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18)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18화(118/150)
세라엘은 굳센 결심이라도 한 표정으로 콜을 저지하며, 악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친 사람부터 내려가게 해 줘.”
소년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누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해요.”
재고의 여지도 없다는 단호한 어조였다. 악셀은 세라엘을 데리고 내려가라는 듯 콜을 향해 눈짓했다.
세라엘은 망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로잘린과 하녀를 보다, 악셀의 소맷자락을 붙들었다.
“나는 저항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저들은 아니잖아…!”
“부상을 입은 여자가 저항하든, 사지 멀쩡한 여자가 저항하든 저놈들한테는 똑같아요. 하찮은 발악이라고요.”
“그러면 레오랑 남아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게. 문을 걸어 잠그고 옷장으로 막아 놓으면 시간은 벌 수 있을 거야. 네가 얼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줘! 부탁해…!”
결코 영웅 심리에서 불거진 말이 아니었다. 세라엘 또한 누구보다도 빨리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생채기 몇 개를 빼고는 다친 곳이 없는 자신에 비해, 로잘린과 하녀는 팔을 아예 쓰지 못하는 중상을 입었다. 그런 그들을 뒤에 두고 먼저 빠져나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절대 안 돼요.”
가차 없이 고개를 내저은 악셀은 다소 무례한 손짓으로 버티고 선 세라엘의 어깨를 밀쳤다.
세라엘은 기를 쓰고 악셀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소년이 전에 없이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두목의 명령을 거역하게 하지 말아요. 누님이 잘못되면 우리 목까지 날아가요.”
부하를 아끼는 카에드가 소년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리 없다. 괜히 겁을 주어서 세라엘을 먼저 내려가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나라고 해서 안 무서운 줄 알아? 부상자부터 챙기는 게 맞으니까 이러는 거잖아!”
“힘쓰게 하지 마세요!”
악셀이 그녀를 후려치듯 매섭게 소리쳤다.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소년의 일갈에 심장이 쿵쿵 뛰면서 호흡이 가빠졌다. 세라엘은 애처로운 눈으로 악셀을 바라보았다.
“렉터가 빠져나갔잖아. 분명 도와줄 사람을 데리고 돌아올 거야.”
“고집은 그만 부려요!”
쿵!
문밖에서 4층 입구에 걸린 빗장을 뚫고 들어오려는 소리가 재차 울려 퍼졌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레오는 일찌감치 몸을 낮추고 굳게 닫힌 침실 문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
동시에 악셀은 세라엘을 번쩍 들어 창가에 앉은 콜에게 넘겼다. 콜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낚아채고 시트를 이어 만든 줄을 꽉 움켜잡았다.
그에게 붙들려 창문 밖으로 나가게 된 세라엘이 괴로운 눈으로 로잘린과 하녀를 돌아보았다. 일찌감치 소년들의 결정을 받아들인 그들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낙사의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세라엘이 몸부림칠까 두려웠던 악셀이 어르듯 말했다.
“레오를 저 하녀와 함께 남겨 놓을 테니까 제발 얌전히 내려가 주세요. 누님이 서둘러야지 저것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모두 탈출시킬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악셀은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콜이 세라엘의 등허리를 단단히 둘러 안는 바람에 더 이상의 반항은 소용없었다. 고개를 돌린 악셀은 남은 여자들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들을 빼내겠다고 약속할게요.”
로잘린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짙은 녹안에 채 흘려보내지 못한 물기가 어려 있었다. 황녀는 창가 가까이 다가와 세라엘과 눈을 맞추었다.
“걱정하지 말고 어서 내려가요. 내 공간에 초대한 손님의 안위는 확실하게 책임지겠다고 했잖아요.”
“…….”
“괜찮으니까 어서요.”
로잘린은 필립에게 손찌검을 당한 얼굴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였는데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세라엘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콜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소년의 옷자락이 눈물 자국으로 얼룩졌다. 콜은 안쓰러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곧 단호하게 말했다.
“꽉 붙잡으세요. 이제 내려갈 거예요.”
콜은 세라엘이 제게 확실히 매달려 있는지 확인한 후, 줄을 잡고 능숙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괴감에 빠진 세라엘은 몸이 불안정하게 흔들려도 무서워할 여력이 없었다.
“괜찮아요.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콜은 그녀를 안심시키듯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라엘이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겁을 먹어서라고 생각한 듯했다.
사람 하나를 매달고 내려가는데도 힘든 기색이 없던 소년은 금세 줄을 타고 내려왔다. 세라엘은 지면에 발을 딛자마자 서둘러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창가에서 악셀이 로잘린을 꼭 붙든 채 조심조심 내려오고 있었다. 한 손으로 그녀를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줄을 잡아야 하는지라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못했다. 세라엘은 발을 동동 구르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누님!”
그때, 멈칫한 콜이 네모난 관목 뒤에 몸을 숨기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몸을 숙이고 이쪽으로 오세요.”
세라엘은 바짝 긴장하여 상체를 낮춘 채 그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데, 근처에서 수상한 인기척이 느껴져요.”
콜이 건물의 모퉁이 쪽을 응시하며 말했다. 덜컥 겁이 난 세라엘은 몸을 더욱 낮추었다.
“렉터가 도와줄 사람을 데려온 건 아닐까?”
“그랬다면 제가 바로 눈치챘을 거예요.”
일말의 희망을 담아 묻자 콜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궁에서 탈출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전에 찾아온 위기였다.
