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2)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2화(12/150)
렉터가 팔짱을 낀 채 일부러 야비한 웃음을 지으면서 루시를 도발했다.
“소문대로 남부인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난리군요. 겉치레가 그리들 중요한가?”
“저는 중부 사람이에요! 여기는 남부가 아니라 중부 지방이고요.”
“기준이 어디냐에 따라 다르겠죠. 북부인에게 아래 지역 인간들은 다 남부인이거든요?”
이내 렉터가 어깨를 으쓱이며 수긍했다.
“뭐, 어쨌든 노력해 볼게요. 제대로 된 존대인지 뭔지. 혈통이 중요하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으니까요.”
“익숙지 않으셔도 아가씨께는 주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그쪽한테는 존대를 안 써도 되나요?”
“…예, 엣? 그야 뭐….”
루시가 말을 더듬자 렉터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냥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길래.”
“놓, 놓지 마세요. 친하지도 않은데 반말은 어색해요.”
“친해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법이 어디 있나요?”
“여기 있어요.”
렉터와 루시가 어린애처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세라엘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제 해가 완전히 저물었기에 귀가할 시간이었다.
“두 사람, 하고 싶은 대화는 저택에 가서 마저 나누렴. 어두워졌으니 슬슬 돌아가자.”
“이런 남자랑 하고 싶은 대화 없어요!”
“이런 여자랑 하고 싶은 대화 없어요!”
뺨이 붉어진 렉터와 루시가 동시에 외쳤다.
어쨌든 심란한 마음에 나온 외출이지만 결연히 세웠던 계획을 잊어선 안 된다.
카에드가 저택에 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전해야 하는 말 또한 잊을 수 없다.
‘마음이 바뀌었으니 저와 결혼해 주세요…. 라고 해야겠지.’
그야말로 프러포즈를 앞둔 기분이었다.
‘너무 남사스러우니 반드시 단둘이 있을 때 말해야겠어. 내 사정을 설명하면서 의사를 번복하게 된 경위를 차근차근 납득시켜야겠지.’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세라엘은 알지 못했다.
그와 결혼하고자 하는 의지를 매우 낯부끄러운 방법으로 쩌렁쩌렁 알리게 될 자신의 미래를.
***
해바라기.공금
세라엘은 마부를 재촉하여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며칠을 내리 기다렸던 카에드 일행은 여전히 복귀하지 않은 상태였다.
‘집사가 분명 오늘 중으로 귀가할 예정이라고 그랬는데.’
귀가가 늦어지자 불길한 생각까지 들었다.
‘설마 영영 떠나 버린 건 아니겠지? 나타샤에게 대공님과 결혼할 거라고 호기롭게 떠벌려 놨단 말이야.’
거짓말이 들통나고 맥슨 백작에게 팔려 가게 되면… 그거야말로 최악 중 최악이었다.
‘아냐. 렉터를 일부러 두고 갔으니 반드시 돌아올 거야.’
게다가 그날 밤 세라엘에게 저돌적으로 다가오던 모습을 떠올리면 이대로 자취를 감출 사내는 아니었다.
‘그 남자를 이토록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다니.’
세라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렉터에게 간식이나 챙겨 줘야지.’
렉터가 카에드의 명으로 내리 며칠을 밖에서 지냈다는 말에 음식이라도 좀 챙겨 주고 싶었다.
어차피 자기 역할은 감시인이라며, 후작저로 돌아올 때도 마차를 얻어 타지 않고 혼자 도보를 고집한 것 또한 미안했다.
‘카에드의 측근이니 잘 보일 필요도 있어. 북부로 가게 되면 내 편이 한 명쯤은 필요하니까.’
그런 계산적인 생각보다는 남동생 같은 렉터를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긴 했다.
세라엘은 바구니 안에 소금에 절인 고기와 삶은 감자, 버터 롤빵과 약간의 살구잼, 우유 한 병까지 야무지게 챙겨 넣었다.
‘한참 성장기일 테니 많이 먹여야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묵직해진 음식 바구니를 부엌 밖에서 대기하던 루시에게 전달해 주려던 참이었다.
