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ed To A Savage Duke RAW novel - chapter (14)
피폐물 속 괴물 남주와 결혼했다 14화(14/150)
나타샤는 사색이 되었다.
지금 걸치고 있는 장신구는 목숨처럼 아끼는 것이었다.
사치품에 일가견이 있는 나타샤가 수도의 보석상 여러 군데를 뒤지고 뒤져서 찾아낸 매우 진귀한 보석이었다.
개중에는 머나먼 타국에서 수입해 온 희귀한 반지도 있었다. 화마에 불타지 않았던 이유는 상시 착용하고 있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투자에 눈이 먼 밀로즈 후작이 나타샤를 독촉했다.
“착용한 장신구를 대공님께 전해 드리시오.”
“하, 하지만….”
“어서.”
매서운 호령에 나타샤는 마구 찌그러진 표정으로 목걸이와 귀걸이, 반지 등을 빼냈다.
후작은 그녀의 보물을 함에 담아 카에드에게 공손히 건넸다.
“당장은 준비한 것이 이것밖에 없사오나 너그러이 받아 주십, 어이쿠!”
말을 끝맺기도 전에 카에드 뒤에 있던 수하가 잽싸게 튀어나와 보석을 거둬 갔다.
흡사 도적질 같은 움직임에 후작이 흠칫 놀라 손을 떨었다.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야만인들이…! 번번이 겁만 주고 있군!’
수도 출장을 갔을 때도 저놈의 부하들 때문에 심장 떨어질 뻔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심코 뒤나 옆을 볼 때마다, 인기척을 완벽하게 죽인 여섯의 남자가 들짐승 같은 안광을 빛내며 서 있던 일은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후작은 불혹이 훌쩍 넘은 나이에 심장 마비로 세상을 하직할 뻔했다.
‘그뿐이었겠는가!’
후작이 대공에게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을 때도 그들은 적절치 못한 타이밍에 끼어들어 키들대기 일쑤였다.
‘식성들은 또 어찌나 좋은지!’
힌델의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하여 대접해 주었더니, 거의 30인분을 해치워서 후작의 주머니가 거덜 나고 말았다.
‘내 평생 그리 어마어마한 돈을 외식에 써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술로 목만 축이던 카에드에게 식비를 일부나마 줄여 줘서 감사하다고 넙죽 절하고 싶었을 만큼 큰 금액이었다.
‘두고 봐라. 저 썩을 야만인들에게 호되게 당했던 몫까지 모조리 뜯어먹어 주마.’
밀로즈 후작은 격식을 다시 차리며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대공님께서 후작저에 하룻밤이라도 더 묵어 가시게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밤이 깊었지만 역시 응접실에서 옹서 간의 담론을….”
“밤이 깊었으니 휴식을 취할까 합니다. 그럼 이만.”
카에드의 말을 끝으로 일곱의 부하들은 기지개를 켜며 1층의 손님방으로 향했다.
“아… 아니?”
“저도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
입만 벙긋거리는 후작에게 세라엘도 나긋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갑자기 해산하는 분위기에 후작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으으…. 참자꾸나. 장기적인 사업으로 보면 분명 이득이 될 터이다.’
그는 마지못해 카에드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모쪼록 푹 쉬십시오, 대공님. 내일 오전에 배웅하겠습니다.”
굽신거리는 후작을 본 세라엘이 헛웃음을 쳤다.
‘아버지란 인간이 하나뿐인 딸이 북부로 영영 떠난다는데도, 눈길 하나 안 주고 대공에게 빌빌대기만 하는구나.’
그녀는 층계를 오르면서 슬쩍 난간 아래를 보았다.
집사가 1층의 다른 손님방을 가리키며 후작에게 뭐라 말하고 있었다.
아마 기존 침실이 새까맣게 타 버린 까닭에 임시 잠자리를 그곳에 준비했다는 말인 듯했다.