“렉터는 지금 혼자 행동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발이 빠르지도 않을 거고요. 놈들의 한패가 틀림없어요.”
“위에서 봤을 땐 아무도 안 보였잖아.”
콜이 줄을 타고 내려온 곳은 건물의 뒤편으로, 넓게 트인 후원이 위치한 곳이었다. 황녀궁의 출입구와 정반대 방향이었다.
콜은 재차 건물의 모퉁이 쪽을 의식하며 대답했다.
“아마 출입구를 지키고 있던 놈들일 거예요. 느낌상 다섯 명… 아니, 여섯 명이 다가오고 있어요.”
출입구에 있던 이들이 갑자기 건물을 돌아 후원으로 오는 이유가 뭘까. 세라엘은 로잘린을 안고 내려오는 악셀을 불안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우려하는 바를 알아챈 콜 또한 조심조심 줄을 타는 악셀을 응시했다.
“악셀이 하녀와 레오를 데리고 내려오기 전에 저것들이 먼저 도착할 것 같은데요.”
짤막하게 중얼거린 콜이 다소 초조한 기색을 내비쳤다. 평범한 인간 남자 네다섯 정도면 어린애 팔 비틀기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쪽은 세라엘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고, 로잘린까지 내려오면 운신이 더욱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전에 놈들이 줄을 타고 내려오는 악셀을 발견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역시 선수를 치는 편이 좋을까. 그러기 위해선 먼저 세라엘을 안전한 곳에 두어야 했다. 콜은 잔머리가 빠른 악셀이나 렉터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고심하며 머리를 팽팽 굴렸다.
세라엘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콜을 바라보았다. 황녀궁에 자객이 몰려 닥쳤을 때도 신속히 대응했던 소년이 눈에 띄게 긴장하고 있었다.
그때쯤 악셀은 로잘린을 지면에 내려놓고, 다시 줄을 타서 빠른 속도로 4층을 향해 올라갔다. 이어 순식간에 하녀와 레오가 남아 있는 침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자객들이 빗장을 부수고 들어오기 전에 서둘러 탈출해야 할 텐데. 하지만 그전에 다른 놈들이 후원으로 들어오면 어쩌지.
걱정하던 세라엘은 문득 어찌할 바를 몰라 덩그러니 서 있는 로잘린을 발견했다. 그녀를 향해 다급히 손짓하자, 로잘린은 관목 뒤에 웅크린 그들을 보고서 조심스럽게 달려왔다.
그 순간이었다.
“……!”
몸을 숙인 채 다가오던 로잘린이 보이지 않는 손에 밀쳐진 듯 옆으로 홱 고꾸라졌다. 풀밭 위로 쓰러진 그녀는 전혀 미동이 없었다.
세라엘은 비명이 터져 나올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로잘린의 눈꺼풀은 잠든 사람처럼 감겨 있었고, 어깨에는 자그마한 화살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아연실색한 세라엘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키자 콜이 서둘러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 곧 관목 뒤에서 낯선 음성이 울렸다.
“효과 좋네.”
괴한이 휘파람을 불며 이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여러 명의 발소리를 동반한 채였다. 출입구를 지키던 자객들이 후원으로 들어온 것이다.
“코끼리도 쓰러뜨리는 마취 독이라더니 진짜였나 봐.”
“그 흰머리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닌 듯하군.”
“근데 이 여자는 우리가 찾던 목표가 아닌데? 머리카락이 붉은색이잖아.”
“젠장. 늦기 전에 금발을 가진 여자를 찾아야 하는데.”
세라엘은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입을 틀어막았다.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가슴이 쉴 새 없이 두방망이질 치고 손끝이 떨렸다. 작은 숨소리도 들킬까 봐 두려웠다.
“저거 봐라.”
남자의 목소리는 4층 창문에서부터 이어진 하얀 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말이 맞지? 창문으로 탈출할 것 같다고 했잖아.”
“네가 타고 올라가서 처리해. 싸울 줄 아는 놈이 내려오면 골치 아파진다.”
“어어! 놈이 내려오는데? 커다란 개랑 여자를 달고 내려오고 있어!”
“제기랄! 마취 화살을 다시 준비해. 저 사냥개까지 확실하게 쏴서 떨어뜨려.”
콜은 더 고민하지 않았다. 세라엘에게 조용히 하고 있으라는 듯 검지를 입에 갖다 대더니, 바지춤에서 날카롭게 벼려진 단도를 꺼내 들었다. 채 닦아 내지 못한 누군가의 피가 묻은 단도는 달빛을 받아 일순 반짝였다.
성큼 몸을 일으킨 콜은 관목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와 동시에 자객의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콜이 자객 여럿과 엉켜 싸우는 모습을 본 악셀은 이를 갈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 팔로 하녀를 안은 것도 모자라 레오까지 어깨에 매단 상태였으니, 다른 한 팔로 줄을 타고 내려오는 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세라엘은 있는 힘껏 몸을 웅크렸다. 무기라도 쥐고 달려 나가서 콜을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무기가 있든 없든 방해만 될 게 뻔하니 최대한 기척을 감추고 숨어 있는 편이 현명하겠지.
바로 그때, 세라엘의 눈앞에 붉은 옷을 입은 괴한이 픽 넘어졌다. 그는 자상을 입은 옆구리를 움켜쥐고 누워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핏발 선 눈은 다리를 쪼그리고 앉은 세라엘에게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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