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33)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33화(133/150)
얇디얇은 옷자락을 몸 위로 당기자 허연 허벅지가 드러났다. 그녀는 발버둥을 치며 카에드의 손목을 잡고 버텼다. 푸른 눈에 짙은 공포가 어려 있었다.
“싫어…!”
카에드는 무릎걸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드레스를 끌어 올렸다. 옷자락이 허리까지 올라가자 여자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발광했다. 꼭 몹쓸 짓이라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실랑이가 오가던 중 여자가 그의 너른 어깨를 냅다 발로 찼다. 카에드는 미동도 하지 않았으나 우뚝 손짓을 멈췄다. 여자가 사력을 다해 저항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죽을 겁니까?”
“……!”
“살고 싶다면서요.”
카에드가 옷자락을 내리고 여자와 눈을 맞추었다.
“죽을 거면 젖은 옷 입고 신음하다 죽든지.”
그녀는 퍼렇게 질린 입술을 깨물며 카에드를 노려보았다. 팔목을 붙든 작은 손이 벌벌 떨고 있었다.
“안 말립니다. 당신이 선택해요.”
의중을 읽으려는 듯 여자는 한참 동안 카에드를 올려다보았다. 곧 그녀는 카에드를 저지하던 손을 힘없이 떨어뜨렸다.
“보지 말아요.”
여자가 고집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에드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도 척척한 옷자락을 위로 끌어 올렸다.
“안 봐요.”
“보지 마….”
“안 본다고.”
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려 애썼다. 여자의 몸을 떠난 드레스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카에드가 젖은 드레스를 화로 근처에 펼치는 동안, 알몸이 된 여자는 후다닥 망토 속으로 도망쳐 몸을 가렸다. 어찌나 빠른지 그새 기운을 회복한 건가 싶을 정도였다.
여자는 망토를 이불 삼아 코밑까지 가린 채, 머리만 빼꼼 내밀고 경계심 어린 눈으로 카에드를 지켜보았다. 그 같잖은 꼬락서니를 보며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친 카에드가 팔을 아래로 교차해서 제 상의를 벗었다.
“헉…!”
여자의 입에서 놀란 숨이 터져 나왔다.
“왜 그래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카에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벗은 상의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고는 모포 위에 무릎으로 서서 턱짓했다.
“누워요.”
여자는 사형 선고라도 받은 것처럼 사색이 되었다. 카에드는 분명한 발음으로 제 뜻을 알렸다.
“말로 할 때 누워.”
“……!”
“안 한다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일찌감치 죽여 버리는 게 더 편한데도 여태껏 살려 둔 걸 보면 모르나. 그에겐 여자를 죽이거나 해코지할 의사가 없었다.
심지어 배곯을까 봐 밥도 챙겨 주고, 위험까지 감수하며 동행시키고, 불을 피워 몸을 데워 주려고 했는데.
타인의 마음을 알아보려는 성가신 일은 해 본 적이 없어서, 저 자그마한 머리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카에드가 둘러 준 망토를 방패처럼 붙들었다.
“그, 그쪽은… 사람은 죽여도 파렴치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카에드는 눈초리를 가늘게 좁혔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묘한 어투가 수상했다. 입만 열면 자길 죽이지 말라 애원할 땐 언제고, 정작 그가 다른 쪽으로 추행을 할 리는 없으리라 믿고 있었던 건가.
겁을 잔뜩 집어먹은 그녀를 응시하던 카에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곧 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정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해하지 말아요. 내 체온으로 몸을 녹여 주려는 겁니다.”
그럼에도 여자의 얼굴에서 의심하는 빛은 지워지지 않았다. 동그랗게 치뜬 눈이 카에드의 헐벗은 상체를 자꾸만 흘깃거렸다.
이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을 해 줘야 하나. 당장 쓰러질 듯한 꼴을 하고도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들고 있길래 살려고 발버둥 치는 줄 알았더니만.
“당신 말대로 파렴치한 짓은 할 생각 없다니까.”
여자는 파들파들 떨면서 망토를 꽉 움켜쥐었다. 카에드는 그녀가 겁내지 않도록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아요. 몸을 맞대고 있으려는 것뿐입니다. 체온을 높이지 않고 이대로 잠들면 당신은 절대 깨어나지 못해요. 여기서 죽고 싶은 거 아니잖아요.”
“아….”
그제야 여자의 낯이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망토를 붙든 손은 그대로였다. 카에드는 불꽃이 타오르는 화로를 턱짓했다.
“봐요. 불까지 피워 놨지. 당신이랑 흘레붙으려고 피운 게 아니라고.”
내친김에 그는 여자의 손을 잡아끌어다, 딱딱한 근육이 여러 갈래로 나뉜 제 복부 위에 갖다 대었다.
