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39)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39화(139/150)
별장 앞에서는 호크가 살아남은 기사를 무릎 꿇린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에드는 그녀의 허리를 감은 팔에 일부러 느슨하게 힘을 뺐다. 그녀가 중심을 잡기 위해 바동거리며 그의 옷자락을 틀어잡았다.
기사는 여자를 들쳐 안은 카에드를 보고서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모습은 험악한 도적이 귀부인을 납치하는 모양새가 아니고서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카에드는 호크를 향해 까닥 턱짓했다. 호크는 즉시 기사의 어깨를 발로 걷어찼다.
“당장 여기서 꺼져.”
호크가 매섭게 으르렁거렸다. 기사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들을 번갈아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허둥지둥 달아나기 시작했다. 카에드가 바라던 바였지만, 귀부인을 지키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 꼴이 더없이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녀는 살인 미수의 혐의를 받고 쫓기는 신세는 면할 것이다. 어차피 그녀 홀로 이 넓은 땅덩어리 어딘가에서 살아가려면 정체를 숨겨야 하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쫓고 쫓기는 신세보다는 훨씬 나을 터였다.
그전에 그녀의 의사를 물어보아야 했다.
“혹시 당신을 숨겨 주고 보호해 줄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모친 쪽의 일가라든가.”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없어요. 아버지한테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럼 어디로 가고 싶어요.”
카에드를 빤히 바라보는 투명한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꾹 다물었다. 끝끝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카에드가 대신 의견을 제안했다.
“남부에 있는 해안 도시는 어떤가요? 레지스 정도면 나쁘지 않을 텐데.”
이왕이면 남쪽으로 멀리 보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녀가 가고 싶었다던, 바다가 있는 남부 끝자락이 좋겠지. 북부는 나쁜 기억만이 존재하는 곳일 테니.
그의 제안에 여자는 입술을 말아 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레지스가 좋겠어요.”
“괜찮겠어요?”
“네…. 생소한 다른 나라로 가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때마침 호크는 지척까지 말을 가져왔다. 여자를 보는 눈이 썩 곱지 않았으나 충직한 심복은 한마디도 얹지 않았다.
말 앞에 다가선 카에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응시했다.
“말은 탈 수 있습니까?”
“아, 아뇨.”
그럴 것 같았다. 말을 타본 적은 있는 걸까. 카에드는 그녀를 안장 위에 올리고 그 뒤에 가뿐히 올라탔다. 그대로 말머리를 돌린 뒤 빠른 속도로 숲속을 벗어났다.
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전에 그녀를 남방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일단 마차를 구해야 했다. 그러려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큰 도시로 가야만 했다.
다행히 지금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오슬로였다. 전쟁 전에는 간간이 축제도 열렸던 도시엔 오가는 외부인이 많았고, 신분이 분명치 않은 이와 거래하는 중개인도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카에드는 그중 하나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달빛이 비추는 대로를 가로질러 도시로 향했다. 한밤중이라 그들은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춘 채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곧 개미 새끼 하나 얼씬거리지 않는 가도에 들어섰다. 카에드는 주변에 순찰하는 위병이 있는지 살핀 후 으슥한 골목 어귀에 들어섰다. 말에서 뛰어내린 그는 호크에게 손짓했다.
“부탁 좀 들어줘야겠다.”
“부탁이라뇨. 명령만 하세요.”
호크가 어울리지 않게 험상궂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카에드의 시선이 안장 위에 앉은 여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녀는 결연한 표정과는 달리 말 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해 뒤뚱거리고 있었다.
카에드는 다시 고개를 돌려 멀찍이 어느 5층 건물 아래 자리한 골목길을 가리켰다.
“저 모퉁이를 돌아서 걷다 보면 분수대가 있는 광장이 나와. 분수대를 기준으로 왼쪽 골목길로 들어가면 붉은 간판이 걸린 허름한 술집이 있을 텐데, 그곳 주인 부부에게 남부 레지스로 가는 마차를 찾고 있다고 말해. 도착 전까지 버틸 수 있도록 여자가 취할 식량과 옷가지도 요구하고, 남부에서 위조 신분패를 만들어 주는 브로커의 명함도 하나 받아와.”
양자 시절 성을 몰래 빠져나와 칼스비크를 방황하던 일이 카에드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 술집 주인 부부가 도주 중인 이를 빼돌려 주는 브로커라는 사실은 우연히 알게 된 정보였다. 남편에게서 도망치는 여자들도 그를 통해 새 신분을 얻곤 한다는 것이다.
“준비가 되는 대로 마차꾼을 데리고 이곳으로 와. 할 수 있겠지?”
“당연하죠.”
“지금부터 살상은 무조건 피해. 30분 후에 여기서 만나지.”
“알겠습니다.”
