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15)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15화(115/150)
“무슨 일이죠?”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로잘린이 약간 긴장하여 악셀에게 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헤실거리던 악셀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어딘가를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한동안 대답이 없던 그는 온실 밖으로 나가 콜, 렉터와 뭐라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잠시 서로 눈을 맞추던 세라엘과 로잘린은 의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왜들 그러는데?”
세라엘 또한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하며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창가 쪽을 주시하던 악셀이 로잘린을 향해 차분한 어조로 되물었다.
“혹시 초대한 손님들이 있나요?”
로잘린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없어요. 보다시피 상태가 좋지 않아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건 왜 물어보는 거죠?”
“그럼 지금 궁을 방문할 만한 사람은요?”
“황궁의 하인이라면 종종 들를 때도 있지만….”
“한두 명이 아니라 어림잡아 열 명이 넘는 하인이 올 때가 있나요?”
마른침을 한번 삼킨 로잘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을 내놓았다.
“아뇨. 다들 폐막식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나를 찾아올 일도 없을 거예요.”
“황녀궁에서 일하는 하녀들도 폐막식 준비를 도우러 떠났다고 했었죠.”
“맞아요. 지금 궁 안에는 마리 혼자 있어요.”
로잘린이 곁에 선 하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악셀은 바닥을 향해 눈을 내리깔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경비병은 어디 있어요?”
“본궁으로부터 지원 요청이 와서 대다수가 자리를 비운 상태예요. 지금은 다섯 명의 기사가 문밖을 지키고 있을 거예요.”
악셀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흘깃 응시했다.
“궁 안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뜻인데.”
“대체 왜 그러는 건가요?”
악셀은 다급히 묻는 로잘린을 무시하며 소년들을 바라보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확인해 보는 게 빠르겠어.”
그의 제안에 콜이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어떤 놈들일지 봐도 뻔해. 인기척을 죽이려고 살금살금 걷는 발소리가 수상하잖아.”
“이쪽에서 먼저 선수 치자는 거지. 3층으로 올라오면 어쩌려고 그래?”
콜이 세라엘에게 시선을 던졌다 거두며 속삭였다.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맞붙지 말고 밖으로 탈출하는 편이 낫지 않아?”
“무슨 일인데 그래?”
소년들은 이번에도 대답을 주지 않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는 세라엘의 손끝이 점점 차가워졌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침입자라도 들어온 걸까?
황녀궁은 본궁에서 마차를 타고 와야 할 정도로 한참 떨어져 있었다. 폐막식으로 다들 분주한 틈을 타서 누군가 나쁜 마음을 품고 들어온 게 틀림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궁으로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는 한 개뿐인가요? 후문은 없어요?”
“출입문은 하나뿐이에요.”
로잘린의 대답을 듣고 콜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창문으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겠는데.”
“차, 창문으로요…?”
로잘린의 하녀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덜덜 떨자, 로잘린이 그녀의 어깨를 꼭 감싸 주었다. 소년들은 건물 뒤쪽으로 이어지는 창문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세라엘의 낯빛이 돌연 백지장처럼 희게 질렸다.
“잠깐만! 루시가 아직 아래층에 있어…!”
그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직임을 멈췄다. 렉터가 아연실색하여 세라엘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이마를 싸매고 황망히 비틀거렸다.
“그것도 혼자… 혼자서 짐 정리를 하겠다고 침실로 돌아갔잖아. 당장 데려와야 해.”
루시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히고 호흡이 가빠졌다. 곧 렉터가 세라엘을 진정시키듯 비장한 얼굴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제가 가서 데리고 올게요. 침실은 계단에서 멀지 않으니까 빨리 행동하면 괜찮을 거예요.”
그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도움은커녕 발목만 잡을 게 분명했다. 세라엘은 입술을 깨물며 간절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제발 서둘러 줘…!”
“레오도 같이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몸집은 크다지만,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새끼 늑대가 루시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지는 못했다.
렉터는 망설임 없이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런 그를 악셀이 서둘러 붙잡고 말했다.
“아냐. 무리해서 여기까지 데려오지 말고 가능하면 그 자리에서 둘이 탈출을 시도해. 인원이 많아질수록 기동이 느려지니까 너도 위험을 감수하지 마.”
“알았어.”
렉터는 빠른 속도로 모습을 감추었다. 남은 소년들이 다시 창가로 가서 높이를 가늠하듯 내려다봤다.
“그냥 뛰어내릴 수는 없겠어. 이리로 오세요.”
소년들은 가까운 침실로 걸으면서 여자들에게 손짓했다. 그러나 그 순간, 계단 아래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명의 것이 아니었다.
악셀은 세라엘을 돌아보며 침실을 조용히 턱짓했다. 그 안에 숨어 있으라는 뜻이었다.
여자들은 숨을 죽이면서 침실로 황망히 내달렸다. 촛불이 꺼진 어두운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세라엘은 재빨리 문을 닫았다. 그러나 닫히는 문 틈새로, 막 3층에 올라선 낯선 남자 한 명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턱 끝에 기다란 상처가 난 남자의 눈이 기분 나쁘게 반짝였다. 점찍은 목표물을 발견한 눈빛이었다. 그 뒤로 여러 명의 남자가 줄줄이 올라서고 있었다.