별안간 1층 복도 끝의 방문이 열리고 나타샤가 뛰쳐나왔다.
화재 때문에 부부 침실이 아닌 1층 작은 방에서 지내던 나타샤는 인기척에 매우 예민한 상태였다.
익숙지 않은 잠자리와 초저녁부터 말없이 외출한 얄미운 세라엘 때문이다.
마침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세라엘의 것임을 확신하여 문을 박차고 나오게 된 거였다.
그렇게 세라엘이 음식으로 가득 찬 바구니를 하녀에게 건네주는 광경은 참견하기 좋아하는 나타샤의 눈에 모두 포착되고 말았다.
단박에 미간을 구긴 나타샤가 바구니를 가리켰다.
“지금 손에 든 그거 뭐야?”
“신경 쓰지 마세요.”
새된 목소리에 질릴 대로 질린 세라엘이 몸을 홱 돌리고 루시의 등을 살짝 밀었다.
어서 렉터에게 가져다주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나타샤의 고성이 루시를 붙들었다.
“너 거기 서!”
“마, 마님…!”
“바구니를 당장 이리 내. 귀한 음식을 어디로 빼돌리는 거야?”
말도 안 되는 트집이었다.
나타샤야말로 품위를 유지한답시고 온갖 사치품을 사들이며 자산을 거덜 내곤 했으니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세라엘은 쿵쿵대며 다가오는 계모를 막아섰다.
“길에서 만난 강아지에게 줄 간식이에요. 배고픈 동물을 가엾이 여겨 보살피는 일도 귀족의 덕목 아니겠어요?”
“강아지? 너 제정신이니?”
“상대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면 귀족답지 못한 행위랍니다. 어머니께선 하루에 다섯 번 범하고 있는 실수이지요.”
“너…! 너 뭐라고 그랬어!”
“방금 주의 드렸는데도 또 되물으시네요. 아무튼, 루시. 나가서 강아지에게 전해 주고 오렴.”
저택을 감시 중인 남자에게 이 음식을 주겠다고 할 수는 없어 강아지라고 대강 둘러댔다.
그게 가뜩이나 성이 난 나타샤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렸다.
오래전부터 가져온 지위에 대한 열등감까지도.
‘이게 입만 열면 귀족적이지 못하다고 날 질책하고 있어…!’
허둥지둥 저택을 빠져나가는 루시를 보며 나타샤가 부르르 치를 떨었다.
‘대공과 결혼한답시고 기고만장해서는! 좁다란 손님방 침대에서 잠도 못 자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봐도 허풍 같단 말이지.’
그것 때문에 어제 하루 심술을 좀 참았더니 화병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
나타샤는 더 견디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내게 일언반구도 없이 홀랑 집을 나가더니 이젠 음식이나 훔치고 있어? 네가 좀도둑이야?”
말도 안 되는 생트집에 어이가 없어진 세라엘이 코웃음을 쳤다. 육포를 훔친 하녀에게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면서!
“여기가 내 집인데 음식을 훔치는 게 말이 되나요? 어머니의 하녀인 육포 도둑과 도매금으로 넘기지 마시죠.”
“뭐가 어쩌고 어째? 그리고 뭐, 네 집? 하! 너 말 잘했다.”
언성이 높아지자 각자 구역에 있던 사용인이 하나둘 나와 기웃거렸다. 그들은 근심과 기대감이 섞인 눈으로 주인마님과 아가씨의 다툼을 지켜보았다.
“잘 들어라, 이 요망한 것아. 이 저택은 이제 네 집이 아니다.”
의미심장한 말에 세라엘이 숨을 들이켰다.
“카에드 님과 약혼했다는 것도 거짓이지? 넌 조만간 우리가 정해 주는 상대와 정혼할 터이니 그리 알아라. 맥슨 백작이라고, 너도 먼젓번 만나 본 적 있는 신사분이다.”
세라엘은 굳게 쥔 주먹을 이용해서 패륜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내리눌렀다.
“말조심하세요. 그런 호색한과 결혼할 일은 없으니까. 어머니야말로 조만간 저를 대공비 전하라 높여 불러야 할 거예요.”