호크는 망토의 후드를 뒤집어쓴 채 빠르게 멀어졌다. 카에드는 그때까지도 안장에 앉아 있던 여자에게 다가가 두 팔을 뻗었다. 그녀는 얌전히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
그녀의 두 발이 지면에 닿고도 카에드는 붙든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가 턱을 들어 올리자 지척에서 눈이 마주쳤다.
포옹이나 다름없는 이 접촉을 밀어내지 않으면 더없이 어색해질 것이다. 말에서 내려 주기 위한 동작이었을 뿐이니까.
그걸 알면서도 그녀의 등허리를 감싼 손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두꺼운 외투 아래로도 느껴지는 마른 몸을 와락 끌어안고 이대로 품 안에 단단히 가두고 싶었다.
달빛을 내리받은 연한 금발이 바람결에 흩날렸다. 카에드를 올려다보는 여자의 눈이 밤바다처럼 잔잔한 빛으로 반짝였다.
이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속내를 훤히 내보인다고 생각했던 푸른 눈이었는데 지금은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카에드는 손에 느슨하게 힘을 빼면서 몸을 홱 돌렸다.
“이리 와요.”
그녀의 손을 잡고 조용한 골목길로 이끌었다. 이 길의 끝자락에 인적이 드문 폐건물 두엇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호크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곳에서 몸을 숨겨 순찰병의 눈을 피할 심산이었다.
다행히 누구도 마주치지 않고 버려진 창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많이 긴장했던 모양인지 그녀가 헐떡이며 숨을 골랐다.
창고의 벽 위쪽에는 자그마한 유리창이 나 있었고, 바닥에는 빈 술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짧은 시간 몸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바깥에 다가오는 기척은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카에드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허연 눈송이가 어깨와 머리칼에 얽혀 있었으나 바들바들 떠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받아요.”
카에드는 아까 챙겼던 백작의 금제 장신구와 값비싼 시계를 건넸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든 그녀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잘 들어요.”
카에드는 그녀의 턱을 붙잡아 저와 시선을 맞추었다.
“커프 링크 하나는 레지스에 도착하면 마부에게 줘요. 나머지 하나는 여관비로 지불하면 깨끗한 곳에서 두 달은 지낼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이 시계로 밑천을 만들어요. 내 부하가 브로커의 명함을 가져올 테니까, 그쪽으로 연락해서 위조 신분패를 만들고 현금으로 교환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카에드는 나직한 음성으로 당부하듯 말했다. 살짝 벌어진 그녀의 입술에서 자그마한 헛숨이 흘러나왔다.
“이해했어요?”
“네….”
“이제 당신을 보살펴 줄 사용인은 없겠지만 살아갈 수 있겠죠.”
최악의 환경에서도 지내 보았다며, 어디서든 적응할 자신이 있다던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땐 손에 물 한번 안 묻혀 봤을 귀부인이 웬 헛소리를 지껄이나 싶었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것 또한 거짓이 아니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받아 든 장신구를 손에 꼭 움켜쥐었다.
“제게 이렇게까지 해 주는 이유가 뭐예요?”
“…….”
“계속 데리고 다니기도 번거로웠을 텐데, 이번에는 구하러 와 주었잖아요. 왜요?”
뜻밖의 물음에 카에드는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어찌 소리로 풀어낼 수 있을까.
카에드는 대답 대신 창고 한구석을 고갯짓했다.
“앉아 있어요. 부하가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그녀는 장신구를 주섬주섬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창문의 모양대로 길게 쏟아지는 달빛 아래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카에드 또한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대신 두어 뼘 정도 떨어진 간격을 유지하며 달빛이 들이치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두 무릎을 모아 끌어안고 턱을 올려놓았다. 콩닥대는 박동 소리가 그의 귓가에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제 말을 믿어 주었던 거죠.”
그녀가 세운 다리를 더 바투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카에드는 답답한 것처럼 목깃의 옷감을 잡아당겼다.
“그래요.”
“…….”
“당신 말대로였어요. 주둔지에서 홀로 복귀한 부하가 말해 주더군요. 나머지는 작전 수행 중에 붙잡혀서 죽었다고.”
“미안해요….”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심상한 어조로 답하자 여자가 옅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카에드는 무릎 위에 올린 손가락을 까닥이며 침묵을 지켰다.
폐쇄된 공간에서 그녀가 자그맣게 내뱉는 숨결 소리가 유독 노골적이었다.
“내가 블카노프 가문에 입양된 양자는 아니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 슬쩍 카에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 그녀를 빤히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어폐가 있어서요. 공작이 국경에서 날 거둬들인 건 사실인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니까.”
그녀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제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카에드는 분명한 어조로 말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이 무엇을 말하든 믿을 테니까 진실을 알려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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