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06)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06화(106/150)
초대객들은 기대감이 어린 눈으로 필립을 응시했다.
“본래 사냥제에서는 가장 손상이 적고 희귀한 사냥감을 잡은 자에게만 상을 내렸지. 하지만 이번 행사에서도 전통을 따르면 지루할 것 같더라고.”
필립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단체전으로 승부를 볼까 하네. 고작 한 명만 영예를 차지하는 것보다 그편이 더 의기투합도 되고 즐겁지 않겠는가?”
전례 없는 제안에 흥분한 귀족들이 질문을 하나둘 던졌다.
“규칙은 그대로입니까?”
“팀은 어찌 나누실 계획입니까?”
“우승팀에 속한 모든 이에게 상을 내리시는 건지도 궁금합니다.”
들썩이는 분위기 속에서 세라엘은 불안한 얼굴로 곁에 앉은 카에드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한 시도 떨어져 있지 않기 위해 카에드는 사냥제에 불참할 예정이었다.
필립은 귀족들을 향해 두 손바닥을 내보였다.
“내 차례대로 답해 줄 터이니 진정들 하지 그래.”
그는 단상에서 내려와 초대객이 모여앉은 테이블을 향해 걸어왔다.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단체전의 의미가 없지 않은가. 따라서 이번엔 잡은 사냥감의 개수대로 우승팀을 선별할 예정일세. 물론 사냥감의 훼손 상태나 희소가치에 따라 부가 점수를 부여해야겠지.”
사전에 전해 듣지 못한 필립의 계획에 로잘린은 이맛살을 찡그렸다.
동물을 단순 유희로 사냥하는 행위도 썩 달갑지 않은데, 사냥감을 더 많이 잡은 쪽이 우승한다면 귀족들은 마구잡이로 동물을 쏘아 죽일 것이다.
단체전이니 상금은 또 어떻게 분배할지 의문이었다. 고려할 점이 한둘이 아닌데 어찌 저런 즉흥적인 결정을 내린 건지 로잘린은 골치가 아파 미간을 눌렀다.
“팀을 어떻게 가를지 내가 고민해 봤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지역별로 나누는 게 분란도 없고 좋겠더라고.”
뱀 가면 속 필립이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북부와 남부로 나누어 편을 가를까 하는데, 이의 있나?”
누구도 이견을 달고 나서지 않았다. 편을 구성하는 데 지역별로 분류하는 것보다 간단한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이유가 비단 그뿐인 것은 아니었으나, 모두 조용히 시선만 교환하며 자리를 지켰다.
“그러면 중부 지방의 귀족들은 어떻게 합니까?”
누군가 질문을 던지자 필립이 기다렸다는 듯 답을 내놓았다.
“수도를 기준으로 삼으면 되겠군. 힌델은 남방과 북방을 가로지르는 분계선에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힌델보다 아래 위치한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은 남부, 그 윗지방의 영주는 자연스럽게 북부로 들어가는 것이지.”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어느 편에 들어가시는 겁니까?”
“이거 고민되는걸.”
필립은 흐음, 콧숨을 내쉬며 가면의 턱 부분을 매만졌다.
“아무래도 남부가 좋겠군. 팀마다 지휘자가 있는 편이 좋을진대 남부는 이렇다 할 인물이 딱히 없으니 내가 맡는 게 좋겠어. 반면 북부에는….”
필립은 입매를 비틀며 카에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검은 가면 뒤에 정체를 숨기고 있어도 그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블카노프 대공작이 있으니까 말이네.”
귀족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이 자리에서 황태자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지위를 소유한 그는 북부 귀족들의 수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두 남자가 연적일지도 모른다는 낭설을 접한 몇몇 귀족은 뜨끔하여 카에드를 곁눈질했다. 이것은 각각이 이끄는 단체전에서 승부를 보자는 황태자의 선전 포고였다.
“…….”
카에드에게서는 어떤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뜩이나 표정 변화가 없기로 유명한 남자가 짙은 가면 속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살얼음판처럼 얼어붙는 가운데 홀로 입가를 추켜올린 필립이 입을 열었다.
“대공, 어떤가? 즐거울 것 같지 않나?”
“…….”
“자네의 사냥 실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은 남부 레지스 바닷가 마을까지 퍼져 있다네. 귀족들과 의기투합도 할 겸 나와 실력을 겨루어 보지 않겠나?”
세라엘의 가슴속이 쉴 새 없이 팔딱거렸다. 부인 곁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사냥제에 불참하겠다고 하면 황태자가 그를 비웃지 않을까. 그녀가 나서서 뭐라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것마저 카에드의 위신에 해가 갈까 두려웠다.
잠시간 침묵으로 일관하던 카에드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사냥제에 출전할 생각이 없어.”
“으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어려운 말이 아니었는데 못 알아들었나 봐.”
카에드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비웃었다. 필립은 모멸감으로 입술을 걷어 올렸다. 이백이 훌쩍 넘는 귀족들은 대공과 황태자가 대치하는 모습을 긴장과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말조심하게. 칼스비크의 영주가 사냥제에 불참하다니 무슨 소리냐 이거잖아.”