“웃기지 마! 대공님은 처음부터 너한테 일말의 관심조차도 없었어!”
나타샤는 보석 반지가 열댓 개쯤은 낀 손으로 거세게 삿대질을 해 댔다.
“네 아버지가 혼담 제안을 하루 이틀 전에 건넨 줄 아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단 말이다!”
마을 축제 때 카에드 일행이 은밀히 찾아왔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모종의 거래가 오갔으리라 일찍이 예상한 바였다.
‘혼담 제안은 무슨! 힌델의 건물과 나를 1+1로 떠넘기려던 것도 다 알고 있거든?’
얼마 전엔 자신을 팔아넘겼을까 봐 부들대던 세라엘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이야기가 달랐다.
‘내가 믿는 구석이 없어서 허세를 떨고 있는 줄 알아?’
카에드가 그녀와 결혼하고자 했던 의지를 서슴없이 표현했던 걸 나타샤가 알 턱이 없다.
어차피 매사에 냉소적이고 한결같이 무표정인 남자에게서 후작 부부는 어떠한 감정도 읽어 낼 수도 없었을 거다.
문득 세라엘은 나타샤의 열 손가락에 고이 끼워진 반지들을 내려다보았다.
대추알만 한 크기의 보석이 박힌 하나같이 사치스러운 반지였다.
그 위로 팔목에 둘린 가지각색의 팔찌와 다이아몬드 목걸이, 귀걸이까지도 눈에 띄었다.
화재로 잃지 않은 계모의 유일한 보석들이었다. 잘 때도 착용할 만큼 아끼는 액세서리라 무사히 보존한 듯했다.
돌연 어떠한 생각이 떠오르자 세라엘의 푸른 눈에 전운이 감돌았다.
눈썹을 휜 나타샤가 또다시 악다구니를 쓰려고 시동을 걸자, 세라엘은 냉큼 두 손을 맞잡고 빙그르르 돌았다.
“거짓이라니요? 어머니는 정말 하나도 몰라! 그러면서 입으로 떠드는 것만 좋아하셔. 참으로 귀족답지 못하구나!”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모를 만도 하지! 왜냐면 대공님과 나는 첫눈에 반해 버렸거든요!”
세라엘은 행복한 상상을 하는 척하며 달빛이 투과되는 창밖을 올려다보았다.
“대공님은 대체 언제 돌아오시는 걸까? 몇 날 며칠을 기다려도 오시질 않으니 너무나 보고 싶어요. 이런 게 바로 사랑일까?”
연극에 한껏 취한 세라엘이 꿈꾸듯 중얼거렸다.
“그래, 이런 게 바로 사랑인가 봐. 가엾은 어머니는 몰랐던 사랑!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대공님과 내 사랑을 눈치채지 못했다니 아이, 안타까워라.”
“저기, 세라엘 아가씨…?”
머뭇대며 자신을 부르는 집사를 무시하고 세라엘은 나비처럼 사뿐히 춤을 췄다.
“대공님과 하루빨리 북부로 떠나고 싶어라. 그분과 하나가 될 날을 한시도 기다릴 수 없어요.”
그렇게 하얀 드레스 자락을 잡고 뱅글뱅글 돌며 사랑에 빠진 여자를 연기하고 있을 때였다.
활짝 열린 저택의 출입문 앞에 기다란 인영이 너울거렸다.
“그게 정말입니까?”
나긋한 저음이 모든 이의 주의를 끌었다.
행복한 새신부가 되어 기쁜 척 복도를 사뿐히 뛰어다니던 세라엘이 우뚝 동작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얼떨떨한 눈길 끝에 카에드가 서 있었다.
세라엘은 맞잡은 두 손을 풀지도 못한 채 눈을 깜박였다.
시선이 부딪히자 높은 문간을 꽉 채운 장신의 그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뒤로 일곱 명의 남자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라엘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렉터 혼자 치아를 드러내고 실실 웃고 있었다.
렉터에게 음식을 전해 주다 귀가하는 카에드 일행을 보고 따라 들어온 루시도 이 낯부끄러운 사달을 목격하고 말았다. 모든 사정을 아는 하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공감성 수치….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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