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37)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37화(137/150)
“저기….”
이어지는 침묵을 깬 사람은 눈앞의 여자였다.
“남편이 직접 오지 않았다면, 사람을 더 데리고 올 수 있다는 뜻이에요.”
“나도 압니다.”
간단히 일축하자 그녀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그쪽은 들키면 안 되는 상황이잖아요.”
“들키면 안 되는 건 당신도 매한가지 아닌가.”
그녀는 대답 대신 입술을 말아 물었다. 선홍색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카에드는 그제야 눈을 돌리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누가 찾아오든 없애면 될 일입니다. 어차피 날 목격한 사람을 살려 둘 생각은 없어요.”
“그럼 저는요?”
반문하는 목소리에 카에드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는 그쪽 일행까지 목격한 사람이에요.”
여자는 달달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그냥 내버려 두는 이유가 뭐예요? 아니, 내버려 두는 정도가 아니라….”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당신도 저들처럼 죽여 달라는 뜻인가요?”
미처 가다듬지 못한 어투가 날카로웠다. 낭패감이 들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자는 재차 겁을 집어먹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사과를 건넸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고맙다고 인사했어야 했는데.”
“…….”
그녀는 눈자위를 문지르며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카에드를 향한 얼굴이 결심한 듯 의연한 빛을 띠고 있었다.
“저는 이만 가 보는 게 좋겠어요. 진심이에요.”
“민폐라고 생각해서 이러는 거면 관둬요.”
“하지만 그 인간은 분명 더 많은 기사를 끌고 올 거예요. 제가 여기 있다간 그쪽한테 도움이 될 게 하나도 없어요. 제발 보내 주세요.”
“당신한테서 도움을 바란 적은 없습니다.”
할 말을 잃은 여자가 입을 다물었다. 카에드는 더 말할 필요 없다는 듯 일축했다.
“곧 있으면 부하들이 내게 합류할 예정이에요. 그전까지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 줄 테니까 같이 있어요.”
“부하들이요….”
카에드의 말을 곱씹으며 그녀가 눈을 내리깔았다.
“미안해요.”
반복된 사과는 갑작스러웠다. 이어진 말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 사람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카에드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여자는 그의 서슬에 놀라면서도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한 명만 돌아올 거예요. 정말 미안해요.”
난데없는 헛소리에 카에드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가슴을 크게 들썩였다. 자신이 방금 무얼 들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무슨 뜻입니까?”
“그러니까… 아까 전 그 숲지기를 통해 이미 주둔지에선 그쪽의 존재를 눈치챘을 거예요.”
여자는 입술을 한번 깨물며 말을 이었다.
“지원군이 동원되었을 거고, 그쪽 부하들은 결국 작전에 실패했을 거예요.”
찌르르 두통이 몰려오는 것도 같았다. 카에드는 고개를 기울인 채 한 손으로 제 두 눈을 감쌌다. 다시 천천히 턱을 들어 올려 여자와 눈을 맞추었다.
“지금 여기서 나가고 싶어서 이래요?”
“그게 아니에요. 저 때문에 괜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 명만 돌아온다고.”
“네….”
“이름이라도 대 봐요.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누군지.”
그녀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스쳤다. 그녀는 눈을 굴리며 필사적으로 기억을 반추했다.
“이,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요. 하지만 얼굴에 긴 흉터가 나 있는 사람이란 건 알아요.”
얼굴에 흉터가 있는 이라면 호크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머지는 죽는다는 뜻입니까?”
그녀는 자그맣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자의 푸른 눈에 물기가 고여 반들거리고 있었다. 카에드는 렉터와 로이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한테 산딸기를 주었던 그 소년이 인질로 잡혔을 거예요. 그래서 아마….”
조용히 말을 잇던 그녀는 우뚝 입을 다물었다. 카에드가 입매를 양옆으로 찢으면서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여자를 바라보는 눈이 강렬하게 타올랐다.
“너, 단단히 미쳤구나.”
“……!”
“구면인 것처럼 굴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음산하게 중얼거린 카에드가 느릿느릿 일어났다. 위기감을 느꼈는지 그녀 또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저,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저를 보내 주세요. 여기 있어 봤자 당신한테 피해만 갈 거예요.”
“미친 게 아니면 내 양부가 보낸 첩자라는 뜻이겠군.”
첫 만남부터 지나치게 기이한 우연이었다. 줄곧 카에드를 잘 아는 듯한 기류를 풍긴 것도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카에드의 만면에 어린 광기를 본 여자가 두 손을 내보이며 뒤로 물러섰다.
“전부 오해예요! 제발 진정하고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그녀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다급히 말을 이었다.
“당신이 옷을 벗었을 때 어깨에 난 흉터를 봤어요. 어쩌다 생긴 흉터인지 설명할 수 있어요.”
