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38)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38화(138/150)
“두목.”
때마침 뱉은 연초의 연기에 그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러나 카에드는 그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더없이 침중한 낯을 한 호크가 걸어 들어왔다.
“죄송해요. 실패했어요.”
바닥에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졌다. 흘린 피를 보아 간단히 여길 부상은 아니었다. 카에드는 속눈썹을 내리깔고 연기를 빨아들였다.
“군량은 반절도 태우지 못했어요. 도중에 렉터가 놈들한테 잡혀서 빼내려다가….”
호크는 그답지 않게 말을 끝맺지 못했다. 공백 뒤에 어떠한 사정이 묻혀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와 눈을 맞춘 카에드가 조용히 물었다.
“로이는?”
호크는 고개를 내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카에드는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래.”
심복이었던 이의 부고를 들으면서도 카에드는 담담한 낯을 유지하며 연초를 마저 태웠다.
렉터를 포함한 소년 셋과 로이는 목숨을 잃었고, 시프는 탈영한 지 오래였다. 이제 제 곁에는 호크와 바이퍼만이 남아 있었다. 바이퍼는 이번 작전에 동행하지 않고 미지의 영역에 남았지만, 사지 멀쩡한 그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생사는 묘연했다.
머릿속에 피로 얼룩진 장면만이 부상하며 사고 회로가 극단적으로 돌아갔다. 그는 여전히 끝 모르는 나락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생은 제 손으로 끝내 버리는 게 최선 아닐까.
무감한 눈길이 열린 문 사이로 비치는 달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제보다 더욱 환한 빛을 발하는 보름달이 그의 금빛 눈동자를 가득 메웠다.
줄곧 선명치 못했던 카에드의 동공에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높은 온도의 열기가 온몸을 스치면서 팔뚝 위로 굵은 핏줄이 불거졌다.
모두 그 여자가 말한 대로였다. 카에드와 내리 함께 있던 여자가 멀리 떨어진 주둔지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고 있었다. 세세한 사정까지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녀는 거짓을 고한 적이 없다. 그에게 털어놓았던 이야기와 창백한 얼굴에 언뜻 스치던 홍조, 푸른 눈에 머금었던 미소가 모두 진실이었다.
가슴을 크게 들썩인 카에드는 호크가 흘린 피를 턱짓했다.
“움직일 수는 있겠나?”
“문제없어요. 가벼운 찰과상이에요.”
호크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붕대를 꺼내 보였다. 연기를 내뿜은 카에드가 궐련 끝을 바닥에 비벼 껐다. 그대로 자리에서 성큼 일어났다.
“따라와. 장벽을 넘기 전에 할 일이 있어.”
호크는 군말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헛간 밖으로 나온 그들은 말에 올라탔다. 카에드는 여자가 손톱만큼 작아지면서 멀어졌던 방향을 따라 달렸다.
온 감각을 기민하게 곤두세우고 주변을 훑었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가 남겼을 만한 자취를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발자국은 펑펑 쏟아져 내린 눈에 지워진 지 오래였다. 아무리 주위를 살펴보아도 어떠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운 좋게 이곳을 떠났을 수도 있다. 그녀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값어치 있는 건 은반지였으니, 삯 대신 치르고 이곳을 벗어나는 마차를 얻어탔을지도 몰랐다.
“…아니지.”
친모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유일하게 좋았던 기억이라던 여자가 반지를 내쳤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만에 하나 그 쓰레기 같은 노백작이 그녀를 찾아 버렸다면.
“두목, 저기 봐요.”
돌연 목소리를 낮춘 호크가 카에드를 불러세웠다. 멀찍이서 갈색 말을 탄 기사 다섯 명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들이 입은 갑옷 등판에 새겨진 물고기 문양이 낯설지 않았다. 앞서 헛간을 찾아왔던 기사들의 갑옷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문양이었다.
“지금 없앨까요?”
“아니.”
카에드가 고삐를 가벼이 흔들었다.
“따라가야지.”
