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0)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0화(10/150)
대공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다간 밀로즈 후작은 자신이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쓰레기라는 걸 인정하는 셈이었다.
그는 자신이 친딸을 사고파는 물건처럼 다루고 있으며, 금전을 위해 뒷소문 더러운 남자에게 팔아 버릴 계획이라는 걸 시인할 수는 없었다.
“역시 제 딸아이가…. 아무래도 세라엘이 중간에 걸려 있지 않습니까. 대공님과의 인연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제안하기 조심스럽습니다만….”
“잘 안 들립니다. 분명하게 말하십시오.”
카에드가 서늘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재촉했다.
‘귀족의 체면이 있는데 어찌 내 입으로 건물을 구매하면 여식을 넘겨주겠다고 대놓고 말하겠는가!’
사업을 하는 귀족은 특히나 품위와 겉치레를 중요시하기에 직설적인 언사는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평민 출신의 상인이 ‘이것 사시오!’라고 꾸밈없이 외친다면, 반대로 귀족 사업가는 ‘당신의 마음에 들지도 모를 상품이 있는데 괜찮다면 일별해 보는 게 어떻겠소?’라는 말장난을 선호한다.
‘차라리 나도 5백만 골드에 이 건물과 딸을 팔겠다고 속 시원히 말하고 싶다, 이거야.’
게다가 현 제국에는 예비 신부 측에서 신랑에게 지참금을 주어야 하는 제도가 존재했다.
자식을 돈벌이 수단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후작은 지참금은커녕 신랑에게 거나하게 떼어먹을 계획을 세워 왔다.
그리하여 사업 이야기를 하는 척하면서 세라엘을 슬쩍 끼워 넣어 본래 의도를 감추고자 했다.
‘같은 귀족 태생의 사업가라면 척하고 알아들었을 텐데 이것 참, 출신이 불분명한 자라 그런지 나를 곤란하게 하는군!’
후작은 자신에게 똑바로 내리꽂는 카에드의 시선을 피했다.
‘나타샤 말마따나 헐값에라도 맥슨 백작과 계약하는 게 나았을까.’
그렇게 식은땀까지 흘리는데 불쑥 나타난 카에드의 부하가 뭐라 외쳐 댔다.
“저기, 2층 기둥에 금이 가 있는데요?”
밀로즈 후작이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 금이 아니라 동쪽 왕국에서 유행하는 양식의 특징일세!”
“툭 치면 무너질 기세던데요? 주먹으로 몇 번 쳐 봤더니 돌가루 떨어지고 장난 아닙니다.”
“가뜩이나 약한 기둥인데 금이 간 곳을 치면 안 되오! 이크, 아니지…. 어느 기둥을 말하는 건가?”
“직접 올라와서 보시죠.”
악셀은 얼굴 가득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띤 채 계단 위를 가리켰다.
‘세라엘을 넘기려는 일도 잘 안 풀리는데 부실 공사까지 들키면 큰일이다!’
밀로즈 후작은 호들갑을 떨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실실대던 악셀은 돌연 웃음기를 싹 거두고 침묵했다.
줄곧 차분함을 유지하던 카에드의 금안이 후작을 금세라도 갈기갈기 찢어발길 듯 싸늘한 빛을 띠고 있었다.
“저거, 죽일까요?”
제 주인의 뜻을 읽어 낸 악셀이 그리 물어 왔다.
“피붙이도 사람 취급 안 하는 놈이 두목에게 부실 건물까지 팔아넘기려고 하네요. 명령만 내려주세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카에드의 손이 허리춤에 자리한 검집을 느리게 매만졌다.
“효수해서 이 너저분한 건물 앞에 몸뚱이만 걸어 놓으면 볼 만하겠다만….”
“지금 시행할까요?”
“됐다.”
먹구름처럼 시커먼 뇌리에 세라엘의 얼굴이 그려졌다.
만월의 빛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술에 절로 호가 그려졌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피를 묻힐 필요는 없다. 저 버러지의 멱을 따는 건 일이 틀어진 후에 해도 늦지 않아.”
“그냥 저 인간과 의붓어미의 목을 잘라서 선물해 주는 건 어때요? 여자도 감동해서 두목과 당장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악셀이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에드 또한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극악으로 치달은 부녀 관계다. 후작과 의붓어미까지 죽여 준다면 세라엘도 내심 기뻐하지 않을까?
