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26)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26화(126/150)
치받듯이 다가오는 무게를 이기지 못한 세라엘이 몸을 뒤로 휘청였다.
카에드가 등허리를 단단히 둘러 주었으나, 찰나에 자세가 흔들리면서 맞물린 입술이 떨어졌다. 세라엘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그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지금 설명 안 해 주면 도망갈 거예요.”
“이제 도망 못 간다니까.”
아랫입술을 쭉 빨아 당긴 그가 숨결이 얽힌 저음으로 말했다. 무릎 사이에 세라엘을 가두고서 다시금 밀어붙이듯 입을 맞추었다. 처음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버거운 키스였다.
달아오른 볼이 그의 콧날에 짓눌리며 결합이 깊어졌다. 그가 원하는 대로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혀가 얽히는 소리는 낯뜨겁기 짝이 없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를 때마다 그에게 모조리 빼앗기고 있었다.
질척하게 입을 맞추는 동안 그의 손이 세라엘이 두른 외투 안을 헤집었다. 그러나 카에드 자신이 잔뜩 껴입히고 여며 놓은 몇 겹의 외투를 쉽게 뚫을 수 없었다. 옷깃을 풀어 헤치던 손짓은 조급하기만 할 뿐, 원하는 것을 마음껏 움켜잡지는 못했다.
“…….”
그가 소리 없이 욕설을 중얼거리는 것도 같았다. 카에드는 그녀의 얼굴에 코를 짓누른 채로 입술만 떼서 녹녹한 호흡을 내뱉었다.
“세라엘.”
“하아…. 이제 그만해요….”
미약한 힘을 담은 작은 주먹이 그의 가슴팍을 밀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카에드는 욕망의 잔열을 해소하지 못한 얼굴로 그녀의 새붉은 입술을 내려다보았다.
“미안합니다. 아픈 사람한테 몹쓸 짓 하는 기분이네요.”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말투였다. 여차하면 또 파고들 기세라 세라엘은 짐짓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프지는 않지만 나는 대화를 하고 싶어요.”
“해요, 대화.”
“이게 무슨 대화, 읏….”
달뜬 호흡을 내뱉는 입술이 와락 깨물렸다.
“사랑스러워서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있어야지.”
“아파요…!”
세라엘은 깨물린 입술이 아려서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미안하다는 듯 코끝을 비볐다. 그러면서도 외투에 덮인 그녀의 몸을 쉴 새 없이 어루만졌다.
“알려 줘요. 각인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각인한다는 건, 우리가 보이지 않는 족쇄로 평생 연결되었다는 겁니다.”
부리로 쪼듯 짧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발켄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과 호감을 가진 상태에서 셀 수 없이 몸을 섞고, 마음을 교류하고, 그러다 무의식에서 서로를 운명의 상대로 인식하는 순간이 오면 각인하게 돼요. 그 순간부터 몸 안에 자리한 신경이 상대를 향해 바짝 곤두서면서,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인지하고 싶어 하는 열망이 생기는 게 각인이에요.”
“그럼 카에드도 느꼈어요?”
입맞춤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라엘이 몽롱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 오묘한 기운 말이에요. 이상하게 방향만큼은 확실히 알 것 같아서 그쪽으로 시선이 가고,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느낌이요.”
“처음엔 잘못 느낀 거라고 생각했어요. 세라엘이 나를 운명으로 받아들였을지 확신할 수 없었거든요.”
“아….”
카에드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어깻죽지에 얼굴을 묻었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열기 오른 뺨을 스쳤다.
“생명이 다해 눈을 감을 때까지 나랑 지독하게 얽히겠네요.”
“이미 지독하게 얽힌 거 같아요.”
조용히 중얼거리자 푸스스 웃는 숨결이 세라엘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인력처럼 상대를 끌어당기고 제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욕망이 평생 새겨지는 겁니다. 나한테도, 당신한테도.”
그의 목소리는 한 꺼풀 벗겨 내면 거대한 환희에 잠겨 있을 것 같았다. 상호 간의 연정으로 인해 발현하는 현상인 데다, 관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관둘 수 없기 때문일까.
“신기해요. 느낌만으로 서로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니 마법 같은 일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목덜미에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세라엘이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사랑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거 같아요.”
제 목소리로 말해 놓고도 잇새로 흘러나온 단어의 무게는 뒤늦게서야 와닿았다.
고개를 들어 올린 카에드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라엘은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였다. 가뜩이나 상기된 뺨은 붉은 물감이 엎질러진 것처럼 확 달아올랐다.
“…….”
불현듯 그에게서 색채가 몹시 짙은 마음이 파도처럼 전해져 왔다. 세라엘 또한, 그가 줄곧 이름을 알고 싶어 했던 감정을 전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카에드는 그녀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나지막이 물었다.
“나를 사랑해요?”
어쩐지 애달프게 와닿는 물음이었다. 마른침을 삼킨 세라엘은 맞닿은 시선을 끊어 내지 않았다. 자그마한 미동도 없이 온전히 그녀를 향한 눈동자가 유난히도 밝은 금빛을 머금었다.
깍지 끼워 맞잡은 손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맥박이 달음질쳤다. 세라엘은 짤막한 헛숨을 들이켰다. 잇새로 가늘게 떨리는 음성이 새어 나왔다.
“사랑해요.”
카에드의 온 얼굴은 간절한 기도에 응답을 받은 사람처럼 희열에 차올랐다. 쿵, 쿵. 더없이 빠른 속도로 박동하는 그의 심장 소리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한 번만 다시 말해 봐요.”