예상 밖의 명령에도 호크는 불만을 보태지 않았다. 그들은 기척을 죽인 채 맥슨 백작의 기사들을 조용히 뒤밟았다.
기사들이 다다른 곳은 강가 근처의 2층짜리 건물이었다. 귀족들이 한철 사용하는 별장이 틀림없었다.
말에서 내린 기사들은 말뚝에 말을 매어 놓았다. 숲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카에드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
“지겨워 죽겠어. 잡힐 걸 알면서도 왜 틈만 나면 도망을 가?”
한 기사가 투구를 벗으며 불평을 터뜨렸다. 다른 기사가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궁지에 몰린 쥐도 발악은 한다잖아.”
“그나저나 이번이 최장기간이었네. 입은 옷도 그렇고, 혼자서 버틴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 보이는데.”
“도둑질이라도 했나 보지. 이제 백작님 손에 들어왔으니 우리가 알 바는 아니야. 고집대로 입도 벙긋 안 하고 있겠지만.”
투구를 벗은 기사가 뭐라 말을 이으려 입을 열던 순간이었다.
“어어?”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이 잘려 나갔다. 놀란 기사들이 무기를 빼 들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카에드는 그들의 목을 차례차례 그어 나갔다. 여자가 저 별장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미적거릴 여유가 없었다.
기습을 당한 기사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카에드는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목을 긋기 전에 어떠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검을 집어넣고 주먹을 휘둘러 기사를 기절시켰다.
나서는 시늉조차 할 필요 없었던 호크가 별장으로 다가갔다. 카에드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이자를 데리고 여기서 기다려.”
“서두르세요.”
줄곧 말없이 따르던 호크가 그제서야 염려를 표했다.
“놈들이 우리 정체를 알아차렸으니 머지않아 국경을 폐쇄할 겁니다. 전령이 장벽 수비대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넘어가야 해요.”
카에드는 답을 주지 않고 지체 없이 등을 돌렸다. 그대로 별장 문을 끼익, 열어젖혔다.
꽉 막힌 공간에 들어서자 미약한 향기가 감돌았다. 나신의 그녀를 껴안았을 때 수 시간 동안 들이마셨던 연한 내음이었다. 카에드는 여자의 자취를 좇아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쿵!
2층에 오르자마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언가 깨지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곧장 따라붙었다. 카에드는 서너 개 자리한 침실 문을 지나치고 복도 맨 끝에 있는 문을 확 열어젖혔다.
너른 침실 안, 벌게진 얼굴로 서서 씩씩거리던 늙은 백작이 뒤를 돌아보았다.
“뭐, 뭐야? 당신 누구야?”
깨진 화병으로 추정되는 날카로운 조각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구석에는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감싼 그녀가 있었다. 처량한 꼬락서니를 보자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카에드는 널브러진 화병 조각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백작이 그녀에게 던진 화병이 빗나간 게 틀림없었다.
“당신 누구냐니까! 여긴 어떻게 알고 들어온 거야?”
노기로 얼굴이 달아오른 맥슨 백작이 쉰 목소리로 외쳤다.
카에드는 백작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움켜쥔 주먹이 백작의 번들대는 낯짝을 있는 힘껏 후려갈겼다.
백작은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추한 몸뚱이를 흔들며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뒤늦게 고개를 들어 올린 여자가 카에드를 응시했다.
“카에드…?”
그녀를 훑던 카에드가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카에드를 응시하던 그녀는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카에드는 그녀를 성큼 일으켰다.
“옷은요.”
얇디얇은 슬립만 걸친 그녀의 몸이 볼품없이 떨리고 있었다.
“내가 가져다준 옷은 어디 있어요.”
“저, 저기에요.”
카에드는 그녀가 가리킨 곳을 향해 걸음을 돌렸다. 구석에 떨어진 외투와 두꺼운 겨울옷을 한꺼번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하나하나 입혀 주기 시작했다. 두 무릎을 꿇고 붕대가 감긴 발에 신발까지 신겼다.
