대답을 구하려 했지만.
“베-.”
혀를 내밀며 그녀가 토라진 듯 고개를 틀었다.
“안 알려줄 거예요.”
‘여매홍 교관마저….’
울적하게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자니, 쿵쿵 발걸음 소리와 함께 장철심을 비롯한 상급교관들이 장내에 들어섰다.
“모두 반갑군.”
스윽. 좌우를 돌아보던, 그의 시선이 이쪽에 멈추더니.
“쯧.”
대번에 혀를 차고 말았다.
“…….”
‘진짜 왜 그러는 건데?’
묘하게 싸늘한 반응에 눈치를 보고 있자니, 가지고 온 공문서를 둘둘 말아 탁자를 친 그가 입을 열었다.
“다들 올해 관도들이 역대급인 것을 알고 있으리라고 믿네.”
“네! 상급교관!”
“얼마 전의 일로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모두가 힘써준 탓에 정파무림이 온전할 수 있었네. 모두에게 감사하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빽! 소리 지르는 교관들을 돌아본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여하튼. 앞으로 갈 길이 머네. 하여, 상부에서는 인원을 교육할 교관들을 벌충하기로 하였네. 손이 급한 탓에 최근 크게 활약한 이들 중에서 가려 뽑았지. 부디 경험이 없다 탓하지 말고, 새로운 신입교관들을 이끌어 주기 바라네. 이상!”
이야기를 들으니, 한때 단상에 섰던 과거가 떠오른다.
‘신입교관인가? 고작 한 해전의 일인데, 옛날 같은 느낌이 나네.’
올해 새로 들어오는 신입교관들은 어떨까?
긴장하며 열리는 문을 슬그머니 바라볼 때였다.
“신입교관! 남궁윤호! 선배님들께 인사드립니다!”
—-.
순간 뇌가 정지하고 말았다.
‘남궁… 윤호?’
멍해지는 안색을 보며, 곁에서 여매홍과 모용선야가 박수를 쳤다.
“딱 아니에요? 최근에 활약을 한 강호의 기대주.”
“뭐, 학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지.”
확실히 남궁윤호가, 유명해지긴 했지. 강호 고수들의 합공에도 쓰러지지 않은 그는 철벽.
남궁철벽이라는 별호 또한 얻었다고 들었다.
‘졸업도 특채로 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닌데….’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었으니.
“악! 신입교관 제갈탄! 인사드립니다!”
“저, 저어는, 모용소혜. 헤헤. 다들 앞으로 잘 부탁드려… 꺅.”
제갈탄과 모용소혜를 헤치고, 화려한 소녀가 쿵쿵 발걸음을 찍으며 단상 위로 올라왔다.
“신입 백리설입니다! 초운휘 교관님! 어디 있어!”
—-.
이쯤 되면 대략 사고가 정지한다.
뒤이어 혼란이 이어졌다.
“신입교관 당애희예요. 백리 교관. 그대의 언사는 여전히 천박하기 짝이 없군요. 누구를 감히 멋대로 부르는 거죠?”
“신입교관 설악약이랍니다. 어머, 두 분은 저기 가서 알아서 해결하고 오세요. 시끄럽… 남궁 교관님!”
뒤이어 설악약이 빙그르 돌아 난감해하는 남궁윤호의 품에 안기는 모습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아냐… 아닐 거야.”
부정해 보았지만.
“파견교관. 영영이라고 해요. 무림맹에 온 것은 처음입니다만,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후후. 요란 교관이랍니다. 앞서 나선 분들과 달리, 정보와 교란 쪽에 특화된 실무를 담당하게 되었어요. 잘 부탁드려요? 후후.”
어째서 하오문에 있어야 할 요란마저 튀어나왔는지 머리를 뒤적일 때, 마침내 마지막 교관이 단상 위에 섰다.
“신입교관. 진설향! 임관을 허락받아 왔습니다!”
떨리는 눈동자로 단상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여인들을 보고 있자니.
“쯧. 자네는 경천신마라는 이름보다, 경천색마 쪽이 어울리지 않는가?”
“바람둥이.”
“죄 많은 남자네요.”
장철심의 탄식과 함께 여매홍이 팔뚝을 찰싹 때렸고, 모용선야가 볼을 죽 잡아당겼다.
‘아파. 아프다. 꿈이 아니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팡질팡하지 못하는 가운데.
단상에 선 소녀들이 왈칵 안겨들고 있었다.
“켁.”
일제히 달려온 육탄공세에 밀려 쓰러지며, 초운휘는 마지막 일사도의 유언을 떠올렸다.
– 구천구백구십구 번째 삶의 끝이라. 인연이 이어졌으니, 만 번째의 삶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인가?
– 어쩌면. 너는 두 번의 환생이 아닌, 만 번의 삶을 산 끝에, 다시 한번 기회를 얻은 자인지도 모르겠구나.
– 인연이 이어진 삶은 과연 축복일까? 재앙일까?
뇌까리는 목소리를 흩어내며 초운휘는 눈을 감았다.
‘글쎄. 이젠 나도 모르겠다.’
그저.
지금은 이 푹신한 부드러움을 만끽하자.
두 번째 삶. 아니, 어쩌면.
만 한 번의 삶에서 다시 찾은 일상일지도 모르니까.
결혼적령기 무림교관(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