문을 닫고 나서도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쿵쾅거렸다. 곁에 서서 그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본 로잘린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침입자들이 들어왔다는 건 황녀궁을 지키는 기사들이 제압당했다는 뜻이었다. 그들의 생사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내 기사들이….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말을 잇지 못한 로잘린은 다시 고개를 들고 불안한 눈으로 세라엘을 바라보았다. 세라엘은 뭐라 말하는 대신 로잘린의 손을 꼭 붙잡았다. 머지않아 문밖에서 낯선 이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위가 있다기에 긴장하고 왔더니만, 이거 새파랗게 어린놈들이잖아.”
“기척을 죽일 필요도 없었군그래.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모여서 뭘 해 보겠다는 거야?”
괴한들이 킬킬 웃는 소리가 났다. 세라엘은 바짝 긴장하며 문에 귀를 갖다 댔다. 악셀이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맞받아쳤다.
“헛소리 집어치워, 멍청한 돼지들아. 기척을 죽이기는 무슨, 너희가 쿵쿵거리는 소리는 궁에 들어오기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어.”
“건방 떨지 마라, 꼬마야. 얌전히 비켜서면 목숨은 살려 주지.”
“목숨 같은 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군. 여기가 어디인 줄은 알아?”
콜이 되받아치자 남자들은 더욱 크게 낄낄거렸다. 곧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디긴 어디야. 황녀궁이잖아?”
“죽기를 각오하고 왔다는 소리군.”
“비켜서지 않으면 죽는 건 너희지. 어린 나이에 세상 하직하고 싶지 않으면 비….”
갑자기 날붙이가 검집을 스치는 소리가 나면서 남자의 말이 끊겼다. 곧 묵직한 무게를 가진 무언가가 바닥에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전에 없이 예민해진 세라엘의 청각은 그것이 데구루루 구르는 소리를 잡아냈다. 아무래도 발켄족 소년 중 하나가 남자의 머리를 베어 낸 모양이었다.
“이 쥐방울만 한 새끼들이!”
우렁찬 외침이 떨어지자 남자들은 마구 소리를 지르며 소년들에게 덤벼들었다. 챙! 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쉼 없이 부딪쳤다.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소란이 거세지면서 세라엘은 입을 틀어막고 문에서 멀어졌다.
“여자부터 데리고 와!”
얼마 지나지 않아 침입자 중 한 명이 큰소리로 외쳤다. 수적으로 우세였는데도 눈 깜짝할 새에 여섯 명이 당하자 인질을 잡는 편이 빠르다고 판단한 듯했다.
곧 침실을 향해 쿵쿵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세라엘은 급한 마음에 무기로 쓸만한 것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뭘 찾아보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한 괴한이 들어섰다.
남자는 부상을 당한 듯 피가 철철 흐르는 팔뚝을 부여잡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무서운 눈으로 세 여자를 번갈아 보았다.
“제기랄! 여자가 셋이나 되는데 누구를 데려가야 하는 거야?”
남자가 복도를 돌아보며 걸걸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쪽에서는 여전히 날붙이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금발이라고 했잖아! 나머지는 죽여도 상관없어!”
복도에서 외침이 돌아왔다. 극한으로 흥분한 남자는 동료의 외침을 듣지 못했는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로잘린의 손목을 냅다 틀어쥐었다. 로잘린은 격통을 참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남자가 로잘린을 그대로 끌고 나가려 하자 세라엘은 죽기 살기로 그녀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저항감을 느낀 남자는 뒤돌아 벌겋게 핏발 선 눈으로 세라엘을 노려보았다.
“당장 이거 놓지 못해!”
“시, 싫어!”
그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로잘린을 확 잡아당겼다. 그 반동으로 세라엘은 바닥에 볼썽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이참에 그녀는 아예 드러눕다시피 몸을 기울여 필사적으로 반항했다. 후다닥 달려온 하녀까지 가세하자 남자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남자는 괴성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발길질했다. 얼결에 어깨를 걷어차인 하녀는 목청이 터져라 울면서도 로잘린의 팔을 꼭 부여잡았다.
“절대 놓으면 안 돼!”
세라엘은 하녀에게 단단히 잡고 있으라며 이른 뒤 침대 옆 탁자로 달려갔다. 화병을 집으려던 성급한 손짓은 그것을 홱 밀쳐 와장창 깨뜨리고 말았다.
세라엘은 급한 대로 그 아래 있는 장식용 은쟁반을 집어 들었다. 쟁반을 쥔 그녀는 그때까지도 하녀의 어깨를 걷어차고 있던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민머리에 미친 듯이 쟁반을 내려치자 깡! 깡!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며 은쟁반이 볼품없이 구겨졌다.
“이… 미친 계집이!”
어느 틈에 코피가 터져 버린 남자가 허공에 손을 마구 허우적거렸다. 그의 손아귀에 옷자락이 잡힌 세라엘이 몸을 비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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