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35)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35화(135/150)
“…그쪽은요?”
그녀는 산딸기를 먹다 말고 카에드를 올려다보았다.
“됐으니까 먹기나 해요.”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녀가 작은 손바닥 위에 산딸기를 담아 내밀었다.
“혼자 먹기가 좀 그래요. 같이 먹어요.”
“됐다고.”
“새콤달콤해서 맛이 괜찮은데….”
“그런 거 질색입니다. 도로 뺏기 전에 혼자 먹어요.”
단칼에 선을 그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꾹 다물렸다.
그것도 잠시, 배가 고팠던지 여자는 산딸기 한 움큼을 금세 해치웠다. 카에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말린 고기도 말없이 내밀었다.
그녀는 육포를 받아 들고 한참을 오물거렸다. 그러고는 뒤늦게 자신이 입은 옷을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주린 배를 채우고 나서야 옷의 출처가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어디서 난 옷이에요?”
카에드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부지깽이로 장작을 들쑤셨다. 죽은 평민 여자의 옷을 주워 왔다고 말하면 졸도하겠지.
“저 아래 빈집에서 훔쳤습니다.”
“빈집이요….”
“훔쳐 왔다니까 거슬려요?”
“아, 아뇨.”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분명 머뭇거리는 기색을 읽은 카에드가 타박하듯 말했다.
“뭘 훔치는 것도 꺼리는 사람이 도망칠 생각은 어떻게 했습니까?”
객기도 정도껏 부려야지. 가볍게 혀를 찬 카에드가 화로 속으로 장작을 더 던져 넣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확연한 반발심이 물들었다.
“제가 도주 중이라는 게 그리 불만이신가요?”
“처음 본 여자한테 불만을 가질 게 뭐가 있다고.”
“말투가 삐죽삐죽해서 불만이 있으신 것처럼 들려요.”
난데없이 말투 지적을 받은 카에드는 어이가 없어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그의 표정을 본 여자는 아차 싶었는지 냉큼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다시 말문을 뗐다.
“그리고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그러셨잖아요. 저한테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도망친다고, 한심하다는 것처럼 무섭게 째려보고.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요.”
여자가 쐐기를 박았다. 카에드는 맹세코 저 작달막한 여자를 째려본 적이 없었다. 그리 느꼈다면 쓸데없이 날카롭게 찢어진 그의 눈초리 때문에 오해를 한 거겠지. 물론 굳이 해명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기에 침묵을 유지했다.
그녀는 씹어먹던 육포를 내려놓고 말을 늘어놓았다.
“제가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친 건 사실이지만, 그게 싫어서 도망가려고 했더니 절 다시 붙잡아 두신 것도 그쪽이고….”
창틈에 엉덩이가 껴서 바동거리던 주제에 말은 잘한다. 남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그 상태로 동사했을 것을.
“그리고 저는 바보처럼 당할 바에야 도망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 발악하는 건데,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카에드는 대답 대신 여자가 앉은 모포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홱 잡아끌었다.
“아!”
힘 조절을 잘 못 했는지, 중심을 잃은 여자의 몸이 뒤로 기우뚱 기울었다. 모포를 쥔 손을 놓자 그녀는 화로 앞에 철퍼덕 엎어지고 말았다. 번쩍 고개를 쳐든 그녀는 화가 나서 카에드를 노려보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실 헛웃음을 흘렸다.
“무섭게 째려보는 게 누군데.”
“…….”
“불 옆으로 와요.”
호기롭게 받아칠 땐 언제고 그녀는 다시 얼굴색을 희게 물들이며 경계심을 내보였다. 불 옆으로 오란 게 제 머리통을 화로에 밀어 넣을 협박처럼 들렸나.
“몸이나 녹이란 뜻이에요. 당신이 골골대면 내 일만 많아집니다.”
“네….”
얌전히 대답한 그녀는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화로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응시했다. 카에드는 일렁이는 불빛을 머금은 여자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시선을 인지한 여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기.”
“…….”
“일행이랑 갈라진 것 같던데, 혹시 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카에드는 그런 건 왜 물어보냐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녀는 목까지 올라온 옷깃에 턱을 묻으며 웅얼거렸다.
“그냥, 기다리는 동안 대화라도 하면 좋잖아요.”
“그 발 상처나 신경 써요. 낫는 대로 당신을 보낼 생각이니까.”
“네….”
그녀는 시무룩 눈을 내리깔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대화의 물꼬가 터진 까닭인지 카에드 또한 묻고 싶은 게 없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을 묻지 않았다.
“…….”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라는 깨달음에 다다르자 카에드는 그녀에게 꽂힌 시선을 돌렸다. 앞으로 길어 봐야 하루 이틀 보고 말 사람인데, 구태여 이름 따위를 묻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여자에 대해 파악한 점이 적지는 않았다.
그녀는 사업가인 밀로즈 후작의 여식이고, 부친에 의해 강제로 결혼을 했다. 파렴치한 남편에게서 몇 번이고 도망친 경험이 있고, 사냥개에 물리면서까지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카에드가 알게 된 그녀는 몹시 불행한 여자였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고저 없는 낮은 목소리가 정적을 가로질렀다. 장작 타는 소리를 음미하듯 눈을 반쯤 내리감은 그녀가 카에드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포갠 두 팔에 턱을 얹었다.
“두 달 조금 넘었어요.”
“어지간히 쓰레기였나 봐요.”
“네?”
“당신 남편이요.”