후작은 저택 내에 귀한 손님이 있어 차마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열 받은 얼굴로 주먹을 쥐어 보다가 나타샤와 얌전히 손님방으로 향했다.
‘그 방 반대편엔 카에드의 부하가 잔뜩 있을 텐데 잠이 잘도 오겠다.’
카에드 일행이 오고 나서 바로 다음 날 아침, 루시가 말하기를 1층 손님방에서 천둥이 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일곱 명의 남자들이 어찌나 코를 요란하게 고는지!
근처를 지나가던 사용인들이 천둥 같은 코골이 소리 때문에 소나기가 오는 줄 알고 쉴 틈 없이 창밖을 확인했단다.
카에드는 몹시 조용히도 자는 것 같던데 재미있는 일이었다.
‘코골이 칠중창을 밤새 들어야 한다니 아버지와 나타샤도 참 잘됐어.’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을 때였다.
세라엘은 자기 옆에서 나란히 계단을 오르고 있는 카에드를 발견했다.
“꺅!”
너무도 놀라서 병아리 울음소리 같은 비명을 짤막하게 내질렀다.
가슴에 두 손을 얹은 세라엘이 그 자리에 못 박은 듯 섰다.
그러나 카에드는 제 어깨너머로 흘깃 돌아볼 뿐, 그녀를 지나쳐 복도를 걸었다.
“대공님?”
졸지에 세라엘이 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 꼴이 되었다. 그가 세라엘의 방을 향해 거침없이 걷는 모습을 보자 예사롭지 않은 생각이 스쳤다.
‘설마…!’
그녀는 눈썹을 세웠다.
‘동침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세라엘 쪽에서 결혼 의사를 다시 표명했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세라엘은 다소 가시가 돋친 목소리로 카에드를 불렀다.
“대공님. 어딜 가시나요?”
“어딜 가긴요. 쉬러 가고 있습니다.”
“혹시 저를 따라오시는 건가요?”
“지금은 세라엘 양이 나를 따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터무니없는 말장난에 어이가 없어 세라엘은 잠시 멈춰 섰다.
그러다 다시 잰걸음으로 카에드를 따라잡으려 애썼다. 보폭 차이가 심히 났기에 헛수고였다.
세라엘은 카에드의 너른 어깨를 노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무엇이 곤란하단 말입니까.”
“지금 초야를 치르는 건 곤란하다는 말이에요. 대공님과 제가 제아무리 결혼을 앞두고 있다지만….”
“초야?”
카에드가 우뚝 멈췄다.
그 바람에 세라엘은 그의 단단한 등에 코를 부딪치며 덩달아 멈춰야만 했다.
“아앗! 내 코….”
“초야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픈 코를 부여잡고 있는 동안 돌아선 카에드가 희미하게 굳은 안색으로 그녀를 보았다.
‘인간의 몸이 어쩜 이리도 딱딱할 수가 있지?’
코피라도 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코가 아팠다.
세라엘은 부여잡은 코를 놓지 않은 채 그를 원망하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말 그대로예요. 제가 아쉬운 사람처럼 대공님을 붙잡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동침한다는 건 가당치도 않아요.”
카에드가 뭐라 말하려 하자 세라엘이 재빨리 선수 쳤다.
“오해하지 마세요. 혼례식을 치르기 전이니까 초야를 보낼 수 없다는 고루한 차원의 얘기가 아니니까요.”
“…….”
“파트너가 있다면 굳이 결혼까지 가지 않아도 이런저런 흥미진진한 일을 할 수 있겠죠.”
더없이 자유로운 시대를 겪어 봤던 세라엘로서는 자연스레 갖게 된 가치관이었다.
“하지만 대공님과 제가 벌써 잠자리까지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잖아요.”
세라엘이 방어적으로 팔짱을 껴 보였다.
“흥미로운 가치관이긴 합니다만….”
반듯한 눈썹을 문지르며 카에드가 미묘한 여운을 흘렸다.
“오해를 안 할 수가 있습니까? 세라엘 양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군요.”