필립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꺾었다.
“혹시 패배할까 봐 겁이 나서 내빼는 건가?”
여전히 답이 들려오지 않자 필립은 벌써부터 승리감에 도취되어 잇달아 카에드를 몰아붙였다.
“북방 영주들의 수장이란 자가 책임감을 내팽개치겠다 이거지. 지금 같은 시기에 말이야…. 자네를 따르는 귀족들의 사기가 제대로 꺾이겠는데 그래.”
“고작 유락을 즐기는 일을 두고 책임감을 운운하는군.”
“이제 알겠어.”
필립의 눈은 카에드의 옆에 앉은 세라엘에게로 향했다. 붉디붉은 눈을 마주하자 어딘가 고장이라도 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뛰어대던 그녀의 심장이 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자네는 아내의 치마폭 안에서 농땡이나 피울 생각이었던 거야.”
“…….”
“그렇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카에드는 조롱의 대상에 세라엘이 포함되자 팽팽하게 날을 세웠다. 세라엘은 맞잡은 손에서 점차 빨라지는 그의 맥박을 느낄 수 있었다.
약삭빠른 필립은 뒤바뀐 기세를 놓치지 않았다.
“신혼이라지만 부인과 노닥거리면서까지 사냥제에 불참하겠다니 터무니없는 일이야.”
세라엘은 입술을 깨물며 필립을 노려보았다. 그는 칼스비크에서 있었던 일에 앙심을 품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카에드를 망신시키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필립은 조언을 건네는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조심하게. 여색에 빠진 통치자는 결코 좋은 평가를 들을 수 없다네.”
“여색에 빠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지 않나.”
카에드는 서늘한 조소를 흘리며 조용히 읊조렸다.
“…뭐?”
“아니, 황제 폐하 쪽인가.”
나지막이 덧붙이는 말에 필립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카에드는 황제의 병세가 화류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도 모자라 이 자리에서 얼마든지 폭로할 수 있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재미없게 왜 이래?”
얼마간 말이 없던 필립이 무거운 정적을 깨뜨렸다.
“자네는 공작 시절에 북벌도 오래 했다며. 미지의 영역에서 진탕 굴러먹다 온 남자가 사냥 대회에 빠지면 재미없잖아. 친히 나서서 사격 실력을 보여 달라고.”
필립은 귀족들을 둘러보며 맞장구를 유도했다.
“안 그런가? 자네들은 대공작의 사격 솜씨를 구경하고 싶지 않나?”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호응하기로 약속했던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칼날같이 벼려진 기류가 점차 위태로워지자, 불쑥 회색 가면을 쓴 중년의 남성이 끼어들었다.
“말씀 중에 아뢰옵기 죄송합니다, 전하.”
필립은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자네는 누군가.”
“밀로즈 후작 가문을 이끄는 단테라고 합니다.”
“밀로즈 가문이라. 그렇다면 대공작 부인의 친부인가.”
“그렇습니다.”
세라엘은 난데없이 모습을 드러낸 부친을 당혹스러운 얼굴로 응시했다. 귀족들의 회합에 참석했으니 그를 대면하리라 예감은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제 사위는 애처가로 유명합니다. 제 딸아이를 홀로 내버려 두는 일이 꺼림칙하여 불참하기로 결정한 것이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후작이 카에드를 향해 비굴하게 웃으며 눈을 찡긋해 보였다. 꼴을 보아하니 그에게 줄을 서면서 갈등을 중재해 보려던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필립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만만한 후작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게 웬 헛소리야. 사냥 대회에 출전하는 사내 중에서는 애처가가 한 명도 없는 줄 알아? 아니면 황궁의 치안을 의심하는 거야, 뭐야.”
“그,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중부 사람이지. 내가 알기로 밀로즈 영지는 힌델과 엇비슷한 분계선에 위치해 있거든.”
“예, 예. 맞습니다.”
“그렇다면 단체전에서 자네는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차기 황제인 내가 이끄는 남부 측인가, 아니면 옹서 간의 사사로운 정을 우선하여 북부를 고를 것인가?”
밀로즈 후작은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두 남자 사이에서 오가는 갈등을 넉살스럽게 풀고 카에드의 호감을 얻을 요량이었건만, 황태자가 집요하게 따지고 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그것이….”
“이리도 망설일 질문이었나. 로페른 제국에 대한 자네의 충성심이 의심되는군, 밀로즈 후작.”
필립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후작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지켜보는 세라엘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남보다도 못한 아버지였다. 나타샤가 주도했다지만 어쨌거나 자신을 팔아넘기는 데 동의했던 그 아버지가 필립으로부터 추궁당하는 모습을 보자니 그건 그것대로 유쾌하지 않았다.
존재한 적도 없는 부녀간의 정 때문이 아니라, 세라엘의 친정 가문을 많은 사람 앞에서 욕보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때, 다시 세라엘을 향한 필립의 눈이 번득이며 빛났다. 황태자는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봐, 대공. 부인을 정 혼자 두기 싫으면 사냥터에 동행시키는 건 어때?”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