개를 풀어서 부인을 쫓게 하는 치의 인성이 어떨지야 뻔했다. 저 여자를 도망치게 한 계기도 더없이 끔찍했겠지. 그녀는 잇새로 허탈한 웃음을 흘려보냈다.
“나이는 나보다 사십은 더 많으려나.”
부지깽이로 장작을 들쑤시던 카에드가 손짓을 우뚝 멈췄다.
“정수리에 머리털은 하나도 없는 노백작이에요.”
여자는 뜸을 들이며 자조했다.
“그런 주제에 제가 성인이 되기 전부터 저를 눈여겨보았다는 거예요. 심지어 그때부터 아버지한테 혼담을 넣어 왔대요.”
“아버지란 인간이 결혼을 허락한 겁니까?”
“그 노백작이 저를 거금에 사들이겠다고 했거든요.”
카에드는 대번에 얼굴을 굳혔다. 그녀는 타인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아버지 나름대로는 오래 고민했던 모양이에요. 그 사람이 처음 혼담을 넣었을 때 당장 넘겨 버릴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 걸 보면요. 양어머니는 곧바로 결혼시키자고 계속 설득해 왔다지만…. 혹시 남은 술 있어요?”
“없습니다.”
그녀의 상처에 들러붙은 피를 씻어 낸답시고 쏟아부은 게 마지막 술이었다. 여자는 아쉽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아무튼, 아버지가 수도에서 건축 사업을 크게 하시거든요. 그게 잘못되어서 빚이 생겼나 봐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기 전에 저를 팔아 버리기로 결정한 거래요. 마침 제가 성인이 되었으니 혼사를 진행하기에도 수월했겠죠.”
그녀는 피곤한 듯 눈자위를 문질렀다.
“석 달 전쯤이었나. 그 노백작이 저택을 찾아왔어요. 아버지는 본인보다도 나이가 많은 인간을 저와 인사시켰고요. 정말 불쾌한 시간이었어요.”
“혹시 그날에도 도주를 시도했습니까?”
짐작한 바를 묻자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이대로면 저 인간이랑 꼼짝없이 결혼하겠구나 싶어서, 밤이 되자마자 저택에서 하녀랑 둘이서 도망쳤어요.”
그녀는 희미하게 웃음기를 지웠다. 눈꺼풀이 몇 번 깜박이더니 속눈썹 아래 그늘진 눈에 물기가 고였다.
“유일한 제 가족이었는데.”
“…….”
“후작령을 벗어나기도 전에 나쁜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과거형으로 끝나는 문장으로 말미암아 하녀가 어찌 되었는지는 대강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는 북받치는 감정을 누르듯 짧은 헛기침을 했다.
카에드는 여자를 빤히 쳐다보다 말고 타오르는 장작불 위로 시선을 돌렸다.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돌이키는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뒤늦게 호위병을 데리고 왔지만 너무 늦어 버렸어요. 그 애는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저만 살아남은 거예요. 곁에서 제 행복을 빌어 주고 싶다고, 절대로 혼자 보낼 수 없다고 따라온 아이가 저 때문에….”
그녀는 물기로 흐려지던 말꼬리를 재차 헛기침으로 막아 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 거예요. 식을 치르기도 전에 백작의 저택으로 떠나야 했구요.”
그녀는 말을 끝맺은 뒤 오래도록 침묵을 유지했다. 성년도 되지 않은 여자를 탐했다던 백작이 마침내 그녀를 신부로 맞고 나서 무얼 강요했을지는 뻔했다.
귀족 사회에 발을 담그고 있었을 때도, 장벽 너머 미지의 영역에 있을 때도 웬만한 더러운 꼴은 보고 들었는데도 미간에 절로 깊은 주름이 졌다.
“거기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몇 번이고 도망쳤어요. 번번이 실패했지만….”
그녀는 사냥개에 물려 흉터가 남은 손등을 무의식적으로 매만졌다. 그러다 씁쓸한 웃음기가 어린 눈으로 카에드를 올려다보았다.
“도망칠 만했죠? 그러니까 가진 것도 없으면서 도망치는 사람이라고 한심하게 보지 마세요.”
도주 자체를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카에드 또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셀 수 없이 해 왔다. 다만 아득바득 살아가는 건 도망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진창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따로 있으니까.
“가 보고 싶은 곳은 어디예요?”
부지불식간에 물음이 튀어나왔다. 여자가 고개를 미세하게 까닥였다.
“네?”
“가고 싶은 장소가 많다면서요. 어딘지 궁금해서.”
“아… 네, 많아요. 바닷가 마을도 한번 가 보고 싶고, 1년 내내 후덥지근하다는 남쪽 왕국도 궁금해요. 그리고 또….”
무언가를 돌이키듯 여자의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사실 가장 가 보고 싶은 곳은 요정 호수예요.”
“요정 호수?”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인데, 제국 어딘가에 요정이 나오는 호수가 있대요. 소원을 이루어주는 전설을 가진 곳이라 비밀처럼 꼭꼭 숨겨져 있다고 해요.”
“소원을 빌러 가고 싶은 거군요. 어린애도 아니고.”
가벼이 덧붙이자 그녀가 실소를 터트렸다.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전설을 믿지도 않아요. 인상 깊었던 이야기라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지 궁금해서요.”
“누구한테서 들은 얘기인가요?”
“돌아가신 어머니한테서요.”
비웃으려던 카에드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었다. 그녀는 엷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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