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31)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31화(131/150)
여자의 애원에 카에드는 혀를 한 번 차고 망설임 없이 걸음을 돌렸다.
“어, 어디 가요?”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헛간 안으로 들어왔다. 뒷모습이 더 가관이었다. 드레스 자락 아래로 봉긋 튀어나온 엉덩이와 허우적대는 다리가 그야말로 처량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였다.
카에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를 훑다가, 가까이 다가가서 두 손으로 허리를 붙잡았다. 잘록한 곡선이 손에 잡히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조용히 숨을 내리 쉬던 카에드는 그대로 여자를 잡아당겼다. 창밖에서 고통에 찬 울먹임이 들려왔다.
“아파요!”
여자가 두 다리를 파닥거리며 허리를 힘껏 비틀었다. 그녀의 발에 허벅지를 차인 카에드가 짜증스레 말했다.
“가만히 있어요.”
“세게 당기지 말아요…!”
“허리 좀 흔들지 말라고.”
대체 이게 뭐 하는 상황인지. 카에드는 그녀를 붙든 손에 힘을 주며 잡아당겼다.
“아야!”
그녀는 비명과 함께 창틈에서 쏙 빠져나왔다. 카에드는 안아 든 그녀를 제자리에 성의 없이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험악한 어조로 명령했다.
“폐 끼치기 싫으면 도망칠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요.”
그녀는 제 허리께를 쓰다듬으며 찌푸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카에드는 대답을 듣지 않고 성큼성큼 헛간을 나섰다. 조급함이 묻어나는 걸음이었다.
***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쯤 기다렸다는 듯 눈보라는 거세졌다. 새하얀 눈밭 위로 한층 두꺼운 눈이 쌓였고, 기온 또한 급격히 떨어졌다.
로이는 오두막집 근처를 순찰하겠다며 밖으로 나간 지 오래였다. 카에드는 여자의 식사를 챙겨 다시 헛간으로 향했다. 그래 봤자 말린 고기뿐이었지만.
걸음을 옮기던 그는 근처에서 붉은 열매가 열린 덤불을 발견하고서 멈칫했다. 곧 헛간에 들어섰을 땐 산딸기 한 움큼이 오른손에 들려 있었다.
여자는 카에드의 망토 안에 몸을 둥글게 만 채로 뒤돌아 누워 있었다. 그러나 헛간 안에 들어온 존재를 감지하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호흡이….’
이상하리만큼 얕고 가쁜 숨소리가 감돌았다. 성큼성큼 다가간 카에드는 무릎을 꿇고 그녀의 어깨를 잡아 저를 향해 홱 뒤집었다.
힘없이 반쯤 감긴 눈이 카에드를 응시했다. 가뜩이나 핏기없는 얼굴은 대리석처럼 새하얗게 질려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고작 몇 시간 사이에 병든 짐승처럼 시들시들해진 여자는 눈에 띄게 체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너무 추워요.”
치아가 맞부딪히느라 불분명한 발음이 시퍼런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눈이 들이치지 않는 곳에 데려다 제 망토까지 벗어서 덮어 주었는데도 그녀가 견디기에 버거운 추위인 듯했다. 아마 맨살을 훤히 드러낸 얇은 드레스 차림 때문이겠지. 머리가 아프다기에 몸을 데우는 독주를 주지 않은 것도 한몫한 게 틀림없었다.
“불, 불을 지피면 안 돼요?”
여자가 간절한 음성으로 요청했다. 추위로 거의 이성을 잃은 그녀에게 카에드는 아무런 답도 줄 수 없었다. 어두운 숲 속이라 해도 놈들의 주둔지 근처였기에 불을 지펴 기척을 내어서는 안 되었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것처럼 눈을 느릿느릿 깜박이던 여자가 슬며시 눈꺼풀을 내리떴다.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조차 힘겨운 듯했다.
카에드는 발발 떠는 작은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여자의 등허리를 한쪽 팔로 받치고만 있었다.