“비록 언약을 맺은 사이가 되었다 한들, 대공님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함께 밤까지 보낼 순 없는 노릇….”
고집 있게 가치관을 늘어놓던 세라엘의 시야에 불현듯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방문.
하나는 세라엘의 방.
하나는 그녀가 직접 안내까지 해 준 카에드의 손님방이었다.
“…어, 혹시 손님방으로 돌아가시던 중이셨나요?”
“그럼 어딜 가고 있었겠습니까.”
세라엘이 황망히 두 침실 문을 번갈아 보자, 카에드는 그녀가 어떤 오해를 했는지 알아차렸다.
‘어떡하지! 나야말로…! 내가 큰 오해를 했어. 카에드는 그냥 손님방으로 가던 중이었나 봐!’
그는 이제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
카에드의 허탈한 한숨을 듣고 세라엘은 발을 동동 굴렀다.
조금 전까지 그가 옆방에서 참 조용히도 자더라는 생각을 했으면서 이 무슨 어리석은 착각이란 말인가.
‘사랑에 빠진 여자를 연기한 것도 시원하게 들키고서, 이런 망측한 오해까지 하다니!’
흑역사로 길이 남을 실수다. 당장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뻥뻥 차고 싶었다.
세라엘은 붉어진 얼굴을 숙인 채 카에드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읏…. 의도치 않게 대공님께 여러 번 실언하게 되었네요. 정말 결례했습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사과한 세라엘이 후다닥 내달렸다.
정숙지 못한 숙녀처럼 보일까 봐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단지 이 민망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넓게 벌어진 어깨가 순식간에 그녀 앞을 막아섰다.
“결례는 둘째 치고.”
“…네?”
“나한테 마저 설명할 게 있지 않습니까?”
“설명이요?”
그래, 카에드 말마따나 혼인에 대한 의사를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였으니 당연히 설명은 필요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그거야 있기는 있지만…. 대공님께선 꼭 지금 들으셔야겠나요?”
이거 봐.
이마까지 빨개진 내 얼굴을 좀 보라고.
그러한 어감으로 세라엘이 눈치를 줬다.
사실 카에드는 설명 따위 관심 없었고 그저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눈에 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 나를 보고 말해 주시지요. 손 틈새로 보란 뜻은 아니니 손은 내리시고.”
너무 부끄러워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를 봤더니 가차 없이 지적당했다.
층계참에서 세라엘을 흘깃 보며 쌩 올라갈 땐 언제고, 인제 와서 혼인 의사를 번복한 이유를 말해 달라며 집요하게 굴고 있다니.
‘초야 운운했다고 날 놀리려는 거 맞지?’
세라엘은 왈칵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그러는 대공님도 조금 전 계단에서 저를 모른 척 스쳐 지나가지 않으셨나요?”
“그랬습니다.”
“왜 그러셨죠? 지금처럼 제 사정을 당장 듣고 싶은 분처럼 보이지는 않던걸요?”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어떤 이유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너도 한번 곤란해 보라는 심산으로 세라엘은 그를 물음표 지옥에 빠뜨렸다.
그러나 카에드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까 전 세라엘 양과 접촉했을 때부터 몸이 긴장했습니다. 손끝이 뜨겁고 단전에 힘이 들어가는 게 생소한 반응이라, 방에 돌아가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요.”
“!”
“층계참에서 세라엘 양을 지나치려던 의도는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해명이 되었습니까?”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을 단조로운 어조로 늘어놓은 카에드는 그저 태연했다.
‘단전, 이 뭐 어떻다고? 뭘, 뭘 진정시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대답에 세라엘은 입을 벌린 채로 얼어붙었다.
“…세라엘 양?”
조각처럼 고고한 카에드의 얼굴에 언뜻 당황한 기색이 비쳤다.
세라엘은 곧 그 감정 변화의 출처를 알아차렸다.
그녀의 코에서 뜨뜻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양쪽 콧구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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