“악…!”
애써 긴장을 풀어 줬던 게 무색하게도 여자는 기겁하여 손을 물렸다. 그러다 돌연 깨달은 게 있는지, 머뭇거리는 손끝이 다시 카에드의 살갗에 닿았다.
“…….”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곳에서 나고 자란 발켄족은 일반인보다 높은 체온을 지니고 있었다. 서늘하게 얼어붙은 손으로 카에드를 만지고 있는 여자가 그의 온기를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긴장으로 떨리는 작은 손이 계속해서 그를 매만졌다. 가까이서 서로 몸을 붙이면 금세 체온을 올릴 수 있으리라 깨달은 듯했다.
여자는 그를 손마디로 슬며시 훑다가 손바닥 전체를 맞대었다. 꽁꽁 언 손에 불을 쬐듯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문득 카에드는 목구멍 아래서부터 치솟는 갈증을 느꼈다. 목 위로 불거진 울대뼈가 요동치면서 오한 같은 전율이 느린 속도로 척추를 훑었다. 동시에 신체 깊은 곳을 깃털이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이 시나브로 와닿았다.
난생처음 겪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완연한 달이 떠오른 밤이라 그렇다기엔 지나치게 생소했다. 카에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욕망이 배 속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걸 감지한 순간 단전에 열기가 오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감각이 멋대로 설치도록 내버려 두면 돌이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카에드는 자신을 만지는 여자의 손을 다소 거친 손짓으로 떼어 냈다.
“이제 알겠어요?”
손바닥 뒤집듯 사나워진 그의 태도에 여자는 갑작스레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눈을 번쩍 떴다. 곧 마른침을 한번 삼킨 여자가 작은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다 아는데….”
“알았으면 누워요. 헛짓할 생각 없으니까.”
카에드는 스스로가 뱉은 뒷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눈가를 문지르던 여자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니까 나를, 왜….”
카에드를 똑바로 올려다보는 벽안에 의혹이 스쳤다.
“나를 왜 살려 주려는 거예요?”
“…….”
“다른 건 원하지 않는다면서 왜요?”
카에드는 어떠한 답도 주지 않았다. 그 자신도 모르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밖에서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와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살려 주게 할 거예요, 말 거예요.”
카에드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눈을 깜박이던 여자는 핏기가 가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살려 주세요.”
여자는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살고 싶어요.”
“그럼 그거 치우고 누워요.”
제 머리칼을 한번 쓸어넘긴 카에드가 망토를 붙든 손을 가리켰다. 그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무언가를 단단히 결심한 듯 짧은 숨을 내쉬었다.
“보면 안 돼요….”
“보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그녀는 제 몸을 똘똘 말았던 망토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 사이로 비치는 나신을 보지 않기 위해 카에드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바닥에 깔린 모포 위에 천천히 뺨을 대고 누웠다. 망토를 이불 삼아 덮더니 어깨를 꼼질꼼질 움직여서 제 곁에 카에드가 누울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 길지 않은 시간이 이상하리만큼 조바심을 내게 했다.
카에드는 망토를 들치고 그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시선을 아래로 주지 않으면서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척에서 뻗치는 온기를 느낀 여자가 슬그머니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란 것을 망각이라도 한 걸까. 무엇이 닿을지 알면서도 카에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
맨가슴이 짓눌리듯 마주 닿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뒤로 뺐다.
카에드는 조금 전 느꼈던 묘한 감각이 스멀스멀 밀려드는 것을 알아차렸다. 생소한 느낌이 여간 불쾌한 게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떨쳐 버리고 싶었다. 반면 완전히 사로잡히고 싶다는 괴이한 욕구 또한 고개를 내밀었다.
얼굴을 푹 숙인 그녀가 쩔쩔매며 변명했다.
“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돌아누워요.”
카에드는 여자의 둥근 머리통 위로 건조한 목소리를 떨어뜨렸다. 그녀는 등을 홱 돌리고서 난간 아래로 시선을 던졌다. 언뜻 보았던 창백한 낯에 홍조가 물든 것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장작이 타닥거리며 불길에 타올랐다. 두근두근, 그 사이로 그녀의 심장이 박동의 간격을 조금씩 좁혀 왔다. 추위 때문인지 마른 어깨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속눈썹을 내리깔고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카에드가 조금 더 가까이 맞붙었다. 재차 맨살이 닿았는데도 종전처럼 피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간격을 좁히자 그녀에게서 미약한 향기가 났다. 몇 날 며칠 밖에서 쏘다닌 꼴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리 향긋한 내음을 풍길 일인가.
카에드는 여자의 등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자그마한 몸이 얼음장 같았다. 틈 없이 꼭 껴안고 체온을 나누어 주자, 오래지 않아 제 것과 엇비슷한 온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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