바로 그때, 여자가 그의 품속으로 꾸물꾸물 파고들었다. 본능적으로 온기를 찾는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유달리 높은 체온을 지닌 카에드의 가슴에 뺨을 기대자마자 얕은 신음을 내뱉었다. 더욱 깊이 파고드는 동작이 더해졌다.
“…….”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태란 걸 차치하더라도 대담한 몸짓이었다. 밀어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카에드는 여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방울방울 눈물이 맺힌 채 내리뜬 속눈썹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선 달콤한 산딸기 향내가 풍겼다.
카에드는 품 안에서 꾸물대는 여자를 마주 안지도, 그렇다고 내치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저 여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받치고 있었을 뿐.
“두목!”
바로 그 순간, 로이가 다급하게 헛간 안으로 들어왔다.
“칼스비크의 위병이에요!”
뒤늦게 곤두선 감각이 여러 개의 발소리를 잡아냈다. 여자는 그때까지도 앓는 소리를 내며 카에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무장한 상태로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은 카에드는 안고 있던 여자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더 붙어 있으려는 듯 파고드는 몸짓이 느껴졌으나 일단은 밀어내야만 했다.
성큼 일어난 그가 로이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한 기사 다섯 명이 오두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고작 다섯밖에 되지 않는 수를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오두막을 찾아온 이유였다.
“없애야 할까요?”
어지간히도 급한 모양인지, 평소 살상에 썩 유쾌한 태도를 보이지 않던 로이가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카에드는 허리춤에 꽂힌 검집에 손을 대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놈들을 이 자리에서 제거하는 건 일고의 여지도 없는 일이었다.
“이봐, 거기 두 사람!”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를 뚫고 위병 중 하나가 외쳤다.
“물어볼 게 있으니 두 손을 보이고 이쪽으로 와.”
병량이 모이는 주둔지 근처에 신원이 불분명한 검은 옷의 남자들이 모여 있으니 틀림없이 의혹을 품었을 것이다. 게다가 전쟁 중인 공작 밑에서 일하는 위병이 상부에 알리지 않고 단독 행위를 할 리는 없겠지.
“들켰네.”
카에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로이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를 힐끔 곁눈질했다.
“말이 안 들리나?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손을 들고 천천히 다가와!”
애초 장벽을 넘기 전부터 신뢰할 수 있는 최측근만 동행했다. 목격자는 모조리 제거했고, 자취를 완벽하게 없애며 이동했다. 만에 하나 인적이 남았더라도 세차게 쏟아지는 눈이 감춰 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걸까.
문득 카에드는 그들 뒤로 풍채가 좋은 젊은 남성이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갑옷 대신 평민이 입는 털옷 차림으로 하여금 민간인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카에드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버려진 오두막집을 향해 힐긋 시선을 던졌다. 무언가 감이 잡히는 바가 있었다.
“넌 나서지 마.”
칼을 빼든 카에드가 나직이 명령하며 위병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로이는 낮게 한숨을 쉬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어?”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위병의 목을 베어 낸 건 한순간이었다.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음에도 병사 둘은 칼 한번 부딪혀 보지 못했다. 나머지 세 명도 마찬가지였다.
눈 깜짝할 새에 완전 무장을 갖춘 기사 다섯이 눈밭에 널브러졌다. 새하얀 눈 위로 붉은 선혈이 녹아 들어갔다.
“히, 히익…!”
그들 뒤에 서 있던 민간인 남자가 도망치려다 볼썽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카에드는 그의 멱살을 잡고 잡아당겼다. 평균에 비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남자의 몸뚱어리가 반항 한 번 못해 보고 질질 끌려갔다.
“으, 으아! 이거 놓아줘…!”
“위병은 네가 부른 거군.”
여상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음산했다.
“이상하네. 분명 인적이 없는 오두막집이라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앞서 근방을 정찰하며 임시 거처를 찾아낸 렉터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
“두목, 그게… 제가 설명할게요.”
