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19)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19화(119/150)
“……!”
놀란 것도 잠시였다. 세라엘은 재빨리 괴한의 머리를 내려칠 돌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잘 다듬어진 풀밭에 무기로 쓸 만한 자갈돌 따위가 굴러다닐 리는 없었다.
“이게…!”
세라엘이 무얼 찾는지 알아챈 괴한이 이를 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나 놀라 뒷걸음질을 치는 사이에 멱살이 잡힌 건 한순간이었다. 그는 세라엘을 무지막지한 힘으로 끌어당겨 제 팔 안에 가뒀다.
세라엘은 소리를 내지르며 두 다리가 허공에 뜨일 정도로 발버둥을 쳤다. 주먹까지 움켜쥐고 괴한의 몸을 두들겼다. 필사적인 저항이 무색하게도 남자에겐 조금의 타격을 주지 못했다.
악셀의 말이 옳았다. 사지 멀쩡한 몸으로도 남자의 완력에 맞설 수가 없었다.
“죽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세라엘의 목을 틀어잡은 남자가 험악한 목소리로 협박했다. 세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둥거리며 저항했다. 그러던 중 남자가 옆구리에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팔꿈치를 세워 그 부분을 마구 강타했다.
“흐악!”
남자는 고통에 젖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동안 순식간에 자객 다섯을 해치운 콜이 고개를 돌려 세라엘을 바라보았다.
남자에게 틀어 잡힌 그녀를 본 콜은 욕설을 뱉으며 서둘러 달려왔다. 그러나 단검을 빼든 괴한이 뾰족한 칼끝을 세라엘의 목에 갖다 대었다.
“움직이지 마!”
“……!”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이 여자 목이 날아갈 줄 알아!”
맥박이 팔딱이는 곳에 닿는 날붙이가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덜컥 겁이 난 세라엘은 반항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때쯤 지면에 발을 내디딘 악셀이 험악한 얼굴로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레오 또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몸을 낮추었고, 로잘린의 하녀는 사색이 되어 바닥에 쓰러진 황녀를 살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
콜이 움직이려는 기색을 보이자 괴한이 매몰차게 소리쳤다. 다섯이나 되는 괴한의 일행이 콜 하나를 당해 내지 못했으니, 악셀과 레오까지 가세한다면 그에게 승산은 없었다.
그 사실을 남자도 알고 있는지 극도로 긴장하여 부르르 떨었다. 맞붙은 몸에서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불쾌한 전율이 전해져 왔다.
“이 쓸모없는 놈들아! 당장 이리로 오지 못해!”
괴한은 세라엘 일행이 줄을 타고 내려왔던 침실의 창문을 향해 빼액 소리를 질렀다. 뒤늦게 침실 안으로 들어온 자객들이 창문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라엘은 창 너머로 사라지는 자객들을 올려다보며 절망에 빠졌다. 인질로 잡힌 마당에 저들까지 내려온다면 판세는 완전히 뒤집힐 것이다.
“그 개새끼부터 진정시켜!”
괴한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태세인 레오를 가리켰다. 바닥에 뒹굴며 익살스러운 모습만 보여 주었던 늑대가 짐승 특유의 공격성을 드러내고 포악하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악셀은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몸을 숙여, 레오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악셀은 호시탐탐 허점을 찌를 기회를 노리듯 눈을 부릅뜨고 남자를 노려보다, 불길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누굴 건드리고 있는 건지 알아?”
괴한은 가래가 끓는 음성으로 고함을 쳤다.
“물러서라고 했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감히…!”
악셀은 대답 대신 바닥에 널브러진 괴한의 동료를 발로 툭 건드렸다. 콜의 단도로 난도질당한 자객은 피 칠갑을 한 채 끔찍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너 말이야. 우리 두목한테 잡히면 이 정도로는 안 끝나.”
“입 다물어!”
사내의 치아가 위아래로 마구 맞부딪치는 소리가 선연했다. 악셀은 아랑곳하지 않고 건조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두목은 너를 완전히 망가뜨려 놓을 거야. 네게 각성제와 물약까지 먹여 가며 강제로 목숨을 붙들어서 고문할 사람이거든. 두 번 다시 회생할 수 없게 완전히 짓이겨 놓을 거라고. 고문이 몇 달이고 이어지면 너는 더 이상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을걸. 네가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쓸모가 없어지면, 그대로 하수구에 내던져 병든 쥐새끼들의 밥으로 주겠지.”
치가 떨릴 만큼 살벌한 협박에 세라엘마저 욕지기가 치밀었다. 괴한은 새파란 낯빛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서늘한 정적이 흐른 뒤 악셀이 느릿느릿 말을 끝맺었다.
“그 꼴이 되기 싫으면 순순히 그분을 놓아주는 게 현명할 거야.”
사내는 세라엘의 목덜미에 더욱 바짝 칼날을 갖다 대었다. 연한 살갗이 베이면서 작은 줄기의 피가 흘러내렸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지금 내 손에 틀어 잡힌 여자를 보고도 같잖은 협박을 하는군!”
악셀은 두 손을 내보이며 조용히 말했다.
“분풀이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내가 친히 자원할 테니까 그분은 놓아줘.”