“개수작 부리지 마.”
카에드가 이를 짓씹으며 사납게 뇌까렸다.
“블카노프 공자가 개처럼 갖고 놀던 양자의 어깨에 화살을 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어. 황태자가 나불거리고 다닌 덕분이지. 넌 내가 그 양자란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 그리 지껄이는 거야.”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가르쳐 준 적 없는 그의 이름을 부르다 만 것도 그녀의 어리석은 실수였다.
여자의 상기된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알아요….”
“안다고?”
한 걸음 다가서자 그녀가 질겁을 하고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등이 닿은 곳은 난간이었다.
“네가 뭘 아는데.”
“당신의 정체는 알고 있었어요. 그, 그렇지만 누가 말해 주어서 눈치챈 게 아니에요. 저는 첩자도 아니고….”
“…….”
“공작가 사람들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아요….”
말꼬리를 흐린 여자가 숨을 헐떡였다. 병균 취급을 당하며 지독한 박해를 받았던 기억이 부상하자 꽉 움켜쥔 주먹에서 관절이 빠드득대는 소리가 났다. 여자의 잇새로 젖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게다가 당신은요….”
“…….”
“당신은 블카노프 가문에 입양된 양자가 아니에요.”
영문 모를 헛소리가 이어졌다. 카에드는 허탈한 바람을 흩트리며 웃었다.
저 여자는 단단히 미쳤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드문드문 주절댈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무모하게 굴었던 것도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 지껄여 봐.”
손을 뻗은 카에드가 여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가벼운 몸이 종잇장처럼 나풀대며 그의 손짓을 따라 흔들렸다.
“또 뭘 알고 있지?”
그녀를 붙든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말해 보라니까. 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이가 나인지, 내 양부인지 말해 봐.”
“진정해요…! 이거 놔 주세요!”
더듬대며 외치는 목소리가 더없이 필사적이었다. 카에드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토해 내는 여자의 가느다란 목을 한 손 가득 움켜잡고 싶었다. 자신이 손수 가져다 입힌 두꺼운 옷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다는 욕구도 치밀었다. 이상하게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너 말이야.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
나지막한 저음이 읊조렸다. 여자는 처음 보았을 때만큼이나 안색을 희게 물들이며 숨을 들이켰다.
“이러지 말아요!”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지, 진정하라니까요…!”
울먹이는 음성이 크게 외쳤다. 돌연 그의 관자놀이에 전류가 스치듯 불쾌한 통증이 엄습했다. 카에드는 여자의 옷을 틀어쥔 손을 놓고 이마를 싸맸다.
머리를 날카롭게 찌르는 고통이 더해지자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그사이, 조금씩 뒷걸음질을 친 여자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거기 서.”
무언가에 짓눌린 목소리가 더없이 거칠었다. 하지만 그녀가 카에드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이윽고 헛간 문이 열리면서 비명과 같은 바람 소리가 몰아쳤다. 밖으로 내달리는 여자를 지켜보는데 거짓말처럼 통증이 가셨다. 카에드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여자를 쫓았다.
시야를 막는 눈바람 속에서도 여자를 찾을 수 있었다. 달릴 수도 있다더니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자는 제법 빠른 속도로 그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눈을 밟으며 성큼성큼 걷던 카에드가 돌연 우뚝 멈춰 섰다. 저걸 잡아서 뭘 어쩌려고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걸까.
생면부지의 여자가 카에드의 과거와 미래를 다 아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니 이보다 수상한 건 없었다. 작전에 관한 정보가 어디서 새어 나갔는지도 알아내려면 그녀를 당장 눈앞에 데려다 족치는 것밖엔 답이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두려워 달아나는 모습을 보자 쫓을 의지가 거짓말처럼 흐려졌다. 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병신같이, 뭐에 홀렸다고 착각이나 하고서. 다 거짓이었을 뿐인데.
카에드는 벌써 손톱만큼 작아진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젠 잔상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녀를 눈에 담다가, 다시 걸음을 돌려 헛간으로 돌아왔다.
문도 제대로 닫지 않은 채 1층 바닥에 털썩 무릎을 세워 앉았다. 콜록대던 여자가 신경 쓰여 손도 대지 못했던 궐련을 빼 들어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를 흠뻑 빨아들이고 나서야 날뛰던 가슴속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것 같았다.
카에드는 여자의 남편이 그녀의 흔적을 쫓아 이곳으로 오기를 바랐다. 칼을 쥐고 그들을 모조리 베어 버려야 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허공만 바라보며 줄담배를 태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짙은 어둠이 깔리면서 날이 저물어 가고 있다는 사실만 파악할 뿐이었다.
터벅터벅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진 어느 순간이었다.
누군가 열려 있던 헛간 문을 끼익 밀치고 들어왔다. 카에드는 메마른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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