등 뒤로 저벅저벅 다가온 로이가 머뭇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남자의 멱살을 틀어쥔 손등 위로 푸릇한 핏줄이 돋았다. 카에드는 로이에게서 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남자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서 캑캑거렸다.
“제발 살려 주세요!”
“어떻게 알고 왔냐고.”
“저, 저는 숲지기입니다! 2년 만에 오두막집을 관리하러 왔다가 검은 옷을 입은 소년을 만나서…!”
“그 소년이 널 살려 준 거로군.”
“예, 예…!”
“넌 보답으로 위병을 데려온 거고.”
“헉! 그, 그러니까 근방에 수상한 자가 있으면 보고해야 하는 게 제 일인지라…!”
남자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제발 놓아주십시오! 집에 임신한 아내와 아이가 셋이나 있습니다! 제가 없으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꼼짝없이 굶어 죽을 겁니다…!”
묻지도 않은 사정을 줄줄 읊는 걸 보니 렉터가 어떤 연유로 이 자를 살려 주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거처를 찾던 도중 마주친 숲지기는 처자식이 있다며 목숨을 구걸했을 터였다. 마음 약한 렉터라면, 자신을 목격한 일은 함구하라 으른 뒤 얌전히 보내 주었을 게 뻔했다. 그에 이 자는 위병 다섯을 끌고 돌아온 것이다.
“그자는 놓아주는 편이….”
로이가 말끝을 흐리며 한 발 나섰다. 피실 헛웃음을 친 카에드가 그를 뒤돌아보았다.
“넌 이게 애들 장난 같나 봐.”
카에드는 로이 또한 사정을 알고 있었으리라 직감했다. 숲지기를 살려 보내고 마음이 불안해진 렉터가 로이에게만 몰래 털어놓았을 테다. 성정이 비슷한 두 사람은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냈으니까.
“해가 저물기 전부터 주변을 살펴보겠다고 열을 올린 이유도 누가 나타날지 몰라서 그랬던 거군.”
로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찰은 왜 해. 들켜도 죽일 생각이 없는데.”
“그게….”
“전쟁이 끝나면 무얼 하고 싶냐 묻더니, 끝낼 생각은 있고?”
노골적인 빈정거림에 로이가 뒤늦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돌봐야 할 가족이 있는 민간인이잖습니까.”
“이제껏 네가 죽인 병사들은 식솔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여긴 전장이 아니잖아요. 이렇게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였다간 전쟁이 끝나도 우리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신경을 긁는 발언이었다. 카에드는 내팽개치듯 남자의 옷깃을 놓고 로이에게 다가갔다. 내지른 주먹에 로이의 몸이 홱 돌아가면서 눈밭 위로 쓰러졌다. 점점이 붉은 피가 눈 위를 녹였다.
로이는 그 위로 피가래를 뱉었다.
“남부인들이 우리를 야만인이라 부르는 데 일조하고 싶으신 건가요?”
“잘도 지껄이는군.”
카에드는 로이의 옷깃을 틀어잡고 일으켜 세웠다.
“배워먹지 못한 야만인이라 철석같이 믿는 자들에게 부득불 오해를 풀어 줘서 뭐해. 수틀리면 죽이고, 개처럼 흘레붙고, 쓰레기나 주워 먹는 짐승이라는데 믿음대로 움직여줘야지.”
카에드는 바닥에 쓰러져 콜록대는 숲지기를 턱짓했다.
“저거 봐. 살려 줬더니 병사를 끌고 왔잖아. 애초에 앞뒤 가리지 않고 목을 그어 버렸으면 계획이 비틀릴 일도 없었겠지.”
그럼에도 로이는 반항적인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카에드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는데, 문득 시선이 열린 헛간 문으로 향했다.
그 여자였다. 카에드의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채 바닥을 기어 나와서, 다 죽어 가는 얼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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