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16)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16화(116/150)
그것도 잠시였다.
콜이 침실 안으로 잽싸게 뛰쳐 들어왔다. 그는 피 칠갑이 된 단도를 쥐고 남자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정상인의 범위를 뛰어넘은 속도였다.
눈 깜짝할 새에 주검이 된 남자의 육중한 몸은 벌목된 통나무처럼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세라엘은 후들후들 떨면서 쟁반을 내던졌다. 은쟁반은 남자의 두개골 모양대로 찌그러져 있었다.
“누님, 괜찮아요?”
침입자의 피로 추정되는 붉은 액체를 뒤집어쓴 콜이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세라엘은 그의 팔에 매달려 다급히 물었다.
“루시는? 루시랑 렉터는 괜찮을까?”
“둘 다 무사히 탈출한 것 같아요. 렉터가 하녀랑 같이 있던 레오를 보냈거든요.”
콜이 말을 끝내자마자 복도에서 네발짐승이 유유히 들어왔다. 세라엘은 커다란 개처럼 보이는 짐승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레오…!”
세라엘은 몸을 숙여 양손으로 늑대의 얼굴을 감쌌다. 혀를 빼물고 헥헥거리는 새끼 늑대의 주둥이가 벌건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핏자국을 보자 울컥 구역질이 일었다. 그래도 쓰다듬을 기대하는 늑대를 위해 살짝 손을 올려 이마를 매만져 주었다. 아까 전 들었던 짐승 소리는 레오가 자객을 공격하면서 낸 게 틀림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콜은 세라엘을 안심시키며 나동그라진 로잘린과 하녀를 바라보았다. 로잘린은 허옇게 질린 낯으로 퉁퉁 부은 팔뚝을 만지고 있었고, 어깨를 부여잡은 하녀는 신음을 흘리며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이제 안심해도 될….”
콜은 한바탕 일을 치른 여자들을 달래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무엇을 보았는지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누님! 안 다쳤어요?”
동시에 침실 안으로 들어온 악셀이 세라엘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세라엘은 창백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아. 그보다 로잘린과 하녀가 많이 다쳤어.”
로잘린은 괴한에게 붙들렸던 팔뚝이 성치 않았고, 몇 번이고 어깨를 걷어차인 하녀는 척 보기에도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 뼈가 부러진 게 틀림없었다.
악셀은 진정하라는 듯 두 손을 내보였다.
“침입자는 모두 제거했어요. 서둘러 치료를 받으면 괜찮을 거예요.”
말을 끝맺자마자 돌연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악셀은 조금 전 콜이 창밖에서 보았던 것을 확인하고 탄식을 흘렸다.
세라엘의 눈길 또한 자석에 이끌리듯 창문 너머로 향했다. 가슴이 빠르게 달음박질치며 손끝이 달달 떨려 왔다.
족히 스무 명은 넘을 법한 붉은 옷차림의 사내들이 황녀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동료가 제압당한 걸 알고 한꺼번에 몰려오는 걸까. 세라엘은 사색이 되어 콜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콜은 창가에서 물러나며 악셀을 응시했다.
“창문으로 탈출하기 전에 저것들이 먼저 도착하겠는데.”
“그럼 시간을 끌어야겠지.”
악셀은 바닥에 자빠진 로잘린 앞에 무릎을 꿇었다.
“궁 안에 문을 단단히 걸어 잠글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소란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해 넋이 나가 있던 로잘린이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4층… 4층으로 이어지는 층계참에 커다란 문이 있어요. 안쪽에 빗장걸이가 달려 있을 거예요.”
황녀는 퍼뜩 무슨 생각이 난 듯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4층은 사용하지 않는 침실이 있는 곳이라 지금은 출입할 수 없도록 바깥에서 자물쇠로 잠가져 있어요. 안쪽에 빗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그거면 충분해요.”
악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콜은 창문 위 천장을 향해 길게 손을 뻗었다. 그는 벽면에 고정된 철제 커튼 봉을 장난감처럼 뽑아 들었다. 숨을 몰아쉬며 그 모습을 보던 로잘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열쇠는 1층에 있는 내 침실에 있을 텐데 자물쇠를 어떻게….”
“자물쇠야 부수면 되죠.”
악셀은 고개를 돌려 부상을 입은 하녀에게 물었다.
“걸을 수 있겠어요?”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리를 다친 건 아니라서….”
“조금만 더 버텨 봐요. 누님은 정말 다친 데 없어요?”
악셀이 다치지 않은 세라엘을 부축하려 하자, 그녀는 턱을 내저으며 하녀를 가리켰다.
“없어. 나보다 마리를 도와줘. 어깨 부상이 심각한 것 같아.”
“알겠어요.”
악셀은 하녀를 번쩍 일으켜서 부축했다. 세라엘은 휘청이는 로잘린을 일으켜 주었다. 침실을 나선 그들은 4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향해 내달렸다.
철제 자물쇠로 굳건히 닫혀 있는 문 앞에 다다랐다. 콜은 커튼 봉의 끄트머리로 자물쇠를 몇 번 세게 내리쳤다.
쨍강!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바닥에 떨어졌다. 곧 그들은 빛 한 자락 들지 않은 4층 복도로 들어섰다.