하지만 카에드를 두려워하며 경계하던 그녀의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그를 향한 마음이 열리지도 않은 지금, 피 묻은 머리통 두 개를 선물해서 마음의 문을 영영 걸어 잠그게 할 수는 없었다.
뒷소문이 흉흉한 자신과 그녀를 자연스럽게 엮으려던 계획이 허사가 될 터였다.
일이 틀어지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카에드는 저를 올려다보는 악셀의 머리칼을 한번 쓸어 주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더군. 우리는 그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면 된다.”
그 쉬운 일 하나 못해 줄까.
그녀가 아니었다면 가족과도 같은 발켄족을 이리 아껴 줄 기회도 얻지 못했겠지.
“그때도 두목의 구혼을 거절하면 어쩌죠?”
“결과는 변함없어. 세라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 북부로 떠난다.”
과정이 평화롭든, 주인 모를 피로 더러워지든 그가 바라는 결과는 한결같았다.
바로 세라엘을 제 곁에 두는 것.
자신의 존재를 유일하게 인지해 준 여자.
그가 마땅히 소유해야 할 것을 되찾게 해 준 여자.
흑백 시야로 세상을 봐 온 카에드가 결코 알 수 없었던 감정까지 선물해 준 여자였다.
***
며칠 후, 노을이 뉘엿뉘엿 저물어 갈 저녁 무렵.
“대체 이 남자들이 언제쯤 돌아오려는 거야.”
이른 아침부터 카에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세라엘이 조바심을 내며 중얼거렸다.
“인생을 좌우하는 계획을 앞두고 긴장되어 죽겠는데.”
집사에게 슬쩍 물어보니 아마 오늘쯤 귀가할 예정이라는 답을 들었다.
하지만 카에드와 발켄족의 남자들은 물론 아버지조차 아직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세라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루시, 한잔하러 가자.”
옷감에 수를 놓던 루시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엇을요? 홍차를요?”
“홍차로는 어림도 없어. 술 마시러 가자. 영지 외곽에 괜찮은 술집이 생겼다고 하던걸.”
물을 탄 싸구려 맥주를 팔고, 초면인 손님끼리도 거친 욕설이 오가는 일반 선술집은 길거리에 흔히 널려 있었지만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귀족 여성은 물론 평범한 여자도 드나들기 어려운 장소였다.
반면 후작령의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은 타 영지와 맞닿는 경계에 있어서인지 관광객을 위한 상업 지구가 나름대로 발달한 편이었다.
그곳에서 새롭게 영업을 시작했다던 술집은 향긋한 고급술을 팔고 내부도 깨끗한 가게라고 했다.
물론 귀족 영애가 아무렇지 않게 들락거리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신분만 어느 정도 감춘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으앗…. 하지만 대공님과 후작님께서 곧 돌아오지 않으실까요?”
“며칠 전부터 기다렸는데 소식도 없잖아. 한잔만 하고 돌아오자. 심장이 자꾸 콩닥거려서 미치겠어.”
짐짓 인상을 쓰고 가슴을 부여잡는 세라엘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루시가 옷감을 내려놓았다.
“그러면 속 시원하게 한잔하시는 것도 괜찮겠어요.”
“좋아.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오면 되지.”
세라엘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오는 망토를 입고 루시와 마차에 올랐다.
얼마 되지 않아 도착한 마을은 세라엘도 몇 번 방문했던 곳이었다.
주거용 마을이라기보다 레스토랑이나 카페, 술집 같은 사업체 위주로 발달한 번화가 느낌이 강했다.
그런 마을의 중심부에 생긴 술집은 외관부터 깔끔했고, 실내도 넓은 데다 제법 우아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소문을 듣고 왔는지 벌써 꽤 많은 손님이 왁자지껄 떠들며 음주를 즐기고 있었다.
흔한 선술집처럼 걸걸한 욕설도 들려오지 않아 여러모로 분위기가 좋은 장소였다.
“와아, 너무 맛있어요!”
루시가 연신 감탄하며 칵테일을 홀짝였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루시를 위해 골라 준 무알코올 칵테일이 입맛에 맞은 듯했다.
세라엘도 미소 지으며 제 몫의 꽃술을 홀짝였다.
“이 술도 맛있어. 북부로 떠날 때 한 통 가져가고 싶을 정도야.”
엘더플라워와 레몬, 체리가 가미된 꽃술은 몹시도 향기롭고 맛있었다.
음주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유독 술이 당기면서 달게 느껴지는 때가 있었는데 오늘이 딱 그 느낌이었다.