따뜻한 옷차림으로 덧입히고 나서야 몸을 성큼 일으켰다. 그러자 그녀가 물기에 젖은 얼굴로 카에드를 올려다봤다. 카에드는 이 자그마한 여자를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싶었다.
“크윽….”
바닥에 뒹굴던 백작이 피가래를 쿨럭였다. 눈길은 자연스레 벌레만도 못한 백작에게로 향했다.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던 카에드가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맞췄다.
“뒤돌아서 눈 감고 있어요.”
“네…?”
“얼른.”
카에드는 소매를 걷으면서 그녀를 재촉했다. 그가 무얼 할지 예측한 그녀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시선이 널브러진 백작에게 가닿았다.
“아뇨.”
그녀는 도리질을 치며 백작을 응시했다. 새파랗게 질린 낯빛과 달리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보고 싶어요.”
“그래요, 그럼.”
카에드는 산뜻하게 답하며 걸음을 돌렸다. 제게 평생 잊히지 않을 고통을 안긴 버러지가 곤죽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카에드는 백작의 멱살을 틀어잡고 그의 얼굴을 향해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셈을 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몇 번이고 그를 두들겨 팼다. 반쯤 의식을 잃은 백작이 검붉은 거품을 물며 꿈틀거렸다.
이윽고 카에드가 칼을 빼 들었다. 그녀조차 고개를 돌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가차 없는 손짓이 이어지고 나서야 카에드는 칼을 거두었다. 광기에 사로잡혀 주먹과 칼을 휘두른 그는 숨소리 하나 흩뜨리지 않은 채 무감한 낯을 하고 있었다.
카에드는 백작이 입은 재킷의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무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던 여자가 후들대며 입을 열었다.
“이, 이만 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계속해서 백작의 옷을 뒤졌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가치가 있는 건 무엇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옷에는 보석 장식이나 금박이 덧씌워진 단추 장식조차 없었다.
“백작이 평소에 금품을 어디에다 보관하는지 압니까?”
“금품이요?”
“금화라든지.”
여자가 다급히 도리질을 쳤다.
“모르겠어요. 제가 가지고 도망칠까 봐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 놓는 편이었어요.”
문득 어떠한 생각이 스친 카에드는 백작이 입은 재킷을 벗겼다. 잠자코 관망하던 여자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왜….”
왜 도둑질을 하냐는 의문이 여자가 흐린 말끝에 묻어 있었다. 오해를 풀어 줄 계제가 아니었던 카에드는 백작의 윗옷 소매를 홱 잡아당겼다.
예상대로 무척 값비싸 보이는 황금 소재의 커프 링크가 끼워져 있었다. 양쪽 소매에 자리한 그것을 빼 들고 소매를 더 젖혔다. 그러자 다이아몬드 장식이 박힌 은제 시계가 드러났다. 카에드는 백작의 시계를 풀어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이제 여기서 나가요…!”
불쑥 다가온 여자가 카에드의 팔을 붙잡았다.
“더 늦으면 안 될 거 같아요. 장벽을 넘어야 하지 않아요?”
카에드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전처럼 그의 기세가 눈 깜짝할 새에 바뀔까 두려웠던 여자가 움찔했다. 이내 그가 자신을 구하러 와 주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 빠르게 말을 이었다.
“눈보라 때문에 주둔지에서 보낸 전령병은 새벽이 되어서야 장벽에 도착할 거예요. 그쪽은 장벽이 폐쇄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넘게 되구요.”
“…….”
“하지만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일이 틀어질까 무서워요. 그쪽이랑 제가 마주치는 장면은 없었단 말이에요. 애초에 저는 거기 나오지도 않았던 사람이라….”
그녀는 또다시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처럼 괴상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게 더는 허튼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새벽이면, 정확히 언제쯤?”
“아마 자정이 지나 두어 시간 정도…. 미안해요. 기억이 잘 안 나요.”
“알았습니다.”
카에드는 그녀를 번쩍 안아 어깨에 들쳐멨다. 그녀가 짧은 비명을 내질렀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계단을 내려와 별장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을 확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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