“사랑해요….”
카에드는 부드러운 선율을 음미하듯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키스해 줘요.”
나지막한 목소리는 애원이었다. 세라엘은 손을 뻗어 그의 두 뺨을 붙잡아, 그대로 입술을 내리눌렀다. 새털처럼 부드러운 입맞춤은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을 담고 있었다. 그와 몇 번이고 입을 맞추고 관계를 하는 동안 지금처럼 커다란 전율을 느낀 적은 없었다.
세라엘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요동치는 물결을 닮은 그녀의 푸른 눈이 그를 똑바로 직시했다.
“카에드는요?”
“…….”
“나를 사랑하나요?”
그녀의 허리를 움켜쥔 악력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말을 잃은 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 것도 같았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무언가를 억누르는 것처럼 느릿하게 흘러나온 저음이 그녀의 사랑에 답을 주었다. 아니, 답을 들은 사람은 세라엘이 아닌 카에드였다.
세라엘이 심호흡하듯 길게 내리 쉰 숨은 허연 안개가 되어 공기 중에 퍼져 나갔다. 그녀는 맞잡은 손에 미약한 힘을 주었다.
“저, 이제 모든 걸 듣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
“당신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구요.”
손을 올린 카에드가 세라엘의 입술을 훑어 만졌다.
“뭐든 말해 봐요. 뭘 알고 싶은 겁니까?”
“당신이 알려 주고 싶어 했던 모든 진실이요.”
그를 둘러싼 추문과 거미줄처럼 얽힌 진실을 알고 싶었다. 악셀의 말마따나, 카에드를 향한 의문점은 모두 없애 버리고 그를 마음 놓고 사랑하고 싶었다.
카에드는 그녀가 다음 말을 이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잠시간 뜸을 들인 세라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블카노프 공작가의 가문원들이요.”
“…….”
“그 사람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오래전 황실 사생아로부터 불거져 나와, 본래 카에드가 소유해야 하는 모든 걸 차지한 일원들. 하루아침에 깡그리 멸족당했다던 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방에 흩어진 붉은 선혈, 즐비하게 늘어진 시신 더미.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목숨을 빼앗긴 이들을 떠올리자 재차 구역질이 치밀었다.
“내가 죽였습니다.”
카에드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전부 다. 빠짐없이 죽였어요.”
세라엘은 절대 행할 수 없는 잔인한 일이지만, 가문 내에서 끔찍한 핍박을 받았던 카에드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행한 살인은 아니었겠지. 그에 얽힌 다른 사정을 확실하게 듣고 싶었다.
세라엘이 알던 세계가 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 당신이… 블카노프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제 입으로 말하면서도 세라엘은 혼란스러웠다. 지금 세계에서는 그녀밖에 모르는, 수백 년을 이어 온 제국의 역사를 뒤엎을 비밀이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반면 카에드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어떻게요?”
“당신이 말해 주었으니까요.”
세라엘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해 준 적이 없었다. 카에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다만 그 이유로 가문을 정리한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째서였어요?”
“당신을 데려오려면 성과 지위가 필요했거든요.”
이것 또한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했던 사정이다.
그와 처음으로 몸을 섞었을 때, 격랑처럼 밀려드는 감각을 구실로 눈과 귀를 꼭 닫고 듣지 않으려 했던 그의 목소리가 분명히 말해 주었던 사실이다.
이 모든 게 우연이라 생각하느냐고.
세라엘은 카에드와 눈을 맞추었다. 겨울 햇살을 녹인 듯한 금빛 눈동자가 시리게 빛나고 있었다.
“로잘린이 그랬어요. 당신이 공작위를 얻자마자 사업가들과 자주 회동을 했다고, 토벌 원정을 가기 직전까지도 무리하게 수도로 내려와 참석했을 만큼 열의를 보였다고 했어요.”
북적거리는 곳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의 성정과는 결이 다른 의아한 행보였다. 사업의 일환으로 보기엔 참석이 잦았고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을 터였다.
“혹시 제 아버지 때문이었나요?”
“정확히는 당신 때문이었습니다. 당신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후작과 연을 맺고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져서, 내 존재를 확실하게 인지시켜 놓아야 했으니까요.”
“왜요?”
일면식도 없는 나를 어째서 신부로 맞았을까. 공작가를 멸족시켰다는 추문이 사실일까.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
갖은 의문이 피어났지만 모두 꼭꼭 묻어 두고 싶었다. 불행을 피하려 부득이 택해야만 했던 차선책이 너무나도 안온한 삶을 선사해 주었기에 구태여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남자, 이제는 부재를 상상할 수조차 없는 남자의 모든 것을 알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말해 주세요.”
반대로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세라엘에게 제 모든 것을 알려 주고 싶어 했다.
“밀로즈 후작이 당신을 누군가에게 팔아넘길 거라는 미래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카에드는 밀어를 속삭이듯 나지막이 말했다.
“그게 내가 되어서라도 막아야만 했습니다. 아니, 내가 되어야만 했어요.”
“언제부터였어요?”
그를 응시하며 내놓은 목소리는 줄곧 묻고 싶었던 의문을 담고 있었다.
“저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
카에드는 그녀의 하얀 손등을 내려다보며 손끝으로 느릿느릿 어루만졌다. 물가에서 불어온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나뭇잎을 쏴아 흔들었다. 뒤늦게 눈을 들어 올린 그가 대답 대신 되물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적이 존재한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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