루시는 칵테일을 마시다 말고 세라엘의 눈치를 살폈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기분이 복잡해 보이셔요.”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봐.”
세라엘이 남은 꽃술을 입 안에 털어 넣으며 한 잔 더 주문했다.
“사실 아직은 결혼이랄 것도 없지. 단호하게 표현했던 내 의사를 홀랑 번복하게 된 셈인데, 대공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어.”
“아가씨와 혼약을 맺고 싶어 하셨으니 당연히 좋아하실 거예요.”
“그게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날 언제 봤다고 그리도 연을 맺고 싶어 하는 걸까?”
“으음…. 혹여 아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하신 게 아닐까요?”
“어머. 이제까지 고려해 본 이유 중에서 제일 그럴듯하네.”
수긍한 세라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어디선가 큽, 하며 급히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반사적으로 웃음의 출처를 찾기 위해 세라엘은 주위를 둘러봤다.
자기들끼리 무리 지어 술 마시는 사람들뿐이라 이쪽을 향한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루시는 눈을 빛내며 제 주장을 확신했다.
“틀림없어요. 첫눈에 반하신 거예요! 수도에 사는 제 친구도 아가씨를 한번 보고서 그랬다니까요. 이렇게 아리따운 분은 힌델에서도 뵌 적이 없다고요!”
“부끄러우니 목소리 낮추렴.”
“정말이에요! 제 친구는 주인마님을 따라다니며 셀 수 없이 많은 장소에 가 봤다고요. 힌델에서 얼마나 화려한 영애들을 보았겠어요? 그런데도 아가씨만 한 미인이 없다고 했다니까요!”
“알았으니까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저는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인걸요. 제 친구뿐만이 아니라 아가씨를 매일같이 보는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루 일진이 아무리 안 좋아도 아가씨 얼굴을 보면 금세 기분이 좋아질 정도예요.”
“그건 그냥 루시 네가 날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야.”
“아니에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단 말이에요. 겸손해하지 마세요.”
속사포처럼 던지는 과한 칭찬에 세라엘은 멋쩍어졌다.
그저 웃어넘겼으나 모두 사실이긴 했다.
달빛을 내려받은 듯 은은히 반짝이는 백금발과 보석처럼 찬연한 벽안.
세라엘 본인조차도 거울을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로 신비로운 조합이었다.
작은 얼굴 안에 자리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하얀 뺨 위에 늘 맴도는 살굿빛 홍조도 요정 같은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반할 만한가?’
세라엘은 잔에 담긴 연분홍색 꽃술에 제 얼굴을 비춰 보았다.
이내 글라스를 흔들어 자신의 잔상을 떨쳐 냈다.
“이런 말도 안 되고 한가한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야.”
느닷없이 외간 남자와 결혼하려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면서 예고 없이 한숨이 나오기 일쑤였다.
세라엘은 남은 술을 한 모금에 해치웠다.
“천천히 드셔요, 아가씨.”
꽃술을 아예 병째로 주문하는 그녀를 보며 루시가 걱정스레 말했다.
“안 마시고는 못 배기겠어.”
세라엘이 이토록 음주하는 모습은 앞서 카에드와 첫 정찬을 한 이래로 처음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술에 쉽게 취하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어수선한 심경을 내보이며 술을 들이붓는 아가씨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루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때, 두 사람을 줄곧 흘깃거리던 옆 테이블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실례합니다.”
“…….”
“오늘 일진이 안 좋았나 보네요?”
그가 씩 웃으며 건배라도 하자는 듯 마시던 맥주잔을 내밀었다.
세라엘이 깡그리 무시하자 남자는 굴하지 않고 입을 놀렸다.
“상당히 안 좋았나 보네. 이쪽은 세 명이긴 하지만 괜찮으면 합석할까요?”
루시가 불안한 눈을 이리저리 굴렸으나, 세라엘은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무시로 일관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꽃술을 몇 모금 더 마시기까지 했다.
민망한 듯 남자는 떨떠름하게 루시와 세라엘을 번갈아 보았다.
“저기요? 내 말 듣고 있나? 얼굴 좀 보게 망토를 젖혀 보지 그래요.”
그리 말하면서 그는 스리슬쩍 세라엘 옆에 앉으려고 했다.
그러자 세라엘이 빠른 속도로 술병을 집어 들어 남자가 앉으려던 의자에 탁 내려놓았다.
“…히이익!”
하마터면 가느다란 술병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을 뻔한 남자가 경악하여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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