“한 치도 모르는 놈 같으니, 너 같은 시커먼 놈이 어디 쓸데가 있다고! 이봐! 물러서라고 했지!”
그때 콜이 세라엘을 놓아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괴한에게 조금 다가서자, 그가 냅다 윽박을 질렀다.
문득 세라엘은 콜의 팔에 자그마한 화살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로잘린의 몸에 꽂힌 것과 같은 화살이었다.
황녀를 한 방에 기절시켰던 마취 화살을 맞고도 콜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은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고 괴한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괴물 같은 놈! 코끼리도 한 방에 쓰러뜨리는 독을 맞고도 멀쩡히 서 있다니….”
그때쯤, 황녀궁에서 나온 자객들이 후원으로 서둘러 달려왔다. 여러 마리의 말까지 함께였다. 세라엘은 본능적으로 그들이 자신을 어디론가 데리고 가리란 것을 깨달았다.
“어서 타! 여기서 미적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자객들은 떠날 준비를 하며 다급히 외쳤다. 소년들에게 단단히 앙심을 품은 괴한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초록빛의 불길한 액체가 든 유리병과 자그마한 화살이었다.
괴한은 유리병을 열어 화살촉에 독을 적시고, 작은 석궁에 화살을 끼운 후 콜을 향해 겨냥했다.
“안 돼!”
세라엘이 비명을 질렀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취 독이 묻은 화살을 발사했다. 그것은 콜의 어깨에 적중했으나, 놀랍게도 콜은 미동도 없었다.
“괴물 새끼!”
짓씹듯 중얼거린 괴한은 한두 방을 더 쏘아 댔다. 역시나 콜은 쓰러지지 않았다. 사내는 고함을 지르며 악셀에게도 화살을 쏘았다. 그 또한 휘청이지 않았다. 그저 먹잇감을 노리듯 조용했던 얼굴에 악의가 번졌을 뿐이었다.
상식을 넘어선 광경에 남자는 유령이라도 본 듯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발을 한 번 굴렀다.
“너희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어째서 독을 맞고도 쓰러지지를 않는 거야!”
말에서 내린 다른 자객이 그의 어깨를 틀어잡았다.
“그만해, 대장! 누가 돌아오기 전에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야 할 거 아냐!”
“저것들이 따라붙으면 어쩌려고 그래!”
자객은 몸을 틀어 콜과 악셀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를 쫓아오는 낌새가 있을 때마다 여자 손가락을 하나씩 자를 줄 알아.”
협박을 던진 그는 세라엘을 끌고 말의 안장 위에 짐짝처럼 올려놓았다. 소년들은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객들은 세라엘을 데리고 황녀궁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악셀은 그제서야 제 몸에 박힌 화살을 거친 손짓으로 빼 던졌다.
“쓰레기들이!”
악셀은 노기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콜은 괴한이 세라엘을 붙들고 서 있던 자리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은 그는 손을 뻗어 풀밭 위에 점점이 흩어진 검붉은 피를 훑었다.
콜은 지문에 묻은 괴한의 피를 코끝에 갖다 대고 킁킁 냄새 맡았다. 그러고는 마차가 사라져 간 방향을 향해 조용히 시선을 들었다.
“전하! 제발 눈을 떠 보세요…!”
등 뒤에서 하녀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악셀은 서둘러 로잘린의 맥박을 확인한 뒤 그녀를 진정시켰다.
“살아 있어요. 마취 독이라 무사하겠지만 빨리 의사를 부르는 편이 좋겠군요. 황궁 안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나요?”
“저, 전하를 따르는 기사들이 남아 있고… 시종장과 주치의 선생님이 있어요.”
“치료와 호위 모두 필요할 테니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불러서 황녀궁으로 데려오세요. 할 수 있겠어요?”
잠시간 울먹거리던 하녀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걸음을 옮기는 하녀의 뒤로, 악셀의 명령을 받은 레오가 비호하듯 그녀를 따라나섰다.
하녀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동시에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큼 육중한 말발굽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악셀과 콜은 다가오는 자가 자신들이 충성을 맹세한 주인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챘다.
소년들은 간격을 좁히는 흑마를 지켜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귀신처럼 섬뜩한 낯을 한 카에드가 그들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
세라엘이 눈을 막 뜨자마자 느낀 것은 기분 나쁜 습기였다.
머리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어지러웠고, 초점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머지않아 그녀는 눈에 안대가 씌워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기절했었던가. 말 위에 짐처럼 실려 이동하던 도중 매캐한 냄새가 나는 헝겊이 코를 덮었던 게 기억이 난다. 아마 로잘린을 쓰러뜨렸던 마취 독이었겠지.
세라엘은 팽팽 소용돌이치는 정신을 다잡으려 애쓰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두 손까지 앞으로 결박되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다.
‘여기가 어디지….’
재차 몸을 움직이자 목재로 만들어진 바닥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세라엘은 입술을 살짝 벌리고 예민해진 청각으로 주변을 의식했다.
사위가 조용했다. 헛기침을 해 보니 울리는 공명이 짧았다. 갇힌 곳이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자세한 이유는 몰라도, 놈들이 그녀 혼자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