어둠에 눈이 익지 않은 로잘린이 벌벌 떨자, 콜이 그녀를 안심시키듯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두운 곳일수록 우리한테 유리해요.”
식은땀을 흘리는 하녀의 얼굴을 살피던 로잘린이 불안한 듯 고개를 쳐들었다.
“당신 동료와 세라엘의 하녀를 내보내지 않고 다 같이 뭉쳐 있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요?”
악셀은 단호하게 턱을 내저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가 불리해져요. 그리고 한 명이라도 빠져나가서 이쪽 상황을 두목한테 알리는 편이 더 나아요.”
콜은 문의 빗장에 커튼 봉을 끼워 넣고, 그것을 철사처럼 구부려서 단단히 고정했다. 상식을 뛰어넘는 힘을 잇달아 목격하면서도 황녀와 하녀는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로잘린이 머리를 싸매며 고통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힐끔 돌아본 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일을 당신 오라비가 꾸몄다는데 내가 가진 모든 동전을 겁니다.”
“오라버니가….”
“그 인간, 이상하리만치 사냥 대회를 물고 늘어졌죠. 자꾸만 누님을 동행하라면서 두목을 자극했고요.”
콜은 두꺼운 철제 커튼 봉을 꾸깃꾸깃 구겨 매듭처럼 묶으면서 말을 이었다.
“꿍꿍이가 뻔히 보이는 제안에 두목이 미쳤다고 응하겠어요? 인제 보니 일부러 떨어뜨려 놓으려던 계획이 아니었나 싶어요. 어차피 두목도 계획이 있어 누님과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늘 둔해 보였던 소년이 날카롭게 지적하자 세라엘 또한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아까 그 남자, 데려가야 할 여자가 있다고 말했어.”
최대한 차분하게 전하려 했으나 세라엘의 목소리는 볼품없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보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아. 우리 중에서 누굴 데려가야 할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어. 그러더니 복도에 있는 다른 남자한테 누가 목표인지를 묻더라고.”
“금발이라고 대답하지 않던가요?”
악셀이 무겁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칼로 찌르기 전에 한 놈이 그리 외치더라고요. 금발 여자를 데려오라고.”
세라엘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로잘린은 암적색의 머리칼을, 하녀는 진갈색 머리칼을 가졌으니 침입자들이 노리는 대상은 세라엘이었다.
세라엘은 로잘린을 흘깃 일별한 후, 악셀을 향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황태자가 꾸민 짓일까?”
“폐막식 준비로 황녀궁에서 인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외부인이 알 것 같아요? 이곳이 비어 있다는 걸 알던 궁 내부 관계자의 소행이에요. 애초에 일부러 인력을 빼 간 것일 수도 있겠고요.”
로잘린은 마른침을 삼켰다. 필립은 대공 일행이 힌델에 오기 전부터 시커먼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그들이 황녀궁에 머무른다는 것까지 일찌감치 알아낸 상태였다. 모두 그의 소행임이 자명했다.
“마침 황녀궁은 본궁과 한참 동떨어져 있으니 이 짓을 계획하기도 쉬웠겠죠.”
악셀이 로잘린을 의심하듯 노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공 일행은 본래 다른 귀족들과 함께 본궁의 귀빈관에서 지내야 했지만 로잘린의 호의로 황녀궁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로잘린은 입술이 희게 질리도록 깨물며 시선을 피했다. 자신이 베푼 호의가 되레 필립이 꾸미던 음모에 도움이 된 것이다.
콜이 허공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황태자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을걸. 황녀궁 안에서 죽은 놈만 열 명인데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이러지.”
악셀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예 작정하고 일을 치른 걸 수도 있어. 일이 잘 안 풀리니까 자객이 스무 명이나 더 몰리고 있잖아. 그 망할 놈의 독사, 혈투로 번질 것을 각오하고 자객을 여럿 고용한 거지.”
악셀은 세라엘을 쳐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리고 누님한테 음료를 엎지른 그 하녀가 이 일에 관계했다는데 콜이 가진 모든 동전을 겁니다.”
“왜 내 동전을 걸어?”
콜이 인상을 찌푸리자 악셀은 어깨를 으쓱였다.
“게다가 자객 중 하나가 금발을 제외한 나머지는 죽여도 상관없다고 한 거 기억나요? 그들은 여기가 황녀궁이란 걸 인지하고 있었어요. 그 나머지에 황녀 당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쯤은 알겠죠.”
악셀이 지적하자 로잘린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현실을 부정하듯 마구 도리질 쳤다.
“하지만 나를 왜… 오라버니가 나까지….”
“내 추측이지만 당신 목숨을 노렸다기보다, 그저 당신 안위 따위는 고려 대상에 없었을 뿐일 겁니다.”
곧 로잘린의 시선이 세라엘에게 향했다.
“어째서… 오라버니가 어째서 세라엘을 납치하려고 했을까요?”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말하네요.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었나요?”
악셀이 다소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차마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던 황녀는 입을 다물고 오들오들 떨었다.
필립은 이 모든 계획을 위해 황녀를 시켜 칼스비크로 편지까지 보내게끔 종용한 것이다. 이 또한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로잘린은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머리를 싸맸다.
세라엘은 말없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곧 악셀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가 아니에요. 놈들이 올라오기 전에 어서 여길 빠져나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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