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01)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01화(101/150)
쫄깃한 정보를 수확한 귀족들은 자기들끼리 수군대더니 곧 방정맞은 걸음으로 무도회장에 들어섰다.
뒷모습만 보아도 경박한 그들이 이 가십을 타인에게 옮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예삿일이 아니군요. 결혼식에 불참하자던 오라버니의 유치한 심술이 터무니없는 망발에 힘을 실어 주었네요.”
모든 사태를 보고 들은 로잘린이 한숨을 쉬며 이마를 눌렀다.
“그뿐인가요. 오라버니는 입만 열면 일을 키우기로 정평이 나 있죠.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조동아리 같으니.”
황녀답지 않은 언사에 뜨끔한 기사가 황급히 주변을 의식했다.
“전하, 누가 듣겠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들을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연회장 근처의 막다른 복도였다. 워낙 구석진 곳이라 벽등 안의 양초도 닳은 지 오래였고, 양쪽 벽에는 거대한 석조 기둥 두 개가 자리하여 몸을 숨기기에도 좋았다.
로잘린이 남들 시선을 피하고 싶을 때 오곤 했던 비밀 장소이기도 했다.
“이곳에 적당히 숨어 있을 계획이었는데, 귀족들 입단속을 시키려면 연회장에 들어가 봐야겠네요.”
로잘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혹시라도 칼스비크의 손님이 왔다는 연락이 오면 내게 알려 줘요. 대공작 부인은 내가 직접 나가서 환영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로잘린은 피곤한 얼굴로 연회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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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힌델의 북쪽 성문을 통해 집채만 한 검은 육두 마차가 들어섰다.
그 뒤로 비슷한 마차가 줄줄이 뒤따르는 모습을 보니 중요 인물이 탑승한 마차인 듯했다.
“멈추시오.”
힌델의 위병은 신분 확인을 위해 마차를 멈춰 세웠다.
무척이나 험상궂게 생긴 마부가 마차 내의 인물 대신 신분패를 내밀었다. 그 위에 새겨진 늑대 문양을 알아본 위병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블카노프 대공작 가문에서 오신 손님이로군요.”
“그렇소. 이만 통과해도 됩니까?”
북부 특유의 딱딱한 억양을 가진 남자는 마부라기보다, 투기장에서나 볼 수 있는 용병처럼 우락부락했다.
위병은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비켜 주었다. 마부가 무감한 표정으로 고삐를 한번 휘둘렀다.
육중한 크기와 달리 매끄럽게 나아가는 고급 마차를 바라보던 위병이 성벽으로 돌아왔다. 그는 대기 중이던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서구와 종이를 준비해. 황궁으로 전갈을 보내야겠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방금 누구던가요?”
부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목을 빼고 시커먼 마차의 행렬을 관찰했다.
“블카노프 대공작이더군.”
“오호…. 말로만 듣던 칼스비크의 영주님이셨구먼요. 소문대로 훤칠하던가요?”
“얼굴은 구경도 못 했어.”
위병은 그에게 자그마한 종이와 깃펜을 건네며 물었다.
“근데 황궁의 누구에게 전갈을 보내시는 겁니까?”
“황녀 전하다. 블카노프 가문의 명패를 보여 주는 이가 있으면 전갈을 달라는 분부가 있었어. 아까 네 입으로 들어간 간식이 전하께서 지시와 함께 보내 주신 거다.”
“그랬나요. 그러고 보니….”
부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전에 황태자 전하께서도 똑같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래?”
“예. 칼스비크의 영주가 성문을 통과하거든 궁으로 곧장 연락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소식을 적은 종이를 말아 전서구의 다리에 묶던 위병이 흐음, 하고 숨을 내쉬었다.
“양측에서 개별 명령을 내리신 건가. 헷갈리는군그래.”
“애매하네요. 그럼 어느 쪽에다 전해야 할까요? 지금 전서구는 한 마리뿐인데.”
황태자와 황녀는 각각 다른 전서구실에서 소식을 받고 있었다. 잠시간 고민하던 위병이 결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녀 전하께 보내.”
먼저 명을 내린 자는 황태자였는데도, 부하는 반발의 여지가 없는 듯 곧바로 새를 날려 보냈다.
***
성문을 지난 마차가 황궁까지 도달하려면 힌델의 시가지를 통해야 했다.
저녁 시간대의 대도시가 조용할 리는 없으니, 깜빡 잠이 들었던 세라엘은 바깥 소음에 의해 서서히 눈을 떴다.
“잘 잤어요?”
머리 위에서 다정한 음성이 떨어졌다. 세라엘은 옆으로 누운 상태 그대로 고개만 돌렸다.
그녀에게 흔쾌히 허벅다리를 내어 준 카에드가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라엘은 잠긴 목소리로 비몽사몽간에 입을 열었다.
“어디예요?”
“우리 지금 힌델 한가운데에 있어요.”
“드디어 도착했구나.”
칼스비크에서부터 장장 열이틀에 걸친 여정이었다.
황궁 연회이니만큼 이동하는 중간중간 숙박 시설에 머물며 몸을 씻고 휴식을 취했더니 벌써 이주 가까이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세라엘이 눈을 깜박거리며 카에드를 올려다봤다.
“당신 어깨에 기대서 잠들었던 거 같은데….”
“불편해 보이길래 눕혔습니다.”
“그랬구나. 저 꿈 꿨어요.”
“무슨 꿈이요.”
“검은 토끼가 뒷발로 늑대를 차는 꿈이었어요.”
어렴풋한 꿈의 기억을 되새긴 세라엘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카에드는 푸스스 웃으며 제 허벅지를 베고 누운 세라엘의 코끝을 살짝 잡았다 놓았다.
“내 속은 다 태워 놓고 귀여운 동물 꿈이나 꾸고 있었군요.”
미약한 책망이 담긴 목소리에 세라엘은 가슴이 뜨끔했다.
그는 칼스비크를 떠나기 전날부터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급작스레 장벽 너머에서 야인들의 동향에 관한 심상치 않은 보고가 들어온 탓이었다.
정찰을 위해 바이퍼를 포함한 최측근 몇이 북부에 남기로 했지만, 그건 동행 예정이었던 강한 호위가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힌델에 도착한 지금 카에드의 심경은 더없이 예민하리라.
눈을 깜박이던 세라엘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잠들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해요. 너무 졸려서….”
“농담이니까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동그란 머리통을 달래듯 쓰다듬었다. 카에드가 장난기 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나를 베개로 쓰니까 좋았어요?”
“조금 딱딱했지만 괜찮았어요.”
“왜 딱딱했을까.”
“근육 때문이겠죠.”
세라엘이 단호하게 그를 저지했다. 그가 입가를 끌어 올리며 짧게 웃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기억나요? 칼스비크로 떠나던 마차 안에서 당신이 내 무릎을 베고 잤었잖아요.”
“그럼요. 기억나지 않을 리가요.”
“얌전히 베기만 한 게 아니라 뒤척이고, 얼굴을 비비고, 손으로 꼼지락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오래전 실수인데 잊어 주세요!”
하나하나 읊어 줄 필요가 있나! 잠이 확 깬 세라엘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어쩜 맨정신으로 저런 말을 태연하게 하는지 참 대단한 능력이었다.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잇달아 몰아붙였다.
“오래전의 실수? 조금 전에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던데.”
“아….”
“뺨을 비비적거리는데 나를 일부러 괴롭히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누가 당신을 일부러 괴롭히겠어요.”
세라엘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카에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뻗어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칼을 매만져 주었다.
“어떤 것 같아요?”
“뭐가요?”
“그때와 비교하면 내 몸 위에서 잠드는 게 어떤 것 같습니까?”
짓궂은 기색을 거둬 낸 그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문자 그대로의 질문이라기보다, 어떠한 속뜻이 내포된 질문임을 알 수 있었다.
제 짐작이 맞는지 가늠하듯 세라엘은 그의 얼굴을 잠자코 주시했다.
카에드는 연한 금발을 귓바퀴 뒤로 넘겨 주며 차분히 답을 기다렸다. 그녀는 맞닿은 시선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더는 불편하지 않아요.”
“그것뿐인가요?”
“보기보다 따뜻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음… 무섭지도 않고, 다정하고. 웃는 얼굴이 소년 같아 보여서 사랑스러울 때도 있어요. 지금은 다 좋아요.”
꿈꾸듯 몽롱하게 말을 늘어놓던 세라엘이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몇 초 흐르고 나서야 그녀의 얼굴에 물감을 들이부은 듯 홍조가 번졌다. 세라엘은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니까 그게.”
정작 카에드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다만 말을 삼키듯 툭 불거진 목울대에 느린 파동이 일었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어요.”
“좋아지기만 했어요?”
언뜻 단조롭게 들릴 수도 있는 나직한 저음이 그리 물어왔다. 그는 세라엘이 아직 이름을 붙여 본 적 없는 마음의 정체를 알고 싶어 했다.
귓바퀴를 스치던 손이 내려와 세라엘의 손에 깍지를 꼈다. 맞닿은 손도, 그의 목소리도, 바라보는 눈동자에도 일말의 흔들림이 없었다.
웅얼대듯 몇 번 움직인 세라엘의 잇새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렇지 않아요.”
“…….”
“저는 당신을….”
혀끝에 걸린 고백은 마차가 갑작스럽게 멈추면서 허공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반동을 견디지 못한 세라엘의 몸이 앞으로 확 기울자 그가 빠른 속도로 팔을 뻗어 받쳐 주었다.
“악….”
카에드는 서늘한 눈으로 마부석을 노려보았다. 험악한 욕설이 그득 담긴 눈빛이었다.
“우리의 새 마부가 마차 모는 실력이 대단하네요.”
세라엘이 어지러운 머리를 짚으며 마부를 자처한 콜을 변호했다.
그를 두고 뭐라 맞받아치려던 카에드가 그녀와 눈을 맞추더니, 짧은 숨을 들이켜며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 대화로 인해 아직 무거운 기류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말없이 속눈썹을 깜박이던 그녀가 어색한 침묵을 깨뜨렸다.
“황궁에 도착했나 봐요.”
“…….”
“…일단 내릴까요?”
때마침 마부석에서 내린 콜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도 얼마간 시선을 떼지 않던 카에드가 헛숨을 내쉬며 문을 열어젖혔다.
마차에서 먼저 내린 그는 세라엘의 양쪽 허리를 잡고 안아서 내려 주었다.
“발 조심해요.”
어디서 기원했는지 모를 콩닥거림과 함께 세라엘은 난생처음으로 황궁 앞에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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